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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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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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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9,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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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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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쪽

197

DUMMY

에르가 향하는 곳은 하급 훈련장 방향으로, 이전 그리모르의 검술 초급 수업이 행해졌던 바로 그곳이었다.


리아는 조용히 길을 터주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마력을 탐지해보았다.


아이리스의 마력은 곧장 감지됐다.


틀림없이 하급 훈련장에 있다. 곁엔 델리안이 있는 것도 확실히 확인했다. 게다가 페리도 멀지 않은 곳에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아이리스가 맞는 상황이 된다고?’


델리안은 연세가 있는 사람답게 제법 고지식한 면이 있다. 아닐 때도 있긴 하나――대표적으로는 제국에서 로즈에게 어울려준 것――, 기본적으로는 노인의 성품과 닮아 있었다.


그런 그녀의 성격상, 입으로 꺼낸 말은 반드시 지킬 터. 가만히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의아하다는 걸 깨달은 리아는 어떻게 된 건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응? 잠깐만······.’


넌지시 에르를 올려다보니 역시나······. 아까의 화난 낌새는 온데간데없이, 평소의 침착한 그로 돌아와 있다.


힘이 빠진 리아는 빠르게 걷는 속도를 늦췄다.



“리아 양?”


걱정되어 따라오던 리카드가 묻는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의 옆에 있는 세리오도 같은 뜻으로 쳐다본다.


리아는 작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별일 없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네. 두 분이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확실히 아니에요.”


구체적인 설명을 하진 않았으나 단호한 대답에 마음을 놓았는지, 리카드는 경직되어 있던 얼굴을 폈다. 세리오도 염려하는 마음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지만, 살짝 미소를 되찾았다.



“두 분 모두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아뇨. 아서 씨를 소환한 건 접니다. 제 책임도 있으니 감사를 받을 건 아닙니다. 근데······ 당최 무슨 연유인지?”

“그건 가보시면 알 거예요.”


리카드와 세리오는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둘을 데리고 리아는 느긋하게 걸었다.


하급 훈련장에 가까워져 오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다가오는 리아를 발견하고는 비켜섰다. 표정에는 관련되고 싶지 않다는 식의 기피감 같은 게 어려있었는데, 다행히도 아직 이 일이 널리 알려진 건 아닌지 그리 혼잡하진 않았다.


그렇게 뻥 뚫린 길을 나아가고 있으니, 웅성거리는 소란에 뒤늦게 이쪽을 알아챈 몇몇이 달려왔다.



“안녕하세요, 닐 씨, 그리드 씨.”

“아, 예! 평안하셨습니까, 이스피리아 님.”

“인사는 나중에나 하라고. 아씨도! 지금 태평하게 인사나 할 때가 아니야.”

“저도 대충 소식을 듣고 온 거예요. 근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우리도 자세한 소식은 몰라.”

“아는 데까지만이라도 괜찮아요.”


대략적으로도 좋다. 리아는 계속 걸어가며 그들이 알고 있는 자초지종을 들었다.


둘은 평소처럼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가 소란을 듣고 온 것으로, 확실히 많은 사정을 알지는 못하였다. 억측성 발언은 자제하고, 세리오랑 똑같이 아이리스가 맞고 있다는 것만을 전해줬다.


정보가 적긴 했으나 별로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위험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감사를 전한 리아는 시선을 받으며 하급 훈련장에 들어섰다. 검술 초급반 이후로는 오랜만이다.


그리움을 느끼며 쭉 둘러보고 있자니 금방 아이리스를 찾았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리아는 훈련장이 내려다보이는 단 위로 갔다. 거기에는 퍼스트가 먼저 와 있었는데, 그는 곧장 앞으로 와 무릎을 꿇어 예를 취했다.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리아는 짧게 치하하고는 훈련장에 시선을 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이리스가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 앞에서 아서가 목검을 늘어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라고. 짧고 간결하게 베야지. 몇 번을 말하냐? 그렇게 불필요한 동작만 있어선 계속 당한다니까?”

“다, 다시 한번 부탁해!”


크게 아프지는 않았는지, 아이리스는 벌떡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서는 명백히 귀찮아하는 티를 팍팍 풍겼는데, 왜인지 델리안을 슬쩍 보더니 어쩔 수 없다며 응해줬다.


아이리스는 아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과연 용왕의 피를 이은 직계 후예랄까······. 인간 상태일 때는 변변찮은 마력밖에 쓰지 못하는데도 꽤 빠르다. 흡사 투기술을 쓴 것만 같다. 아마 고등부를 상대로도 준수하지 않을까 싶다.


그걸 마주하는 아서는 여유로웠다. 아무 긴장감도 없이 아이리스가 휘두르는 검로에 목검을 들이밀 뿐이었다.


휘릭~!


아이리스의 자세가 흐트러지며 크게 균형을 잃었다.


완전한 빈틈. 아서는 별 힘들이지 않고 드러난 아이리스의 옆구리를 목검의 옆면으로 툭 쳤다. 중심을 잃은 아이리스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해를 못 하겠네. 뻔히 흘리려던 게 안 보여? 암만 그래도 풀 스윙은 아니잖아.”

“또! 또 부탁할게, 아서 형!”

“어휴. 근성 하나는 좋네.”


투덜대면서도 아서는 재차 검을 겨누는 아이리스에게 맞춰줬다.


뭐, 더 설명할 것도 없다. 보는 그대로다. 아이리스는 아서와 검술 대련―― 정확히는 검술 지도를 받는 것이었다. 너무 일방적인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착각했을 뿐, 괴롭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먼저 보낸 교직원도 똑같은 것을 이야기해 왔다. 사정을 듣기로, 오히려 아이리스가 적극 이 지도를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말리지 못하였다며 난처해했다.


리카드와 세리오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리아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오면서 아이리스의 마력을 살폈으니까.


에르가 진정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저리 신나 팔딱팔딱 뛰는 마력을 보았건만 어찌 모르겠는가.


애당초 곁엔 델리안이 있는 데다, 아이리스의 몸엔 에르가 걸어둔 과하디과한 마법들이 몇 중으로 깔린 판국이다. 뚫어내는 것만으로도 여의찮은데 과연 이 학원에서 위험해질 일이 벌어지겠나.


아이리스가 맞았다는 소리에 잠시 정색했지만, 이후 냉정해지고 보니 조금 창피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건 넘어가고······. 저 아서 씨는 뭐지? 갑자기 왜 우리 아이리스랑······. 게다가 검술도. 맥아리가 없어서 못 받아낼 줄 알았는데, 되려 힘의 방향을 완벽하게 바꿔버렸네.’


레딧츠가 말하기로는 잠재력이 상당하다던데,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방금 선보인 기술은 굉장히 수준 높았다. 여태 제멋대로 날뛰던 망아지라고 보기 힘들 정도다.


기억을 되돌려 보니 더욱 그러했다.


‘마음이라도 읽었다는 양, 아이리스의 검이 어디로 날아올지 알고 있네? 흘리는 것도 대박인데? 레일을 타듯, 검신을 타고 흐르게 했네. 확실히 저거라면 전혀 힘들이지 않을 만해.’


오히려 자세히 분석하니 그 수준 높음에 리아는 저도 모르게 살짝 탄성을 냈다.



“응?”


들은 건 아니겠지만, 재차 아이리스를 넘어뜨린 아서가 단 위를 쳐다본다. 그러다 리아와 눈이 마주쳤고, 히죽 웃던 그의 얼굴이 한순간 딱딱해졌다.


이 탓에 대련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이변을 알아차린 아이리스도 이윽고 이쪽을 발견했다.


굳이 나설 마음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잠시 얘기 좀 하고 올게요.”


일방적으로 말을 남기고, 리아는 곧장 적청의 세계로 진입. 눈 깜짝할 새도 없이 아이리스의 옆에 당도했다. 당연히 에르도 함께였다.


유일하게 간파한 사람은 델리안뿐. 갑자기 나타나자 아이리스와 아서는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벌렸다.


‘우리 아이리스는 당연하지만······. 의외로 반응이 좋네. ······그리고 나 또한.’


퍼스트와의 대련에서도 느끼긴 했지만, 몸의 상태가 제법 안정됐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적청의 세계에 들락거리는 게 깔끔해졌다. 백의 세계도 전보다 훨씬 편하게 진입할 수 있었고······.


잠시 멍하니 손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아이리스였다. 누군지 확인하고는 놀란 듯하면서도 밝게 웃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아아. 조금 이야기가 들려와서. 근데 보아하니, 검술 지도를 받고 있었구나?”


아서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에 반해 아이리스는······ 눈이 번쩍였다.



“응응! 맞아. 들어 봐봐, 엄마! 아서 형 말이야, 진짜 굉장해! 학원에서―― 만나본 사람 중에서 최고야! 레딧츠 씨도 대단했는데, 아서 형은 그 이상이라구! 정말 천재. 아니, 천재 중에서도 천재야. 난 뭘 어떻게 하는지도 전혀 이해가 안 되더라니까!”

“그렇구나······.”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 아이리스.


무심코 대답했으나, 정말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할 말, 못할 말 다 뱉어버리고.


······하지만 저리 즐거워하는 거다.


이런 아이리스를 보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기억마저 가물가물하다. 그렇기에, 리아는 경악이 서린 눈으로 바라보는 아서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긴 처음이네요. 안녕하세요, 이스피리아라고 해요.”


리아는 정중히 벨루디스의 예법으로 인사했다.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서는 당황하면서도 조금이지만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서 알펜리트야.”

“만나서 반가워요, 아서 씨. ――아. 초면에 성함을 불렀는데, 혹시 실례였는지요?”

“아, 아니. 마음대로 불러도 돼.”


빙긋 웃은 리아는 조금 떨어진 아서의 앞으로 갔다. 그리고 살며시 머리를 숙였다.



“번거로울 텐데, 아들에게 어울려주셔서 감사해요.”

“괘, 괜찮아. 애당초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거였고.”


대답하면서도 아서는 곁눈질로 아이리스와 리아를 번갈아 살폈다. 조용히 그의 뒤에 대기한 페네리로도 마찬가지.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놀란 기색으로 이쪽을 두런두런 쳐다봤다.



“사정은 듣지 못했지만, 저리 즐거워하는 아들은 오랜만이에요. 부디 싫지 않으시다면, 계속 어울려주셨으면 좋겠어요. 혹시 괜찮을까요?”

“어, 어. 나는 상관없어.”


얼떨결에 대답한 기분이지만 분명 아서에게는 꺼리는 기색이 없다.


흡족하게 여기며 리아는 아이리스에게로 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열심히 하렴. 다만, 너무 아서 씨를 곤란하게 하지 말고.”

“응! 알았어!”


허가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이리스는 잔뜩 신나서는 아서에게 아까의 검술은 무엇이었냐며 물어댔다.


리아는 허둥대면서도 대답하는 아서를 보곤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렸다.


올 때와는 달리 천천히 걸었는데, 단 위로 도착하니 아는 얼굴들이 더 늘어있었다. 그들은 바로 아이리스의 여자 친구들이었는데, 그녀들은 리아가 돌아오기 무섭게 곧장 다가왔다.



“이스피리아 님. 실례합니다만, 아이리스 군은······?”


인사도 생략한 채 대표로 묻는 비비안의 물음에 리아는 가볍게 대꾸했다.



“더 지도받을 모양인가 봐요.”

“이스피리아 님께서는 받아들이셨고요?”

“네.”

“어, 어찌 그런······.”


리아는 고개를 꼬았다.



“어째서고 뭐고, 아이리스가 그러길 바라는걸요? 여러분들의 눈에는 저게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이나요?”


이쪽보다 먼저 지켜본 비비안들이다. 차마 무어라 말을 못 하고, 신나게 떠들어대는 아이리스를 쳐다보았다.


‘그야 나도 저런 아이리스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걸.’


아이리스는 본래 천방지축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드래곤의 모습일 뿐, 행동 자체는 어린아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궁금한 건 참지 못하여 밖을 싸돌아다니기도 일쑤였다.


그랬는데 돌연 어투부터 고치더니 어느새 철이 들어버렸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추측하기로는 마력의 폭주 이후인 듯하다.


뜬금없는 변화에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본인이 노력하는 거다. 걱정되면서도 엄마로서 아들의 노력을 긍정해줬다.


다만, 계속 참고 있는 게 아닐지 염려됐었다. 호기심도 많으니 필시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을 터. 무리해서 그것들을 눈에 두지 않으려 했던 건 아닌지 신경 쓰였었다.


어쩌면 베르다드로 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충분히 상의하긴 했지만, 억지로 따라 준 감이 없진 않았기에.


지금이야 목적한 대로, 여러 친구도 생기고, 제법 즐겁게 지내는 듯하니 별로 후회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역시나 아이리스의 생각을 가볍게 여긴 건 아닌지 계속해서 고민됐었다. 이 때문에 에르와 상담한 적도 많았었다.


그랬었는데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어투마저 잊고 신나 소리친 것이다.


엄마라는 소릴 도대체 몇 년 만에 들어본 건지······.


물론 어머니라는 정중한 표현도 나쁘진 않다. 별로 한 것도 없지만 예의 바른 아이로 자란 듯하여 기쁘기만 하다. 그러나 역시 친근함이 넘치는 엄마를 이길 순 없다.


‘응원하진 못할망정 막을 수야 없지.’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주변 대비, 리아는 에르와 함께 땅바닥에 뒹구는 아이리스를 따스한 눈길로 지켜봤다.


이대로 쭉 흘러갔으면 싶은 좋은 시간이다.



“아이리스 군?!”


하지만 급박한 외침으로 인해 끊어지게 됐다.


많이 들어본 목소리로, 시선을 옮겨보니 그곳에는 핑크빛 머리카락의 소녀―― 에리사 발렌시하가 있었다. 비비안들과 함께 행동하진 않았는지, 소란스러움에 확인하러 왔다가 뒤늦게 온 모양이다.


에리사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리아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더니 빠르게 리아에게로 왔다.



“저, 저기, 잠시 실례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묻는 에리사의 말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시선도 재차 엉덩방아를 찧는 아이리스에게로 고정된 채였다.


아이리스를 정말 아끼는구나 싶어 리아는 다정하게 사정을 말해줬다.



“어떻게 봐서 저게 대련이란 건가요?!”


하나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에리사는 쉽게 납득하지 못한 모양이다. 따지고 들듯 바짝 다가왔다.



“매우 일방적이기는 해도 제대로 된 대련이란다. 실력 차이가 너무 압도적이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리사도 보면 알지 않니? 아이리스가 즐거워하는 것을.”

“하, 하지만 저리 맞는 건······.”

“힘 조절을 해줘서 다칠 염려는 없단다. 만약 다치더라도 [치유]로 고치면 그만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본인이 원하고, 다칠 일도 없는데 어디가 문제라는 거니?”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되었던 리아는 화를 내는 에리사에게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이 역린을 건드렸나 보다. 눈물까지 글썽거리게 된 에리사는 분에 차 외쳤다.



“상처는 나아도 아픔까진 낫진 않잖아요?! 게다가 저렇게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데!”

“뭐, 아이는 저리 뒹굴면서 크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옛날에도 자주 저랬었고. 오히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더욱 흔할 일이지 싶은데.”

“아니에요! 아이리스 군은 멋지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결코 저런 식으로 더러워질――”

“――그건 네가 그리는 아이리스잖니.”


리아는 순간 입을 다문 에리사에게 제법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우리 아이리스에게 어떠한 이미지를 품든 상관없어. 그건 자유니까. 하지만 그걸 강요하면 안 되지. 아이리스는 아이리스야. 저 아이의 기분은 무시하고 멋대로 구는 건······ 제아무리 친구라 해도 용납 못 해.”

“······누나로서 말인가요?”

“아니. 저 아이의―― 아이리스의 엄마로서야. 상식적으로 누나가 동생에게 이리 관여할 리는 없잖니?”

“어, 엄마······?”


침묵이 내려앉았다.


에리사는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근처에 있던 비비안들과 다른 사람들도 똑같았다.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싶어 서로를 쳐다보고는 리아에게 시선을 되돌렸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리아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갠 하늘은 피크닉 가기 딱 좋은 날씨다. 이 가슴의 ‘술렁임’ 따윈 어찌되도 좋을 만큼.


정말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다.


――어차피 특정 상황에서 발해지는 이 술렁임의 정체는 대충 파악했으니까.


‘아마 다른 미래―― 당시의 기억과 감정이 겹친 기시감이겠지.’


요즘 들어 줄긴 했으나, 이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경험해봤으면 둔한 사람이라도 눈치채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더는 신경 쓰지 않도록 했다. 일종의 알림인 건 알지만, 신경 써서 뭐하겠나. 방금 잘난 척 떠들어댔는데, 있었는지도 모를 다른 미래에 영향을 받는 것도 체면을 구기는 것 같고.


결정은 나 자신이 하는 거다.


때마침 시기도 적절해 보인다. 어느 정도 아이리스도 자리를 잡았고. 이제 와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학기 초 때보단 파장이 없으리라.


‘아니······. 다 핑계지.’


그렇다. 본심은 매우 심플했다. 그저 더는 숨기고 싶지 않을 뿐······.


관계에 대해 둘러대는 것도 이젠 지쳤다.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남편을 남편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짓이 어이없기만 했다. 괜한 귀족들의 혼담도 민폐였고.


모든 게 까무러치게 싫증 났다고 해도 좋다. 이리저리 눈치 보는 건 그만두련다.



“그래. 엄마란다. 아이리스는 내가 품고, 영혼을 나눈 내 아들이야. 보기엔 이래도 말이지.”


리아는 강한 힘이 담긴 시선으로 에리사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난 막지 않아. 적어도 더러워진다는 하찮은 이유로 막을 생각은 없어. 옷은 빨면 그만이야. 더러워졌으면 씻으면 되고. 겨우 그런 걸로 즐거워하는 아들을 막는 엄마는 없단다. 정도에서 벗어났다면 또 모를까.”

“그, 그래도 저는 저런 아이리스 군을 두고 볼 수 없어요.”

“에리사, 미안하지만 확실히 말할게. 너의 허락 같은 건 필요 없어. 그건 주제를 넘는 일이야. 걱정하고 염려해주는 마음만으로 충분해. 네 잣대로 순수하게 즐기는 아이리스를 방해하지 마렴.”


에리사는 입을 다물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생각할 거리가 있겠지······.


잠시 바라보던 리아는 분위기를 바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비비안들을 보았다.



“우리 아이리스는 보기보다 제법 둔하거든? 지금은 엄마 바라기니까, 빼앗아 가려면 힘 좀 내야 할 거야. 난 쉽게 내어줄 생각 따윈 전혀 없거든.”

“아, 아뇨. 저희는 그런 게······.”

“어머? 아니었구나. 그럼 다행이네. 당분간 아이리스는 내 독차지니까.”


한참 어린 것들이 내숭은······.


리아는 한껏 이를 드러내며, 비웃는 듯한―― 승자의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같잖기만 한지라 사양은 없었다.


‘남자를 얻으려면 망설이지 않아야지. 아이리스 같은 천사, 그 이상의 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틈은 없을 텐데 말이야.’


간 보는 듯한 짓거리는 용납하지 않는다. 감히 누구 아들에게. 겨우 그런 마음이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꼬맹이나 노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한 뜻을 담아 피식 웃었는데, 자극이 됐나 보다. 비비안들의 표정이 미세하지만 일그러졌다.


그리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보이는 그녀들의 대표로 비비안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이스피리아 님께는 무척 송구하지만, 부디 지금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조만간 아이리스 군을 받아 갈 테니.”

“호오. 그거 기대되네. ······뭐, 열심히 해보렴. 결국 선택은 아이리스가 하는 거니까. 서로 싸우지는 말고.”

“싸우는 건 아이리스 군도 바라지는 않을 터. 사이좋게 경쟁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별로 기쁘지 않은 마음으로 언젠가 어머님이라 불릴 날을 고대할게.”

“예.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이스피리아 님.”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비비안들.


꼴을 보니 아이리스에게 영 마음이 없진 않았나 보다.


제 나름의 확인을 마친 리아는 만족스럽게 리카드를 올려다봤다.



“미안해요.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셨는데 멋대로 망쳐버렸네요.”

“리아 양이 필요 없다고 여겼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마음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이 시기라면 큰 탈도 없을 테고요.”

“맞아요!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거죠! 무, 물론 사정은 이해하지만요.”

“고마워요, 두 분.”


알고 있었냐며 쳐다보는 주변의 눈은 아랑곳없이 둘은 밝게 웃었다.


매번 이 둘에게 얼마나 위로받는지······.


감사한 마음을 담아 리아는 진지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가 시야의 끝에 앞으로 뛰쳐나가는 자가 들어왔다.


에리사였다. 무슨 생각인지 그 아이가 단을 뛰어 내려갔다. 진로 방향을 토대로 추측컨대, 아이리스에게 향하는 것이었다.


빠르게 고개를 든 것과는 다르게, 리아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페리.”


지루하다는 낌새를 팍팍 풍기며, 조용히 이쪽으로 왔었던 페리가 쏜살같이 달려 에리사의 앞을 막아섰다.



“페리! 비켜줘요!”

《머리를 식혀라, 어린 암컷. 아이리스는 전혀 위험하지 않다. 보고도 모르겠나?》

“안 다구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인데 어떻게 몰라요?! 하지만······.”

《일단 진정해라. 막말로, 왜 막으려 드는 거냐? 지네들끼리 재밌게 놀고 있구먼. 내가 볼 땐 지루하지만, 굳이 막아야 할 일은 아니잖아?》

“······저는 그래도 저런 아이리스를 보기 싫어요.”

《뭐어······? 네가 보기 싫으면 무작정 막아도 되는 거냐? 꼬마애답긴 하지만 너무 막무가내다. 잘 생각해 봐라. 아이리스의 마음 따윈 무시하는 게 네가 바라는 결과냐?》

“그럴 셈은 아니에요!”

《아니라면 얌전히 있어라. 조용히 지켜보다 수컷이 힘들 때 위로해주는 암컷이야말로 멋진 극상의 암컷이다. 깨방정 떤다고 다가 아니다.》


거친 어투를 빼고는 전부 이쪽이 한 말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그렇지만 역시 누가 말하는지가 중요한가 보다. 재차 억지를 부릴 줄 알았던 에리사는 수긍하고는, 코로 미는 페리의 재촉에 따라 얌전히 단 위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멋대로 굴어서.”


에리사는 리아에게로 와 깊게 머리를 숙였다.


잠시 바라보던 리아는 용서하기로 했다. 딱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닌데다가, 아이리스는 이 소란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게다가 페리와도 대화를 나누었다. 분명 나쁜 마음씨는 아니리라.



“아냐. 이러나저러나 우리 아이리스를 염려해준 거잖니?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도 아이리스와 잘 지내주렴.”

“네······.”


대답이 시원찮지만 이걸로 된 거겠지.


‘하지만 저 눈빛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는 에리사의 눈빛은 맹렬한 기세 같은 게 담겨있었다.


암만 싫어도 그렇지, 이건 제법 마음에 걸린다.


리아는 속으로 좀 고민했는데, 그때를 맞춰 [염화]가 걸려 왔다. 폴스에게서였다.


에리사가 신경 쓰였지만, 리아는 일단 수락했다.



『리아 님, 타겟을 확보했습니다.』

『에엥? 감시가 아니라 확보라고?』

『옛! 지속적인 감시 결과, 현재 있는 위치가 은신처라 판단. 달리 한패도 없는 듯하여 신속히 확보했습니다만······. 혹시 실수였습니까······?』

『아, 아니. 자, 잘했단다. 폴스가 그리 판단했으면 맞겠지. 곧장 갈 테니, 일단 주위를 경계하고 있으렴. 딴짓하지 않나 잘 감시하고.』

『알겠습니다!』


의욕 가득한 대답을 들으며 리아는 [염화]를 종료했다.


솔직히 섣부른 짓을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먼 사람을 잡은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만 폴스는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 괜스레 자신이 판단하는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학원장님, 잠시 나갈 일이 생겼는데, 주말이 아닌데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다른 학생들도 특별한 일이 생기면 외출하고는 하니 딱히 특례 같은 건 아닙니다.”

“그렇군요. 그럼, 잠깐 다녀올게요.”

“예. 편히 다녀오시지요. 나머지는 이쪽에서 다 처리해두겠습니다.”

“고마워요.”


감사를 전한 리아는 빤히 쳐다보는 페리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에리사를 봐줘요.”

《흥. 알아서 할 테니 어여 가기나 해라.》


여전히 쌀쌀맞지만 에리사와 꽤 친해 보였던 페리였다. 츤데레 기질도 있고 하니 츤츤거리면서도 잘 챙겨주리라.


입꼬리를 올린 리아는 쓰다듬어주고는 훈련장 쪽을 쳐다봤다.



『델리안, 저 잠시 외출 좀 하고 올게요.』

『알았다. 아이리스는 맡기고 편히 다녀오거라.』

『네. 부탁 좀 할게요.』


대강 정리도 됐겠다, 리아는 닐과 그리드, 비비안들에게 다음에 보자는 말을 건네고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 숙여 배웅해주는 그들의 이어 시선이 쏟아진다.


자랑은 아니지만 익숙한 일이라 그리 의식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조금은 어색했다. 그중 하나는 거의 처음으로 겪는 강렬한 시선인지라 꽤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리아는 의연한 척, 라프리트에게 배운 대로 고상하고 도도하게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저 어린 마음에 나온 치기였으면 싶은데······.’


걱정스러운 감정과 함께 리아는 베르다드의 정문에 도착했고, 바로 [발판]을 만들어 하늘 위로 날아갔다.










폴스는 과연 초월자답게 마력이 무척 깔끔하게 갈무리되어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창조주라 그런가, 생각보다는 쉽게 정확히 위치를 찾아냈다. 멀리 있는 자신의 마력을 느끼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지만······.


그리하여 밝혀낸 폴스의 위치는 벨루디스의 수도, 아네픽시르의 외곽이었다. 정확히는 빈민가와 슬럼가가 뒤얽힌 그 중간쯤이다.


뒤가 구린 일을 꾸미는 사람답게 과연 음침한 곳을 잘도 선정했다.


날아가는 동안 그런 평가를 하고 있자니 금세 도착했다. 제법 먼 거리였지만 속도가 상당하다 보니 오래 걸리진 않았다.


리아는 [발판]을 잡초가 무성히 자란 공터에 내렸다. 에르의 마법으로 모습 자체를 감췄기에 목격되는 일은 없었다.



“여긴가 보네요.”


리아는 퀴퀴한 냄새가 퍼진―― 오랜 시간 동안 관리되지 않은 정원을 둘러봤다.


30평쯤 되는 정원은 확실히 사람의 손길이 끊긴지 꽤 오래 된 듯하다. 별의별 잡초가 아무렇게나 자라있었고, 근처 돌담이 쌓아진 우물에도 이끼와 민들레 같은 풀이 돋아나 있다. 주변에도 뭐에 쓰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들과 부서진 나무 상자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정면에 있는 집의 상태도 좋지 않았다. 거의 폐허나 다름없어, 여기저기 나무가 파여 구멍이 숭숭 뚫려있었다. 다만, 제법 크다. 이층집인 데다, 외관상 보기에도 부지를 꽤 잡아먹었다.



“집이 의외로 크니, 숨어있기엔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다르게 보면 무언가를 꾸미기에도 좋겠지. 넓다는 건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니.”

“그렇기도 하겠네요. 에르가 볼 땐 어떻나요?”

“딱히 이상한 건 없어. 평범한 폐허야.”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군요.”

“그렇겠지.”

“뭐, 들어가 보면 알겠죠.”


가볍게 이야기한 리아는 폐가로 걸음을 뗐는데······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잡초들이 너무 긴 것이다. 하나도 관리하지 않은 풀들이 리아의 허리까지 자라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것 참. 저기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집으로 들락거렸다냐······.”


무시하고 지나가면 되긴 하지만 찝찝하달까, 풀에 묻은 이슬로 촉촉이 적셔지는 그 습기를 생각하니 조금 꺼려진다.


어쩔 수 없다. 이건 에르에게 기댈 수밖에.


망설임도 없이 리아는 남편을 올려다보았고, 에르 또한 순간의 주저도 없이 리아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날아 폐가의 입구까지 갔다.



“응? 막혀있네요?”


당연히 열려있을 줄 알았던 폐가의 정문은 막혀있었다. 그냥 막힌 것이 아니라, 나무판자 여러 개를 정성스레 못질해놨다.


과연 사람이 들어오기나 한 건지······.


슬금슬금 의심이 들었던 리아는 재차 마력을 탐지해봤다. 그러나 잘못 오진 않았다. 지금도 안에서는 폴스의 마력이 명백히 느껴진다. 가까워서 틀릴 일은 만에 하나라도 없다.


다른 누군가의 마력도 있다. 제대로 찾아온 건 확실할 듯싶다.



“저, 에르?”

“흠. 일단 훼손하지 말고 들어가자. 혹시 모르니까.”


이래 보여도 집주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가서 손해배상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리아는 군말 없이 동의했다.


에르는 즉각 마력을 움직였다.


이내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고, 재차 떠올랐을 때는 대낮임에도 어두컴컴한 실내에 들어와 있었다.



“오. 이런 어두운 곳에서도 [그림자 이동]이 되나 보네요?”

“빛이 있기는 하니까. 완전한 어둠만 아니라면 어지간해선 다 연결할 수 있어.”

“그렇군요.”


대답하며 리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실내는 외관과 크게 차이가 있지 않았다. 딱 폐허의 몰골로, 먼지가 쫙 깔린 바닥과 부서진 선반 등등, 초라한 광경을 자아냈다. 쓸만한 물건들은 모두 털렸는지 휑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열의 열 모두가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라고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경이로운 시력을 지닌 리아는 살짝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바닥에 깔린 먼지에서 폭 15cm로 된 선이 보인 것이다.


발자국은 분명 아니다. 선은 끊어짐도 없이 쭉 이어져 있기에.



“뭔진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있긴 있었나 보네요.”


어떻게 들락거렸는지, 왜 여기에서 머무는지 의혹이 생겼지만 만나보면 알 일. 리아는 에르에게 어서 가보자고 했다.


에르는 천천히 걸어 부엌 쪽이라 여겨지는 문으로 가, 마법을 썼다.


딸깍.


설마하니 잠겨있었는지 자물쇠가 풀리고, 먼지를 피해 에르는 마법으로 밑바닥이 작게 부서진 문을 열었다.


문지방을 넘어 나온 곳은 예상한 대로 부엌이었다.


에르는 텅텅 빈 쓸쓸한 부엌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걸어, 문이 달리지 않은, 구역을 나눈 듯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구역을 조금 나아가니 돌로 만들어진 계단이 나타났다.



“웬 계단?”

“아마 식료품을 보관하는 공간일 거야.”

“아아. 옆이 주방이니까요?”

“맞아. 지하는 아무래도 차갑다 보니 냉장고처럼 썼겠지.”


옛날 지구에서도 흔히 이용된―― 80세였던 리아로서는 어렸을 때 심심치 않게 본 방식이기에 바로 이해가 됐다.



“마법이 있다지만 생각하는 건 거기서 거기인가 봐요?”

“마력은 유한하잖아? 유사시에 즉각 활용해야 하니 되도록 마력을 온존하려 들었을 거야. 지금이야 마광석을 활용하는 방법이 보편화됐지만, 옛날에는 무구 정도에만 사용했거든. 그러니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다 보면 비슷한 결론이 나겠지.”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게 타당하겠네요.”

“후훗. 그러면 이제 내려가 볼까?”

“아, 네.”


어두침침한 계단 아래는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세인트리안에서 이보다 더욱 길고, 어두웠던 계단을 경험해봤다.


비교하자면 거긴 마수의 입인 데 반해, 여기는 귀여운 멍멍이의 입 정도에 불과했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렇지만 방해가 되면 안 되니, 리아는 조심스럽게 에르의 옷깃을 꼭 쥐었다.


겁이 없는 에르는 쭉쭉 내려갔고, 이윽고 제법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리고 저 구석에 폴스가 있었다.



“리아 님, 오셨습니까!”


강아지였다면 미친 듯이 꼬리를 붕붕 돌렸을 태도로 폴스는 달려왔다.



“며칠 간이나 수고 많았어, 폴스.”

“오오! 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옵건만, 황송합니다!”

“어······, 그래.”


역시 이 아이도 똑같았다. 지나치게 창조주인 자신을 좋아한다.


앞선 넘버즈처럼 언뜻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눈앞에서 확인하니 온몸이 근질거리는 기분이다.


‘혹시 서드도 이러려나?’


말도 놓고 상당히 친근하게 대했던 서드를 생각하며, 리아는 손을 뻗어 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것만으로 만족스러운지 헤실헤실, 폴스의 눈이 돔의 형태를 그렸다. 복면 위로도 아이처럼 웃는 게 보였다.


참으로 아이다운 반응이다.


왠지 치유되는 느낌이 들어, 마음 같아서는 한참을 쓰다듬어주고 싶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할 건 아니다. 참고 손을 뗐다.



“확보했다는 타겟은 어디 있니?”


아쉬운 듯했던 폴스는 곧장 다부진 얼굴을 하더니, 아까까지 자신이 서 있던 위치를 가리켰다.


안내해주는 대로 따라가니 거기에는 천으로 덮어놓은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거라고······?”

“예.”


리아는 저도 모르게 미심쩍다는 눈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혀 사람이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던 거다.


실루엣의 넓이는 어림잡아도 30cm 미만. 저기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가겠는가.


하지만 폴스에겐 확신이 있다. 더불어, 믿기진 않지만 정말로 천 너머로 마력이 느껴진다.



“천을 걷어주겠니?”


폴스는 즉각 천을 걷어 올렸다.


가려놓은 안쪽에 있는 건, 유리로 된 덮개였다.


음식을 덮을 때 쓰는 원형의 돔커버―― 그것의 조금 길쭉한 버전의 덮개를 보며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리 덮개 내부에는 역시나 사람이 없었다. 대신 25cm 크기의 웬 점액질이 흐르는 이상한 덩어리가 있다. 그다지 역겹지는 않지만, 심장 같은 장기가 연상되어 썩 반갑지는 않은 모습이다.



“이게······ 무엇이다냐?”

“도플갱어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폴스.


리아는 맹한 눈으로 폴스를 보았다가, 에르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엥? 자, 잠시만요. 모습을 따라 한다는 그 도플갱어요?”

“알고 있었어?”

“네. 거기에서도 도플갱어에 관한 소문 같은 게 있었거든요.”


되려 도플갱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듯 에르의 눈이 커졌다.


‘아니. 잘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긴 하네. 도플갱어는 지구에서 들었던 이야기잖아. 보면 3일 안에 죽는다느니 하는 거. 근데 여기에도 있다고? 다른 세계인데? 이제와 든 생각인데, 엘프랑 드워프, 거기에 마족도 그래. 지구의 상상 속 존재들이잖아.’


이세계로 향하는 문물을 많이 접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하물며 전해지는 생김새와도 크게 차이가 없다. 마족만큼은 다양하게 그려지는지라 살짝 차이는 있지만.


만약 이세계물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단박에 묘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어쩌면 오엘문리아의 법칙으로 인해 그저 비슷한 생김새의 그들로 번역이 될 뿐인 거려나?’


이거라면 상당히 가능성이 있을 듯싶다.


하지만 아니다.


문자만큼은 번역되지 않는다. 적어놓은 그대로 써진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 새로 공용문자를 배운 것이었다.


그리고 여러 책에서도 그랬지만, 거기에는 분명하게 종족 명이 적혀있었다. 인간, 엘프, 드워프, 마족―― 리아의 기억에 존재하는 이름 그대로.


암만 우연이라도 이렇게까지 많은 케이스가 우연일 수 있을까······.


‘이건 루시아스 님에게 물어봐야 할지도.’


에르조차 모르는 눈치이니, 만약 아는 존재가 있다면 신밖에 없을 것 같다.


마음속에 단단히 기억해놓고, 리아는 분위기를 바꿔 도플갱어를 쳐다봤다. 에르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 줬다.



“마력이 있으니 살아있는 생물체인가 보네요.”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봤을 때는 어떤 남자를 복제한 모습이었습니다.”

“응? 그러면 이게 본래의 모습이라는 거니?”

“예. 도플갱어의 본체는 이것입니다. 타인을 복제할 때 이 본체가 심장이자, 핵의 역할을 합니다.”

“오호. 그렇구나. ······근데 어떻게 아까 남자의 모습이라지 않았니?”

“본체로 돌아오라고 정중히 부탁했습니다.”

《――뭐가 정중히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굉장히 중성적인 목소리가 성을 내며 외쳤다.


리아는 유리 덮개를 내려다봤다.



“어느 면전이라고 감히! 리아 님, 면목이 없습니다. 시간 관계상, 미처 교육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어, 아니, 괜찮아. 그보다 무슨 일을 한 거니?”

“그냥 뒤를 덮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항하길래 일단 팔다리를 끊어놓고, 최후의 통첩을 전했습니다. 순순히 안 따를 시, 본체를 찌른다고. 그러니까 얌전히 말을 듣게 됐습니다. 이후 준비한 우리에도 알아서 들어갔습니다.”


반짝――.


폴스가 칭찬을 바란다는 눈빛으로 본다.


순수한 눈망울은 물론 귀엽지만, 솔직히 별로 칭찬하고 싶지 않다.


너무 과격하지 않은가. 암만 타겟이라도 뭔 잘못을 한 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다. 그런데 일단 팔다리를 끊어놓는다는 게 말이나 되나. 암만 본체가 아니라지만 과하다.


‘아이야. 도대체 뭘 집어넣어 준 거니······.’


넷째인 폴스가 이러면 앞선 넘버즈들도 비슷한 성향이 아닐지······.


괜스레 불안했던 리아는 대답이 없는 아이를 살짝 탓하고는, 초점을 잃은 시선을 도플갱어에게 뒀다.



“으음. 이, 일단은 미안하게 됐네요. 과잉 진압이었어요.”

《일단?? 갑자기 덮쳐놓고는 그따위로 말하는 거냐?!》


도플갱어는 유리 벽에 바짝 붙어 꿈틀댔다.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리아에게는 심장이 꿈틀거리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심히 비위를 자극하는 모습에 눈썹마저 움찔했다. 애초에 어디를 통해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복제한 모습으로 이젠 못 돌아가나요?”

《한 번 본체로 돌아오면 다시는 돌아가진 못해. 재차 복제할 소재라도 주어지지 않는 한.》

“어음. 죄송하게 됐네요.”

《정말 그래! 너희 때문에 죄다 망쳐버렸잖아?!》

“뭘요?”

《뭐긴――.》


말하다 말고 도플갱어는 입을 다물었다.



“응? 왜 그러세요?”

《내, 내가 왜 갑자기 습격한 너희들에게 있는 사정, 없는 사정 다 밝혀야 하냐?!》

“뭐······, 그건 그러네요.”

《그, 그래. 저 어두침침한 녀석과는 달리 넌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인간이로군.》

“음. 고마운 말씀이기는 한데, 폴스도 착한 아이예요. 살짝 의욕이 많아서 그렇지.”

《의욕이 좀만 더 넘쳤으면 난 이미 초상을 치렀겠어!》

“사, 사과드렸잖아요. 대인배답게 넘어가 줘요.”

《아앙?! 이게 간단히 넘길 일이냐?! 어떻게 손에 넣은 거죽이었는데!》

“그러면, 저희가 소재를 주면 되지 않나요?”

《너희의 것을? 흐음······ 아쉽긴 해도 슬슬 모습을 바꿀 때였을지도.》


아쉬운 대로 급한 불을 끈다고 생각하면 나쁘진 않다. 그리 중얼거린 도플갱어는 알겠다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뭐가 필요하나요?”

《신체 부위 중 아무거나 있으면 돼.》

“양은요? 머리카락으로도 괜찮아요?”

《상관없어. 2~3cm만 되면 그걸로 충분해.》

“어라? 그러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게 아닌가요?”

《매번 모습이 바뀌면 이상하게 보일 거라는 생각도 못 하냐! 더군다나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내밀히 하는 동물이야. 누구와도 연 없이 지내는 인간이 많을 성 싶냐?! 성인이라면 더더욱 없어!》

“아~ 막 변했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바로 들키나 보네요.”

《우리가 복제할 수 있는 건 성품이나 얕은 기억이 전부야. 친한 인물에게는 곧장 들키고 말아.》

“과연. 이해했어요.”


고개를 끄덕인 리아는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을 잡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리아 님! 겨우 이런 녀석에게 리아 님의 머리카락을 하사하실 생각입니까?!”

“하, 하사라니. 겨우 머리카락 가지고.”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제가, 차라리 제 머리카락을 주겠습니다!”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다. 말릴 새도 없이 폴스는 허리 뒷춤에서 직도 하나를 빼들었다.



“자, 잠깐, 기다려!”


다행히도 말은 들어주는지 폴스는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



“자자. 진정하고 검부터 넣어두렴.”

“예!”


씩씩하게 대답한 폴스는 깔끔하게 직도를 원상태로 되돌렸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리아는 조용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백의 세계에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빠르게 머리카락 한 올을 손날로 베어냈다.


굳이 뽑지 않은 건 걱정이 많은 주변 때문이 아니었다. 모공마저 튼튼해졌는지 여간해선 뽑히지 않아서였다. 호기심에 억지로 뽑으려다가 무지막지하게 아프기만 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시도할 마음조차 없다.


리아는 6cm 정도로 잘린 은발을 또 반으로 잘랐다.



“자. 받으렴.”

“저,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리아 님의 신체를?!”


흡사 금 다발을 받는 듯, 폴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건네는 은발을 쳐다봤다.


몹시도 부담스럽다. 겨우 머리카락인데······.


내심 건네주면서도 자뻑이 아닌가 노심초사했던 게 무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더는 시간 끌리기도 싫은 터라 리아는 얼굴에 힘을 줬다.



“그, 그런 거창한 게 아니니 편하게 받으렴.”

“오오. 이 폴스, 오늘 이날을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


‘아, 아이야? 도대체 넘버즈들에겐 나는 뭐로 인식하게 했니?’


다시금 물어봤지만 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는 사이 폴스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천에 받은 은발을 소중히 감쌌다. 이윽고 순간 빛이 번쩍이고, 그 자리엔 웬 수재 부적 같은 게 남았다.


아마 마법으로 천을 가공하여 만든 듯한데, 황당한 나머지 분석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리아는 왼쪽 가슴 주머니에 부적을 넣는 폴스를 본체만체하며 몸을 숙였다.



“이거면 되나요?”

《너 말고 뒤에 남자 걸로는 안 되냐?》

“안 돼요. 이게 제가 양보할 수 있는 최선이에요. 싫으면 말고요.”


에르만이 아니라, 폴스의 것이라도 줄 마음은 전혀 없다.


잠시 고민되는 듯싶었던 도플갱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얌전히 받아 들기로 했다.


리아는 유리 덮개를 치우고 은발을 내밀었다.


어쩌면 도망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러진 않고, 도플갱어는 슬금슬금 바닥을 기듯이 다가왔다. 마치 달팽이 같은 움직임이다.


오면서 보았던 바닥 자국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나 보다.


텁.


심장처럼 보이는 그것이 갈라지더니 은발을 삼켰다.


움찔하긴 했지만 리아는 천천히 손을 빼, 가만히 추이를 지켜봤다.


1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났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도플갱어는 가만히 멈춘 채였다.


혹시 모르니 5분을 더 기다렸다.


총 10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런데도 도플갱어는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 마력을 살펴봤지만, 엄청나게 당혹스러워하는 것 외에는 이상도 없었다.


원한 결과가 아니다.


괜히 뭔가를 꾸미는 혐의가 있는 도플갱어에게 우호적으로 다가간 게 아니었다. 타인을 완벽히 복제해낸다는 그 능력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였다. 지극히도 개인적인 이유였기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건넨 것이었다.


추궁을 뒤로 미룰 정도로 궁금했건만······ 실로 실망스럽다.



“뭐 하시나요? 얼른 변하지 않고.”


작가의말

다음화 약 예고.

도플갱어 : ???
리아 : 어이, 코노야로. 하야쿠 변신하라고~!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어느덧 7월 막바지가 됐네요.
후... 연재속도를 높이고 싶은데... 좀처럼 되지 않아 슬픕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57 루이미너스
    작성일
    23.07.27 14:55
    No. 1

    용사 RIP가 되지 않았네요 애석하군요.

    도플갱어 : 뭔데, 왜 안되는데
    리아 : 하아...속았네요 폴스 처리해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5 Lastia
    작성일
    23.08.04 07:19
    No. 2

    x를 눌러 조의를 표하세....
    아, 아뇨. 용사도 이세계로 납치 당했고, 알고 보면 불쌍...하려나요?

    어쨌든 리아도 폴스에게 안 맡길 겁니다.
    처리하게 된다면 성격상 아마 본인이 직접 처리하지 않을까...
    리아 : 하아... 속았네요. 안녕히...
    같은 느낌으로.. 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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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209 +2 23.12.03 38 0 41쪽
245 208 +2 23.11.11 45 0 55쪽
244 207 +2 23.10.29 69 0 42쪽
243 206 +2 23.10.21 50 0 50쪽
242 205-2 +2 23.10.11 60 0 21쪽
241 205 +2 23.10.11 69 0 37쪽
240 204 +2 23.09.30 68 0 40쪽
239 203 +2 23.09.14 61 0 39쪽
238 202 +2 23.09.14 93 0 36쪽
237 201-2 +2 23.09.02 66 0 18쪽
236 201 +2 23.09.02 72 0 35쪽
235 200 +2 23.08.22 86 0 47쪽
234 199 +2 23.08.14 73 0 42쪽
233 198 +2 23.08.04 85 1 39쪽
» 197 +2 23.07.27 80 0 42쪽
231 196-2 +2 23.07.19 5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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