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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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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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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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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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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드드드드드드-


진동모드인 서연의 핸드폰이 계산대 위에서 부르르 떨렸다. 핸드폰에 뜬 이름. 서마리. 매장안에는 손님도 없고, 곧 정리하고 나가려던 참이다.


그녀가 전화를 받으며, 뒷 타임 아르바이트 창훈에게 간다고 손짓을 했다. 곧 이어폰으로 마리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마리] 뭐해? 아직 안끝났어?

[서연] 끝났지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오며 서연이 답했다.


[마리] 오늘 너희 집에 가도 돼?

[서연] 왜? 또 무슨 신세 한탄을 하실라구?

[마리] 나 숨통 좀 트이게 해주라. 응?

[서연] 알았어. 몇 시까지 올건데?

[마리] 나 한 시간도 안 걸려.

[서연] 알았어. 이따봐.


서연은 머릿속으로 스케쥴을 정리했다. 마리가 오는 날은 하루 진도를 포기해야한다. 공부를 하다보면 연속성과 규칙적인 일과가 중요한데, 솔직히 마리가 한 번 왔다가면 서연이 만들어 놓은 학습생체리듬이 깨진다.


그리고 다시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마리는 서연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사회적 인맥이랄까, 친구라고 할까. 그런 마지막 보루같은 존재다.


영국에 워킹홀리데이 갔을 때 같이 방을 나눠 쓰던 룸 메이트. 같은 방을 쓰면서 지지고 볶고 하다가 그녀와 많은 정이 들었다. 마리는 서연보다 세 살 많았다.


그림을 그리는 마리는 영국에서 돈 한 푼 없이 그림을 그리고 인정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더 나이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꿈을 쫓아서 왔다는 그녀는 워킹 홀리데이란 워킹만 하고 홀리데이는 없는 2년간의 시간을 의미한다는 걸 알았다.


작은 싱글침대 두 개가 들어가는 작은 방이지만 월세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비쌌다.


남과 나눠쓰는 방인데 방 값만으로 백 만 원 가량은 꼬박꼬박 내야 했고, 식료품, 교통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밤 낮없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지만 그 뿐이었다. 하루 하루를 먹고 사는데 청춘을 다 바치고 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내던지듯 몸을 뉘이고 나면 다시 다음날이 시작된다.


일하는 시간과 먹고 자는 시간을 다시 쪼개서 그림을 그리려면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걸까?


마리는 그렇게 그림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서연과 마리는 서로 비슷한 처지를 공유해서인지 말이 통했다. 서연이 한국에 돌아와서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는 마리 뿐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대학교 친구들과도 가끔 만나보았지만 서연은 언젠가부터 겉도는 인간관계에 지쳐갔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만나면 반갑고 좋다. 좋은데, 안 만나도 되는 상황에서 애써 또 만나면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간극을 느끼게 된다. 만남을 가질수록 시간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


또 가까이 가서 만날수록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또 애써 만난다는 인간관계가 썩 내키지 않는다.


부질없기도 하고, 사람들과 만나면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서연은 쓴 웃음이 났다. 서라의 삶이 이해가 가기도 하니까.

그녀는 마리를 위해 마트에 들어갔다. 오늘은 맥주를 좀 넉넉하게 사야할 것 같다.



*



‘이방인가!’


현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안쪽 방이라고 했다.

안방에 들어서서 문을 잠그고 나서,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파티마의 말대로 방은 크고 쾌적했다. 지금 지내고 있는 고시원 방 네 개는 들어갈 것 같은 사이즈다.


방에 들어온 뒤 문을 닫고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조용한 걸로 보아, 1층의 엘리베이터는 다른 사람이었던 것 같다. 은우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빠르게 거실과 부엌을 스캔했다.


양문형 냉장고 안에는 식재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대부분 편의점 도시락이었지만 제법 맛있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갑자기 심하게 허기가졌다. 그는 편의점 도시락 하나와 삼각김밥 하나를 골라 전자렌지에 돌렸다.


혹시 전자렌지에 음식을 돌리는 동안 하우스 메이트가 들어오지나 않을까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땡-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허겁지겁 전자레인지에서 도시락을 꺼내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방에는 널찍한 더블베드가 있고 그 옆에는 데스크탑이 있는 커다란 책상이 있었다. 그리고 침대 맞은편 방 끝쪽에 드레스룸이 있었고 욕실이 나란히 있었다.


욕실 옆 파우더룸 공간에 화장대와 의자가 있었다. 이렇게 넉넉한 공간이라면 이 안에서 운동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우는 생각했다.


드레스룸 안에는 옷 스팀 건조기가 따로 있었다. 양복이나 입었던 옷들을 그 안에 넣어주면 따로 드라이 할 필요도 없이 잡냄새 같은 것도 잡아주고 뽀송뽀송하게 입을 수 있다던 그 건조기.


최대리가 빨래 건조기와 옷 스팀 건조기는 싱글 생활의 필수품이라고 했을 때, 은우는 그냥 웃기만 했었다.


방에는 250리터짜리 작은 소형 냉장고도 있었다. 굳이 방안에 따로 소형 냉장고를 둔 이유는 하우스 메이트와 부딪히기 싫어서일까? 은우는 대체 파티마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여기에 같이 산다는 하우스메이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


“햇빛이 안 드는 곳에 산다는 건 정말 고역이야. 반지하에 살기 전엔 몰랐는데 채광이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게 어떤건지 이젠 알겠어. 어두침침한 방에 오래 있다보면 우울해져.”


마리는 벌써 네 번째 캔맥주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녀는 술을 잘 마신다. 오자마자 냉장고부터 열고, 맥주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확인하고 서연이 냉장고에 가득 채워놓은 맥주들이 가지런히 들어가 있는 걸 보고 안도의 함숨을 내쉬었다.


그럴 줄 알고 맥주를 넉넉하게 사 오길 잘했지 서연은 마리를 보며 생각했다.


“도시락 뭐로 할까? 치즈 돈까스랑 반반 치킨 있는데!”


“뭘 물어! 둘 다지!”


서연은 웃었다. 그래. 이게 마리다운 답이지. 그녀의 인생에 내숭과 부끄러움 따위는 없다.


“대체 벌레란 벌레는 반지하에서만 정기총회하는 거니? 잡아 죽이다, 잡아 죽이다 이젠 그냥 포기했어. 내가 그냥 벌레 사는 곳에 얹혀 산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야.”


서연은 치즈 돈까스 두 개, 반반 치킨 두 개를 꺼내 포장을 벗기고 돈까스는 후라이팬에, 치킨은 전자레인지에 넣었다. 좀 많다 싶긴 했지만 마리는 끝까지 먹을테니까.


“창문도 못 열어. 창문을 열면 아스팔트 위의 흙먼지가 풀풀 들어오는데... 말도 못해.”


적당히 두른 후라이팬이 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치즈 돈까스 겉면 빵가루가 기름과 만나 파사삭 구워지는 소리가 났다.


“어느 날은 고기를 구워먹는데, 연기가 방에 가득차는거야. 내 방이 느와르 영화 세트장인줄....”


야채가 좀 부실한가 싶어 냉장고를 열었다. 양배추 하나를 꺼내 가늘게 채칼로 밀어 살짝 헹구고 케찹과 마요네즈를 섞어 양배추 샐러드를 만들었다.


식탁 위에 양배추 샐러드를 내려 놓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마리의 젓가락 공략이 시작되었다. 큰 접시에 치즈 돈까스를 얹고, 전자렌지에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치킨을 얹으니 제법 그럴 듯한 안주거리가 되었다.


“하여간 손 빠른 년!”


마리는 치즈 돈까스를 한 입 가득 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녀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야! 네 동생은 아직도 안 나오니?”


서연의 얼굴은 잠깐 어두워졌다. 그녀는 마리에게 고개로 거실 쪽 천장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마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아마 지금 거실에서 내가 뭐하고 있는지 다 지켜보고 있을걸?”


“아아... 진짜 소오름... 네 동생 너무 무서워. 나 여기 왔다고 테러 당하는 건 아니겠지?”


“뭐 언니는 유일하게 내가 부르는 사람이니까. 언니가 싫어도, 싫다 소리하러 나오는게 더 싫을걸? 이따 자고 가.”


“미쳤냐. 내가 니네 집이 어떤 집인지 아는데. 방이 있으면 뭐 하냐. 발을 뻗어도 내 자리에 뻗어야 마음이 편하지. 나는 그냥 내 동거 벌레들하고 편하게 잘란다.


너도 맨날 편의점이랑 도서관만 다니지 말고, 스트레스 쌓일 땐 한 번씩 우리 샵에 와. 내가 손톱 제대로 해 줄게. 기분 전환도 되고 좋잖아.”


마리가 서연의 손톱을 보며 쯔쯔 혀를 찼다.


“내가 지금 손톱 이쁘게 다듬으면 뭐해. 나중에. 시험 끝나면 한 번 갈게.”


마리는 그림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와 네일 아트 숍에서 일했다.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해서 반지하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림 그리던 그녀의 손재주는 네일샵에서 빛을 발했다.


고정 고객들이 그녀를 찾았고, 그녀는 제법 샵에서 없어서는 안될 네일 아티스트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내년쯤이면 볕이 잘 드는 방 두 개짜리 빌라 전세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든 젊은 날을 같이 공유해서일까. 서연과 마리는 마치 서로의 벌거벗은 몸을 다 확인한 사이처럼 편안했다. 벗은 몸을 서로 보듬으며 다독여준 사이라 그녀에게는 어떤 부끄러움도 없다.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서라에게는?


그녀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누가 있었나? 서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녀가 의지한 사람이 없다.


스스로를 의지해야만 했기에 딛고 일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접시의 돈까스 속 치즈가 흘러 내렸다. 서연의 마음에서도 미안함이 녹아 흘러내렸다.



*



은우는 책상 위에 데워놓은 도시락을 얹고 먹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먹다가 마우스를 건드리자 데스크탑 컴퓨터가 휴면상태에서 깨어났다.



모니터에는 거실 화면이 나왔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뭘 굳이 이렇게까지...


은우는 거실 카메라로 모니터링까지 해 가면서 하우스 메이트와 부딪히지 않으려는 사람의 심리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방 주인 파티마는 여자인 것 같다.


방에는 아무런 꾸밈이 없었다. 가구나 책상만 보면 여자의 방인지, 남자의 방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파우더룸에 있는 여성용 화장품을 보고서야 그는 파티마가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욕탕이 보이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물을 받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차 오르는 욕탕이 마냥 신기했다. 욕탕 절반이 따뜻한 물로 차 오르기까지 채 몇 분 걸리지 않았다.


따뜻한 탕 안에 들어가자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탕 안에 몸을 뉘인건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늘 고시원 공용 샤워실에서 뒷사람 눈치 보며 젖은 몸을 대충 닦아내고 허겁지겁 나오기 일쑤였다.


가끔 주말에 찜질방에 가서 목욕을 하기는 했지만, 많은 사람들로 늘 번잡스러웠다.


욕조 안에서 그는 생각했다. 이 욕조 바닥에 지하 10층으로 이어져 있다면, 누워 있는 동안 녹아서 끝없이 지하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고.


뽀송뽀송해진 몸을 말리고 침대에 누웠다. 고시원 방 침대는 발치의 장 밑바닥에 발을 구겨 넣어야 길이가 맞았다. 발치에 걸리는 것 없이 널찍한 2인용 침대는 크나큰 감동이었다.


몸도 뽀송하고 마음도 뽀송해졌다. 침대에 드러 누운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은우는 깊은 잠의 수렁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의 눈이 감긴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라의 컴퓨터 모니터에서 거실 모니터링 화면이 작동하고 있었다.


거실에서는 서연과 마리가 두런두런 이야기 하고 있었고, 서라방의 은우는 침대 속에서 달콤한 꿈을 꾸고 있었다.


침대 옆 협탁 위에 얹어 놓은 핸드폰 불빛이 계속 깜박거렸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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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세상 만사가 귀찮은데, 하필 왜 나야? 21.06.12 16 0 8쪽
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7 1 8쪽
41 새로운 세계에 필요한 그것 21.06.10 20 1 9쪽
40 다른 세계에서 걸려온 전화 21.06.09 22 1 9쪽
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8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3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1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2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1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1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9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8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8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7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8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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