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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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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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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수 :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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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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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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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고층 아파트! 그 이름도 멋진 크리스탈 팰리스!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이게 뭐야? 공책이잖아.”


동욱은 우형이 서류 봉투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실망한 것처럼 풀이 죽었다.


“난 뭐 숨겨둔 채권이나 땅문서라도 넣어둔 줄 알았더니...”


그가 다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맥주가 동이 났다. 그는 빈 알루미늄캔을 손으로 꾹 찌그러뜨리더니 한 캔 더 가지러 일어섰다.


우형은 봉투에 다른 것이 들었는지 샅샅이 들여다보았지만, 봉투 안에는 오직 손 때 묻은 노트 한 권 뿐이었다.


동욱이 한 캔 더 마시겠냐고 손으로 맥주를 가리켰다. 우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반쯤 남은 맥주캔에 차가운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노트 겉면에는 <므네모시네의 노트>라고 손으로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제목이 있었다.


동욱은 새 맥주를 한 캔 들고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싸구려 인조 가죽 소파이긴 하지만 탄력은 제법 쓸만했다. 띡- 하는 알루미늄 캔 따는 소리가 들리고, 곧 꿀꺽꿀꺽 동욱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맥주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서류 봉투를 다시 열어서 뭐 다른 건 없는지 확인했다.


“제길, 진짜 공책 말고는 아무 것도 없네. 뭐 저딴 걸 서류 봉투에 넣어놨나. 사람 헷갈리게.”


그는 뭐 집안에 쓸만한 건 또 없는지 두리번 거렸다. 그러나 집은 정말 깨끗했다. 문자 그대로 깨끗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전에 나 여기서 자고 갈 때, 작은 방에 안마 의자도 있고, 일인용 침대도 있고 그랬는데 다 어디다 치운거야? 이렇게 없애버릴거였으면 나나 주지. 안마 의자 제법 괜찮은 거였는데.”


동욱은 뭐 하나 집어갈만한 세간살이도 없어서 서운한지 맥주를 한 모금 길게 더 들이켰다.


그 정도로 인철의 집은 휑했다.


예를들어 빈집을 채워가는 과정이 1에서 5단계쯤 까지 있다고 하자.


1단계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


2단계는 가장 기초적으로 필요한 침대며, 가구, 기초적인 부엌 살림들,


3단계는 공기청정기, 에어컨 같이 꼭 필요한 건 아니고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선택적으로 구매하는 제품들.


4단계는 액자, 화분 같이 집을 집답게 꾸미기 위해 구매하는 인테리어 소품들,


마지막으로 5단계는 온라인 쇼핑이나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혹해서 사게 되는 예쁜 쓰레기들.


인철의 집은 정확하게 2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동욱의 말을 통해 유추하자면, 인철은 최근에 5단계에서 2단계까지 정리를 진행한 것 같았다. 혼자 무언가 차근차근 준비한 것처럼.


“박한길? 이거 아버님 함자잖아. 요양병원에 계시던.”


동욱의 말에 우형은 다시 노트로 시선을 돌렸다. 겉면 중앙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므네모시네의 노트 아래쪽 구석에 작은 글씨로 박한길이라는 이름이 씌여 있었다.


“므네모시네? 저게 무슨 말이야?”


동욱이 물었다. 우형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글세...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버님 치매로 요양원에 계셨다는데, 뭔 치매 환자가 저런 알아먹지도 못할 단어를 쓰셨어?”


동욱은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형은 노트의 첫장을 넘겼다.



[내 마음을 바꾸는 행위가 더 쉬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운가]



그가 나지막한 소리로 노트 첫장에 씌여진 짧은 문장을 읽자 동욱이 말했다.


“얼씨구, 이거 치매 노인 맞아? 뭔 철학자가 나셨어?”


우형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70대 노인이 적어 놓은 노트라고 하기에는 일반인이 들어도 잘 모를 이름과 철학적인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인철이 딸한테는 연락이 닿았나?”


“어! 우리 회사에 자잘한 보험 몇 개 들어 놓은 거 있는데, 보험 수익자로 딸래미를 지정해 둔 게 있으니까 그쪽으로 해서 연락했지.”


“뭐래?”


“비행기표 바로 끊어서 온다는데 아마 모레쯤이나 들어올 거 같고, 들어오면 시신 인도 처리 해야지.”


“외동이라 주변에서 겪어본 것도 없고, 도와줄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힘들겠네.”


몇 모금 남지 않은 우형의 맥주캔은 어느새 미지근해져 있었다.


“요새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대부분 자식 하나 키우는 집들이라, 장례식 풍경이 우리 때랑은 다르겠지.”


우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시절엔 주변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임종은 집에서 맞이했던 게 보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임종도 병원에서, 장례도 병원에서 한다.


“왜 지난달 장례식장에서 인철이가 그랬잖아. 캐나다 딸한테는 이야기 안 했다고. 그냥 장례 끝나고 나서 돌아가셨다고 소식만 전할거라고.”


그러고 보니 그랬다. 부친 장례식장에서 손님들을 얼추 치르고 난 인철은 가장 마음 편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좋은 소식도 아니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는 애한테 굳이 이야기 할거 뭐 있냐고. 마음에 부담만 주는 거지, 와서 잠깐 장례식에 참석하고 다시 먼 길 돌아가는 일도 고단할텐데.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딸도 캐나다에서 팍팍하게 산다고 그랬지 아마? 서양애들은 워낙 식 안올리고 그냥 같이 사니까. 둘이 식도 안 올리고 그냥 동거하는 거 같더라고.


인철이도 지가 뭐 보태준 것도 없고 알아서 지 앞가림 잘 하고 사는 것만해도 고맙지 싶은데, 먼 길 들락거리면 그것도 없는 살림에 부담이겠다 싶겠지. 이래서 자식 다 소용 없다니까.”


동욱이 또 하던 레파토리로 돌아간다. 자식, 아내 다 소용없다는 레파토리로.


“너! 아버님 요양원 어딘지 알지?”


“거긴 뭐하게? 이미 고인이 되신 분, 굳이 요양원에 찾아가서 뭐하려고?”


동욱의 동공이 커지고 충혈된 눈이 붉었다. 맥주 두 캔에 얼굴에도 취기가 올라왔다. 맥주를 한 캔 더 가지러 일어서는 그를 붙잡아 다시 소파에 앉혔다.


우형은 노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냥 한 번은 둘러봐야 할 거 같아서.”



*



“크리스탈 팰리스 303동 807호...”


핸드폰에 적힌 주소를 다시 한 번 되뇌이며, 눈 앞의 아파트를 확인했다. 아주 신도시 아파트급은 아니었지만, 지어진 지 10년 내외의 적당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


조경은 잘 되어 있어 제법 나무들이 울창했고, 단지는 쾌적했다. 아무도 은우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파트 관리는 동마다 관리하지 않고 몇 동씩 묶어서 관리하는 것 같았다. 대신 현관문에도 비밀번호를 넣어야 출입이 가능했다.


아무도 은우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는데 은우는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현관 유리문을 바라보고 서 있었던 게 벌써 십여분은 된 것 같다.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문자에 의하면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다. 그런데 가슴이 미칠 듯이 방망이질을 하고 있다. 꼭 남의 집에 강도질을 하러 들어가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흘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대다 박부장님의 부고 이후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와서 그는 일찍 회사를 나섰다. 회사는 부산스러웠고 그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고시원으로 가 짐을 꾸렸다. 배낭 가방에는 잠잘 때 입을 츄리닝과 목이 늘어진 티셔츠 두 장, 속옷 서너장을 챙겨 넣었다.


어차피 길어야 열흘 내외니까 양복은 필요하면 주말에 한 번 세탁소에 맡기고, 츄리닝 하나 챙겨가면 됐지 하는 심산이었다.


‘여기서 계속 서성이고 있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시작할 거야. 할 거면 빨리 들어가야 해. 하우스 메이트가 돌아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은우는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긴장으로 몸이 뻗뻗하게 굳어졌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는 머릿속을 계속 주문을 걸었다.


‘그래! 나는 이 아파트에 사는 친구집을 방문한거야. 비밀 번호가 뭐였더라... 382496...’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의 심장은 터져나올 것 처름 쿵쾅거렸다.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정지상태로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1층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재빠르게 <닫힘> 버튼을 꾹 눌렀다.

문이 거듸 닫히려고 하는 순간,


“잠깐만요!”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쿵쿵쿵쿵- 가슴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할 수만 있다면 심장을 멈춰버리고 싶었다.


대 여섯살 쯤 먹은 여자아이와 애 엄마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 엘리베이터에 얼른 올라탔다.


“저기...”


은우는 얼어붙었다. 왜? 뭐가 문제지? 내가 낯선 사람이라서 눈에 띄었나? 내 가방? 양복차림에 배낭을 들고 온 차림새가 영 이상한가? 아무래도 오래 산 아파트 사람이라 잘은 몰라도 얼굴 정도는 익숙한 사람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바로 구분 되겠지?


그는 가슴이 욱 죄어 오는 것을 느꼈다.


“죄송한데 14층 좀 눌러주시겠어요? 제가 손이 부족해서...”


젊은 아이 엄마는 한 손에 장 바구니를 무겁게 들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여자아이의 손을 놓칠세라 꼭 붙잡고 있었다.


“아... 네...네에...”


그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14층 숫자 버튼을 눌렀다. 그녀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8층 가시나봐요?”


또 다시 심장 박동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은우를 때리기 시작한다. 뭐라고 답해야 하지? 8층 사시냐고 묻지 않고, 8층 가시냐고 물었다. 8층에 사는 사람들을 안다는 걸까? 어설프게 대답했다가는 의심을 살 것 같았다.


“아... 그게... 저...”


그는 이마에서 귀쪽으로 식은 땀이 흘러 내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제발 식은땀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엄마! 아이스... 아이스크림!”


여자아이가 엄마의 다른 쪽 손에 든 장바구니 만지려고 애썼다. 젊은 엄마는 아이의 손이 닿지 않도록 장바구니가 든 손을 길게 뻗었다.


“알았어. 집에 가서 먹자. 지금은 안돼. 조금만 참아!”


아이에게 주의를 준 후, 그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다시 그를 향했을 때, 땡-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은우는 재빠르게 한 걸음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문이 닫힐때까지 기다렸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그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은우의 뒷 모습을 뚫어지게 살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계단식 아파트로 엘리베이트를 열고 나오면 두 집 밖에 없다. 7호와 8호. 오른쪽과 왼쪽 둘 뿐.


그녀는 은우가 오른쪽으로 들어가는지 왼쪽으로 들어가는지 지켜보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자연스럽게 닫힘과 동시에 그녀의 호기심도 닫혔다.


은우는 흘러내린 식은땀을 손으로 훔쳐냈다.


807호


그는 핸드폰의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6시 15분. 하우스메이트가 들어오는 시간은 6시 30분~7시 사이.


혹시 하우스 메이트가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잖아? 오늘 하루쯤은 컨디션도 안 좋고 집에 여느때보다 일찍 와 있다면?


심장이 또 미칠듯한 방망이질로 그를 괴롭혔다. 만약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하우스메이트와 마주친다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안녕하세요. 친구가 잠시 쓰라고 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파티마의 이름이 뭐지? 그는 파티마라는 닉네임 뿐 실명도 모른다.


"하아..."


이 때 14층까지 올라갔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는 8층을 지나면서 은우에게 1층의 누군가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거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시간이 없다. 혹시 지금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하우스메이트가 올라오려고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1층까지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고 있다.

은우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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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세상 만사가 귀찮은데, 하필 왜 나야? 21.06.12 16 0 8쪽
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8 1 8쪽
41 새로운 세계에 필요한 그것 21.06.10 2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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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9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3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1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20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2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3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3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9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5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4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1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4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9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8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8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6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7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8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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