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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님의 서재입니다.

cafe, 체리블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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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작품등록일 :
2013.02.03 22:51
최근연재일 :
2013.07.15 23:56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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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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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01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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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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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DUMMY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에릭과 에클레어는 숨을 헐떡이며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완행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들을 따라온 승무원이 에릭과 에클레어가 가져온 짐 가방들을 둘이 하루를 같이 묵게 될 객실에 넣어주었다. 에클레어가 기차를 지연시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승무원은 친절한 태도로 그리 늦지 않았으니 괜찮다며 말하고는 호출용 벨이 있는 곳과 객실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에 인사를 하고 나갔다. 에클레어가 마주보는 소파의 한쪽에 풀썩 앉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열차라, 카페를 관리하고 나서는 처음으로 멀리 가는 여행이네요. 너무 좋다~"


“그런데 파이와 카페는 어떻게 합니까?”


에릭이 걱정스런 어조로 묻는다. 에클레어는 무사태평한 얼굴로 대답하며 카페마스터로서는 껄끄러운 화제를 다른 곳으로 전환했다.


“파이는 강제휴가 보냈어요. 가끔은 환계에 돌아가야 하는데, 이번 기회에 푹 쉬라고요. 카페는… 축제 때 너무 쉬는 바람에… 오라버니께 대신 좀 봐달라고 했어요, 후후. 그나저나 에릭씨, 유콘에 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오셨죠? 언더그라운드에서 만났던 꼬마 아가씨, 아만다가 저흴 초대해주었답니다.”


"아! 아만다가 말입니까? 아만다는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다정한 웃음과 함께 아만다의 소식을 물어오는 에릭에게 에클레어가 짜잔! 하고 아만다가 보낸 편지를 꺼내 들었다. 아만다가 에클레어에게 보낸 네 번째 편지에는 가족사진이 동봉되어 있었다. 처음 보았던 인형 같은 무표정에 8살 같지않은 당돌하기만 한 꼬마아가씨는 어디 갔는지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만다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 사진을 본 에릭과 에클레어는 마주보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둘이 갑자기 이 기차에 오르게 된 사연은 몇 시간전인 카페가 문을 열 때로 돌아간다.



“똑똑똑!”


아침 해가 뜨기도 전인, 어스름한 새벽녘을 뚫고 날아온 날개를 파드득 접은 이가 카페의 문을 두드렸다. 목요일은, 카페 체리블로섬의 정기휴일이라 팻말은 close를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린 조인족 사람은 close 팻말을 무시하고 약간 다급하게 카페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잠시 후, 잠이 덜깬 얼굴의 파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빌레트씨. 하~암. 오늘은 엄청 일찍 오셨네요. 급한 등기라도 왔나요?”


“그렇다네, 파이군. 에클레어 양을 뵐 수 있는가? 그녀의 인장이 필요한 거라. 이렇게 이른 시간에 와서 미안하네.”


“아녜요, 일이시잖아요. 아가씨 불러올게요.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세요.”


그리고 에클레어가 급하게 내려와 우체부 빌레트에게 인장을 찍어주고 등기로 온 편지를 펼쳐 들었다. 그 안에는 당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기차의 티켓과 어딘지 삐뚤삐뚤한 아만다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아만다는 지하도시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연이 닿은 꼬마숙녀였다. 미아가 된 그녀와 함께 언더그라운드를 돌아다니고, 에릭과 에클레어의 격려와 용기로 부모와 쌓인 오해를 풀었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 아만다는 부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에클레어와 꾸준히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이번에는 특별한 초대장을 보내온 것이다. 아카데미의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자신의 집으로 한 번 놀러 와 줄 것을 부탁하는 귀여운 초대장인 것이었다.


아만다의 부모도 친히 와주길 부탁하는 내용과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기차의 1등석 티켓 2장을 동봉해서 같이 보낸 것이다. 기차의 1등석 티켓은 비행선의 승선권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아만다 가족의 마음을 생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던 에클레어는 잡혀있던 일정들을 취소하고, 사정도 모르는 에릭에게 긴 사정 설명도 생략한 채 급하게 여행을 가야 된다는 본론만 말하고 짐을 챙겼다.


중간 역인 몽레알의 올드포트 역에서 하루에 한 대,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열차는 종착역인 화이트호스까지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달리며 각 역마다 멈춰서는 완행열차로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도착하는 코스다.


아만다가 편지를 보낼 때 날짜를 잘못 계산 했는지, 아니면 편지 도착이 지연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에릭과 에클레어가 당일 오전 출발하는 기차 시간에 맞추어 준비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파이가 있는 힘껏 여행 짐 챙기는 것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단골로 이용하는 마부 아저씨께서 평소보다 격하게 몰며 속력을 내주지 않았다면, 출발신호를 하려던 역무원이 달려오는 에클레어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에릭과 에클레어는 지금 기적소리를 내며 출발하기 시작한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열차의 일등석 칸에 앉아 있지 못했을 것이었다.



"계속 연락하고 지내셨습니까?"


"물론이지요, 한 번 생긴 인연은 쉽게 끊어버리면 안 되거든요."


"에클레어 양이기에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헤헤 웃는 에클레어의 모습을 지켜보던 에릭이 창문을 내다 보았다. 잔잔한 물결에 파도 치는 바다와 소란스런 항구마을이 시선을 붙잡는다. 갈매기들이 배웅을 하듯 끼룩대며 한동안 기차의 기적소리와 함께 날아간다.


“이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기차가 관광용으로 유명해진 것은, 천혜의 배경을 모두 볼 수 있어서인 거 알고 계세요?”


에클레어가 에릭에게 이제는 습관처럼 설명을 시작했다.


퀘백국의 수도인 몽레알은 도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세인트로렌스 강과 리도 운하가 있고, 서쪽으로는 제국과 맞닿아 있는 왕의 산맥이 동쪽에는 여신의 바다로 감싸인 항구도시로 무역의 메카였다(그런 위치에 있는 몽레알이 수도였기에 퀘백국이 도시국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대륙의 해로, 그리고 서대륙의 육로를 연결하는 올드포트 역에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기차가 길을 둘러가면서 서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퀘백국의 들판, 바다, 산, 툰드라, 사막, 호수, 그리고 가장 체계적이고 아름답게 설계된 도시 등… 다양하고 환상적인 자연의 절경을 연결하는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기차. 보다 많은 이들에게 지금 당장 떠나라 유혹하는 이 루트는 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5일이 걸리는 퀘백국에서 가장 긴 코스로도 알려져 있다.


그녀의 설명에 에릭은 시간이 된다면, 시발역에서부터 종착역까지 전 구간을 타보리라 다짐하며 수첩에 ‘화이트패스 유콘루트’를 적어 넣었다.


처음으로 퀘백국의 수도인 몽레알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는 여행에 설레는 건 에릭뿐만이 아니었다. 에클레어도 한껏 설레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햇빛에 부딪혀 푸르게 반짝이는 아쿠아마린 빛의 바다와 수평선을 지켜보고 있었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승무원이 간식을 실은 수레를 세우며 필요한 게 있는지 물어왔다. 에클레어는 그제서 바쁘게 움직이느라 아침도 못 먹고 온 것을 떠올리며 허기를 느꼈다. 에릭이 커피 2잔과 간단히 먹을 샌드위치 2개를, 에클레어는 디저트로 먹기 위해 근방 특산물 과자를 잔뜩 샀다. 에릭이 그 많은 양에 놀라 쳐다보자, 에클레어가 혀를 차며 말한다.


“기차 여행의 기본은 간식과 함께 시작해야 하는 거 모르세요?”




끝없이 펼쳐져 있던 바다는 금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어느새 투명한 거울 같이 맑은 에메랄드 빛 호수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떠오르게 하는 설원이 펼쳐졌다. 그 그림 같은 자연의 배경이 되는 것은 눈의 여왕이 살 것 같은,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 한 기가 막힌 설산들의 등장이었다. 에클레어와 에릭은 지칠 틈도 없이 멋있는 풍경들을 바라보느라 한참을 창문에 붙어 앉아 에클레어가 사두었던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연, 천혜의 배경을 모두 한자리에서 지켜 볼 수 있다는 최고의 루트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법했다.



“객차 연결 통로로 나가볼까요?”


기차가 산의 초입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클레어가 품에서 작은 엔틱 태엽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곧 점심을 먹을 시간이기도 해서 다음 역에서 내려 도시락도 살 겸, 공기도 쇨 겸 에릭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일어섰다. 열차 구조는 객차 한 칸에 일등석 칸이 두 개씩 좁은 복도를 통해 문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둘은 짧은 복도를 걸어나가 객차 끝에 앉아있는 승무원과 인사를 나눈 뒤 문을 열고 안전대가 설치 된 통로로 나왔다.


아무리 완행열차라 해도 기차라 그런 지 빠른 속도에 거친 바람과 자욱한 산 운하(구름과 안개)가 시야를 가리며 휘몰아쳤다. 에클레어가 에릭의 등 뒤에서 꺄악!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휘날리는 머리와 드레스 자락을 수습했다. 승무원이 비명소리에 안에서 유리창으로 밖의 모습을 보고 아차! 하는 표정으로 벽에 붙은 작은 손잡이를 내리자 투명한 막이 생기며 바람을 막아주었다. 바람의 정령이나, 마법사의 배리어 마법인 듯 했다.


“에클레어 양, 이쪽으로.”


에릭이 안전한 통로의 안쪽 자리로 에클레어를 이끌었다. 어느새 시야를 가리던 산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희뿌연 안개가 빠져나가자 빼어난 풍광이 그들을 맞아주었다. 때마침 에클레어와 에릭이 나왔을 때 기차는 지은 지 수백 년은 된 듯한 아찔한 높이의 공중다리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바로 아래로는 거칠고 산세가 수려한 협곡이 펼쳐져 있었다. 기차의 요란한 소리를 비집고, 뼛속까지 시릴듯한 빙하 계곡이 출렁대며 흘러가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얼기설기 얽힌 나무다리를 지나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철로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침엽수림 장관이 나타났다. 보이는 모든 곳이 침엽수로 빽빽이 솟아 있어서 그야말로 겨울 산의 푸르른 반전매력을 보는 기분이었다. 에릭과 에클레어는 멋있다! 라는 말 밖에 모르는 바보들처럼 감탄과 감격을 자아내며 소리쳤다.


그리고 에릭의 카메라는 쉬지 않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 후, 점심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드워프 마을과 간이역에서 파는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소금과 후추만으로 간을 한 치킨요리였는데, 간단하게 생긴 모습과는 달리 깊은 훈제 내음과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특산품으로 역무원이 드워프제 흑맥주를 추천하여 치킨과 같이 먹을 음료로 2잔을 샀는데 차갑고 톡 쏘는 맛이 치킨과 아주 잘 어울렸다.



저물어가는 노을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려와 에클레어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새 깜빡 잠이 들었는지 가물가물한 눈을 비비면서 부스스한 몸을 일으키는데 에릭이 덮어준 것으로 보이는 그의 니트 카디건이 무릎 위로 떨어져 내렸다. 에릭도 에클레어가 잠든 뒤 창문으로 풍경을 구경하다 잠들었는지 완벽하게 커튼이 채워진 그녀의 창문과는 달리 반쯤 채우다 만 그의 창문에선 붉은 노을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에클레어가 잠이 덜 깬 멍한 눈을 비비다가 바로 맞은 편에서 모델 같은 포즈로 잠이 든 에릭을 멀거니 바라봤다. 자신이 덮고 자던 에릭의 카디건을 덮어주다가 처음으로 아주 가까운 위치에서 구경하는 에릭의 얼굴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들어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서 멈춰 서서 에클레어는 자신과 외모를 비교하고 있었다. 여자인 자신보다 긴 속눈썹과 그윽하고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나 살짝 쳐진 눈썹과 동글동글한 광대뼈 때문에 순해 보이는 인상을 지나쳐 오뚝하게 솟은 높은 코와 단정한 입매,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깨끗한 피부까지 참으로 잘난 남자였다. 거기에 감겨있어 보이지 않는 하늘색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 얼굴을 붉히지 않을 여자가 없었다. 색색거리며 잠자고 있는 에릭의 코끝을 저도 모르게 톡톡 가볍게 치던 에클레어는 잠자는 미남의 근접 관찰 끝에 결론을 내렸다.


미남은 자는 모습도,


“잘 생겼다.”


에클레어가 작게 중얼거리며 아직 멍한 정신을 깨우고자 기지개와 하품을 하면서 저녁을 먹으러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실의 문이 닫히자, 에릭이 눈을 살며시 뜨며 발갛게 물든 뺨을 감추려고 카디건에 얼굴을 묻었다.



저녁은 1등석과 2등석 사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기로 했다. 2월, 겨울로 한참 추운 이 시기에 화이트호스 역이 있는 유콘으로 가는 사람들로 레스토랑 안은 북적거렸다. 한 여행사에서 거의 열차 좌석 반을 독점하듯이 한 모양이었다. 퀘백국 사람들은 여행을 갈 여유와 시간만 허락되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많은 것도 있었지만 유콘의 겨울 오로라는 동대륙의 다른 나라에서도 보러 올 정도로 유명했다(그들 대부분 화이트패스 유콘루트 기차를 타고 유콘에서 며칠 묵고 돌아가는 여행 패키지 코스를 이용했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에릭과 에클레어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산뜻한 민트색 원피스와 폭닥한 느낌의 퍼 자켓을 입고 등장한 우아한 걸음걸이의 에클레어와, 세미 정장을 입고 매력적인 외모에 특유의 여유 넘치는 분위기를 지닌 에릭은 남들이 보기엔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이었다. 그래서일까? 좁은 레스토랑 칸에서 식사를 하던 혹은 기다리던 이들의 기묘하고 끈적대는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에릭이 따가운 시선들이 신경 쓰여 레스토랑을 둘러보고 있는데 둘을 발견한 레스토랑 매니저가 다가왔다. 열차도 간신히 탄 둘이라 예약이 돼있지 않은 탓에 매니저가 둘을 이끌고 한 노부부와의 합석을 권했고 유쾌한 인상의 노부부는 흔쾌히 승낙했다. 에클레어가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실례하겠습니다. 므슈, 마담. 즐거운 여행 중이신지요?"


"즐거운 여행 중이신가? 여기 우아한 귀부인은 공의 아내인 샬롯이고 공은 카롤로스 포크먼이라고 한다네. 화이트호스 종착역까지 가지. 마드모아젤과 젊은 므슈는 어떻게 왔는가?"


"반갑습니다. 므슈 카롤로스, 마담 샬롯. 저는 에클레어 스완이고 여기 이 분은 에릭 윈체스터라고 합니다. 친구의 초대로 저희들도 화이트호스까지 간답니다. 식사는 하셨는지요?"


"아니, 아닐세. 우리도 일행들이 많아서 막 자리에 앉았거든."


"어머, 이이도. 얘기는 천천히 식사를 하면서 할까요?"


웨이터가 마담 샬롯의 손짓에 다가왔고, 에클레어와 에릭은 B세트를, 마담은 C세트, 노신사는 A세트를 시켰다. 천천히 나오는 코스요리들로 인해 넷은 생각보다 많은 대화를 나눴다. 포크먼 노부부는 4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동대륙의 브리트니안 왕국에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이번에 기차의 반절 가까이 세를 낸 여행사 일행이 바로 자신들이라며 말하는 포크먼 부부는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식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좋았지만 오랜만에 단 둘이서 로맨스를 불태우기 위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대자연의 비경 속에서 살아가는 고즈넉하고 작은 시골 도시를 선택했다고.


"윈체스터 군처럼 사실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구경하러 가기에는 심심한 곳일지 모르지만 말이야."


"호호, 그렇네요. 그래서 스완 양이 젊은 나이인데 벌써 가본 적이 있다니 신기할 뿐이죠."


"저도 아주 어렸을 적에 가족여행 차 한 번 가본 게 다랍니다. 파도 치는 오로라가 너무 인상 깊어서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에릭이 퀘백어로 배우지 못한 오로라라는 단어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제국어로 생경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오로라’가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제국말로 바꾸면, 음...]


[유스 제국의 과학이론에 빗대어 말하자면 태양에서 흘러나온 빛 에너지가 초고층대기에서 서로 충돌하여 발광하는 현상을 말하네만, 제국에서는 제국 북부 일부 지역에서만 일정한 시기에 발견된다고 들었다네.]


[아! 오로라 말입니까!]


"어머, 제가 생각한 설명보다 훨씬 정확하게 설명해주셨어요. 므슈 카롤로스께선 브리트니안 왕국에서 오셨다 하셨는데 제국어, 특히 과학용어에 능하시네요.”


“허허허, 내가 아카데미에서 제국 상식 교양 과목을 가르치고 있거든!”


“그러셨군요. 덧붙여 동대륙에서 전해져 오는 오로라의 유래로 말씀 드리자면,"


"그건 내가 마저 설명해도 될까? 스완 양. 동대륙의 오랜 지배자였던 고대 롬 제국의 신화에서는 새벽을 다스리는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가 깜빡 잊고 떨어뜨린 천 자락이라는 말도 있지요. 밤하늘을 수놓는 오로라를 보면 그 이야기가 진실처럼 와 닿을 텐데, 호호호."


"두 분이 설명을 다 하셔서 제가 에릭씨에게 설명할 내용이 없을 정도에요. 그럼 저는 저희 퀘백국에 전해져 오는 설화를 말할까요? 새벽별이라고 불리는 빛 속성 대정령이 있는데요. 새벽별은 아직 어린 정령이라 아기의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종종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베일을 아침이 오기 전, 밤 하늘에 펼쳐 놓고 별빛을 담아 가고는 한답니다. 그 모습이 저희 눈에는 오로라가 되어 보인다고 전해지죠."


연달아 이어지는 설명에 에릭이 빠르게 만년필을 꺼내 들어 수첩에 메모를 해 둔다. 짧은 단어들을 적어 연결해 놓고, 나중에 그 단어들을 보며 지금의 이야기를 떠올려서 정리할 터이다. 에릭은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종종 우리 셋이 나누는 대화에 열심히 듣고 있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궁금증을 해결했고, 포크먼 노부부는 즐거이 에릭의 호기심을 풀어주는데 동참했다.


긴 만찬을 끝낸 후, 포크먼 노부부와 간단히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여행은 이제 막 시작했고, 종착역 화이트호스에서 내려서도 유콘에서 비슷한 일정을 이어갈 것을 확인한 후였기에 다음 재회를 기약하며 심플하게 헤어진다.


"여행의 좋은 점은 바로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만남."


"저도 그 생각에 동감해요.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 지혜와 경험은 연륜이 더해지면 더 깊어지니까요. 포크먼 부부께서는 아시는 것도 많고 친절하신데다 왠지 유콘에서도 계속 만날 거 같은 예감이 들어요."


에클레어와 에릭이 레스토랑에서의 만찬을 만족해 하며 머물던 일등석 칸으로 돌아오자, 객실의 구조가 살짝 바뀌어 있었다. 담당 승무원이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어 왔다 갔는지 테이블 위에 쌓여있던 잡지, 책, 디저트 봉투와 차를 담아 둔 자기들이 장식장 안으로 들어가 깨끗이 정리되어 있고,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 있던 소파와 테이블이 없어지고 간이 침대로 바뀌어 있었다. 문과 창문을 연결하는 작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고, 중간에는 두터운 커튼을 쳐서 나름 분리를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샤워실에서 가볍게 세수만 하고 편한 실내용 원피스로 갈아 입고 나온 후, 커튼을 살짝 거두어 에릭을 바라보니 에릭이 침대 위에 살짝 걸터앉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클레어는 에릭이 먼저 씻고 나온 지라 일찍 잠이 들었을 줄 알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그의 옆모습을 쳐다보다가 말을 건넸다.


"잠이 안 오세요?"


"아, 에클레어 양. 낮에 살짝 잠들기도 했고, 흔들거림은 안 느껴지지만 뭔가 집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니 자꾸 어딘가에 정신을 빼앗긴다고 해야 할까요?"


"카모마일 차라도 한 잔 드릴까요? 숙면을 취하실 때에 많은 도움을 준답니다."


에클레어가 장식장 안에서 자기를 꺼내와 빠르게 차를 끓였다. 카모마일과 레몬밤, 루이보스를 블렌딩해서 주전자에 우려낸 티를 찻잔에 가볍게 따랐다. 찻잔을 에릭에게 건네주는 순간, 벌써 시간이 10시를 넘겼는지 기차의 중앙 석등이 강제로 꺼졌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작은 등롱만이 간신히 둘의 그림자를 그려줄 뿐이었다. 어두워진 차량 안으로 시린 은색의 달빛이 스며들어와 에릭의 인영을 비추었다. 에릭의 그림자가 따뜻한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고 가볍게 홀짝였다. 에클레어는 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흐린 달빛이 스며든 그림자가 희미하게 웃는 인상을 받았다. 둘은 조용히 달빛 속의 티타임을 가졌고, 잔잔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열차 내부를 감싸 안았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에클레어의 질문이었다.


"에릭씨는 제국에서 지내실 때 여행을 안 해보셨나 봐요. 처음엔 문화부 기자라서 여행을 많이 하신 줄 알았어요, 후후후."


"티가 많이 납니까?"


"조금. 처음 만났을 땐 잘 몰랐지만 지금은 보이네요. 평소보다 긴장하신 모습. 지금 타드린 차는 스트레스를 진정시키고 수면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근육을 이완시켜서 긴장을 풀게 하는 역할도 하니까 편하게 주무실 거에요. 사실 오늘 에릭씨의 행동들을 보고 나서 느낀 건데, 카페에 온 첫 날에도 잠을 많이 못 주무셨겠네요. 카페마스터로서 실력이 부족해 눈치 채지 못한 점,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 날은 늦게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오히려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이 잤습니다."


"후후, 여행은 이제 시작이니까 충분히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좋은 꿈 꾸세요, 에릭씨."


"차 잘 마셨습니다. 에클레어 양도 잘 자요."


커튼이 쳐 지고, 에클레어가 침대에 들어가서 새근대는 소리를 들으며 에릭도 잠시 달빛을 바라보다가 따뜻한 차의 기운이 몸을 감돌며 쉽게 잠에 들 수 있었다.


작가의말

작가도 자꾸 까먹는 설정. 에클레어는 카페 마스터. 차도 잘 타고, 커피도 잘 타요.


요즘 날씨가 개떡같아서 한참 더위 타는 중, 여러분도 더위 조심하세요.

(하지만 아직도 잘때 선풍기를 틀지 않고 있어요. 전기 절약 몸소 실천합니다!)


그런데 글은 2월인 겨울이라 정말 짜증납니다. 언제 6월까지 따라 잡을까요?

(네, 제가 빨리 진도 팍팍 나가면 금방 6월에서 7월까지 가겠지만. 흐허허허)


자꾸 정줄 놓고 자문자답. 지금까지 깨있는 독자는 없겠지 하면서 올립니다.


낭만클럽님, 격려에 용량 팍팍 써서 올려요. 

진흙44님, 이번엔 에피소드가 길어서 한 번에 올리지 못하네요;; 쏘리~

오타 되게 부끄럽다...ㅋㅋㅋㅋ 자다가 쓴 것도 아닌데 왜 저런 실수를;;; ㅋ

매의 눈이십니다. 팍팍 지적해주세요-_0b


오타와 비평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선추코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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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3 낭만클럽
    작성일
    13.07.01 03:08
    No. 1

    오오옹 뉴다 뉴뉴뉴뉴뉴뉴 요즘 제가 이맛에 와요 :)
    전 물건너 있는지라 여긴 점심때네요 벌써.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흥미진진!!!!!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진흙44
    작성일
    13.07.01 06:13
    No. 2

    여긴 왠지 안 자는 사람이 많은것 같네요..
    (모두 시차 때문이고 저만 안 자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한편씩 올라온다고 싫을리가 있겠습니까 ^^
    이런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조금 딴 얘기를 하나 하자면, 사실 이 글에서 가장 맘에 드는 구절은 소설 속의 내용이 아니라 마지막에 붙는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주세요"라는 말입니다.
    글 내용이 아니라 실망하시진 않으셨으면 합니다. 글의 내용도 참 좋은데요.
    제 취미가 걷는거이기도 하고, 제가 걷는다는 것에 대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편이라서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천천히 같이 걷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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