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연재수 :
259 회
조회수 :
29,969
추천수 :
315
글자수 :
3,609,859

작성
24.01.03 18:10
조회
33
추천
0
글자
20쪽

211-2

DUMMY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인마대전은 마족의 침공으로 인해 시작했지. 그건 분명한 사실이야. 무엇 하나 꾸미지 않은 진실이지.”


교황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다. 인마대전은 명명백백, 마족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발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인간이 있었다.”

“잘도 거기까지 조사했군.”


저주로 함구 된 내용은 인마대전이 발발한 사정과 전후 인간이 맞닥뜨리게 된 처지다.


처음에는 이것들이 상세하게 모두 전해져왔을 터다. 그러나 세대를 거치면서―― 그것도 구두로 전파되는 것이다 보니 일부 내용은 누락되었다. 어쩌면 고의로 누락시켰을지도 모르고.


결과적으로 군데군데 정보엔 구멍이 생겨났다.


현재엔 이것들을 알아낼 도리가 없다. 인간의 생활 구역에 있는 한 더더욱.


칼윈도 그러했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 내용들은 스스로가 알아낸 게 아니었다. 이스피리아―― 하얀 악몽이 고별선물이라며 세계의 진실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런, 많은 미래를 거쳐, 목숨과 맞바꾸어 간신히 얻은 정보였다. 아크티알이나 그란 같은, 떠올리지 못한 자들은 평생토록 모를 일이다. ······아니, 떠올린 자라도 별반 다르진 않을 것이다. 교황의 주도 아래 완벽히 역사를 지운 현시대에서는 진실에 도달한다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


다만 하얀 악몽도 모든 걸 알려준 건 아니었다. 명백히 감추는 내용이 있었고, 칼윈은 그것을 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진실을 듣는다.


무수히 지나쳤었던 미래에서도 지금과 같은―― 교황의 입으로 직접 듣는 일은 없었을 거다.


칼윈은 드물게 긴장하며 집중했다. 다른 둘도 마찬가지였다. 알 도리가 없었던 진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교황에게로 향했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대가 아는 대로라네. 마족에겐 처음부터 인간을 침공하려는 마음 따윈 없었지. 순수하게 이웃으로서 인간과 함께 생활한 것에 지나지 않았어. 하지만 그 관계를 바꾼 게 바로 인간이다. 태생적으로 우월한 마력량을 지닌 마족에게 열등감을 느낀 것이지. 그게 쌓이고 쌓여 이내 시기와 질투로 변하게 됐네.”

“이후로는 뻔하군. 괜한 트집이나 잡으면서 귀찮게 굴었겠지.”


미약한 차이였으면 괜찮았을 것이다. 아무리 속이 좁은 인간이라도 그 정도는 허용했을 터다. 하지만 마족과 인간의 마력량은 대략 3~5배 차이다. 동일한 마력레벨에서 말이다. 특출난 개체끼리와의 차이는 이보다 더 심하여 거의 100배에도 달한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족이란 이름의 어원은 본디 마법의 민족이다. 그렇기에 마족이며, 그들은 태생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한 마력량을 지녔다. 결단코 사악한 야만인 따위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섭리나 다름없는 이 일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모든 인간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는 자기보다 잘난 존재에게 적개심을 품는다. 그게 칼윈이 보아왔던 인간이란 존재의 본성이었다.


아크티알과 그란도 그런 인간의 본성을 잘 아는 위치다. 쉽게 상상이 됐는지 무겁게 침음을 낸다.



“고결했던 당시 마족들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네. 타향살이에 따른 당연한 텃세 정도로 여겼지. 그리고 언젠가는 마음을 열 것이라는 믿음으로 모진 핍박을 버텨냈네.”

“고결한 건 좋지만······ 인간을 너무나도 모르는군.”

“그렇지. 배려해 주면 으레 당연한 권리인 줄 아는 게 인간이란 존재이거늘······.”


중얼거리는 교황의 말에는 강한 적개심이 담겨 있었다. 이에 호응하듯 공기가 무겁고 탁해졌다.


‘과연······. 집요했던 인간의 약체화에는 대의만 있었던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칼윈은 물었다.



“그러나, 인간과 마족이 함께 지낸 시간은 길다. 타종족도 그렇다. 분단되어 산 기간보단 공존한 기간이 아득하니 길 것이다. 그런데 단숨에 대립한다고―― 아. 그렇군. 그것이야말로 도플갱어들의 수작이었나?”

“아마 그러하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틀어졌을 일이었다. 그들은 그저 그것을 앞당긴 것에 지나지 않아.”


그만큼의 어리석고 오만한 배척이었다.


안에 담긴 이 뜻을 알아차린 모두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인간의 배척은 점차 혐오로까지 변해가기 시작했지. 그리고, 인마대전으로 치닫게 된 사건이 벌어졌네.”

“그게 뭐지?”

“무고한 아이가 맞아 죽은 일이었지. 그것도 인파가 많은 광장 한복판에서. 그래······. 이곳, 성지의 중앙 대광장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네.”

“······.”

“당시 범행을 저지른 자는 우발적으로 상해를 입혔을 뿐, 결코 살해의 의도가 있진 않았지. 하지만 그걸 어찌 증명하겠나? 이미 인간과 골이 쌓일 대로 쌓인 마족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을 발표에 불과했지. 더군다나 아까 말했듯, 마족들은 고결했네. 힘없는 약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미덕이었지.”

“그런데 약자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인 아이가 무참히 살해됐다······.”


이제야 대략적인 이야기의 윤곽이 그려진다. 다른 둘도 그러했는지 보좌들과 시선을 나누었다.



“알고 있겠지만, 맞아 죽기란 의외로 힘든 법이라네.”


조금이라도 몸을 쓰는 자라면―― F랭크의 초짜 모험자마저 아는 상식이다. 생명이란 제법 끈질기다는 것을.



“그렇기에 마족들이 분노했나······.”

“진상은 평범한 아이들보다 허약한 한 아이가, 운 없게 급소를 맞아 사망한 ‘사고’였다만······ 그딴 사정 알 바인가, 여태 불합리하게 당한 게 얼마인데. 인간은 최소한의 도리도 없다. 그리 결론을 내린 마족들은 그 방대한 마력을 활용, 각지의 지인들에게 마법으로 이 일을 알렸지. 그리하여 동시다발적으로 봉기가 일어나게 된 것이라네.”


급진적으로 변하게 된 건 십수 년 정도지만, 애당초 멸시와 차별은 이전부터 쭉 이어져 온 것이었다. 은연중 쌓인 불만은 커졌을 테고,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 너도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터다.


아마 반대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겠지······.


그렇게 종족 전체로 번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대전쟁이 됐다.


800년이 넘도록 감췄었던 그날의 진실이 이것이다.


경악한 이들은 깊은 고뇌에 잠겼다.


그런 와중 칼윈만은 달랐다. 그는 언짢은 표정으로 테이블을 검지로 두드렸다.



“분명 듣고 싶었던 진실이었다. 다들 그랬겠지. 덕분에 뜬금없는 환수와의 조약이라든가, 이 지경으로까지 내몰린 인간의 현 처지도 납득됐다. 이러나저러나 인간은 ‘패배’했으니까. 바꾼 역사와는 달리······. 오히려 잘도 멸종당하지 않았어.”

“그래. 그러하네. 인간은 이 대륙 전체에 전쟁을 벌여놓고 용케도 살아남았네. 인비트 네우라 디안 벨루디스―― 전부 그의 덕분이지. 디안, 그가 비젠탈과 함께 애써줘서 인간은 멸종당하지 않을 수 있었네.”

“대신 조약이라는 이름의 족쇄를 차게 됐다. 생존의 대가로······.”

“벌인 일에 비해서는 상당히 싸게 먹혔지. 무려 패전했음에도 상호불가침이라는―― 지나치게 인간에게 유리하고, 상냥한 협정을 맺은 것이니 말일세. 이 기적에 우리가 할 일은 하나. 상의도 없는 디안의 독단을 질책하기보다, 얌전히 그가 내민 조약 체결문에 서명하는 것이었지.”


그것 말고는 인간이 살아남을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이 내몰린, 어찌 보면 스스로 자처한 상황이 그러했다.


······더불어 건국왕만큼은 조약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도플갱어의 암약을 눈치채지 않았을까. 인류 최강이라는 그가 갑자기 병사한 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을 터다.


‘장로라던 에스쿠드······ 아마 그놈과 결착이라도 지으려 했겠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다. 수 세대 동안 길이길이 전해질 원한도 그걸 이끌어 갈 머리가 없으면 금세 흩어질 테니.


자신이라도 그리했을 거라고 칼윈은 생각했다.


칼윈은 테이블을 두드리던 검지를 멈추고 교황을 노려봤다.



“그래서? 어찌 조약마저 위반할 위험한 짓거리를 해댄 것이지? 건국왕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들 속셈이었나?”

“대충 예상했으리라 보인다만?”

“······개인적인 원한이냐? 그 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 된다.”


즐겁다는 듯이 웃는 교황.


여유로운 그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칼윈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하지만 그 미간은 곧장 풀어지게 되었다.



“아내가 죽었다네.”

“그 정도로 오랜 세월이면 당연히――”

“――나의 아내는 마족이었네.”


마족······ 그의 이 말만으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세. 자네도 말했듯 함께 지낸 기간이 훨씬 길지 않았나. 마족과 인간의 한 쌍 같은 건 흔하게 볼 수 있는 거였네. 뭐, 분단 이후에는 큰일이었지만. 그래도 마국 쪽에서 인간 부모와 아이를 받아줘서 쉽게 사후 처리가 끝났네.”


그리 말하는 교황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심판관들마저 경악스럽게 쳐다봄에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웃고 있었다.



“그런가. 인간의 손에······. 그래서······.”

“아니. 딱히 그게 전부가 아니라네. 물론 인간은 싫어하지. 일전에 자인 디바오러에게 말했듯, 정말 몰살시키고 싶을 만큼 인간이란 존재를 증오한다네. 당연하지 않나? 소중한 남의 아내를 처참히 능멸했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개인의 감정일 뿐, 네놈이 행해온 일과는 무관하다는 거냐?”

“그건 또 아니라네. 아예 영향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 아니겠는가. 다만 재차 우리의 주께 맹세하네만, 교황이 된 후로 나는 단 한 번도 그릇된 욕망으로 일을 진행한 적이 없네.”


미치광이 같아도 교황은 일단 성직자다. 그것도 최고위다. 그런 자가 신에게 향한 말을 지어내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진실이라는 건데······.



“어째서지? 인간을 증오한다면서 어찌 교황으로서 인간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냐?”

“그것이 아내가 남긴 유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마지막 숨을 짜내어 내게 모두를 막아달라 부탁했지. 그게 아니면······ 인간 따위를 위해 고군분투할 리가 있겠나?”


교황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어떠한 감정의 변화도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 열화된 것인지 모르겠다. 분노와 절망, 체념과 같은, 으레 있어야 할 감정이 교황에겐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도 4급 신관에 지나지 않은 나로선 어려웠지. 권력의 필요성을 그때 느꼈지. 광기에 휩싸인 인간을 통제하기엔 달리 효과적인 수단이 없으니. 그래서 난 교황청에 적을 두고, 최대한 권력자에게 아양을 떨었다네.”

“알랑방귀를 뀐다고 쉽게 앉을 자리가 아닐 텐데?”


교황이란 국왕이다. 아첨 따위를 떨어서 국왕이 된다면 누구라도 그리했을 터. 신발을 핥는―― 그 이상의 굴욕이라도 능히 받아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성직자라고는 하나 결국에는 인간. 권력 싸움의 정점이 그딴 식으로 손에 떨어질 일은 결단코 없다.


교황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보통이라면 이미 점 찍은 신관에게나 물려줄 테지. 하지만 나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교황의 눈이 커졌다.



“――아. 그렇군. 그자가 도플갱어였나······?”

“뭐······?”


뜻밖의 발언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칼윈도 놀라 되물었다.


하지만 대답을 듣기 전에, 리카드가 먼저 움직였다.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리카드는 순식간에 소매에서 한 뺨 크기의 백금 지팡이를 꺼내 교황에게 겨누었다.


호위였을 심판관은 경악하느라 대응이 늦었다. 뒤늦게라도 [수납]의 마도구를 발동하여 무기를 꺼내려 하였으나, 리카드가 허용할 턱이 있나. 매서운 기색을 내뿜으며 제지한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길. ······교황 예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저라면 충분히 당신께 치명상을 입히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아시겠지요?”

“음. 다중 발동으로 인한 중첩······ 이로 인한 마법의 강화인가. 한 세기를 앞선 방식이로군. 확실히 그만큼이나 돌파력을 강화한 마력의 탄환이라면 나라도 온전히 받아내진 못하겠지.”


역전의 맹자와 같은 기척을 내는 리카드다. 조금이라도 저항할 낌새라도 보인다면 즉각 마법을 발동하겠지. 그리고 그 피해는 직접 언급한 만큼 가볍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교황은 천천히 구원의 완드를 테이블에 내려놨다.



“리카드, 무슨 짓이더냐.”

“확인을 위한 겁니다, 폐하. 이곳에 있는 자 중, 도플갱어에게 세뇌당했을 시 누가 가장 큰 위협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확률이 가장 높은 자는? 실례이오나, 폐하······ 좀 낙관적으로 계신 듯합니다. 눈앞의 교황은 이 땅에서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입니다. 비유 같은 게 아닙니다.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저희는 그의 권능 아래에 떨어진 것과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초입에 진입했을 때부터 죽일 수도 있었다는 거냐?”

“그 말씀대로. 이 땅은 루시아스 님의 성지이지만, 동시에 그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목숨을 취하는 것쯤은 일도 아닙니다.”

“――좀 번거롭기는 해도 말이지.”


성역을 공유하고 있다는, 루시아스를 섬기는 이들에겐 심히 불경스러운 이야기였음에도 교황은 아무렇지 않게 동의했다.


그 태평함에 아크티알은 흠칫하였다. 자신만만하게 찾아왔건만, 사실은 그곳이 사지였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나 보다.


그에 비해 칼윈에게 동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벨루디스 쪽과는 달리 선대를 통해 대략적인 교황의 능력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한 상태에서 세인트리안을 찾아온 것이었다.



“원하는 게 뭔가?”

“검사입니다.”

“말했듯 날 확인하고 싶다는 것인가.”


잠시 생각하는가 싶었던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편한 대로 마음껏 검사하게. ······자네들도. 괜찮으니 그에게 협조해주게.”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아아. 실은 내가 알고 싶은 부분일세. 게다가 검사할 방법까지 갖추어져 있는 데다, 그걸 공짜로 해주겠다는데······ 굳이 거부할 이유가 있나? 모처럼이니 자네들도 검사를 받아보게.”

“예······?”

“리카드여, 괜찮겠나?”

“예.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으니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모두 확인하기 전까지 지팡이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은 양해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음. 알겠네.”


얼떨떨한 심판관들은 뒤로 하고 이야기는 착착 진행됐고, 리카드는 품에서 은은한 은빛을 내는 수갑을 꺼냈다.



“가, 감히 예하를 포박하겠다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게 검사 도구입니다. 바보 같은 소리 마시고 당신들부터 착용해 보세요.”

“뭐······?”

“아아. 바쁩니다. 한 팔만 차도 충분하니 서둘러주시죠.”


단호한 재촉에 심판관들은 서로 쳐다보며 시선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교황에게 수갑을 채우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나, 각자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에 채웠다.



“됐나?”

“예. 암시나 세뇌의 정신 조작이 걸려있었다면 전부 풀렸을 겁니다.”

“응? 설마 진짜 검사 도구였다고? 근데 왜 하필 수갑으로······?”

“포박했을 때 괜한 진을 빼지 않기 위해섭니다. 정신이 조작당했으면 필시 발버둥 칠 테니 말이죠. 그보다 이제 수갑이 풀릴 테니 어서 교황 예하에게 넘기시죠.”


그 말마따나 수갑은 손을 대니 정말로 싱겁게 풀어졌다. 하지만 교황에게 건네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이리 주게.”


심판관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교황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잊었나 싶네만, 내 목숨이 달린 문제이지 않은가? 주저할 게 아니라네.”


심판관들은 리카드의 지팡이를 이를 갈면서 쳐다봤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공손히 교황에게로 가 수갑을 넘겼다.


수갑을 받은 교황은 잠시 가만히 살펴봤다.



“과연······. 신기였는가? 게다가 이 기운은······.”

“호오. 역시나······. 손에 쥐었다고는 하나 곧장 알아내시리라고는.”

“하? 신······기?”


얼빵한 소리를 낸 건 비단 심판관들만이 아니었다. 차마 소리를 내지 않았을 뿐 전원이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나마 덜한 건 각국의 국왕들로, 다들 수갑이 발하는 빛에서 어렴풋이 짐작했다.


칼윈의 경우는 마안 덕분이었다.


존재감이란 생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존재한다. 고명하고, 사연이 깊은 물건일수록 더욱 짙은 식으로 말이다. 그중에서도 저 수갑은 특별했다. 제국 보물전에 있는 어떠한 보물보다도 존재감이 짙고 뚜렷하다.


그러한 물건이 세상에 많을 리도 없으니 답은 금세 나왔다. 무엇보다 저 빛깔―― 얼마 전 제국의 하늘을 꿰뚫었던 은백색을 보노라면 달리 여지가 없다. 저건 하얀 악몽······ 이스피리아가 만든 것이다.


교황은 아무 저항감도 없이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그렇군. 초월급의 마도―― [완전한 성역]인가. 부정한 것을 전부 배제하는 [완전한 성역]이라면 확실히 정신 조작 따위야 우습겠지. 나의 [맹약]도 그러하고······. 굳이 수갑의 형태를 취한 건 포박한 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기밀 유지를 위해 입을 막는 건 흔하니 말이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군.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포로라니······.”


이번에도 리카드가 풀어도 된다고 하자 수갑은 손쉽게 풀렸고, 교황은 즐거이 웃으며 그에게 돌려줬다.



“갑작스러운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교황은 정중히 예를 표한 리카드에게 가벼이 손을 저었다.



“됐네. 필요한 조치 아니었나. 그보다 이것으로 혐의는 풀렸는가? 별다른 느낌은 없었네만.”

“예. 예하와 이쪽의 신관님들께 정신 조작은 없었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반동으로 어리둥절하면서 허둥댔을 겁니다. 누가 봐도 어색할 만큼.”

“정신 조작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그러하겠지. 갑자기 홀가분해진 기분일 테니. ······음. 그래서 그다음은 뭔가? 아까 자네의 말에 조그마한 어폐가 있었다만?”


역시 속이긴 힘들다며 리카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예하께서 감정하셨듯, 이 수갑의 효과는 절대적입니다.”

“그러하다.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진짜 신기다. 보증하지. 나조차 완전히 저항하는 건 무리였다. 겨우 한쪽 팔만 찼음에도 불구하고.”


초월자인 교황이 저항하지 못한 거다. 신기의 막강한 힘은 거의 회피 불능에 가깝다는 소리다.



“다만 완전무결하다는 건 아니다.”

“그렇습니다. 분명 ‘현재’ 있는 정신 조작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사라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전에 걸린 것들까진 제아무리 신기라도 방도가 없습니다.”

“이미 정신 조작은 끝나,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겠지.”

“예. 성향과도 비슷한 겁니다. 수년 전에는 좋아했지만, 현재는 싫어할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시작은 정신 조작이었겠지만, 이후로도 그 감정과 사상은 그대로 뿌리를 내려 그 인격과 성향의 양분이 되겠지요.”

“결국엔 조종당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로군······.”

“그러니 성가시고 귀찮은 겁니다.”


한숨을 내쉰 리카드는 돌연 분위기를 다소 진지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당신께 다시 묻습니다만, 인간의 약체화와 더불어 인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키운 저의가 무엇입니까?”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일이 끝났다 싶으면 재차 새로운 일이 생기고 요새 정말 정신없네요. 덕분에 거의 반휴재 상태였고...

솔직히 좀 많이 지쳤지만 힘을 내려 합니다!

아자아장 화이팅입니다!

사실... 회담까지 이야기를 끝내고 업로드하려 했지만, 얼른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도중에 업로드하게 됐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렙 히로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다들 연말 잘 보내세요! 23.12.26 9 0 -
259 219-2 24.04.10 8 0 13쪽
258 219 24.04.10 39 0 42쪽
257 218 +2 24.03.25 30 1 43쪽
256 217 +2 24.03.14 19 0 50쪽
255 216 +2 24.03.01 29 0 40쪽
254 215 +2 24.02.22 35 0 40쪽
253 214 +2 24.02.15 30 0 45쪽
252 213 +2 24.02.01 39 0 48쪽
251 212-2 +2 24.01.22 24 0 21쪽
250 212 +2 24.01.22 30 0 33쪽
» 211-2 +2 24.01.03 34 0 20쪽
248 211 +2 24.01.03 68 0 43쪽
247 210 +2 23.12.03 104 0 45쪽
246 209 +2 23.12.03 39 0 41쪽
245 208 +2 23.11.11 45 0 55쪽
244 207 +2 23.10.29 70 0 42쪽
243 206 +2 23.10.21 50 0 50쪽
242 205-2 +2 23.10.11 61 0 21쪽
241 205 +2 23.10.11 70 0 37쪽
240 204 +2 23.09.30 68 0 40쪽
239 203 +2 23.09.14 62 0 39쪽
238 202 +2 23.09.14 93 0 36쪽
237 201-2 +2 23.09.02 67 0 18쪽
236 201 +2 23.09.02 72 0 35쪽
235 200 +2 23.08.22 87 0 47쪽
234 199 +2 23.08.14 73 0 42쪽
233 198 +2 23.08.04 86 1 39쪽
232 197 +2 23.07.27 80 0 42쪽
231 196-2 +2 23.07.19 52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