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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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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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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수 :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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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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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 문을 열지 마라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소크라테스] 인간을 깊은 땅 속의 동굴에서 묶인 채 살고 있는 죄수와 같은 존재로 상상을 해 보게나. 죄수들은 어릴 적부터 발과 목을 사슬로 묶여 음직일 수 없는 상태야. 또 그 사슬 때문에 머리를 돌릴 수도 없어서 그저 벽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네.


동굴 밖 사람들이 이 벽을 따라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동물들의 형상을 운반하고 있다면 그 그림자가 동굴의 벽에 비춰지겠지. 하지만 죄수들의 눈에는 횃불에 비치는 동물들의 그림자만이 보일거야.


동굴에 갖혀 평생 횃불에 비친 그림자만을 보아 온 사람들에게 그 밖에 다른 무언가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따라서 그들이 참이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는 그림자에 불과한 것일세.


- 소크라테스의 국가 제 7권, 동굴의 비유 -


카페에 헛 걸음 한 지 벌써 닷새가 지났다. 그의 배낭 안에는 아직 전달하지 못한 인철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서류 봉투는 끈 봉투여서 마음만 먹으면 묶어 놓은 실을 돌려 열어 볼 수도 있었다.


볼 때마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차마 열어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장례식.


은우는 직원들과 함께 한 달 전 찾았던 장례식장을 다시 방문하고 있었다. 그것은 묘한 기분이었다. 은우는 낯설으면서도 낯익은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너! 삐에로 샘플 공장에 보냈지?”


“어.”


“언제쯤 나온대?”


장례식장 입구에서 최대리가 물었다. 병원 영안실은 쥐 죽은 듯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다음주까지 보내준다고 했어.”


그는 최대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최대리가 미팅에 보여주겠다고 가져갔다가, 다음날 소재, 사이즈 다 마음에 드니, 최대한 자신들의 디자인으로 샘플을 뽑아 달란다며 신이 나서 은우에게 달려왔었다.


최대리의 보고를 듣고 양전무도 빨리빨리 진행하라고 채근을 했다. 그러나 그는 삐에로를 보낼 수가 없었다. 갈기갈기 해체될 박부장의 선물. 대단한 선물도,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마음이 그랬다. 보내기 싫다고.


그는 조용히 배낭을 열어 삐에로 인형을 넣었다. 형광등 불빛에 도자기로 만든 얼굴이 하얗게 빛났다.

공장에 메일을 보냈다. 삐에로 사진 디테일과 사이즈, 원단, 안의 철심, 그리고 얼굴은 도기로 만들어서 디자인대로 샘플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중국 공장 담당자인 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지은우입니다. 좀 전에 보낸 메일 받으셨죠? 고객이 실샘플은 없고, 마음에 드는 이미지만 찾아서 보낸 거예요.


그런 느낌으로 샘플 작업하고 싶다길래, 제가 대충 사이즈랑 옷 소재, 얼굴 도기 사이즈는 정리해서 보냈어요.”


왕씨가 말했다.


“그래도 그게 제대로 만들라믄, 실샘플이 있는 게 좋은데요. 아무래도 느낌이 좀 다를거라 뒷말이 좀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저한테 이미지 보내주시면, 제가 이쪽에서 몇 가지 수정할 거 말씀드리고 샘플 컨펌 드릴게요.”


“그리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중간에 몇 가지 소재 컨펌 해 주시면, 다음 주 중에 샘플 보내드리겠습니다.”


왕씨는 베테랑이었다. 조선족인 그는 은우와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 왔다. 척하면 착, 대충 설명해도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퇴근 후, 파티마의 방 모니터 위에 삐에로를 얹어 놓고는, 자신도 왜 삐에로를 보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



한 달 전 박부장님의 부친상에도 조문객은 별로 없었다. 많은 장례식을 가봤지만 박부장님 선친 빈소처럼 조문객이 없는 곳은 처음이었다.


은우 일행이 들어가자 따님이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그녀의 옆에 눈이 파란 외국인 남자가 어색하게 일어섰다.


빈소의 예절을 몰라 어색해 하는 딸 커플 사이에 중년의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박부장님의 친적분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익숙하게 은우 일행을 맞이하였다.


박부장님이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다. 여전히 인자한 웃음이었다. 향불을 켜고, 절을 하는 은우의 마음이 시큰하게 시려왔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살아 계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친척분들로 추측했던 남자분들은 친구들이라고 했다. 한 분이 이 따님을 소개해 주었다. 은우 일행은 따님과 인사를 하고, 접객실에 자리를 잡았다.


“조문객이 거의 없네요.”


자리에 앉자 어색한 침묵을 깨고 현민아가 말했다.


“아버님 상에도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부장님 당신상에는 더 하겠지. 사모님도 사별하셨고, 따님도 캐나다에 산다잖아.”


최대리가 이어 말했다.


“멀쩡하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따님도 경황이 없으실테고...”


“저는 아까 빈소에 남자분들 친척분들인 줄 알았어요.”


이수련이 속삭이듯 말했다.


“저도요. 형제분들이신줄.”


강혁이 의외였다는 듯 맞장구쳤다.


“우리 세대만 해도 외동인 사람들이 많아서... 결혼도 안하고 자식도 없으면 대체 내 장례는 누구한테 부탁해야 되는거야?”


현민아가 생각만해도 무섭다는 듯 몸서리쳤다.


“아니, 싹싹하고 이렇게 이쁜 현민아씨가 왜 그런 걱정을 해? 쓸데없는 걱정일랑 말고 육개장이나 드세요”


최대리가 상 위의 수육을 한 입 크게 넣으며 말했다.



*



화장실에 갔다 나오던 은우는 박부장의 딸과 마주쳤다.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던 그녀는 은우를 알아보고 눈인사를 했다. 그도 눈인사를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박부장님이 따님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침묵을 깨고 은우가 먼저 말을 건냈다.


“그러셨어요? 저한테 많이 서운하셨을 거예요. 하나밖에 없는 딸년이 캐나다에 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위랑 산다고. 살기 바빠서 자주 연락도 못 드렸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는 더 연락을 안 드렸던 것 같아요.”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를 투신하게 만든 우울증의 몫이 그녀에게도 있다고 자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습니다. 늘 저한테 자랑하셨는걸요. 따님 이야기를 할 때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 늘 아빠만 찾았다고.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그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그런 생각 할 필요 없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얼마 전에는 저한테 따님이 보내주셨다고, 삐에로 인형도 주셨는걸요. 귀한 거 주셔서 잘 받았습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네? 전 그런 거 보내드린 적 없는데...”


눈이 파란 동거남이 그녀를 불렀다. 파란 눈의 캐나다인은 그녀가 사라져서 불안해 하고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잡고는, 종종 걸음으로 사라졌다.


빈소로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은우의 뒷골이 서늘해졌다.


*



서연은 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험이 고작 한 달 남짓 남았는데, 몸살 같은 걸 앓다니,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정확히 언제쯤부터였지? 사흘 전? 나흘 전?’


기억이 흐릿했다. 지금껏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컨디션 관리를 철저하게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막판에 이렇게 흐트러질 줄은 몰랐다.


며칠 전부터 꿈자리가 좋지 않다. 어떤 꿈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깨어난 뒤에 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고, 얼굴은 홍조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잠을 설치고 나면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그렇게 사나흘 지나니 머릿속이 멍했다. 약국에서 약을 사다 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독하게 약을 지어 먹고, 차라리 일찌감치 약을 먹고 자야겠다.


약 먹고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지. 약국 문을 열고 나오며 그녀는 생각했다.


집에 와 인스턴트 죽을 하나 먹고 약을 털어 넣었다. 으슬으슬 오한이 들었다. 그녀는 전기 장판의 다이얼을 높은 온도로 설정해 놓고, 몸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내일이면 괜찮아질거야라고 주문을 외웠다.



*



이젠 제법 파티마의 아파트가 익숙하다. 은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밤 12시. 마음 졸이고 두근두근 했던 날들이 몇 번 지나고 나니, 이젠 제법 편해졌다. 12시면 충분히 잠이 들고도 남을 시간이지, 그는 생각했다.


일찌감치 일이 있다며 장례식장에서 식사를 끝내고 일어서던 동료들과는 달리, 그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마땅히 약속도, 갈 곳도 없는 그는 그냥 잠시 더 자리에 앉아 박부장님이 가는 길을 지켜보고 싶었다.


그는 왜 삐에로 인형을 딸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했을까? 그걸 선물로 받은 게 아니라면 은우를 위해 따로 사주었다는 말인가?


하지만 왜? 어린 아이도 아니고 나이 삼십대 후반의 직장 후배에게 인형을 선물하다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길가다 우연히 본 삐에로 인형을 샀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을 줄 마땅한 사람이 없다? 평소 아들처럼 예뻐하던 은우에게 무심하게 주었다? 샀다고 하기 어색해서 딸이 보내준 거라고 말한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고작 이 정도의 상상력밖에는 발휘되지 않았다.


‘그래! 아무려면 어때!’


그는 공장에 샘플로 보내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관문이 열렸다.


여느 때처럼 신발을 신발장 한 켠에 깊숙이 넣고 발꿈치를 들고 살살 걸어갔다. 이제 그는 서둘러 뛰어가지 않았다. 다만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일 뿐이었다.


하우스 메이트의 방을 지날 때였다. 그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살금살금 걸어가는 그의 귀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하우스 메이트는 여자였는데...’


그는 거실 모니터링 화면속에서 서연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파티마의 말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했다. 부엌에서 저녁 데우고, 먹고, 치우고 방으로 들어간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고 11시 이후에는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또 아침 6시 30분 경에는 어김없이 문을 나섰다.


그녀는 늘 혼자였다.


‘그런데 저 방에서 흘러나오는 남자의 목소리는 뭐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온 몸이 긴장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각종 뉴스 제목들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지나갔다.

혼자 사는 여성 사는 곳을 노린 범죄, 강도, 강간 등의 제목들이 떠 올랐다.


얼마 전 뉴스에서 나오던 앵커의 목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혼자는 여성의 뒤를 밟아, 아파트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는 찰나를 이용해 침입, 강간을 한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방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목소리가 톤이 낮은 것일 수도 있다. 잠꼬대 하는 소리를 착각했을 수도 있다.


그는 조금씩 조금씩 더 가까이 자신의 몸을 서연의 방문 쪽으로 가까이 움직였다.


“...있어...”


틀림없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은우 몸은 긴장으로 터져나갈 것 같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쉴 새 없이 벌렁거렸다. 거친 숨소리가 은우의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방에서 새어 나오는 말소리를 자세히 들으려 애썼다.


“...찾고...있어...!”


남자의 목소리는 <찾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는 서연의 방문을 열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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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7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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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8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3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1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2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1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1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8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8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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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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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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