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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님의 서재입니다.

cafe, 체리블로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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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프
작품등록일 :
2013.02.03 22:51
최근연재일 :
2013.07.15 23:5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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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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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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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1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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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2. 두 번째 손님. 눈보라 아가씨와 늦은 월동준비.

DUMMY


유리화원 뒤로도 우리가 걸었던 산책길이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유스 제국과 맞닿아있는 왕의 산맥이 펼쳐진다고 에클레어 양이 말해주었다.


왕의 산맥은 유스 제국과 퀘백국을 갈라 놓는 국경선이자 중립지역이기도 하다. 워낙 위세가 험하고 잦은 몬스터 출현과 사고율이 높은 곳으로 자자하다. 제국에서도 개발을 위해 몇 번 도전했으나 이상한 전자파와 기기불량으로 포기한 불가사의한 곳이다. 에클레어 양의 설명에 의하면 몽레알에서도 봄에서 가을까지 산림공무원들이 산책길 근방 30km까지를 관리하지만 겨울에는 산길 자체를 폐쇄하고 일명 산지기라 불리는 공무원들도 입산을 꺼릴 정도라 한다. 봄~가을 동안 일반인들 중에서도 식물보호기사 면허증에 한해 입산 허락이 떨어지며 일정시간 안에 산림공무원들에게 연락을 해야 하며 만약, 사소한 이유로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 면허증 정지가 되거나 입산금지처분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긴. 유스 제국에서도 어마어마한 거금과 인명피해를 거쳐 육지로 연결된 도로는 딱 하나밖에 만들지 못할 정도로 침범하지 못한 위험지역인 것이다.


눈보라 아가씨의 입김으로 하얗게 물들어 버린 왕의 산맥을 한번 쳐다보다가 유리온실로 들어갔다.


[유리화원은 좀더 섬세하고 기온에 예민하고 사람의 도움이 무조건 필요한 식물들이 자라는 곳이에요. 약초부터 허브, 난, 선인장 등 다양한 아이들이 있는 만큼 혼자라면 돌보기 힘들 정도의 크기기는 하죠. 2층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단풍나무는 정령의 축복을 받은 정령수인데 한가운데에 어스스톤(대지 속성 정령석)이 달려있죠? 아마 아빠와 제가 발견한 정령석 중에서는 가장 큰 크기일 거에요.]


그녀의 조곤조곤한 설명에 귀 기울이며 착실히 기억박스에 메모리 하는데 그녀가 “메이플,”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부름에 아까 불의 정령보다 확실히 더 크고 뚜렷하면서 손바닥만한 소년의 형상을 가진 정령이 나왔다. 메이플이라 불린 정령은 빨간 단풍 색의 머리와 눈을 가졌는데 이 근방의 모든 식물들을 관리해 준다고 한다. 하긴 그녀 혼자 하기엔 정원부터 유리화원까지 관리해야 할 식물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메이플 덕에 일주일에 두어 번만 관리해도 되게 된 것이라고 하니 정령의 힘은 생각보다 무궁무진해 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백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한 것일까?


그녀가 정령어로 속삭이며 눈인사를 하자 메이플도 따라 웃는다. 식물에 관련된 정령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정령도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에 의하면 식물들은 주인의 기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럼 이 메이플이라는 정령은 그런 식물적 반응에 의해서 감정을 얼굴에 표현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령이기에 주인의 감정과 동조하여 표현하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중에 에클레어 양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에클레어 양이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입을 뻐끔대며 내뱉자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메이플이었다. 다시 그녀가 뭐라고 작게 속삭이며 웃어주자 역시나 기분 좋게 배시시 똑같이 따라 웃어 보인다. 끼어들 수 없는 둘만의 분위기가 생성되자 나도 모르게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서 흐뭇한 미소로 둘을 지켜보았다.


메이플은 곧 있어 눈을 감고 기도하듯이 손을 움켜쥐었는데 그 순간, 메이플의 몸에서 반짝반짝 빛이나 마치 오로라처럼 넘실대며 정원을 휘감았다. 나는 청아한 산속에 들어와 산림욕을 하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고요히 숨을 들이쉬었다. 숲의 기운이 머물다 가는 느낌 이었다. 눈을 뜨자 에클레어 양이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넘실대던 빛이 사그라지면서 메이플이 눈을 떴다. 그러더니 잠시! 라는 표정으로 에클레어 양의 머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녀가 말문을 던지자 고개를 끄덕이던 메이플이 물을 모으듯이 손을 모아 다시 반짝반짝 빛을 냈는데 메이플의 손에 자기 머리만한 알갱이들이 생기면서 그녀의 손으로 떨어뜨렸다. 그녀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알갱이들을 받아 들고 빠르게 말을 했다.


메이플도 그녀처럼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본체가 있는 단풍나무로 돌아갔다. 그녀는 알갱이를 하나 나에 건네며 메이플 시럽을 굳힌 사탕이라며 먹어보라고 말했다. 입에 머금은 메이플 맛 사탕은 배시시 웃는 메이플이란 정령을 닮아 달콤 쌉싸름했다.



목장에 잠시 들려 구경을 했다. 어느새 파이가 와서 새 짚으로 갈아주고 모이들을 듬뿍 줬는지 깨끗한 짚 냄새가 솔솔 났다. 목장 안에는 몇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져 각 구간마다 다양한 동물들이 쉬고 있었다. 늘씬하게 빠진 흑마와 염소 2마리, 오리와 거위가 5마리, 새끼 양 3마리와 엄마돼지 1마리에 새끼 돼지 5마리들이 사는 대가족이다. 꽤 큰 곳인데도 파이가 부지런히 움직였는지 동물들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곳간으로 가자 뽀얗게 쌓인 먼지들과 구멍이 뚫린 지붕 사이로 새어 들어온 눈들, 덜그럭거리는 벽과 삐그덕 소리를 내는 문이 나를 맞아주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나는 구석에 쳐 박혀 있던 공구들을 간신히 찾아 사다리로 지붕에 올라가 구멍을 수선하고, 에클레어 양은 먼지를 닦고 얼어붙어 깨질 위험이 있는 물건들을 카페 안 창고로 옮겼다. 파이는 곳간에 수시로 들러 천이며 솜이며 필요한 물건들을 죄 꺼내갔고 나도 지붕수선이 끝나자 벽과 울타리가 훼손된 부분을 손보고 파이를 도우러 갔다. 제국에서는 험한 일들은 기계를 이용해서 했었기에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손에 익자 꽤 재미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대충 일을 끝내고 카페로 들어올 수 있었다. 브런치를 먹고 상당한 일을 한 뒤라 심하게 배가 고팠다.


뒷마무리를 하고 온다던 파이가 갑자기 뒷문을 열고 머리카락에 지푸라기를 한 가득 묻힌 채로 저녁 준비를 하던 에클레어 양에게 안긴다. 아직 퀘백어에 서투른 나는 염소와 뿔이라는 단어밖에 듣지 못했다. 그래도 대충 어떤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염소들이 있는 곳에 갔다가 뿔에 다친 모양이다. 에클레어 양의 품에 안겨 있던 파이가 고개를 들자 파이의 호박석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퀘백어로 빠르게 투덜댔다.


그녀는 파이의 등을 두드리며 안심시키더니 약 상자를 꺼내 갖고 와 약을 발라주었다. 파이의 상처는 심하게 다친 것은 아니고 멍이 살짝 들어 있었다. 그녀는 약을 바르다가 어머! 하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이 아가씨가 이번에는 어떤 미션을 줄지 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저희가 마시는 우유는 전부 밀크의 것을 가공한 거랍니다. 밀크는 저희가 키우는 염소 이름 중 하나에요. 이왕이면 저 대신 파이와 같이 가서 에릭씨가 직접 우유 좀 얻어와 주시겠어요?]


이번 미션은 제법 어려워 보였다. 나는 오늘 하루 새로 해보는 일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아가씨, 저랑도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데 밀크가 혹시라도 에릭씨를 박아버리면 어떡하라고요?]


[후후후, 파이가 나 인척 내 작업용 코트를 입고 나가면 얌전하게 있을 거야. 에릭씨가 작업하는 동안 저는 맛있는 저녁 차리고 있을게요. 오늘 저녁은 기대해도 좋아요. 거하게 일 하고 난 뒤엔 비싸게 먹어라. 저희 아빠 명언이거든요.]


파이팅. 해맑게 응원하는 에클레어 양에게 파이는 걱정이 한숨이 되어 나오는 듯 푹푹 고개를 떨구며 나와 함께 걸어갔다. 나는 염소의 젖을 짜보는 것과 그녀가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만찬을 기대하며 카페 뒷문을 닫았다.




그 후, 무사히 염소 우유를 얻어온 나와 파이에게 에클레어 양은 테이블 가득히 음식들을 올려 놓았다. 고소한 치즈가 가득 들어간 라자니아와 마늘, 레몬제스트, 파슬리와 소스를 곁들인 등심스테이크와 담백한 맛이 일품인 연어 샐러드를 모스카토 와인과 곁들어 배부르게 먹으면서 우리들은 오늘 하루 열심히 일한 노고를 서로 치하했다.


그러다가 오후에 눈을 치우면서 에클레어 양에게 결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 눈보라 아가씨 설화가 떠올랐다. 어떻게 끝이 날지 궁금하여 하루 동안 일했던 노동력과 바꾸어서 부디 끝까지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이번에는 장난치지 않고 흔쾌히 마저 얘기해주었다.


“천신의 벌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이 지혜로운 눈보라 아가씨 덕이라고 말씀 드렸죠? 하지만 불가피하게도 눈보라 아가씨는 동장군의 명을 어기는 처지에 처하게 되었답니다. 동장군은 자신의 힘이 담긴 반쪽의 심장을 믿고 신임할 수 있는 눈보라 아가씨에게 주며 봄꽃 처녀에게 전해주라고 명했어요. 그 심장을 전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보라 아가씨는 알고 있었고요. 분명히 동장군에게 천신의 노여움이 쏟아지리란 것을요.


눈보라 아가씨는 동장군의 명령을 거역한 채 정령석으로 변한 심장을 숨겨 버리고 동장군 소속을 무단 이탈하여 눈보라를 흩뿌렸어요. 동장군은 이에 굉장히 노하였고 칼 바람 정령부대들로 하여금 눈보라 아가씨를 쫓게 하였답니다. 그래서 눈보라 아가씨가 지나간 이후의 퀘백국은 몹시 매섭고 독한 바람들이 연이어 불어 닥친다고들 하죠. 동장군이 천신의 노여움은 피하게 되었지만, 눈보라 아가씨는 동장군의 믿음을 깨버린 대가로 영원히 동장군을 모시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노여움을 받아 쫓기게 되었다는 얘기에요.”


눈보라 아가씨는 이후 두 번 다시 동장군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에클레어 양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파이가 그녀의 얘기를 듣고 눈물을 글썽였다.


[불쌍한 눈보라 아가씨~흐규규]


알코올이 살짝 들어갔더니 아주 그냥 펑펑 우는 파이를, 손수건을 꺼내 눈물과 콧물을 닦아 주던 에클레어 양이 내게 감상을 물었다.


[사람들처럼 정령들에게도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서로 엇갈린다라 참 슬픈 내용이군요.]


[그런가요? 저는 희생과 자기만족으로 점철한 어느 정령의 비참한 최후라고 생각했는데요. 눈보라아가씨의 마음을 몰라주는 동장군님도 밉고, 그런 동장군님만 한결같이 바라보는 눈보라 아가씨도 바보 같아요.]


[하하, 에클레어 양 답지 않은 냉철한 비판이네요. 하지만 마음이라는 건, 자신이 막 바꾸고 싶다고 해서 바꿀 수 없는 거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소중함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조금 알 것 같은데 말이죠. 동장군의 시점에서 말하자면, 눈보라 아가씨가 자신을 도와준 것을 알지만 믿음이 깨진 것에 상처받은 것이겠지요. 언제나 자신의 뒤를 지켜줄 이라 믿고 생각하던 이가 앞으로 나서서 일을 해결해 준데도 저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믿고 맡긴 이가 그 믿음을 깨고 사라져 버린 지금, 다른 이들을 믿고 맡긴데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설화치고는 결말이 아주 현실적이네요. 아이들도 아는 내용일 텐데.]


에클레어 양이 내 대답에 자못 진지해진 분위기를 전환하며 만담하는 어투로 이어나갔다.


[아이들이라고 해도 동화 같은 해피엔딩을 꿈꿀 수는 있지만 현실의 결말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잖아요?]


[아, 그건 알겠습니다. 어른이 되기 싫은 아이도 결국은 어른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어느새 나와 그녀가 주고 받는 만담에 눈물이 쏙 들어간 파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우리 같은 어른은 되지 않을 겁니다. 하고 외쳤다.


[눈보라 아가씨가 그저 딱 한번이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용기를 내었다면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요. 세 명이 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그녀에게 또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요. 전 눈보라 아가씨의 희생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오늘 같은 추억은 다시 없을 정도로 즐겁고 재미있었으니까요.]


특히나 아침에 그 설경은 굉장했습니다. 라며 나는 진심을 담아 웃었다. 뭐, 그야 그렇지요. 하며 에클레어 양도 웃으며 와인의 마지막 잔을 비웠다.




전략.


이렇게 신나게 놀아보는 것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마치 30살의 어른인 저는 없어지고 5살의 아이인 저만 남은 기분입니다. 처음 해보는 눈싸움, 눈사람 만들기, 눈 치우기, 월동준비, 목장 일 돕기부터 처음 보는 정령들과 하얗게 뒤덮인 도시의 모습, 누군가가 소중히 보살피는 목장과 화원들까지. 어떤 것도 새롭지 않은 게 없네요. 오늘 느낀 것 중에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제 삶이 우물 속 개구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것을 그 큰 땅덩어리를 가진 제국을 벗어나서야 알게 되다니 기묘할 뿐입니다. 제 등을 밀어준 회사에 감사해야겠습니다.

아침에 떠 오르는 해로 인해 노을 진 마을이 붉게 물드는 것.

덮이고 쌓인 눈으로 고요한 회색 빛 도는 왕의 산맥.

세인트로렌스 강을 뒤덮은 푸른 얼음의 강.

한없이 쏟아져 내리던 함박눈과 하늘을 가득 채운 구름들의 무리.

그리고 눈보라가 그치고 난 뒤의 티끌 없이 깨끗한 물빛의 하늘.

누님, 여기 와서 바라보는 이 풍경들을 고스란히 전해줄 수 없는 서글픔이 안타깝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제 겨우 일주일이 안되도록 머물렀지만 한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저는 몽레알의 매력에 벌써 한껏 마음을 뺏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일은 본격적인 몽레알 나들이를 나갈 것입니다. 사고 싶은 리스트도 잔뜩 적어버렸네요.

누님에게 한없이 어려 보이는 동생의 성장하는 모습이 편지에서 느껴지길 기도합니다.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길 바라며,


언제나 행복하기를. From 에릭.




Ps: 매형에게 안부 전해주십시오.




-그는 모르는 그녀의 이야기.



둘을 올려 보내고 나서 조용해진 라운지에서 에클레어는 오늘 하루 자신을 쫓아 다녔던 눈꽃을 부르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바(bar)에 가서 평소보다 더 진하게 위스키를 태운 아이스 아이리쉬를 올려놓자 어느새 에릭이 만들어놓은 눈천사가 꼬물꼬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에클레어가 그 눈천사를 향해 숨결을 후욱 불어넣자 인간형으로 변한 눈의 정령, 짧은 머리의 눈보라 아가씨가 나타났다. 새하얀 원피스에 주름 하나 없이 고아한 자태로 앉은 그녀는 아이리쉬에 담긴 티 스푼을 무심하게 휘저었다.


“매 년 찾아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은 몽레알을 돌아다니시지 않으시고 계속 제 옆에 붙어 계시던데요? 그나저나 왜 눈사람이 아니고 눈천사에요?”


“나도 보는 눈이 있단다, 아이야. 아무래도 눈사람보단 눈천사쪽이 예쁘구나. 역시나 눈이 좋구나.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래봬도 동장군님한테도 들켜본 적 없는 갈고 닦은 은신술 이었는데 말이지.”


“흠흠! 그야, 당신들에게 사랑 받고 있으니까요. 잘 보일 수 밖에요.”


“못 보던 남자아이와 내 이야기를 하길래 떠날 수가 없더구나. 본인 앞에서 험담을 하다니.”


몹쓸 것. 하면서 볼을 쭈욱 늘리는 바람에 에클레어의 볼이 빨갛게 부었다. 아프다기 보다는 그녀의 차가운 손길에 금새 얼어붙은 까닭이었다. 칫, 너무하시네요. 일부러 차갑게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에클레어는 눈보라 아가씨라는 최상급 정령 앞에서 어린아이마냥 투덜대었다.


“네 아이리쉬를 마시지 않고는 떠날 수가 없구나. 몽레알은 이번에만 내가 직접 움직이고 다음부터는 내 아이들이 눈의 무도회를 열거란다.”


“이번에는 머무르시는 게 너무 짧으시네요. 전 눈보라님 되게 보고 싶었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금방 따라 잡히게 될 거야. ……그분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주렴. 이건 내가 선택한 몫이란다.”


“눈보라님을 보면 슬퍼지는걸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이 바라만 봐야 해서. “


“넌 충분히 나에게 많은 걸 주고 있단다. 그럼 내년을 기약하자꾸나. 아이야.”


눈보라 아가씨는 하얀 섬섬옥수로 에클레어의 쓸쓸해 보이는 얼굴을 쓰다듬고는 창백한 입술로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차갑지 않고 시원한 기운이 잠시 서렸다. 너에겐 매번 휴식의 축복을 줘도 모자라니 어쩌면 좋을까? 눈보라 아가씨의 얼음장 같은 얼굴에서 희미한 걱정 어린 기색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에클레어는 어린애처럼 배시시 웃다가 감사해요, 항상. 인사를 전하며 비쥬를 하자 찬 바람이 슬며시 불더니 어느새 눈보라 아가씨는 사라지고 없었다.


몽레알의 눈보라가 지나갔다.



작가의말

칠 드립이 없다... 밤 샌 아침엔 머리가 굳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런 곳에 살면, 에클레어가 뺀질나게 외출하기는 드럽게 힘들겠죠...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 파이가 잔소리하는게 당연해요.


오타와 비평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선추코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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