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떠-
떠라-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롭고 고요한 순간.
아무도 이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얀 빛이 떠다닌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몸이 가볍다.
은우는 기분이 좋았다.
비단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기분 좋은 감촉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고요함.
그는 눈으로 보지 않지만 모든 걸 볼 수 있었다.
귀로 듣지 않아도 우주의 평화로움을 들을 수 있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각자 떠돌아 다니고 있다.
눈을 떠라-
은우는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일까?”
누군가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
“지은우!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그는 인자해 보이는 얼굴로 은우를 내려보았다.
“누구시죠? 제가 왜 이곳에 있는 겁니까?”
남자가 미소지었다.
“나는 누구도 아니다. 네가 누구도 아닌 것처럼.”
‘이곳은 천국인가?’
“혹시 제가 죽었습니까? 이곳이 천국인가요?”
“아니, 이곳은 천국이 아니야.”
“그럼 대체 여기가 어디입니까?”
“여기는 어느 곳도 아니다.”
“수수께끼를 하시는 거라면 저는 딱 질색입니다.
분명 제가 있던 곳은 고시원이었는데요.”
은우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새하얀 공간이었다.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만다라의 세계. 네가 만든 새로운 우주다.”`
“만다라요? 새로운 우주라니요? 우주는 이런 공간이 아닌데요.”
은우는 우주를 떠올려보았다.
칠흙같이 어두운 세계, 공기도 무엇도 없는 진공의 세계 아니었던가?
남자가 웃었다.
그의 미소가 너무나 따뜻해서 은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도 존재한단다.”
“그런데 왜 제가 여기에 있는 거죠?”
“그건 네가 만다라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깨달은 자의 돌>을 네가 받아들였다!”
은우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깨달은 자의 돌이 뭐지?’
은우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그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박한길은 깨달음을 얻고 해탈의 경지에 들어섰다.
그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현자였어.
그리고 그 현자의 돌을 네가 받아들였다.”
박한길은 박부장님의 아버지의 존함이었다.
은우는 고시원에서의 꿈을 기억해냈다.
그의 목으로 무언가 하얀 돌 같은 것이 들어왔다.
그것은 뱀의 혀가 되어 그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혹시 현자의 돌이라는 것이 박부장님이 주신 삐에로 인형?’
그는 반질반질하게 빛나던 삐에로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남자가 웃음지었다.
“기억해 냈구나.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다. 네가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곳이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까.”
“네? 무슨 말씀이시죠?
”시간이 없어! 이미 세계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은우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평화로운 세계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싶은데, 남자는 은우에게 더 이상 말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사라졌다.
*
아파트 앞.
“전 정말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 원래 혼자 있는 건 잘 했으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그러나 서라를 내려주는 우형의 마음은 무거웠다.
‘다시 아무도 없는 집이다.’
서라는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며칠 후-
서라가 며칠 쉬겠다고 했다.
우형은 알겠노라고 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혹시, 주변에 이상한 사람이 보인다거나, 평소와 다른 일이 있으면 꼭 전화해!”
그는 몇 번이고 당부했다.
“그럴게요.”
서라가 씩씩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후로 연락이 없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우형은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카페 창가 서라가 늘 앉던 자리가 허전하게 보였다.
‘내일은 찾아가봐야겠다’
카페의 문을 닫으며 우형은 생각했다.
*
부스럭- 부스럭
어디선가 들려오는 인기척 소리.
우형은 눈을 떴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가 들었다.
‘잘못들었나?’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부스럭-부스럭
아니다. 확실히 들었다.
우형은 잠이 확 달아났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몸의 털이 다 주뼛 서는 것 같았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방어할만한 무기가 될만한게 뭐가 있을까?’
침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층을 나눠 놓은 2층 침식에는 침대와 협탁, 조명이 전부이다.
그는 조심조심 아래층으로 내려와 두리번 거렸다.
음반, 스피커, 책··· 무기가 될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골프채!’
방 구석에 쳐박혀 있던 골프채 가방이 눈에 띄었다.
회사를 퇴사하고 한 번도 치지 않고 구석에 쳐박아 둔 골프채 가방.
책장 옆 모서리에 장승처럼 서 있는 골프채 가방을 조용히 열었다.
골프 클럽 중 헤드가 제일 큰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한 때 윗분들 모시고 골프깨나 치러 다녔지!’
몇 년만에 꺼내 보는 골프채의 감각이 새로웠다.
버릴까 하다가 쳐박아둔 자신의 무심함이 오늘따라 고맙게 느껴졌다.
후우-
심호흡을 크게 하고 골프채를 꽉 움켜쥐었다.
소리나지 않게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부스럭-부스럭
칠흑같은 어둠이 카페를 감싸고 있었다.
우형의 목구멍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탁-
전구에 불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카페는 환해졌다.
눈이 부셔서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시야가 적응되어 카페가 보였다.
천천히 카페 구석구석을 쳐다보았다.
샐러드바 냉장고쪽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누구얏!”
우형이 크게 소리질렀다. 뱃속의 단전을 끌어올려 있는 있는 힘껏 말했다.
“저예요 아저씨!”
샐러드바 냉장고 옆에 서라가 서 있었다.
손에 샌드위치를 들고 벌쭘하게 서 있던 그녀가 활짝 웃었다.
“저 때문에 깨셨어요?”
“아니, 네가 왜 여기에?”
“배가 너무 고파서 샌드위치 하나 먹으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왜 여기에서?”
“아! 저 이사했어요. ”
서라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우형은 어리둥절한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라가 눈으로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도 하나 드실래요?”
우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냉장고에서 콜라 하나를 꺼내더니 창가 자리로 가 앉았다.
우형도 맞은편에 자리잡았다.
“그럼 집은?”
“내놨어요.”
“멀쩡한 아파트를 놔두고 왜 집을 나와?”
“저 혼자 거기 있음 뭐해요. 이제 아무도 없는데.”
그녀가 콜라를 따더니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샌드위치도 껍질을 까더니 야무지게 앙- 한 입 베어 물었다.
“지금이 대체 몇 신데···”
“잠이 안와서 인터넷 보다가 도저히 배가 고파서 못 참겠지 뭐예요.”
“그럼 집 근처 편의점엘 가지, 여기까지.”
“여기가 저한테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거든요. 크크크크”
서라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어?”
“저, 이 건물 옥탑으로 이사왔어요.”
우형은 맥이 탁 풀렸다.
그제서야 의문이 풀렸다.
“이 녀석, 미리 말을 해 주지 않고.”
“제가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찾아가보려던 참이었어.”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 이제 가족들도 없고.”
샌드위치를 오물거리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아저씨밖에 없어요. 혹시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경우엔”
“무슨 그런 소리를.”
“아뇨.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언니를 중심으로 부모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송아라 부모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래서 최대한 아저씨 근처에라도 붙어 있어야 안심이 될 거 같아서요.”
“그리고 저, 언니를 꼭 찾을거예요.”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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