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님프 님의 서재입니다.

cafe, 체리블로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님프
작품등록일 :
2013.02.03 22:51
최근연재일 :
2013.07.15 23:56
연재수 :
34 회
조회수 :
11,366
추천수 :
144
글자수 :
236,186

작성
13.06.11 23:02
조회
379
추천
3
글자
18쪽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DUMMY

다음날 브레이크 타임에 맞춰, 파이가 주방에서 흥얼거리며 저녁 요리 준비를 하는 동안에 나는 밀린 반성문을 쓰느라 쩔쩔 매는 에클레어 양을 눈치껏 불러내어 플래토 몽 루이얄로 향했다.


“에클레어 양은 지금까지 그림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느 단란한 가족의 초상화 아닐까요? 아마 벽화를 그리는 이는 그림 속 사람들을 굉장히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제 추측이지만 벽화가는 분명 그 그림 속 가족들의 아버지일 거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단란한’ 이라는 표현은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군요.”


“어째서요? 아, 혹시 아이들 때문에요?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어렸을 때 들판에서 뛰노는 모습과 공터에 있던 모자이크 속 갓난아기 말고는 자란 모습이 없네요. 그래서 에요?”


“네, 그리고 하나 더. 에클레어 양 생각대로 저도 벽화가의 주인공은 가족들의 아버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봤던 그림들 중에서 아버지일 거라고 예상되는 남자는 성당의 담벼락에서 발견한 신랑밖에 없었죠?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벽화가는 아마 가족들 곁에서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에는 아기들이 태어나기 전에 신혼 집을 떠났다고 봅니다.”


왜냐면, 결혼식 벽화나 임신한 여인의 벽화, 그리고 쌍둥이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의 벽화는 시간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반해 나머지 두 벽화는 아기들이 어린이가 된 시간을, 젊은 여성이 할머니가 된 세월을 뛰어 넘었으니까.


“우선 추측은 여기까지 해보고, 나머지 사연들은 이왕이면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벽화가를 찾았어요? 언제요? 그것도 에릭씨가요?”


“음, 찾은 것은 아닙니다. 우선은 예상되는 목격자부터 찾아가볼까 나선 겁니다.”


목격자? 에클레어 양이 고개를 갸웃하자 시원하게 웃으며 자신 있게 나만 따라오라 가슴을 두드렸다. 지금 내가 향하는 곳은 처음으로 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 불꽃을 연습하던 마술사와 기타로 노래를 부르던 안트족 아가씨, 그리고 세월아~ 네월아~ 느긋하게 조각을 하고 있던 조각가 등이 모여 있는 공터였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조각들 중에서 확실히 벽화를 그리고 있던 벽화가가 있었고 그 조각가가 눈 앞에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각을 하고 있었던 것을 보았다. 조각가는 분명히 벽화가를 어디서 보고 그 앞에서 한참 조각을 했을 테니 장소를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추리였다.


내 추리를 듣고 난 에클레어 양이 우와~ 대단해요. 짱!짱! 하며 양손으로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격찬한다. 조금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조각가는 다행히 그 공터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이 서툰 나를 대신해 에클레어 양이 나서서 물어봤다. 미인이고 여성인 그녀가 나보다는 낯선 이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찾는 질문을 하기엔 더 알맞았다. 조각가도 경계심 없이, 미녀인 그녀의 질문에 싱글벙글 시원하게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이 조각들 혹시 파는 물건인가요?”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해서 말입니다, 레이디. 그냥 구경만 부탁 드립니다.”


“흐음, 그래요? 그럼 실례가 아니라면 저희 둘도 바로 조각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시작해서 조각하는 내내 에클레어 양은 여러 가지를 자연스럽게 물어보았다. 대상들은 바로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것들을 조각하는지, 주로 이렇게 공터에서 작업하는지, 최근에 작업한 조각 중에서 맘에 드는 건 무엇인지, 하나 조각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등등 수다를 떨다가 일다경(약 20분)이 채 안 되어 에클레어 양은 나와 그녀를 꼭 닮은 조각 두 개를 선물 받았다. 신이 나서 와아~ 탄성을 지르며 인사를 한 뒤에 나와 함께 공터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벽화가의 위치를 알아내신 겁니까? 빙 둘러가며 잡담을 하시며 정보를 알아내신 것 같습니다만.”


우와, 에릭씨! 내가 빙빙 둘러가며 물었는걸 파악하셨다니. 에클레어 양이 배싯 웃으며 말했다. 그야 제가 이래 보여도 신문기사로 일하면서 신입시절에 사회부 쪽에서 많이 겪었으니까요. 형사님들한테 유도신문 하는 방법.


“그냥 바로 물었을 때는 사람들이 경계심에 대답을 제대로 안 해주거나 거짓말을 할 경우도 있고, 또 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각가님의 시간을 뺏어가며 질문하는 것보다 편하게 대답하면서 조각도 할 수 있고요. 뭣보다 이 방법이 저한테도 편하고 재미있잖아요.”


“다른 이유보다 마지막 말이 정답이신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벽화가의 위치를 파악한 것 같으니까 가보자 구요! 와아~”


에클레어 양이 조각가한테 얻은 힌트는 벽화가의 직접적인 위치가 아니라 조각가 본인이 활동하는 구역이었다. 최근에는 이 공터에서만 조각을 했다고 얘기했고, 실제로 어제 발견한 할머니가 그려진 벽화는 이 공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었다. 어제 페인트가 살며시 묻어 나온 것을 보면 아마도 벽화가가 그 그림을 완성하고 15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우리가 발견했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벽화가의 활동반경을 좁힐 수 있었다. 어제처럼 마구잡이로 돌아다니지 말고 공터를 기점으로 골목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햇볕이 잘 드는 또 다른 담벼락에서 새로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노인장을 찾아냈다. 호기심에 성큼 다가가려는 에클레어 양을 내가 붙잡아 근처 벤치로 끌고 가 앉히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눈빛에서 아직은 아니라는, 기다려 볼 것을 제시하는 의견을 읽어낸 듯 하다. 에클레어 양이 그제서야 너무 성급했네요 하고 중얼거리며 살며시 힘을 풀고 벽화가 노인장이 그리는 벽화를 구경했다.


노인장은 비쩍 마르신 몸에 늙고 얼굴도 앙상했지만 기운만은 정정하셔서 벽화를 그리는 손길에도 힘이 느껴졌다. 어제 그림을 완성하고, 오늘 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문화부에서 많은 예술가들을 봐왔던 나로서는 굉장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느긋하고 충분히 고뇌한 후에 행동하는데 반해 벽화가 노인장은 지금까지 봐온 벽화들로 반추해 봤을 때 점점 그려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 속도들을 보고서야 오늘 나와 찾을 생각을 한 것이었다. 혹시나 새 벽화를 그리고 있지 않을까 하고서. 그리고 예상이 맞았다. 노인장은 어제에 이어 무리해서 오늘 또 그림을 그리러 나왔다.


마치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이처럼.



지금 그려지고 있는 벽화는 그려졌던 벽화들 중에서 가장 큰 벽화였던 일명 4층 벽화, 즉 제일 처음으로 발견한 벽화보다도 두 배나 컸다. 그래서 진행이 아주 더뎠는데 에클레어 양은 카페 마스터로서의 일이 있었고, 나는 기사 마감작업으로 인해 계속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그녀는 때때로 여유가 남는 시간을 모두 이용해 매일 그 자리를 찾아갔다. 둘이 같이 가서 기다리기도 하고, 때로는 나 혼자 나가서 구경하거나, 그녀 혼자서 노인장을 지켜봤다.


노인장은 아마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시는 듯 보였고, 파이에게 부탁해 노인장께서 벽화를 그리면서도 성가시지 않고 무리 없이 소화시킬 수 있는 먹을 것들을 챙긴 바구니를 갖고 나가는 것이 에클레어 양과 나와의 무언의 약속이었다. 노인장 옆에 남겨두고 오면 다행스럽게도 다음에 찾는 순서에선 빈 바구니를 받아들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드디어 벽화가 완성이 되었다. 나는 마감을 끝낸 후부터 거의 온종일(잠시 밥을 먹거나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벽화가 그려지는 장면을 지켜보기를 삼 일째 되는 날이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것은 풀잎 색 머리의 여성이 가장 젊고 아름다웠을 시절의 외모를 한 여신의 그림과 그 옆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쌍둥이 소녀와 소년의 천사 그림. 자애롭고 따스한 눈빛으로 벽화가 할아버지를 내려다 보는 듯 하였다. 낡은 담장이 벽화로 인해 생명을 얻은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더 신기한 것은, 햇볕이 벽화에 쏟아지자 풀색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점이었다.


노인장은 그림을 완성한 후 기력이 다 하신 듯 쓰러지며 내려앉았다.


벽화에 모든 기력을 내뿜은 듯 노인장은 깡마르고 거친 피부, 앙상한 몸에서 유일하게 형형했던 눈동자의 빛이 한풀 꺾여 정말 지쳐 보였다. 에클레어 양이 우선은 병원으로 모셔가고자 했으나 노인장은 강력하게 반대하며 자리에 앉아 있기를 고집했다.


내가 조심이 벤치로 모셔오자 에클레어 양이 도시락 가방에서 따뜻한 물과 타락죽을 건넸다. 노인장은 물을 마신 뒤 천근을 드는 느낌으로 숟가락을 들어 아무 말 없이 타락죽을 드셨다. 어제부터 곡식을 끊다시피 그림에만 열중하던 노인장이었기에 나와 에클레어 양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걱정스런 마음을 조금 풀었다.


노인장은 다행스럽게도 그릇을 전부 비우고서 서두 없이 말을 꺼냈다.


“내 가족이라네.”


“므슈의?”


“므슈는 무슨, 그런 낯간지러운 호칭은 되었다네. 그냥 비루한 재능을 가진 화가일 뿐이지. 로스라고 부르이.”


“저는 에클레어고, 여기 이 신사분은 에릭이라고 해요. 십일 전쯤에 집에 가다가 로스 할아버지의 벽화를 우연히 발견했답니다. 호기심에 벽화들을 보다가 흰 아이리스 사인을 그리셨더라구요.”


“허, 그거까지 찾아냈나? 그래, 나한테 뭐가 궁금해서 이 일주일 동안 그림이 완성되길 기다렸나?”


“그림의 사연이 궁금해서 기다렸습니다. 로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내가 서툴지만 퀘백어로 정중히 요청하자, 노인장은 벽화를 그리다 물감이 묻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옛 시절을 추억했다.


“별 내용이 있겠는가? 뻔하고 뻔한 인생을 살던 화가의 후회로 가득 찬 자화상일 뿐이지. 늙은이가 추억을 반추하고자 흐르는 세월을 멈추려 발악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벽화를 그려본 것일세. 괴벽이 있는 예술가의 가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거세. ……”


그리고 한때는 사내였던 남자의 인생사가 흘러나왔다.

땅에 낙서를 하던 장난꾸러기 꼬마는 키가 훌쩍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남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남자는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 그리고 화가로 유명해져 성공하는 것.

그렇게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를 두고 남자는 집을 떠나 꿈을 좇았다.

여자는 홀로 남아 꿈을 이룬 남자가 멋진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곁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한 달이 흘렀다. 아이가 태어났다. 건장한 사내아이와 어여쁜 딸아이였다.

여자는 돌아올 남자를 위해 함께 보내지 못했어도, 함께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남기기로 하였다.

갓 태어난 아이들과 찍은 사진, 걷기 시작한 아이들의 사진, 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의 사진...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흐르고, 그리고 여러 해가 흘렀다.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는 시간을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외로웠던 시간만큼이나 다시 재회했을 때 더욱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하지만, 불행히도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이들은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기다렸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이제 남자를 기다리던 그 집에는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에야

남자가 돌아왔다. 여자는 병이 들어 명을 달리했고, 아이들은 성장해 집을 떠났다.

아, 남자가 돌아온 집에 있던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녀가 찍어왔던 가족의 사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추억과 세월을 나누기 위해 찍은 앨범.

남자는 그 앨범을 한 장씩 넘기며 아버지가 되고, 나이를 먹어,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홀로 추억을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슬픔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그리고 얼마 남지 못한 생명의 아쉬움을 담아.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은 그런 예술가를 말없이 감싸 안아 주고 있었다.

예술가들의 고향이요, 예술가들의 성지이며, 예술가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예술가들의 골목만이 온전히 그들을 품어주었다.




전략.


이런, 편지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누님께 모든 사건의 전말을 적어 보내려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제 편지를 너무 기다리지 않으셨기를.

문화부 기자로써 종종 하는 생각입니다만,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 한길만 가는 고집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좋은 작품들을 보고 감동받고, 기뻐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기다리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힘들고 지치는 길일 수도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며 같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의 간격을 좁히는 여유도 부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길 바라며,


언제나 행복하기를. From 에릭.




Ps: 매형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전에 온 편지에는 매형의 근황은 없군요.

봉봉이 예정일이 몇 일 남았습니까? 봉봉이의 건강과 무사분만을 기원합니다.



-그는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


에릭이 늙고 지친 노인장을 위해 마차를 부르러 대로변을 향해 뛰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에클레어가 로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을 주저하다 조심스럽게 묻는다.


“로스 할아버지, 그렇게 하면 과거를, 기억을 절대 잊어먹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에클레어의 눈동자를 들여다 본 로스가 그녀의 손을 토닥이며 천천히 말한다.


“저런, 아가씨는 어린 나이에 벌써 가슴에 묻은 이가 있구먼. 고생했어, 고생했네.”


에클레어가 울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넘쳐흐른 눈물 한 방울이 결국, 그녀가 힘으로 꽉 주먹 진 손등 위로 툭 하고 떨어져 내린다. 로스는 그런 그녀를 모른 척하며 허허한 말투로 말한다.


“아가씨, 걱정하지 말으이. 추억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네. 추억이란 건 말일세,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홀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이렇게 벽화를 그려 넣듯 기억에 새기는 작업을 말하는 거거든.”


“하지만, 하지만… 지워진 것처럼 기억나지 않는 추억들도 있는 걸요?”


“아가씨, 그럴 땐 말이여. 그 장소로 가거나 냄새를 떠올리시게. 그래도 기억이 나지 않아? 저런, 아가씨는 보기와는 다르게 아가씨 머리는 좀 멍청하구먼. 흐흐, 내가 지금 현재에서 미래로 가는 건 앞으로 걸어가기 때문이라네. 그럼 과거로 떠나려면 그 반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눈을 감고 천천히 뒤로 생각해보게나.


추억은 과거의 그 자리에 새겨 두었기에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멀어질 뿐이라네. 멀어지고 멀어져서 그저 빨리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야. 지금 당장 1km만 이동해도 우리의 눈에 이 자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여. 하지만 다시 뒤로 돌아서 1km를 걸어오면 우리는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는가? 그렇게 천천히 추억을 떠올리는 것일세. 이제는 알겠는가?”


“…….알 것 같아요.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해요, 로스 할아버지.”


“별 말씀을 다하는구먼. 오랜만의 말동무가 생겨서 이 늙은이도 기뻤다네.”



-그와 그녀는 모르는 미래의 이야기.


한 여성 가이드의 뒤로 수 많은 관광객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벽화를 구경하고 있다. 앞 서 있던 여성 가이드가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유명한 벽화들을 소개한다.


“이 벽화들은, 대표적인 감성파 화가인 로스씨의 마지막 유작으로 알려진 작품들로 유일하게 벽화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어 더욱 귀중한 작품들로 손꼽힙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 성공하기 위해 많은 작품들을 그렸다고 하지만 현재에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사라져 더욱 안타까울 뿐인데요. 늘 빚에 허덕이고 방황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를 기다리던 아내는 병을 얻어 그를 만나지 못한 채 고인이 됩니다. 그의 자제들은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자 그를 떠납니다. 그 후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 홀로 늙어가던 로스. 그렇게 불우한 인생을 살았으나 이 벽화들을 기준으로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면서 가족을 그리워하던 그를 자제들이 용서하고 행복한 말로를 보냈다고 합니다. 영화나 소설로 많이들 알고 계시죠?”


“”””“네에~”””””


“아, 말씀 드리는 걸 깜박한 게 있군요. 벽화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는 데 아시는 분 계시나요?”


“저요! 아이리스 꽃이 모든 벽화에서 나옵니다!”


“정답이에요. 그럼 이유도 아세요?”


“…….아니요.”


“사랑하는 그녀에게 받치는 그림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많습니다. 로스씨가 사랑한 아내의 이름이 바로 아이리스라고 합니다. 아이리스의 꽃말 중에 사랑의 메시지란 뜻도 있는데요. 그녀의 아내가 로스씨와 로스씨의 자제들 꿈에 나타나 사랑을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면서 많은 여인들이 이 여신과 천사 벽화에 사랑을 빌면 연인이 이뤄진다고 믿게 되었다 합니다. 그 후 실제로 이뤄진 연인들이 찾아와 영원한 사랑을 빌면서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가 된 것은 다들 알고 계시죠?”


“”””“네에~”””””


“그럼 여기서 30분 정도 쉬고,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여신과 천사 벽화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한다. 그들을 지켜보듯 잔잔한 햇볕에 반짝거리는 벽화 속 여신의 미소가 인자하고 자애롭게 미소 짓는다.


작가의말

벽화마을의 시초? 랄까. 


역시 이번 네번째 손님 편은… 컨디션 난조. 분량오바함…쳇. 엔딩이 부실합니다요.


화가의 이름이 익숙하다면 다들 어렸을 때 꽤나 ebs를 본 열혈 시청자라는 거. 


차마 밥이라는 이름은 못 부치겠습니다. 그분은 천재적인 화가님이니까. 


난 왜 설정에서 화가가 그림을 겁나 못 그린다고 적어서는. 밥이라 부르고 싶었다.


오타와 비평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선추코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진흙44
    작성일
    13.06.12 16:37
    No. 1
    비밀댓글

    비밀 댓글입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cafe, 체리블로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10. 2월의 축제. "윈터 루드, 뱃사공의 축제" +1 13.07.15 289 3 11쪽
33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3.07.13 246 6 13쪽
32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3.07.12 248 7 12쪽
31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2 13.07.11 545 6 14쪽
30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3.07.10 201 4 14쪽
29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 13.07.02 334 6 22쪽
28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2 13.07.01 357 6 22쪽
27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2 13.06.28 362 3 14쪽
26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1 13.06.28 356 4 11쪽
25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1 13.06.28 337 4 16쪽
24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2 13.06.23 462 4 16쪽
23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13.06.23 280 4 17쪽
22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13.06.23 294 5 18쪽
»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 13.06.11 380 3 18쪽
20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 13.06.11 359 3 19쪽
19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3.06.11 317 3 19쪽
18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 13.06.06 304 3 20쪽
17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6 338 3 17쪽
16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6 282 3 11쪽
15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277 3 17쪽
14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243 3 18쪽
13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424 3 13쪽
12 #4. 쉬어가는 편, 일상! 휴식을 즐기는 각자의 방법. 13.06.01 349 4 16쪽
11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425 4 13쪽
10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342 3 17쪽
9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358 4 14쪽
8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13.06.01 244 3 17쪽
7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13.06.01 246 3 19쪽
6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1 13.06.01 390 4 13쪽
5 #1. 첫 번째 손님. 첫 만남. 그 이름은 에릭 윈체스터. +1 13.02.04 456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