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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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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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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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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51-2

DUMMY

방에 도착하고 나서, 왠지 최근엔 응접실로 사용되는 듯한 거실의 테이블에 모두가 빙 둘러앉았다.


가베인과 여기사 같은 여성 한 명은 호위를 위한 것인지, 각자 황자와 황손의 뒤에 대기했다. 레스와 헤라드의 두 사용인도. 참고로 이들의 방문을 예상하였던 아이리스는 함께 있기 어색하다며 훈련장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하였다.


차도 모두의 앞에 내려져 이야기할 준비가 되고, 베르그가 먼저 서두를 땠다.



“우선 초대해주어 감사하다고 전하네.”


아까 하지 못했던 소개를 이어서 할 요량인가 보다. 베르그는 곧장 옆자리의 황손을 가리켰다.



“이쪽은 로즈린느 노블 체 폰타르트. 제국의 제 1황손이네.”

“인사 드립니다. 제국의 제1 황손인 로즈린느 노블 체 폰타르트예요. 이스피리아 님을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 말씀해주어 감사합니다. 저도 로즈린느 노블 체 폰타르트 님을 뵙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답니다.”

“정말요?!”

“예.”


의례상 하는 말임에도 로즈린느는 아이다운 순수함을 보이며 굉장히 좋아했다.


한 차례 인사가 끝났다고 생각한 베르그는 다음 사람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쪽은――”

“――작은 아버님! 이제 괜찮은 거죠?!”

“욘석. 가베인과 유즈라의 소개가 아직이다. 조금만 더 참거라.”

“우으으······”

“떼써도 안 된다.”

“네······”


애처로운 얼굴로 고개를 숙인 로즈린느에게서 시선을 돌린 베르그는 살짝 묵례를 하였다.



“실례했네.”

“아뇨. 전 괜찮아요.”


‘아이답고 말이야.’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생각한 바를 읽었는지 베르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계속해서, 여기는 유즈라 렌들러. 이쪽은 가베인 딕 에틸센이라네.”


베르그의 소개에 둘은 즉시 기사의 예식으로 예를 표했다.



“근위 기사인 유즈라 렌들러입니다.”

“마찬가지로 가베인 딕 에틸센입니다.”


예상대로 기사님들이었다. 근위일 거라고는 왠지 생각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당연한데.


‘복장 탓인가?’


둘의 복장은 정식적인 예식 복장의 갑주가 아니라, 실력을 중시한다는 제국답게 실용성을 중시한 듯한 단출한 차림.


하지만 말이 좋아 단출한 것이지, 각자 편한 대로 갑주를 구해 입은 느낌인지라 꽤 용병 같이 보인다. 처음 봤을 때 기사인가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규율이 엄격한 기사치고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그렇지만 베르그나 로즈린느는 익숙해 보이는 것이 제국에서는 일반적인 듯하다.


특히 가베인. 그는 기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금속의 빛이 너무나도 적어, 가슴팍에 제국을 상징하는 배지가 전부였다. 그 외에는 전부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갑주라 더더욱 용병처럼 보인다.


잘도 저렇게 근위의 복장을 정하지도 않았달까, 권위를 챙기기보다 실익을 우선하는 그 과감함에 상당한 놀라움을 느낀다.


‘아마 황제라는 사람은 꽤 머리가 유연한 분인가 보네. 아니면 권위 따윈 이미 확고해서 뒷전이라든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다시금 예를 취하며 말을 건다.



“이스피리아 님, 전날엔 무척 실례가 많았습니다.”

“님은 괜찮아요. 편하게 대해주세요, 가베인 씨.”


리아는 먼저 편히 이름을 불러 그가 사양하지 않도록 판을 만들었다. 전날의 일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어쩐지 언급하고 싶지 않달까.


나름의 배려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잠시 묵묵히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가베인은 깊게 머리를 숙였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이스피리아 공.”


목소리조차도 아련함이 어린 가베인. 그러나 얼굴만큼은 상쾌하게 멋진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내심 신경이 쓰여 눈길을 떼기가 어려웠었는데 덕분에 좀 편하게 됐다.


그럴 때였다.


어린 여자아이―― 제국의 제 1황손, 로즈린느가 의자를 박차 내려왔다.


얼마나 급했던지 어린아이의 사랑스러움을 가득 끌어올린, 그러면서도 제국을 상징하는 색인 검은 원단을 사용한 드레스 자락이 휘날린다.


그 과정에서 하얀 속치마도 드러나 유즈라는 안절부절하고, 베르그의 인상이 살짝 찡그려졌다.


의자가 조금 높았기에 발생한 문제라 미리 다른 의자를 준비하지 못했던 리아의 얼굴도 조금 굳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은 안중에도 없던지 로즈린느는 곧장 베르그에게 달려들어 팔을 붙들었다.



“작은 아버님! 이제 됐죠?!”

“후우······ 그래. 되도록 소란 피우지 말고 품위를 지키거라.”

“네!”


희희낙락 로즈린느가 대답하고, 베르그는 작게 말을 건넸다.



“미리 사과하겠네. 너그러이 여겨주면 감사하겠군.”

“아, 네.”


대답은 했지만 뭘 말하는 건지를 몰라 당혹스럽다.


그러나 그 답을 알려주는 존재가 테이블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그 모습에 반대편의 베르그는 깊게 한숨을 쉬고, 유즈라는 더 깊게 한숨을 쉬고는 따라와 로즈린즈 뒤편에 대기했다.



“사도님!”

“······.”


대뜸 사도라 외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그렇지만 말을 건 사람은 제1 황손이다. 무지하게 높은 사람에게 대답하지 않고 마냥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마음을 다잡은 리아는 떨리는 입을 간신히 움직였다.



“죄, 죄송합니다만, 로즈린느 노블 체 폰타르트 님.”

“로즈린느로 괜찮아요, 사도님!”

“아. 그, 그럼, 로즈린느 님?”

“네!”

“실례지만 사도님이라는 건?”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니 로즈린느는 반짝반짝―― 전혀 사심이 없는 해맑은 미소를 보여왔다. 거기에 놓치지 않겠다는 양,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사도님이시잖아요!”

“누가 말입니까?”

“이스피리아 님이요!”

“······.”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에 말문을 잃은 리아는 멍한 눈을 베르그에게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시금 살짝 묵례를 올렸다. 거기에서 보인 의도는 잠시 말 상대를 해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제아무리 황자의 부탁이라도 그런 게 가당키나 할까 보냐.


‘직접 말로 부탁한 거라면······ 어쩔 수 없이 했겠지만.’


리아는 차선책으로 도움을 바라며 가베인들과 나란히 서 있던―― 예의 때문인지 자리에 앉지 않은 레스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간절하디 간절한 리아의 눈을 보고는 안 들릴 정도로 아주 작게 말하였다.



“미안!”

“힘내십시오.”


매정하게 눈길을 돌리는 둘.


도움의 손길은 모두 끊겼다. 언제나 의지하던 에르도 현재는 사용인이라는 신분이니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이 자리는 오로지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자, 잘 해내야 하는데······’


하다못해 자인 디바오러인 것만은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무심코 주먹을 꾹 쥔 리아는 용기를 내, 순진무구함이 주 무기인 이 귀여운 맹수에게로 돌진하였다.



“로즈린느 님? 황송한 말씀이지만 전 사도님이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고 뭐고, 진짜 아니다. 신이라는 대단한 존재의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세인트리안에서 난리를 친 사람은 맞지만······.’


리아는 옷깃을 잡은 로즈린느의 장갑 위로 살며시 손을 감쌌다.



“무척 기대하신 듯하여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전 사도님이 아니에요.”

“저, 정말 아닌가요······?”

“네――”

“――왜요?”

“네?”

“어째서 아닌가요? 아니라고 할 이유라도 있으신 건가요?”


아닌 이유라니.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는가.


당혹스럽긴 하지만 리아는 순순히 준비해놨던 알리바이를 늘어놨다.



“소, 소동이 있던 그 날에 저는 기숙사―― 이 방에서 쉬고 있었어요.”

“그게 어때서요? 듣기로 사도님 정도의 역량이라면 몇 시간이라면 다녀오실 수 있다고 했어요. 저기 가베인 경도 2일밖에 안 걸린대요. 사도님이 세인트리안에 홀연히 나타나 활동하신 시간은 대략 1시간. 날이 밝기 전에 다녀오기엔 충분해요!”


논파 당했다······ 어린아이에게. 실제 세인트리안에 있던 시간은 반나절이나 됐지만, 그 외의 거리에 대한 논점은 하나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저리도 어린아이에게 논리 싸움으로 질 수는 없다.


게다가 에르가 보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간만에 남편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제 발로 온 것이다.


의욕이 확 생긴 리아는 희희낙락 화색이 돌아 기세등등하게 로즈린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려고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불경하단 생각에 대신 에르에게 부탁해 의자를 더 꺼내 거기에 로즈린느를 앉혔다.


‘아니, 함부로 들어 올리는 것도 불경한 거지 않아? 그 전에 허리를 만지는 것 자체가 불경이었지······ 아마.’


그러나 불안함에 경직했던 것과 달리 로즈린느는 꺅, 밝은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베르그도 딱히 눈총을 주지 않는 것을 보니 혼나진 않을 것 같다.


안전을 확인한 리아는 재차 의욕을 불태웠다.



“그 의견엔 허술한 점이 많아요!”

“그, 그런가요?!”


역시나 어린아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야기에 딴지도 없이 바로 집중한다.



“그럼요. 애초에 전제조건부터가 잘못됐어요.”

“전······제?”

“으음. 그 상황을 가정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뜻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그래서 뭐가 틀렸다는 건가요?”

“세인트리안에 나타난 사도님이 저일 거란 가정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일이 발생하기 6일 전에 저는 한 차례 큰 전투를 치렀거든요. 쉬고 있었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그때 저는 전투로 인한 후유증으로 잠시 의식을 잃고 있었어요.”

“쭉 말인가요?”

“네. 3일 동안 자다가 잠깐 깼지만, 만약을 위해 계속해서 잠자리에 들었어요.”


거짓말은 아니다. 잠깐 깨고 그 이후에는 진짜로 ‘밤마다’ 제대로 잠을 잤으니. 후유증으로 잠들었다는 것도 사실이고.


궤변에 가까운, 그냥 거짓말이라 봐도 무방하지만 어디까지나 세인트리안에 나타난 사도가 아님을 고찰할 생각이다.


리아는 에르에게 신호를 보냈다.


명확한 지시는 없었지만, 의도를 알아차린 에르는 즉시 [차원수납]을 열어 거기에서 한 물품을 꺼내 건네주었다.


스윽, 빠르게 받은 물건을 살핀 리아는 큰 눈망울에 가득 호기심이 어린 로즈린느에게도 보여줬다.



“이게 뭔가요?”

“제가 물리쳤다고 공표된 사룡의 비늘이에요. 실은 남은 건 한 장뿐이라고 벨루디스 폐하께 헌상했으나, 나중에 보니 작은 파편이 더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이런 깨진 조각까지 헌상하기엔 그러니 제가 들고 있었습니다만.”


당연히 그렇다고 입을 맞췄을 뿐이다.



“한 번 살펴봐도 되겠는가?”

“물론이죠.”


빼쭉빼쭉 작게 조각난 검붉은 빛의―― 그 유명한 드래곤의 비늘이 궁금했던지 베르그가 끼어들었다.


리아로서는 전혀 사양할 게 없다. 그대로 가져도 괜찮았다. 어차피 저건 에르조차도 어떻게 [차원수납]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물건 중의 하나였으니.


‘말해주기로는 동포분의 비늘이라고 했지? 이름이 아마······ 이니미그레이 씨였나······?’


7살쯤에 들었던 이름인지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언젠가 다시 동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내조를 위한 길이니 말이야!’


그렇게 미래에 만나게 될 아주버님들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으니 여 근위, 유즈라가 로즈린느에게서 비늘을 받아 베르그에게 건네줬다.


사용인이 안 보인다 싶었더니 같이 겸하는 모양이다.



“호오. 이건 참으로 굉장하군.”

“당연하죠! 사도님께서 물리치신 거니까요!”


‘아뇨. 물리치지 않았슴다. 그냥 창고에 박혀있던 걸 꺼냈을 뿐이라구요. 그리고 사도에서 그만 좀 멀어주시면 좋겠는데요.’


소리 없는 반박을 하고 있으니 의외의 곳에서 긍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로즈린느. 아쉽겠지만 이스피리아 공은 사도님이 아니겠구나.”


베르그였다. 그는 비늘을 살피더니 무언가를 확신한 모습이었다.



“어째서요?!”


하지만 당연하게도 반박하는 로즈린느. 아주 철석같이 이쪽이 사도라고 믿는 듯하다.


베르그는 그런 조카에게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난 그리 변변찮은 위치이지만 그래도 나름 황자란다. 그러니 어지간한 귀중품들을 볼 기회가 있었지. 드래곤의 비늘도 예외는 아니구나. 상당수 황성의 보물전에서 보았단다.”

“그런데요?”

“몬스터의 근본적인 얘기다. 몬스터는 맨몸으로도 강대한 마법이나 날카로운 칼에도 잘 상처가 나지 않지. 강할수록 더욱. 왜 그런지 알겠느냐?”

“어으으······ 그게, 몬스터라서?”

“뭐, 틀리진 않았구나.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해주자면, 몬스터들이 지닌 피부 덕분이다.”

“피부요?”


이해가 안 됐는지 로즈린느는 머리를 갸웃하면서 본인의 피부를 쓰다듬었다.



“그래. 도구를 쓸 수 있는 인간과 달리 몬스터들은 자신들이 지닌 피부를 도구화했지.”

“으음. 어려워요.”

“쉽게 말하자면 그들의 피부는 마력이 매우 잘 통한다. 인간도 나름 흐르긴 하지만 몬스터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그게 그렇게 대단하나요?”

“그럼. 덕분에 몬스터들의 피부가 더 단단해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여기 가베인이나 유즈라도 마찬가지란다. 마력으로 몸을 감싸 더 단단하고 큰 힘을 낼 수 있지 않으냐.”

“아! 황성에서 호위해주신 분들도 그랬어요! 슉슉, 엄청 빠르게 달리거나 쓰러진 마차도 일으켜 세웠어요.”

“그것도 근육을 마력으로 강화했기 때문이란다.”


거기서 베르그는 비늘을 들어 빛에 비춰보았다.



“이 비늘은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하구나. 단순히 마력이 잘 흐르는 정도가 아니야. 대기의 마력 그 자체를 당연하다는 듯이 품고 있구나. 필시 엄청난 드래곤이었겠지.”

“그만한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건······”

“목숨을 걸더라도―― 어지간한 군 병력을 총동원하더라도 물리칠 수 있을지 장담을 못 할 거란다. 아니, 이 단단함을 예상컨대 어쩌면 무력하게 패할지도. 비늘이 이래서야 마법이 잘 통할 리도 없고.”


‘에르! 도대체 뭘 건네준 거예요?! ――아. 용왕의 비늘이구나.’


단순히 에르의 형제로만 생각했을 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용왕이라니까 확 와닿는다.


뻥튀기도 이런 뻥튀기가 어디 있을까······. 뒤처리를 맡긴다고는 했지만, 잘도 저런 걸 물리쳤다고 줄거리를 짜고 비늘을 건넸을 줄이야.


‘본인의 형제면서 말이야. 그보다 에르! 흐뭇해하지 마세요! 감탄했다는 듯이 황자님을 보지도 말고요!’


속으로 에르에게 엄청나게 항의하고 있으니 고개를 기울인 로즈린느가 묻는다.



“응? 작은 아버님. 지금 말씀은 오히려 사도님이 맞다고 증명하시는 게 되지 않나요?”

“물론 이만한 몬스터를 혼자 물리쳤으면 여기서 세인트리안까지 금방 당도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물리쳤다는―― 전리품인 이 비늘이 있기에 이스피리아 공의 이야기가 진실이란 증거가 되기도 한단다.”

“왜, 왜요?”

“간단한 이치지. 마법도, 검도 잘 안 통하는 몬스터다. 로즈린느라면 어찌 물리치겠느냐? 그것도 비늘 단 한 장과 이 조각만을 남기고서.”

“어······ 무, 물리칠 수 있는 거긴 한가요?”

“그렇단다. 매우 난해한 이야기지. 하지만 이스피리아 공은 실제로 그걸 해냈구나. 본인의 주먹과 검으로.”

“주, 주먹과 검으로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로즈린느는 눈을 빛냈다.


베르그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자, 그럼 로즈린느. 이런 힘든 격전을 보낸 이스피리아 공은 어땠을 거 같니?”

“엄~~청 지치셨을 거예요!”

“그래. 전력을 쏟아내어 복귀할 때는 이미 의식을 잃고 실려 왔다더구나.”

“굉장해! 그렇게까지 신민들을 위하시다니!”

“후후. 그렇구나. 굉장하지. 그러니 이스피리아 공의 말은 진실일 거란다. 로즈린느가 생각해봐도 힘들 거 같지 않니? 사룡을 물리친 뒤 6일 후 세인트리안에 가서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인다는 게.”

“과, 과연. 저는 기진맥진해서 쭉 쉬고 있었을 거예요.”


‘뭐, 뭐야. 저 황자님 다 알고서 저리 떠드는 거 아냐?’


이야기 자체는 좋게 끝났지만 조금 꺼림칙한 기분이랄까, 어째 로즈린느와 함께 농락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찝찝한 뒤끝 맛이 남는다.



“이제 로즈린느도 이해한 듯싶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도 되겠지?”

“네······”


그렇게 기대했는데 막상 아닌 것을 확인하니 시무룩해진 로즈린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처량한 그 모습에 리아는 순간 마음이 약해졌으나――


번쩍.


갑자기 로즈린느는 머리를 들었다.



“저기, 작은 아버님.”

“응? 왜 그러느냐.”

“근데 사도님께선 왜 이스피리아 님의―― 사룡과의 싸움을 흉내 냈던 걸까요?”

“그 마력의 파동을 말하는 거니?”

“네.”


뜻밖의 날카로운 질문이었는지 베르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리아는 두근두근 심장이 크게 뛰었다. 이 주제야말로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멀리까지 파동이 퍼졌다는 건 세스의 선례가 있었기에 예상은 했지만, 설마 제국까지 닿았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세스의 마력 파동은 훨씬 먼 곳까지 전해진 게 아닐까 싶은 맹점이 이제 와 생겨난다.


일을 저지른 본인도 여러모로 혼란스러운데 베르그라고 달리 답이 나올 리도 없다. 이내 그는 고개를 내리 저었다.



“나도 모르겠구나. 짐작이 가질 않아. 대항심······이라기엔 사도나 되시는 분이 그럴 연유도 없고.”

“그거예요!”

“응?”

“대항심이요! 사도님은 분명 신도분들에게 알리신 걸 거예요. 어떤 강대한 외적이 침공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이스피리아 님처럼요!”

“직접 힘을 내보이셔서 말이냐?”

“네. 그런데 인류의 수호자이면서 그런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해 사도님께서 노하신 게 아닐까요?”

“······알 수 없는 부분이구나. 답은 오로지 사도님만이 아시겠지.”


왜 이렇게 이야기가 흘렀는지, 아무런 맥락도 없는 추리였건만 베르그는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의 기특한 의견을 차마 짓밟지 못하는 어른의 배려가 엿보이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리아의 눈엔 빛이 꺼져갔다.


‘아. 기도를 드리는 걸 보니 로즈린즈는 정말로 신실한 신도구나. 자세가 제대로인걸? 응. 마음에 위안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 과하지만 않으면.’


오늘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가던 리아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는 로즈린즈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쓰담쓰담.


완전 무의식적인 행동으로, 자신도 마음의 위안도 얻을 겸, 기특하게만 보이는 로즈린즈가 손녀와 겹쳐 보였기에 나온 말로였다.


‘음음. 부드럽구나.’


그렇게 무아지경으로 한동안 쓰다듬는 걸 이어가다 주위가 조용해진 것을 느꼈다. 더불어 시선이 몽땅 쏠린 것도 함께 알아차렸다.



“어?”


정신이 번쩍 든 리아는 드디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쓰다듬을 당하고 있는 로즈린느가 얼굴이 풀어져서는 꽤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위안일 뿐 무례임에는 변하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루비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 진짜 큰일 났구나. 으으······ 유즈라 씨, 좀 막아주시지!’


본인이 든 예시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리아는 괜한 사람을 원망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뗐다. 그러고는 자꾸만 서로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려는 손을 최대한 제지하도록 애썼다. 다들 입이 무거워 보이나 라프리트의 귀에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


그 무시무시한 강습은 루비아까지 합류하여 위력이 배가 됐다. 이젠 지옥이나 마찬가지이니 더는 사양이다.



“흠흠. 황자님 그리고 로즈린느 님. 고귀하신 옥체에 크나큰 죄를 범했습니다.”


망설임은 없었다. 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넙죽 숙였다.



“아, 아니. 괘, 괜찮네. 딱히 해랄 것도 없지 않은가.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고 말일세. 게다가 저 아이도 좋아하지 않았던가. 그, 그렇지, 로즈린느?”


절박함이 물씬 풍기는 작은 아버지의 말에 로즈린느는 헤벌쭉 풀린 얼굴을 다잡았다. 그러더니 이번에도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리아의 앞으로 바짝 다가와 올려다본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리아는 일이 커지기 전에 재차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로즈린느의 입이 열리고 말았다.



“결정했어요.”

“무, 뭘 말입니까?”


불안한 기분이 든다.


――정말 얼토당토않은 일에 휘말릴 듯한 예감이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건 정확히 적중했다.



“이스피리아 님을 저희 제국으로 모셔가겠어요!”

“······.”


자신만이 아니었다. 전원 로즈린느의 당돌한 선언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벌리고는 아무 말도 하질 못했다.


제일 먼저 감정을 수습한 것은 이 아이의 행동이 익숙할 베르그로, 그는 골이 아픈지 관자놀이를 누르며 물었다.



“그리 결정한 이유를 듣고 싶다만? 단순히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렷다?”

“아뇨, 그것도 포함되어요, 작은 아버님.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일단 들어보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나가 궁금한 일. 전원 로즈린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도님께서 사룡과의 전투를 흉내 내셨다는 건, 이스피리아 님을 인정하셨다는 뜻이잖아요. 즉 이스피리아 님은 사도님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거죠.”

“그러니 제국으로 이스피리아 공을 모시겠다는 거니?”

“네. 그러면 언젠가 사도님도 오실 테고, 그때 제국에 계셔주십사 간청드릴 거예요. 가베인 경께서도 분명 반기실 테고요.”


엉망진창이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한다.


그야 사도라 지칭되는 인물과 자신이 동일 인물인 시점에서 이미 있을 수 없는―― 가정 그 자체가 몽땅 어긋났지 않은가.


거기에 로즈린느는 황손인지라 조기 교육을 받겠지만 아직은 생각이 짧은 어린아이이다. 논리의 비약이 되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하다.


바로 그때였다. 마치 이 의견을 읽은 듯 동조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 굉장히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이 아니라 루비아였다.


어떻게 이 방에 들어온 것인가. 에르의 마법이 걸려있거늘.


당황하는 리아의 눈에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은 바로 사랑스러운 아들, 아이리스였다.


‘왜 아이리스가. 분명 훈련장에 있겠다고 했는데.’


이 의문은 금세 해소됐다.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쉴 것만 같은 아이리스를 통해서.


그렇다. 사랑스러운 아들은 납치되어 온 거다. 루비아라는 극악무도한 공주님에게. 이 방의 문을 열게 할 열쇠 및 이 자리에 끼려는 방편으로 말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끔찍한 짓을 잘도 저질렀다.


‘우리 아들의 저 애처롭고도 불쌍한 얼굴이 안 보이는 거야?!’


드물게 화가 난 리아는 본때를 보여주기로 했다. 참을 수 없는 이 따끔한 분노를 맛보게 해줄 셈이었다.


하지만――


성큼성큼.


제 안방처럼 거침없이 들어오는 루비아를 보니 바로 쏙 들어가 버렸다.


‘으응. 싸, 싸움은 나쁜 거니까. 아이리스의 정서 교육에도 안 좋고. 친구와는 친하게 지내야지.’



“우선 미안하단 말씀을 먼저 드리도록 하죠. 계신 줄 몰랐습니다.”


리아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절실히 실감했다. 평소처럼 거짓말이라고 속으로 딴지를 걸 엄두조차도 내질 못하였다.


그만큼 루비아의 목소리엔 잔뜩 독기가 바짝 올라 있었다. 저기에 딴지를 거는 건 자살행위다.


그런 그녀가 다가오자 여태 조용히 있던 레스들도 긴장되었는지 몸을 굳혔고, 살짝 침을 삼킨 베르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로 그녀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뵙는군, 소베르비아 공주. 그대가 어찌 이곳에?”

“어째서긴요. 전 이곳의 학생. 학우인 리아와 함께 차를 마실 겸해서 찾아온 것이어요. 도중에 만난 아이리스 군과 함께. 그러한 일에 혹여 베르그 황자님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씀인지?”

“그럴 여부가 있겠나. 단지 궁금했을 뿐이라네.”

“그렇다면 다행이오나······ 방금 들은 재미난 이야기가 무척 관심이 가네요. 바로 실례하려 했으나 동석해도 될는지요?”

“물론이라네. 나 또한 오해를 풀고 싶었으니 말이야.”


바로 돌아가려 했다는 거짓말을 뻔뻔하게도 한 루비아는 역시나 아주 능숙하게 상대를 압박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내심 인디아 때처럼 당황하더니 돌아갈 줄 알았는데 더욱 강력하게 진화했다.


그렇게 테이블에 의자가 하나 더 늘고, 날카로운 분위기로 이 기묘한 자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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