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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조회수 :
29,953
추천수 :
315
글자수 :
3,609,859

작성
23.10.11 01:21
조회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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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205-2

DUMMY

《어려운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가씨.》


대표로 말을 한 건 선두의 흰 울프독으로, 그의 말이 끝나자 다들 감사하다며 복창했다.



“너무 극진히 대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화이트 팽 씨?”

《팽이라 불러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근데 뜬금없는 질문인데, 앞에 화이트라는 건?”

《하얀 갈기라는 것을 뜻합니다.》

“아하. 명칭 같은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화이트보다 하얀 갈기의 팽으로 불리는 게 더 멋지지 않나 싶다. 아마 이 세계의 자동번역 때문에 그런 거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뭐라 들리려나?’


살짝 궁금해하며 리아는 물었다.



“절 보고 싶어 하셨다고요?”

《예. 제대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가요······.”


솔직히 너무 정중할 필요는 없지 않냐는 게 본심이다. 어제도 충분히 감사를 전했고. 그렇지만 이들의 마음을 무시하기에도 좀 그렇다.



“하지만 역시 딱딱한 건 못 참겠으니 이렇게 하기로 해요.”


리아는 냉큼 팽의 앞발을 잡았다. 꽤 크고 묵직하다.


상당한 덩치였던 터라 팽과의 눈높이는 거의 같았는데, 마주친 눈에서는 당혹스러움이 깃들었다. 그러나 딱히 싫어하는 건 아니기에 놓지 않고 살며시 위아래로 흔들었다.



“전 이스피리아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팽.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인사도 했으니 우리 부담 갖지 말도록 해요. 알겠죠? ······여러분들도. 이제 같은 주민이잖아요?”

《듣던 대로의 성품이시로군요.》


조금 벙쪄있었던 팽은 입가를 씨익 올렸다. 먹이를 단칼에 도려낼 듯한 하얀 송곳니가 빛을 받아 번쩍인다.


언뜻 맛있는 먹이를 앞에 둔 듯한 모습이다. 왠지 분위기도 그렇고. 하지만 빠르게 읽은 마력은 차분했다. 확실한 건 군침을 다시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호의적이지?’


남몰래 한시름 던 리아는 팽의 앞발을 놓고, 덩치에 맞게 상당히 큰 팽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기보다 부드럽다. 단모인 데다 빳빳한 페리와는 상당히 다른 감촉이다. 향기로운 냄새마저 나며, 어나더 레벨급으로 부드러웠던 아니마무스와도 다른, 색다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기대 이상이라는 거다.


리아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가씨?》


――덥석.


리아는 양손으로 팽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척 당황하는 팽.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 줬고, 리아는 눈을 번뜩였다.


한계다.


자동으로 입가가 치켜 올라간 리아는 그대로 마구 쓰다듬었다. 형식은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팽의 털을 마음껏 헝클였다. 무아지경으로 턱, 어쩔 땐 머리, 심지어 귀마저도 마음껏 만져댔다.



《저, 저기, 아가씨?》


팽의 귀가 뒤로 젖혀진다.


이건 상당히 두려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할 때의 행동이다. 묘한 부분에서 지구의 개와 닮았다.


하지만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전생에서의 꿈은 대형 개를 키우는 것이었다. 그 커다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용. 너무나도 멋들어진 그 자태에 흠뻑 빠져들었었다. 함께 사는 그 꿈을 위해 돈을 벌고, 열심히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러한 전생이었다.


하지만 끝끝내 이룰 수 없었다. 여건이 안 됐기 때문이다.


대형견은 마당이 있는 넓은 집이 필요하다. 그게 최저한의 조건이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과 개, 둘 다 힘들어진다. 꿈이기에 대충 타협할 수는 없었다.


이 조건에 어떻게든 만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었고, 기어코 충족해내긴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늙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힘에 부쳐 기르고 싶어도 기를 수가 없었다. 자식들에게 맡기자니 너무 무책임하여 말도 꺼내지 못했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는데, 이때의 미련이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대체로 큰 동물들에게 호감이 갔다.


물론 무조건 크다고 좋은 건 아니다. 모든 건 적당해야 한다. 집채만한 덩치의 아니마무스는 아예 논외다. 너무 크다. 최근 작은 사이즈도 봤으나 그건 너무 소형이고.


팽 정도가 딱이다. 더할 나위 없이 정말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사이즈다.


그러한 팽이 마을 주민이 된 것이다. 꿈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은가.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다.



“으히히히. 좋다.”


‘혈통이라도 있나? 푹신푹신하고 보드랍네. 냄새도 구수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매력에 마침내 리아는 얼굴까지 묻고 비비기 시작했다. 완전히 굴복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팽의 움찔하는 기척은 더욱 커져만 갔다.



“――리아? 적당히 해야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도리도리 얼굴을 비비던 리아에게는 마치 저승사자의 속삭임 같았다.


지체는 없었다. 배터리가 다한 인형처럼 리아는 뻣뻣하게 뒤로 걸어 팽에게서 떨어졌다.



《오오······.》


무리에게서 기묘한 감탄이 새어 나온다. 뭔가 존경이랄까, 경외하는 분위기로 다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뒤를―― 필리아를 쳐다본다.


차마 이들의 시선을 따라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니, 그럴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어, 어흠. 패, 팽 씨? 다른 분들을 소개해주시겠어요?”


어색하기 그지없는 화제 전환에 팽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아까의 추태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착하기까지 하다니······.’


더더욱 마음에 든다. 당장에라도 껴안고 배에 바람을 불어보고 싶다.


그런 충동을 참으며 리아는 팽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팽이 처음 소개하는 건 자신의 왼편에 떠 있던 마물, 아피스였다.


여느 아피스와 다름없이 꿀벌의 형태이긴 했다. 그러나 달리 대표로 나온 게 아니라는 듯, 다른 개체보다 좀 덩치가 크다. 날개도 보통의 검은 선들이 그어진 것이 아니라, 금빛의 선이 내달렸다. 기분 탓이 아니라면 풍기는 기색이 어딘가 온후하고 기품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결국 꿀벌이다. 그것도 무려 60cm에 달하는 거대 꿀벌이다. 안 그래도 시력이 좋은데 크다 보니 곤충 특유의 생김새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특히 각 관절이 모이는 몸통 부분이 시선을 강탈한다.


‘의외로 날갯짓 소리는 그리 크지 않지만. 바람도 별로 안 불고.’



《인사드립니다, 아가씨. 마이라고 합니다.》


아나운서같이 명료한 목소리로 말한 꿀벌―― 마이는 살며시 머리를 숙이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여왕벌······이려나요?”

《예. 비행단의 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부디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으응.”


무리는 세분되어 제법 체계화됐다는 사실을 안 것과 동시에, 리아는 최대한 움찔하지 않도록 유의했다.


전생과는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그땐 곤충을 봐도 무덤덤했었는데, 지금은 여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생리적으로 좀 힘들었다. 나이를 먹으면 차차 괜찮아질 거라고 봤으나 그다지 변한 건 없었다. 홑눈과 곁눈이 스르륵 움직이는 모습에는 닭살마저 돋는다.


‘꿀벌의 경우 되려 귀엽기까지 했었는데······ 역시 이만큼이나 크면 사뭇 다르구나.’


온갖 생각이 든다. 오죽했으면 독침을 쏘면 죽음에 이르는 지구의 꿀벌과 똑같은 특성을 지녔나, 하는 시답잖은 생각마저 했다.


하지만 버텨야만 한다. 방금까지 팽을 물고 빨고 하지 않았는가. 그랬는데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내뺄 수는 없다.


그때 마이가 다가왔다. 그리고 3쌍의 다리 중 오른쪽 가운데 다리를 내밀었다.



《사람은 이렇게 인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역시 인사지?’


아니길 빌고 빌었지만 어림도 없었다.


요즘―― 아니, 이번 생에서는 계속 신에게 불경한 생각과 행동을 해댔는데, 업보가 쌓여 그 벌을 지금 받는 건가······.


정말 그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대 핀치다. 그러나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연유다. 방금까지 팽과 악수해놓고 마이와는 하지 않는다는 게 가당치 않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를 고르는 결단을······.


마른침을 삼킨 리아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어딘가 소름 돋는 곤충 특유의 솜털이 닿고――



“――응? 어라? 별로 아무렇지 않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반가워, 마이. 앞으로 잘 부탁해.”

《예. 잘 부탁드립니다, 아가씨.》


리아는 살며시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처음의 주저는 도대체 무엇이었냐 싶을 정도로 아무런 거부감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긴커녕······.’


살짝 시선을 올린 리아는 마치 흰 목도리를 두른 듯한 마이의 목덜미를 쳐다봤다.


복실복실거리는 것이 좀 탐스럽다······.



“저기, 마이. 인사를 나누자마자 미안한데, 목도리――가 아니라, 한 번 쓰다듬어봐도 될까?”

《아, 예. 괜찮습니다.》


곤충이라 꺼려졌던 기분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보다는 마치 유혹이라도 하는 듯한 저 목도리가 신경 쓰인다.


도대체 어떤 감촉일까······.


두근두근 떨리는 마음으로 리아는 손을 뻗었다.


푸욱. 마이의 목도리는 생각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손을 대니 그대로 파묻혔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감촉도 뭐라 설명하기 힘들었다.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도 빳빳하다.


한마디로······ 좋다. 각자의 맛이 있다고, 마이의 목도리 또한 훌륭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팽과 함께 이대로 쭉 만지고 싶다. 하지만 뒤에서 무서운 감시자가 눈을 번뜩여서 그럴 수는 없다.


애처롭게 손을 놓으니 퍼드득―― 곤충과는 다른 유형의 날갯짓 소리가 났다.



《이거, 이거. 보기보다 담대한 분이로군. 인간 여자들은 매번 마이를 보면 소리를 지르기 바쁜데.》

《아가씨 앞에서 실례되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부노.》

《놀릴 셈은 아니었어, 여왕님.》


아저씨 같은 목소리로 살갑게 이야기한 난입자의 정체는 새하얀 부엉이였다.


상당히 날렵한 몸매로, 언뜻 수리부엉이를 닮은 외모다. 지구와 다른 점은 귀깃과 발 정도로, 한 마디마다 검은 줄이 그어진 귀깃이 머리 뒤로 넘어가 땅에 닿을 듯 길고, 먹이를 낚아채는 발 또한 80cm에 달하는 체구에 비해 상당히 커다랗다.


리아는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부노는 머리 위에서 한 바퀴 돌더니 그대로 활강하여 안착했다.



《잠시 실례하지.》


마치 남자 어른의 팔이 움켜쥐듯, 팔목에 자리를 잡은 부노는 몸을 털어 깃을 정리하고는 눈을 맞췄다.



《이렇게 대화하긴 처음이군. 부노라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다들 집합하실 때 계셨었네요.”

《난 눈에 띄다 보니 습격 땐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었지.》

《부노!》

《성내지 마, 여왕님. 자의는 아니었다지만 한 점 부끄럼 없는 전투였잖아? 정면에서 당당히 말이야. 딱히 쉬쉬할 건 아니라고 봐. 아니면, 혹시 전사한 부하들의 응어리가 남았나?》

《정당한 전투 끝에 전사한 겁니다. 칭송해 마지 못할망정 응어리는 없습니다. 팽도 그러하고요.》

《그럼, 문제가 없는 것이로군······. 리아 아가씨는?》


위쪽 눈꺼풀이 반쯤 감긴, 일자로 뜬 눈으로 부노가 빤히 쳐다본다.


그럴 때가 아니지만 부노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던 리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의 부리 밑을 쓰다듬었다.



“저도 응어리 같은 건 없어요. 그런 게 있었으면 애당초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보내지도 않았겠죠.”

《으음······. 과연 우리 대장을 이긴 자다워. 사소한 건 쉽게 넘기는군.》

“고마워요. 그리고 잘 부탁해요, 부노.”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쓰다듬는 게 마음에 드는지 부노는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당장 다른 데로 갈 생각은 없어 보이길래 리아는 그를 쓰다듬는 채로 걸음을 옮겼다. 제법 불편한 자세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나열하고 있는 무리에게 인사를 할 겸 갔는데, 리아가 다가오자 밑바닥을 기듯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 인영의 정체는 건장한 성인은 될 직한 커다란 거미였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타란툴라와 흡사했는데, 잔털 대신 몸 전체가 검은색의 갑옷 같은 갑각이 둘렸다.


부노와 마찬가지로 습격 때는 후방에 대기하고 있었는지, 집합 때에서야 처음 봤었던 그 거미다. 달리 무리에는 거미가 더 없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어, 그게······.”

《드에라고 합니다. 초면에 염치가 없다는 걸 알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이스피리아 아가씨!》


그녀―― 드에는 굉장히 고운 목소리로 간절히 말하였다.


이제 생리적인 거부감이 옅어졌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적응했다는 건 또 아니었다. 외형과 목소리가 잘 매치되지 않아 꽤나 당혹스럽다.


그러나 어떻게든 억누르고 리아는 물었다.



“반가워요, 드에. 부탁이 뭐죠? 편하게 말씀해보셔요.”


조금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드에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부디 아가씨의 정원을 관리하는 정원사로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네?”

《분골쇄신 열심히 하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리아는 손을 내밀어 드에를 진정시켰다. 부노도 부엉이답게 고개만 빙글 돌리더니 진정하라며 그녀를 달랬다.



“하나하나 짚고 갈게요. 제 정원이요?”

《예. 요새 안에 있는 정원입니다.》

“요새 안이라면······. 혹시 약초가 즐비한 화단이 있는 곳을 말하는 건가요?”

《마, 맞습니다! 바로 그곳입니다! 거기에 자리 잡은 어린 세계수를 돌보며 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응? 세계수? 할아버지의 정원에 그런 엄청난 게 있다고? 단순한 비유이려나······?’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어느 매체에서나 세계수는 세계를 지탱한다는 등의 스케일이 다른 설정들이 주렁주렁 달리지 않은가. 대체로 하늘 높이 닿을 듯 거대하다고들 하고.


하지만 그런 거대한 나무는 그 화단엔 분명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이 화단을 가장한 약초밭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도저히 안 되겠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리아는 감각을 넓혀 정원을 살폈다.


그리고 곧 경악하였다.



‘뭐, 뭐야 저거?! 어째서 내 마력이?! 아, 아이야. 어, 어찌 된 영문인지 혹시 아니?’

『답. 알 수 없음. 단정 내릴 정보가 부족함. 다만, 추정하기로는 [자동화]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음.』

‘시기적으로 보면 내 첫 마법이려나? 그거 말고 거기서 [자동화]를 쓴 적이 없으니까.’

『긍정. 당시의 불완전한 마법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예상됨.』

‘마력이 같은 건? 암만 그래도 똑같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시전자―― 이스피리아의 마력을 베이스로, 마력을 끌어모은다고 하는 명령값만이 남아 [자동화]가 발동되고 있음을 확인. 이를 토대로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된 것이라 추측함.』

‘즉?’

『아이와 비슷한 케이스라 할 수 있음. 후에 자아가 생길 소지 또한 다분함.』

‘뭐어?! 아, 아니, 그건 넘어가더라도······ 그것만으로 세계수라고 할 수 있어? 세계수라면 뭔가 영험하고 신성한 느낌이잖아.’

『답. 시전자―― 이스피리아의 신력을 담고 있음은 물론, 차후의 성장을 고려하면 세계수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판단됨.』

‘지, 진짜로······?’


재차 물어보았으나 그렇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솔직히 잘 납득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저곳엔 자신의 신력이 분명하게 모여 있다. 도대체 어떻게 연하게 풀린 마력이 아닌 신력이 모이는 건지 등, 무수히 많은 의문이 남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수라니. 그런 게 이딴식으로 만들어져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렇지만 신력을 담았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면서 억지로 받아들였다. 일단 아이가 확실하다고 하니 말이다. 영험이랑 신성 같은 거랑은 거리가 멀어 보이긴 해도······.


‘그보다는 우선······.’


조사는 나중에 해보기로 하고, 리아는 간절히――아마도―― 기다리고 있는 드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에 씨가 바라시는 대로 하세요. 근데 거기 계속 계시기엔 심심하지 않을까요?”

《당치도 않습니다! 평생의 꿈이었던 신목을 관리하는 것이 올진대, 어찌 심심할 틈이나 있겠습니까?! 혹여나 그러더라도 의류나 침구를 만들고 있으면 되니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어, 그렇군요.”


굉장히 열렬하다. 잔뜩 흥분한 드에는 앞다리로 여러 제스처를 취하며 문제가 없음을 지속적으로 어필했다.



“······응? 의류나 침구를 만든다고요?”

《아, 예. 이런 식으로――》


엉덩이 부분을 당겨 실을 뽑은 드에는 8개의 다리 중 가운데 다리 4개를 현란하게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짜이기 시작하더니, 금세 작은 인형이 만들어졌다.


드에는 완성된 인형을 리아에게 정중히 건네줬다.


인형은 캐릭터화하여 3등신의 귀여운 비율이었는데, 전부 하얗다는 점을 빼면 이목구비를 확연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고 정교하였다. 심지어는 신체와 옷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옷의 자수는 물론이고, 치마를 들치니 안쪽에는 팬티마저 있을 정도로 디테일이 살아있다. 흡사 피규어 같은 품질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거구의 드에가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굉장한 퀄리티다.


덕분에 단숨에 누굴 모델로 했는지 바로 알겠다.



“굉장히 귀엽게 된 저네요.”


리아는 손가락을 튕겨, 흰색뿐이었던 인형에 색을 칠했다. 좀 더 생동감이 살아난 인형은 더더욱 그 완성도가 좋았다.


‘다 큰 어른이 자기 인형을 안고 있는 건 좀 어떨까 싶지만······.’



“과연. 어디서 뚝 떨어졌나 싶었더니. 로즈 씨들이 썼던―― 요새에 있는 침구나 옷은 드에 씨의 작품이었군요.”

《자, 작품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앞다리를 흔들며 허둥대는 드에. 언뜻 보면 굉장히 호러스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리아는 자연스럽게 드에의―― 지구였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비명을 지르고도 남았을 거대한 거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물 고마워요. 앞으로 잘 부탁할게요, 드에 씨.”

《예, 옛!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드에는 몸체를 낮추며 정중히 말하였다.


직후, 무리 전원이 축하한다며 소리쳤다. 앞서 대화한 팽과 마이, 부노도 날아가서는 저마다 축하한다며 말을 건넸다.


‘그런가. 다들 드에 씨가 부탁할 걸 알고 있었구나. 어쩐지 말리지 않더라니.’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무리는 칼같은 대열을 무너뜨리고 드에에게 달려들었다. 탑 방어전에서 봤었던 여우 마수―― 알페스, 사슴벌레―― 에본즈 비틀, 울프독과 아피스 등등 종을 가리지 않았다.


마수와 마물이 화목하게 지내는 광경. 거기엔 천적이니 다툼이니 하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진풍경이다.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지레 겁을 먹을지도 모르나, 리아는 잠시 따스하게 이들을 지켜봤다.



“고마워요, 어머니. 덕분에 좋은 걸 봤어요.”

“그렇지? 그러니까 이 엄마 말을 잘 들으렴. 자다가도 복이 떨어지니까.”

“암요. 당연히 그래야죠.”

“어머, 얘 좀 봐라?”

“후후.”


리아와 필리아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새삼 세스가 대단해 보이네요.”

“너도 못지않으면서 뭘 그러니.”

“그럴까요?”

“처음부터 모두와 대화할 수 있었던 아이가 뭐라는지 원. 자자, 쓸데없는 소리는 말고 가서 함께 어울리렴. 네가 데려왔으면서 정 없이 굴지 말고.”

“그러고 싶긴 한데······ 지금은 이대로 좀 더 보고 싶어요.”


‘이 분위기를 산통 내고 싶지 않으니까.’


다이로스의 가호로 조금은 완화되었다지만, 겁을 집어먹게 만드는 특성은 여전했다. 나름 가볍게 대해줬던 부노마저도 내심 외경을 품고 있었거늘, 다가간다면 필시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아쉽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필리아도 딸의 심정을 헤아렸는지 더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가슴이 따스해지는 이 광경을 보고 있으니, 저 멀리에서 막대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에르의 마력이었다.



“꽤 멀리까지 갔네.”

“그러니?”


잘 느껴지지 않나, 필리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같은 방향을 쳐다봤다.



“모르겠네······.”

“에르니까요.”

“하긴. 그 용왕님인데 쉽게 감지해낼 리가 없나?”


제법 분한 기색으로 필리아는 중얼거렸다.


‘설마 아직 사냥을 포기하지 않으셨나?’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대기가 떨렸다.


아주 미세한 진동이었지만 그걸 못 느낄 자는 이곳에 없다. 왁자지껄했던 분위기는 갑자기 죽고, 다들 에르들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아주 신났네. 모처럼 남이 조심했는데 말이야. 세스 주제에 적청도 완전히 마스터해버렸고.”


보지 않아도 희희낙락 즐기고 있을 세스의 얼굴이 선하다.



“누가 우세하니?”


단순히 심심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웬일로 이런 일에 관심이 동했는지 필리아가 묻는다.


리아는 수십 번의 격돌이 일시에 발해져 한 번의 파동처럼 퍼지는 하늘을 쳐다봤다.



“뻔하죠.”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다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이번 연휴 푹 쉬고, 재충전 잘한 덕분에 꽤 번아웃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많이 지쳤었나 보더라고요

그래도 잘 쉬었으니 앞으로는 더 힘내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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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7 루이미너스
    작성일
    23.10.11 09:24
    No. 1

    ??? : 아니 그러니까 에르, 생각했던게 하나도 안 맞았다니까요!? 벌 주제에 부드럽지 않나, 거미 주제에 친절하지 않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5 Lastia
    작성일
    23.10.21 18:18
    No. 2

    그렇게 에르는 잔뜩 흥분한 누구 씨에게 두 시간이나 붙잡혔다는 소문이...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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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217 +2 24.03.14 19 0 50쪽
255 216 +2 24.03.01 28 0 40쪽
254 215 +2 24.02.22 34 0 40쪽
253 214 +2 24.02.15 30 0 45쪽
252 213 +2 24.02.01 39 0 48쪽
251 212-2 +2 24.01.22 24 0 21쪽
250 212 +2 24.01.22 30 0 33쪽
249 211-2 +2 24.01.03 33 0 20쪽
248 211 +2 24.01.03 67 0 43쪽
247 210 +2 23.12.03 104 0 45쪽
246 209 +2 23.12.03 38 0 41쪽
245 208 +2 23.11.11 45 0 55쪽
244 207 +2 23.10.29 70 0 42쪽
243 206 +2 23.10.21 50 0 50쪽
» 205-2 +2 23.10.11 61 0 21쪽
241 205 +2 23.10.11 69 0 37쪽
240 204 +2 23.09.30 68 0 40쪽
239 203 +2 23.09.14 61 0 39쪽
238 202 +2 23.09.14 93 0 36쪽
237 201-2 +2 23.09.02 66 0 18쪽
236 201 +2 23.09.02 72 0 35쪽
235 200 +2 23.08.22 86 0 47쪽
234 199 +2 23.08.14 73 0 42쪽
233 198 +2 23.08.04 85 1 39쪽
232 197 +2 23.07.27 80 0 42쪽
231 196-2 +2 23.07.19 5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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