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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님의 서재입니다.

cafe, 체리블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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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작품등록일 :
2013.02.03 22:51
최근연재일 :
2013.07.1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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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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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1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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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DUMMY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전략.


건강하십니까? 누님은 조금 아쉬워하실 것 같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네, 예상하신 대로 이번에 제가 쓴 칼럼의 인기가 좋았다는 소식을 회사로부터 받았습니다. 출장을 연장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신 분은 제 상사이신 트리뷴 본사 편집장님으로 그 분이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를 가지신 분인 줄 이번 기회에 처음 알 정도로 본국에서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달로 정해져 있던 제 체제 기간이 페테 데 네이쥬를 기준으로 1년, 연장되었다는 것을 누님께 알려드립니다.

사실, 저로서는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몽레알과 퀘백국을 알리기에는 너무나 짧게 느껴져 이런 반응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직접 머물고 있음에도 아직 구경하지 못한 곳들이 너무 많아서… 예를 들자면 제가 누군가로부터 100개의 방이 있는 집을 잠시 임대하게 되었는데 방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그 방안에 저를 감동시키는 보물이 하나씩 숨겨져 있는 겁니다. 저는 보물을 찾느라 100개의 방문 중 이제 겨우 대여섯 개를 열어봤을 뿐인데 임대기간이 끝나가는 세입자였음을 깨닫게 되죠. 그런데 집주인이 그런 저를 좋게 봐주고 세입기간을 늘려주신 겁니다! 앞으로 전 95개의 방문을 열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문 앞에 서서 어떤 보물이 놓여있을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가지 걱정했던 점은 에클레어 양의 반응이었습니다. 에클레어 양은 체리블로섬의 카페마스터이자 바리스타신데도 불구하고, 늘 여러 가지를 배려해주는 그녀의 착한 성품으로 인해 제 일을 도우시다가 그녀의 일상에 지장을 줄까 저어 되었습니다만…… 제 걱정이 기우인 듯 합니다.

파이의 말로는 저 때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카페마스터로서의 자각이 없다는 군요;; 하하하,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파이가 기분이 안 좋거든요. 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먼저 설명해드려야겠군요. 아침에 내려와보니 말입니다……




『참 우습기도 하죠.


죽고 싶을 정도로 죄어오던 심장의 아픔도 하루, 이틀 시간이 흘러 세월이 쌓이면


무감각해져 온다는 것을요.


세월의 잔인함이 야속하고, 잊혀져 가는 기억이 무섭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당신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평생 지고 갈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요?』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에클레어 양과 파이도 다시 일을 시작했다는 얘기였고, 그 말은 카페 체리블로섬이 다시 정상적인 영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였다. 어제 밤새도록 춤을 추고 논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느지막한 오전에 카페로 내려오니 향긋한 커피 향이 진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에클레어 양한테 커피를 받고, 파이한테 브런치를 받아 이제는 내 전용자리처럼 되어버린 벽난로 옆 테이블에 앉아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게으름을 피운 건 오직 나뿐이라는 듯 제법 안면을 익힌 손님들이 평상시처럼 자리에 앉아 축제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비가 꽃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에클레어 양은 손님들의 커피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커피를 채워주면서 같이 수다의 장을 이어나갔다.


파이가 주방에서 나와 아몬드 가루가 뿌려진 고구마라떼를 들고 내 옆에 앉았다. 나는 혹시나 하면서도 파이에게 물었다. 아니, 안 물어볼 수 없었다. 내 체류가 연장된 걸 알자마자 카페로 돌아가 버린 파이라면 모르겠지만(무심한 녀석 같으니…). 에클레어 양은 나와 함께 축제가 완전히 끝난,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녘이 되어서야 돌아왔었다.


[오늘 정상영업 한 거야? 아침부터?]


파이가 고구마라떼를 마시다 말고 보석같이 빛나는 호박석 눈동자를 또르륵 굴리며 대답했다.


“당연하죠. 축제기간 내내 쉬는 바람에 이번 달 매상은 죽을 쑨 걸요. 오늘부터 다시 바짝 벌어야 먹고 살죠.”


아, 그래. 여기는 축제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텀이 굉장히 짧구나. 익숙해졌다 싶으면서도 아직도 어색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내가 턱을 괴고 멀거니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파이가 자세를 바로 잡고 물어온다.


“근데 에릭씨, 어제 왜 알고 나서 바로 안 가르쳐 주셨데요? 저랑 아가씨한테 말해주지 않았다면 송별파티 준비까지 다 해놓고 기다릴 뻔 했어요.”


나는 손님들을 보고 있던 나른한 시선을 파이에게로 돌렸다. 나도 자신의 속내를 자세히 알지 못했기에 대답은 바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손수건으로 파이의 입 주변에 묻은 우유 거품을 닦아주었다.


글쎄, 그게 나도 궁금한데 말이야. 나름 기쁜 소식이라 생각하고 제일 먼저 가르쳐 주기 위해 카페 문을 여는데 둘이서 내 송별파티 이야길 하고 있어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조금 섭섭했었던 걸까…... 떠나는 쪽은 분명 나일 것이고, 언제고 이 카페를 떠날 때 그들에게 헤어짐의 인사를 건넬 때가 올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래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있었던 나에게, 작별을 준비하는 둘의 모습은 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별을 고하기 전에 먼저 내쳐진 기분이 들어서. 내가 머리로 생각한 것보다 에클레어 양과 파이가 더 내 마음속에서 자리를 잡고, 정이 들었던 걸 알게 되어서.


그리고 깨달음. 처음 이들을 연결해 준 것은 누나였다는 것. 에클레어 양이나 파이는 누나의 부탁으로 돌봐주었고, 내가 누나의 동생이라서 도와준 것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연장되었다는 걸 말하기가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이다. 얹혀 사는 것도 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도 나다. …그리고 이 곳에 남고 싶다고, 몽레알을 더 보고 싶다고, 알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나였다. 더 머물러도 되냐고 물었을 때 에클레어 양의 난처한 표정을 보기가 싫었다. 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제 밤, 포크댄스를 추다가 사라진 에클레어 양을 뒤쫓아 가다가 들은 말이 떠올랐다. 파이와 에클레어 양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음을. ‘에릭씨 보내기 싫다.’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진심이었기에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걸 그녀는 몰랐을 테지만.


[적절한 아쉬움과 보다 큰 기쁨&즐거움을 주기 위한 반전을 위해서?]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살짝 삐져 있는 파이를 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오후가 되자 파이가 외출을 권했다.


그때 나는 간이로 만든 암실에서 누나에게 보낼 사진을 배경위주로 몇 장 더 인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파이는 노크를 하고 들어와 내 팔을 붙잡고 밖이 보이는 창문을 가리켰다. 겨울치고는 바람도 적게 불고 햇볕도 따스한 것이 외출하기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파이도 그런 날씨에 저런 암실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날 불러낸 것이다.


“이 구역 은둔자는 저 하나뿐입니다. 양보할 생각 없으니까 나갔다 오세요. 이왕이면, 들어오실 때 저희 아가씨 좀 데려와 주시겠어요? 외출했다 하면 감감무소식이니, 원.”


굳이 찾아달란 얘기는 아니고요, 혹여 만나거든 붙잡아서 데리고 와주세요. 파이의 간곡한 부탁을 들으며 나도 외출준비를 했다. 이번 기회에 에클레어 양 없이 지도를 보고 혼자 돌아다니며 길을 익혀볼까 싶었다. 셔츠 위에 니트를 걸치고, 검은색 면바지와 모직코트를 입고 머플러를 둘렀다. 늘 들고 다니는 카메라 가방과 파이가 건네 주는 몽레알 지도를 받아 들었다. 카페를 나서는 길에 파이가 쫓아와 배웅을 한다.


“아가씨가 오늘 스테디셀러 작품 중에 하나가 탄생 100주년 기념출간 되는 소설을 사러 가신다고 하셨거든요. 에릭씨도 아세요? 초록지붕… 뭐라 했는데… 아무튼 서점 근방에서 혹시 얼쩡대고 계시면 붙잡아 갖고 오세요. 그리고 에릭씨는 길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세요. 제가 내보내긴 하지만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네요. 혹시 잃어버리시면 마차 타고 체리블로섬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시거나, 제복입고 있는 시관원한테 무조건 붙잡고 늘어지세요. 아셨죠?”


[하하, 파이도 참. 결국은 에클레어 양 찾아오라고 내보내지는 기분인 걸? 늦어지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그럼, 갔다 올게.]


“네, 안녕히 다녀오도록 하세요!”


달랑, 문에 매달린 방울이 맑은 소리를 내며 울린다. 가로수 길을 나와서 앞으로 죽 걸어본다. 지도를 보니 다운타운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인트로렌스 강을 따라 주욱 올라가다 다리를 만나면 좌회전 해서 다시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길 자체는 쉬운 걸? 자신감이 붙어서 척척 발걸음을 옮긴다.


생각해보니, 한 달이 넘도록 혼자서의 외출은 처음이다. 에클레어 양이나 파이가 죽어라 혼자 나가는 것을 말렸던 이유가 가장 컸다. 공항을 잘못 내린 것이 그들의 머리에 꽤 크게 새겨진 모양이었다. 뭐, 제국의 가장 복잡한 도시에서 살던 나에게 있어서도 조금 충격적인 일이었기는 했다. 누나의 집에서 나와 자취를 한 곳은 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요크신 시티였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은 예삿일이고, 넋 놓고 서 있다가 발이 밟히면 발을 밟는 쪽이 무례한 것이 아니라 발을 밟혔던 쪽이 멍청할 정도로 유동인구가 많고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온 나다. 솔직히 퀘백국의 수도인 몽레알은 요크신 시티에 비해서 크기도 작을 뿐더러 구획 정리가 워낙 잘 된 계획도시라 길을 잃는 것이 힘들어 보일 정도다.


확실히 날씨가 좋은 탓인지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에클레어 양이 말해줘서 알게 된 몽레알의 상식 중 하나는 사람들이 날씨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눈보라 아가씨가 지나가고 따라오는 칼바람은 추위에 강한 몽레알 사람들도 학을 뗄 정도로 매섭게 몰아치기 때문에 원래 이 시기에는 길거리가 한산하다고 한다. 지하도시인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워낙 잘 발전해 있다 보니 집과 언더그라운드 시티를 이용해 외출을 할 뿐, 다운타운 자체가 겨울에는 잠 자듯 조용하다는 것. 하지만 오늘은 확실히 축제 때만큼 복잡하진 않지만 햇볕을 쬐러 나온 이들로 거리가 조금 활기차 보인다.


제국의 시민들은 축제가 끝난 뒤, 보통 늘어지거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를 간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언제나 늘 활기차 보인다. 지금도 햇살 하나에 기분 좋은 미소들을 지으며 외출을 감행한 모습이 내게는 퍽이나 재미있게 느껴진다. 여기 사람들은 다들 꾸미지 않은 여유로움이 흘러 넘친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구경하다가 다리가 아파서 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이 거리는, 처음 보는 곳이다. 하하하, 너무 생각 없이 걸었나……?



벤치에 앉아 대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파이에게 받아온 제국 글자로 적혀 있는 지도는 너덜너덜 해질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지금 내가 있는 대로가 무슨 대로인지 확인하려 해도 도로 표지판은 퀘백국 글자로 적혀 있어 까막눈인 나로선 무용이다. 오늘따라 제복을 입고 지나가는 시관원도 눈에 띄지 않아 나는 한 시간 가까이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날씨가 정말 좋은 것뿐이다. 거리에는 나처럼 겨울 햇살을 맞으러 나온 사람들로 점차 붐비면서 날이 따뜻하니 옷들도 한결 가벼워져 그것만으로도 볼거리가 되었다.


넋 놓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얼핏 시야 너머로 에클레어 양으로 추정되는 레이디가 골목을 꺾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후다닥 일어나 그녀가 들어간 골목으로 빠르게 쫓아갔다. 오렌지 빛이 감도는 빨간 겨울 코트에 감싸인 체격은 비슷했고, 두르고 있는 까만 색 머플러는 머리를 감싸고 있어 에클레어 양의 크림색 머리인지 확인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활기차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맴도는 것에서 에클레어 양 본인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골목에 들어섰을 때, 오렌지레드 코트를 입은 여성은 그림자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이왕 들어온 골목, 구경이나 해야겠다 싶어 다시 입구로 나왔다. 카메라를 들어 골목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찍었다. 기이하게 생긴 고층 건물 두 개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사이의 거리가 이 골목의 시작점인 듯 골목의 이름이 적힌(물론, 퀘백국 글자로 적혀 있어 읽을 수 없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여주자 에클레어 양이 읽어주기를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이라 읽는다고 했다.) 간판이 걸려있다.


그 골목은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즐거움이 눈에 가득 차게 했다.


입구부터가 특이했으니까. 기이하게 생긴 고층 건물 두 채는 쌍둥이처럼 똑 같은 모습이었는데 마치 큐브를 조립하다 만 것처럼 건물의 이곳 저곳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었다. 더 들어가자 조금씩 평범하지만 연식이 오래되 보이는 건물들과 건물들에 붙어있는 수많은 철제 계단들이 나타나며 다닥다닥 붙어 나란히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왼쪽 건물의 3층에서 낡은 창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곧 뻐끔뻐끔 파이프 연기가 올라왔다. 젊은 남성이 턱을 괴고 고뇌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당신은 무얼 바라보고 있는 거지? 덩달아 나도 심각한 표정이 되어 하늘을 쳐다본다. 좀 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사각사각 연필을 다듬는 소리에 이번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까와 비슷한 분위기의 또 다른 남성이 붉은 색 철제 계단에 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다. 뚫어지게 아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며 스케치를 하는 모습이 아마 골목을 그리고 있는 모양이다. 방해되지 않게 돌아서 가다가 교차로에서 모퉁이를 꺾었다. 어느 건물인지 확인이 안되지만 건물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가 골목에 울려 퍼졌다. 편곡을 했는지 음계는 마음대로고 박자도 자기 멋대로 흘러갔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느낌이라서 가만히 귀 기울여 들었다.


멍하니 그 골목에 서서 있다가 다시 가만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 거리는, 대로와는 다르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나 혼자 다른 세계에서 떨어진 외부인, 관조자, 방관자 같은 느낌에 자유를 만끽하며 고뇌에 찬 예술가들을 지켜본다. 저 사람들에게는 살짝 무례한 생각이겠지만, 뭐 어쨌든 나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이 자유로운 골목이 제법 흥미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또 다른 교차로를 만나 마음 가는 방향으로 모퉁이를 돌자,


광장이라고 부르기엔 무언가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공터가 나왔다. 건물과 건물들에 둘러 싸인 공터는 꿈꾸는 예술가들에게 기꺼이 자신을 빌려주고 있었다. 한쪽 벤치에 통기타를 든 안트족(소수인종 중 한 부족. 제국이 건국되기 이전 숲에서 요정족과 함께 살아갔으나 현재 제국령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부족이다. 갈색 피부에 키가 크고, 얼굴에 문신을 함으로서 어느 부족에 속한 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본 여성은 작은 새가 그려진 카나리아 일족으로 목의 구조가 달라 청아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여성이 흥얼거리며 노래 작곡을 하고 있었다. 맑은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의 가락이 공기에 퍼져 나갔다. 음유시인을 꿈꾸는 그 여성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좀 멀리 떨어진 맞은 편에선 마술사 모자를 쓴 여성이 불꽃으로 마술 연습을 하고 있다. 순식간에 불새가 날아가다 공중에서 펑 터지더니 어느새 여성의 모자는 없어지고 불새가 홀로 머리 위에 앉아있다. 마술사에게 실례를 구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마술사가 나를 보며 손으로 3, 2, 1, 딱! 하고 튕기자 펑 소리와 함께 주변이 회오리 치는 불 바다가 되었다. 와아~ 하고 셔터를 누르자 불타오르는 회오리 앞에서 멋진 포즈를 지어 보인다. 이내 불타는 회오리와 함께 사라졌다가 뒤에서 어깨를 톡톡 치며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네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유스 제국과는 달리 퀘백국에서는 마술사로 살아가기 힘든 곳이라고 한다. 쇼맨십과 자신만의 스킬, 타이밍이 관건인 마술쇼는 관객들의 참신한 반응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했다. 마술사들의 세계는 굉장히 좁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굉장히 까다롭다고. 패턴화 되는 것을 피해야 하고, 경쟁률도 셀 뿐만 아니라 이 곳이 바로 정령과 마법이 판을 치는 퀘백국이기 때문이란다. 서커스와 마술쇼가 태어난 곳에서 연기와 도구, 쇼맨십을 이용한 마술은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힘든 곳이니까.


건네 받은 장미를 코트 가슴주머니 한쪽에 꽂고 또 다른 쪽에서 조각을 하고 있는 사람 앞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구경을 했다. 방금 지켜 본 재치 있는 마술사와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아가씨, 벽화를 그리고 있는 할아버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어린 아이 등 그 외에도 공터에 나와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조각해 놓고 있었다.


이 골목은 이렇게나 다양한 예술가들이 서로를 만나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발전을 지향하는 모습들이 하나이면서 여러 개가 모인 모자이크를 떠오르게 만드는 곳이다.


걸어가는 걸음마다 멈춰서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이거 이거, 파이가 부탁한 에클레어 양을 찾는 건 둘째치고, 나 혼자서 무사히 돌아가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세워야 할 판이다. 슬슬 파이의 길어질 듯한 잔소리를 생각해 마음이 무거워지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긴다. 우선은 대로를 찾아 나간 뒤, 지나가는 마차를 붙잡아 데려다 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터덜터덜 지나가는데, 투둑,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줄 알았다. 소리는 단발성으로 끝났고, 나는 소리가 났던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은 리본이 달린 여성의 검정구두였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들어 건물 꼭대기 층을 올려보았다. 어떤 인기척이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 자살자의 신발은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식은 땀을 닦고 나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구두를 들여다 본다. 내 손에 쥐어질 정도로 작은 구두. 일반적으로 봐왔던 구두보다도 더 작아 보이는 구두였다. 누구의 것일까? 철제 계단을 내려오다가 삐끗 해서 사이로 빠진 것일까? 곤란해 하고 있을 여성을 위해 위층부터 철제계단 쪽을 한층 한층 훑어 본다.


발견…!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10층 건물에서 4층 높이의 철제 계단 사이에 둥둥 떠다니는 여성의 발을 발견했다. 내가 들고 있는 왼쪽 구두와 비어있는 그녀의 왼쪽 발. 구두를 들고 철제 계단을 올라갔다. 이거야 원, 유리구두를 들고서, 자신에게서 도망간 신데렐라를 찾는 왕자님이 된 기분인 걸.


작가의말

자, 에릭의 신데렐라는 과연 누구? 뉘~규?


읽고 계신 모든 독자분들이 예측할 그 분인가, 아닌가는 다음 편에.


파이와 에릭은 서로 합이 잘 맞아요. 서로 공생공사하는 타입이죵. 


파이의 잔소리 공격을 잘 막는 능글대명사 에릭과, 

에클레어만큼 에릭을 잘 이용하는 파이.


아콩, 10일에 업데이트 하는 걸 깜박했네요;;


진흙44님 코멘트 감사합니다, 카체는 잔잔한 맛으로 읽어주세요.


오타와 비평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선추코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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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10. 2월의 축제. "윈터 루드, 뱃사공의 축제" +1 13.07.15 290 3 11쪽
33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3.07.13 246 6 13쪽
32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3.07.12 249 7 12쪽
31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2 13.07.11 545 6 14쪽
30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3.07.10 202 4 14쪽
29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1 13.07.02 335 6 22쪽
28 #9. 쉬어가는 편, 여행! 유콘으로부터의 초대장. +2 13.07.01 358 6 22쪽
27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2 13.06.28 363 3 14쪽
26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1 13.06.28 357 4 11쪽
25 #8. 여섯 번째 손님. 깜짝, 깜찍, 발칙한 악동들 등장. +1 13.06.28 337 4 16쪽
24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2 13.06.23 463 4 16쪽
23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13.06.23 281 4 17쪽
22 #7. 다섯 번째 손님. 디자이너 나디아의 오트쿠튀르. 13.06.23 295 5 18쪽
21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 13.06.11 380 3 18쪽
20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 13.06.11 359 3 19쪽
» #6. 네 번째 손님. 플래토 몽 루이얄 골목의 예술가. 13.06.11 318 3 19쪽
18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 13.06.06 305 3 20쪽
17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6 339 3 17쪽
16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6 282 3 11쪽
15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277 3 17쪽
14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243 3 18쪽
13 #5. 1월의 축제 “퀘백국의 겨울 카니발, 페테 데 네이쥬” 13.06.03 424 3 13쪽
12 #4. 쉬어가는 편, 일상! 휴식을 즐기는 각자의 방법. 13.06.01 349 4 16쪽
11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425 4 13쪽
10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342 3 17쪽
9 #3. 세 번째 손님. 지하도시의 미로와 길 잃은 아이. 13.06.01 358 4 14쪽
8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13.06.01 245 3 17쪽
7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13.06.01 246 3 19쪽
6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1 13.06.01 391 4 13쪽
5 #1. 첫 번째 손님. 첫 만남. 그 이름은 에릭 윈체스터. +1 13.02.04 456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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