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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님의 서재입니다.

cafe, 체리블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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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작품등록일 :
2013.02.03 22:51
최근연재일 :
2013.07.15 23:56
연재수 :
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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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9
추천수 :
144
글자수 :
236,186

작성
13.06.2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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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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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DUMMY




나는 나디아가 이 시기에 카페 체리블로섬에 방문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는 이 시기만 오면 재충전을 하고자 어떤 야근이 있어도 모두 물려놓고, 하루 종일 머물다 가곤 했다. 부티크 엘레미노 S/S 오트쿠틔르의 컬렉션과 B/W 오트쿠틔르 시즌이 다가오면 여기 와서 늘어져 있다가 패션쇼에 써먹을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어가곤 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매년 꼬박꼬박 오더니 이제는 징크스가 되어버린 듯 반나절 동안 꼼짝 없이 자리를 지키며 미친 듯이 디자인만 그려대고는 한다.


아마 오늘도 S/S 오트쿠틔르의 전반적인 작업은 이미 다 끝내놓고 작은 휴식의 시간을 가질 겸,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방문한 것이 분명했었다. 그러나, 디자인을 그려대고 있어야 할 나디아는 오늘따라 유독 다른 행동으로 날 피곤하게 만들었다. 넷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난 뒤 나디아는 유난히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벽난로 테이블의 전용좌석이 되어버린 의자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에릭씨와 파이랑 좀 있다 먹을 디저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에게 닿는 시선이 실제로 느껴졌다면 따끔거려 아팠을 정도로 쳐다보고 있다라고 할까. 시선이 불편해진 내가 결국 나디아에게 다가갔다.


“그러다 얼굴에 구멍이라도 생기겠어요, 저. 에릭씨의 멋있는 외모도 닳으니까 적당히 훔쳐보시고요.”


“엄머, 자기는 참! 훔쳐 본 게 아니라 마음에 새겨 넣고 있었어. 저런 외모가 어디 흔하니? 독점은 나쁜 거라고, 자기. 어쨌든 잘 왔어, 온 김에 몇 가지 좀 물어보게. 자기는 요새 치수 변동 있어?”


“음, 저번에 치수 재 주셨을 때보다 살짝 빠졌을 걸요? 요새 너무 돌아다녔더니.”


“그래? 한 번 안아보자. 흠, 확실히 자기 허리라인은 1인치 줄었네. 너무 말랐다. 파이가 해주는 요리 정말 맛있잖아. 잔뜩 먹으라고. 그럼 샤흠은 치수가 어떻게 되니? 눈대중으론 186cm에 66~68kg인 거 같은데.”


“얼추 비슷하네요. 정확히는 65kg에 허리치수는 26, 팔-어깨-바지통은 xx 안 넘어요.”


“…….자기, 샤흠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아는 거 아니야? 어떻게 디자이너인 나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수치를 읽어내는 거 같아?”


의심하지 말아주세요. 저, 에릭씨랑 쇼핑하러 백화점 같이 갔거든요? 에릭씨가 산 옷들이 좀 커서 수선 맡길 때 옆에서 제가 통역해줘야 해서 알고 있었을 뿐이라고요. 이런 고급 정보를 넘겨드렸는데 대우가 너무하시네요. 내가 한껏 볼을 부풀리자 나디아가 고맙다며 자신이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를 말해주셨다.


“호, 오호, 음. 좋은 생각인데요! 근데 에릭씨가 안 하신다고 하면 말짱 꽝 아니에요?”


“당연히 샤흠을 낚을 미끼도 준비해야지, 그건…….”


“그러고 보니, 제가 에릭씨에게 당한 게 있어서요.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


“깔깔깔, 나야 괜찮기는 한데. 자기가 샤흠에게 미움 당하려면 어떡하려고 그래?”


“복수라고요, 복수!”


“무슨 복수?”


“제가 축제 때 기가 막힌 뒤통수를 얻어 맞은 일이 있어서요.”


“어머, 샤흠 그렇게 안 봤는데. 자길 때렸어?”


“육체적인 게 아니라, 마음을 맞았어요. 소녀의 마음을!”


“그럼, 이 날짜에 맞춰서……”


“앗, 안돼요! 저는 좀 더 뒤에……”


“나 참, 그건 너무 촉박하잖아!”


“하지만 저도 이 이상은 안 된다고요, 제 일정도 생각해주세요!”


“알겠어, 그럼 이렇게……”


“좋아요, 그렇게 해요!”


음, 음음, 둘이서 신나게 귓속말을 나누며 깔깔 웃는 소리에 건너편의 에릭씨가 신문을 읽다가 고개를 들어 우릴 쳐다 보았다. 나와 나디아의 번뜩이는 눈빛에 섬뜩하셨는지 살짝 고개를 내려 신문에 집중하시는 척 하는 에릭씨를 보며 나디아와 나는 계획을 마무리 지었다.



다음날 오후, 티타임에 방금 막 구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삭 하게 잘 구워진 애플파이와 차갑게 얼린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먹는 아포카토를 먹으며 에릭씨에게 운을 띄웠다.


“패션쇼 말입니까? 물론 관심 있습니다. 기사를 쓰기 위해서도 갔지만 주로 제가 원해서 간 적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제국은 주로 프레타포르테(기성복) 컬렉션이 많이 열립니다만 신문이랑 잡지를 보니 몽레알은 주로 오트쿠틔르(맞춤복) 컬렉션이 개최된다고요.”


"맞아요, 관심 있으시다면 잘 되었네요. 한 열흘 뒤에 나디아의 부티크에서 주최하는 패션쇼가 있을 예정이거든요. 원하신다면 저랑 같이 한 번 가보시겠어요? 어제 나디아가 방문한 이유도 제게 오트쿠틔르에 참석해주고자 얘기하러 온 거거든요. 에릭씨 티켓도 받아났는데."


에릭씨는 흔쾌히 응하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고 격식 있게 말했다. 아뇨, 뭘요. 나디아와 어제 계략을 짠 게 못내 양심을 콕콕 찌를 정도의 순수함에 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머리를 손으로 배배 꼬았다.



패션쇼가 열리던 날, 이른 오전에 나의 재촉에 못 이겨 에릭씨와 나는 길을 나섰다.


최대한 간편하게 입어달라는 나의 요청에 에릭씨는 그러려니 했는지 하얀 라운드 티에 세련되면서 간편한 하늘색 세미 정장, 흰 구두와 흰 볼레로, 독특한 프린팅의 스카프에 감색 코트를 걸치고 계셨다. 확실히 평소에 외출할 때 입는 옷보다 심플하고 가벼웠지만 저건 또 그 나름의 세련된 멋이 있었다. 그때 느낀 점이 있었다. 에릭씨는 푸른 색 계열이 무지 잘 어울린다는 것과 패션의 완성은 역시 몸매와 얼굴이라는 전제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분명한 것은 에릭씨가 여름에 청바지와 브이넥 티만 입고 있어도 우리 카페 체리블로섬에 여성손님들의 비율이 무조건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에 비해서 나는 정말 머리를 대충 손질해서 전에 유키아가 갖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 푸른색 수정을 장식으로 달아 달랑거리는 비녀로 꽂아 고정시켜 놓고, 심플한 원피스에 스타킹, 롱부츠에 하얀 털 외투만 입고 나왔다. 비녀를 꽂은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에릭씨가 수정 비녀를 한 번 만지며 물었다.


“처음 보는 액세서리네요.”


“아, 앗시족(상아색 피부에 흑색과 흑안을 가진 소수인종. 독특하고 뛰어난 문화적 기반들을 바탕으로 어느 나라든 금새 적응해서 자신들의 문화를 퍼뜨린다. 같은 동족에 굉장히 너그러워 지는 경향이 있으며 오스카 유진 시장도 앗시족이다.)들이 사용하는 비녀라는 거에요. 페테 데 네이쥬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선물이라며 줬거든요. 혹시…… 안 어울리나요? 으그그, 앗시족 의상하고 입으면 되게 예쁜데.”


“아닙니다, 너무 잘 어울려서 물어본 겁니다. 이 수정하고 크림색 머리가.”


에헤헤, 난 이 수정의 색깔이 에릭씨의 투명한 하늘색 눈동자와 닮았단 느낌이 들어서 에릭씨 옆에 섰을 때 꼽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기분이 좋아져서 빙긋 웃었다.


카페 문을 나서자 나디아가 미리 불러놓은 마차에 타자 마부는 우리가 갈 곳을 향해 지체하지 않고 출발했다.


"저희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쉐브룩 대로(비즈니스 호텔과 여관, 유스호스텔 등 숙박시설들이 몰려있다. 또 컨벤션이나 전시회가 열릴 수 있는 대형 홀이나 기업 본사건물들도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에 있는 화이트호텔에 갈 거에요. 스파티윰 홀을 개조해서 패션쇼를 열 예정이라고 했거든요."


"초대장에서 봤던 예정 시간보다 좀 빨리 가는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아! 물론이죠. 모, 모델들이랑 인사도 할 겸, 나디아가 무대 뒤에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달까요?"


살짝 더듬거리는 내 언행에 에릭씨가 약간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가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려주었다. 에릭씨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신뢰가 가득 찬 눈동자로 지그시 웃어줄 때마다 가볍게 치려는 장난이 양심의 창이 되어 돌아왔다. 으그그, 장난도 아무나에게 치는 게 아니구나. 하지만, 파이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려! 미리 말을 안 해줬던 에릭씨가 나빴다 뭐!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판 표시와 부티크 엘레미노 경비원들이 가볍게 팔을 들어 우리의 출입을 막았다. 내가 외투에 달린 후드를 벗어 얼굴을 보이자 안면을 익힌 경비대장이 인사를 하고 문을 열어주셨다. 홀의 삼분지 일을 큰 대기실로 만들어 스텝들과 모델들, 메이크업 전담과 헤어 전담, 그 외에도 패션쇼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메인 디자이너인 나디아를 찾았다.


나디아는 구석에 있는 피팅룸 앞에서 재봉을 하고 있었다. 며칠 안 봤지만 계속 잠을 자지 못하고 일을 했는지 얼굴이 핼쑥하고 피부 결도 거칠어져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표정만은 생생하고 눈동자는 빛이 나고 있었는데 우리가 그의 곁에 다가설 즈음, 요란스럽게 돌아가던 재봉틀이 멈추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나디아가 우리를 보더니 오매불망 기다리던 손님이 카페에 들어선 것을 본 파이처럼 거칠게 반겼다. 비쥬를 하러 포옹을 하는 그의 손바닥이 내 등을 세게 내리쳤다. 에릭씨도 마찬가지로 등을 거칠게 맞으며 인사했다.


으그그, 아파요. 내가 미간을 찌푸리든 말든 나디아는 쉴 새 없이 재잘댔다.


"자기, 딱 맞춰서 왔어. 자기에게만 말하는데 나 어제까지 한숨도 못 자고 오늘 새벽에서야 패턴작업이랑 커팅을 마친 거 아니? 내 소울이 지금 한계치에 임박했다? 샤흠은 이쪽 피팅룸에 들어가서 이 아이 좀 입어줄래? 도올! 와서 피팅 하는 거 도와!"


오자마자 피팅룸에 쑤셔 넣어지듯 쫓겨 들어가는 얼떨결 한 표정의 에릭씨와 서브디자이너들 중 나디아의 수제자로 있는 도올이 방금 마무리한 의상을 집어 들어가는 걸 확인하자마자 나디아는 피곤해 죽을 꺼 같으면서도 신이나 미치겠다는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정신이 없을 정도로 숨도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나, 나디아! 신난 건 알겠지만 진정 해줄래요? 말이 너무 빨라요!


"자기, 나 지금 흥분한 거 같지? 이번 컬렉션의 라스트 모델은 신입 모델이라고 이미 패션쇼 관계자들에게는 말해놨으니까 너무 긴장 가지지 말라고 전해줘. 어머, 나 진짜 일주일 밤샌 사람 같지 않게 힘이 넘치는 거 같아.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디자인 할 때부터 필이 딱 왔다니까? 그나마 자기 옷을 미리 만들어 놔서 다행이지, 자기 옷도 그때부터 만들었으면 코피 10번 터진 걸로는 택도 없었을 거야. 샤흠이 나오면 마지막 가봉 작업할 거야. 그 동안 자기랑 샤흠은 화장이랑 머리 손 좀 보자. 괜찮지?"


안 괜찮습니다 입니다. 속으로 내뱉는 말과는 다르게 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복수를 하기 위해 시작한 작은 장난이 주옥 됐다 싶을 정도로 일이 좀 커졌다 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들었다. 어째서인지 매년 서는 익숙한 무대인데 보는 순간 침이 꿀꺽 삼켜지며 긴장이 팍 되었다. 나 혼자서야 매년 나디아의 라스트 모델로 섰기에 그다지 큰 긴장감 없이 할 자신은 있지만 이번에 아직 말도 못 꺼내고 무작정 참여하게 된 에릭씨에게 점점 미안함과 죄의식이 뒤범벅 되고 있었다. 난 뭘 믿고 그 때 꺄르르 웃으며 이 장난에 참여한 거야? 어떡하지, 어떡해!


그 순간, 피팅룸에서 에릭씨가 나왔다.


우, 우와! 잘한 것 같아, 이 장난. 나디아 짱 멋있어요, 나디아는 진짜 실력 있는 디자이너에요. 라는 내 눈짓에 그럼, 당연하지. 내가 바로 이 치열한 크레센트 구역에서 살아남은 엘레미노의 메인 디자이너 나디아 숑 클로셋님이라 이거야! 에헴 하고 나디아의 자신감에 넘친 코웃음이 돌아왔다.


새하얀 색의 무릎에 닿을 듯한 길이의 키톤(아래위가 잇달린 고대 의상. 재단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에 파란 색의 클라미스(고대 의상 중에서 병사나 젊은이가 착용했던 겉옷. 장방형의 모직물 천을 어깨, 등, 목 등에서 브로치로 여미는 것.) 가장자리는 은사로 화려한 수가 놓아져 있었다. 클라미스를 고정시키는 피블라(장식핀)는 산뜻한 벽색(푸른 색)의 옥을 가공시켜 세공한 금 브로치였다. 키톤 위에 허리를 두루는 천은 암청색과 금색을 꼬아 묶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고대 이리스 제국의 장난기 넘치는 사랑의 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매끈하게 뻗은 팔에 보이는 탄탄한 잔 근육들과 쭉 뻗은 다리를 보며 나디아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는 붉어진 얼굴에 손부채를 연신 부쳤다.


"저, 에클레어 양과 나디아? 이 의상은 갑자기 왜 입어보라고 하시는지?"


"어, 저, 그러니까…?"


"뭐야, 자기 아직 얘기 안 했어? 에릭씨한테 가상 모델 체험 시켜준다고 그랬거든. 어때, 불편하거나 헐렁한 곳 있어?"


“아니요, 제 옷처럼 딱 맞습니다. 컬렉션 준비로 바쁘실 텐데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황함에 말을 잇지 못하는 나에게 팔꿈치로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나디아가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치며 화제를 전환했다. 에릭씨는 한 점의 의심 따위 하지 않는 순수한 얼굴로 옷을 살폈고, 나디아는 그래도 혹시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나 세심하게 체크하더니 도올씨에게 귓속말로 무슨 지시를 내렸다. 피팅실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에릭씨가 의상을 나디아에게 건넸고, 나디아는 아까 체크해둔 부분을 확인하고 마지막 가봉을 하러 급하게 떠났다. 물론, 나에게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왔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휙 던져 놓고.


“전에도 패션쇼의 뒷무대 기사를 쓰기 위해 와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신 적이 없었는데 패션쇼에 나갈 의상을 입어 본 것도 다 에클레어 양 덕분입니다.”


"재미있으셨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저, 그때 나디아가 카페에 왔을 때 저랑 나디아가 깔깔 웃으며 귓속말 하던 거 생각나세요?"


"네, 물론."


입술이 바짝 마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요, 저 말하기 전에 제 청 하나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에릭씨는 알 듯 말 듯 은은한 미소를 지은 표정으로 내 양심을 죄이는 말을 던졌다.


"에클레어 양이 부탁하시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좋아.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흥분한 나디아처럼 다다다 쏟아 부으며 얘기했다.


"저, 에릭씨가 이번 컬렉션 무대에서 저랑 라스트 모델로 무대에 서줄 수 있을까요? 원래 저는 매년 나디아의 패션쇼 중 1번은 라스트 모델로 서는데 이번에 에릭씨를 소개 받고 나서 나디아가 필 받고 의상 하나를 더 만들어 보겠다고 했거든요. 나디아가 기한 안에 만들면, 제가 에릭씨를 설득해 라스트 모델로 서겠다는 말을 했어요. 처음에는 에릭씨가 저한테 축제 때 늦게 말해 주었던 걸 복수하려고 시작한 거고,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응했는데…… 에릭씨한테 너무 실례되는 일이고, 무례한 행동이라는 거 알아요. 그치만 나디아도 저 의상 만들기 위해 일주일을 넘게 밤샘 작업을 했고 에릭씨도 재미난 추억 만들기 겸 저와 같이 서주시면 안될까요?"


마, 말했다. 차마 에릭씨 얼굴을 보기가 무서워 시선을 에릭씨의 스카프에 고정시킨 채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스카프가 점차 밑으로 내려가더니 나는 눈을 굴리고 굴리다가 결국 에릭씨와 눈이 마주쳤다. 에릭씨는 언제나와 같은 신뢰가 담긴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계셨다.


하아. 참고 있던 안도감이 짜르르 마음에 퍼져나갔다. 다행이다, 다행…


“레이디께서 복수심에 불타 올라 친 작은 장난을 거절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그때 파이가 저 음흉한 웃음들은 못된 계략을 짜고 있을 거라면서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전 사실 패션쇼에 따라 올 때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말자는 마음 먹고 따라나선 겁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모델 일이라면 제국에서 기자가 되기 전에 부업으로 런웨이 위를 몇 번 걸어 본 적이 있습니다.”


에릭씨는 덜덜 떨며 말한 내가 무안할 정도로 시원하게, 또 다정하게 에클레어 양께서 치시는 장난은 언제나 자신만만, 유쾌하신데 이번에는 좀 제 눈치를 많이 보시는 군요. 전 에클레어 양의 장난들은 무슨 일이든 선물을 받는 기분이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아까 입은 옷이 가봉 되는 동안 저희는 무얼 합니까? 라며 나를 달래주셨다. 이럴 때면 에릭씨가 나보다 5살 많은 연상인 걸 팍팍 느낀다. 늘 여유가 있는 어른. 동안이면서, 치사해.


이렇게 매번 내 어리광을 받아주시면 안 되는데....... 싶다가도 에릭씨의 다정한 미소를 보면 나도 모르게 골려 주고 싶고, 더 웃게 만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저 멀리 서서 어떻게 됐는지 묻는 나디아에게 손으로 오케이 표시를 하자 대기하고 있었는지 스텝들이 우르르 몰려와 나와 에릭씨는 끌고 흩어졌다.





작가의말

예, 에릭씨는 어른입니다. 가끔 길을 잃어버리고, 어리벙벙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일단은 에클레어 양보다는 마음으론 어른. 애들 장난 따위 내가 커버하마. 뭐 이정도?


에릭이 입은 옷은 그리스의 고대 의상입니다. 에로스의 의상을 떠올립시다. 

가장 비슷해요. 느낌상. 


에릭의 알아도 몰라도 되는 작은 설정 과거편. 쨌든 지도 지가 존잘남인 건 알고 있음. 


모델 알바를 하다가 인터뷰하는 기자모습에 꽂혔지요.


오타와 비평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선추코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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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1 13.06.28 356 4 11쪽
25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1 13.06.28 337 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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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13.06.23 281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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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 13.06.11 359 3 19쪽
19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3.06.11 317 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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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424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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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358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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