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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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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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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깨달은 자의 미소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사람들은 어려운 말로 된 경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문자나 인쇄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모든 진리의 말들은 사람과 사람의 기억에 의존해서 전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너무 심오하고 너무 어려웠지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남기거나 조각으로 남겼지요. 그건 어떤 경전보다도 이해하기 쉽거든요.”


“그렇겠네요.”


한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려운 경전보다 진언을 통해서 중생을 깨닫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언이 뭔가요?”


한길이 물었다.


“진언은...”


선생이 잠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한 평생 택시 운전을 해 온 한길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주문 같은 것입니다.“


그가 감았던 눈을 뜨고,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말은 소리의 조합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리는 음파로 물질로 채워진 공간에 전해져 다른 사람의 귀에 도달합니다.


이 때 귀가 파악한 소리의 조합은 청각신경에서 중추 신경에 전자기적인 에너지로 전달되지요. 이것을 중추 신경은 전자기적인 신호를 말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여전히 어렵군요.”


여전히 따뜻한 목소리다. 한길은 생각했다.


“대화란 인간 상호간의 정보 뿐만 아니라, 실은 에너지의 교환의 역할을 합니다.

하나하나의 소리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지만, 소리를 결합하여 만든 정보에는 부정적인 것도 있고 긍정적인 것도 있습니다. 그중에 긍정적인 힘이 깃들어 있는 것이 바로 진언입니다.”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진언을 반복하다 보면 잠재의식에 작용하여 우리의 행동을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각과 말의 시너지 효과가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우주 법칙과 일체가 되었을 때, 말은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지요.”


한길이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선생에게 물었다.


“그리고 보니 한때 교회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부흥회라는 걸 했었어요. 통성기도라는 걸 하더군요. 입 밖으로 소리를 내 기도를 하는 거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당에 열기가 가득 차올랐어요. 사람들이 입 밖으로 기도를 하면서 점점 뭔가에 홀린 듯 더 기도 소리가 커졌습니다. 저도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되더군요. 제 입에서도 점점 말이 크게 나오고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선생은 착한 학생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띄었다.


“진언을 계속 외우게 되면, 점점 그 소리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의식이 어느 순간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는 상태에 빠지게 되지요. 신비로운 체험이지요. ”


“선생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한길이 입가에 가득 미소를 띄었다.


“순수한 의식의 상태가 되면 ‘나’라는 대상이 없어도 인식작용은 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인식 작용은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깨면 대상이 없는데 인식 작용은 있습니다. 순수한 의식 상태에서는, 마음을 사용하여 원하는 세계를 건설할 수도 있습니다.”


“아... 또 어렵군요.”


“괜찮습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시도해도 되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되네요.”


한길이 또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선생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이 한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성함이... 뭐라고 하셨죠?”



*



은우는 눈을 뜨고 여기가 어딘지 한참 생각했다. 그렇지, 여기는 파티마의 집이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핸드폰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맙소사. 대체 얼마나 잔거야.’


머리가 약간 지끈거렸다. 컴퓨터 화면의 거실 모니터링 화면에는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하우스 메이트는 보통 오전 6시 30분경에 도서관에 간다고 했던가? 은우는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의류 건조대를 열었다.


땀 냄새에 찌들어 있던 양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옷처럼 보송보송 했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무도 없어 보였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피하려면 조용히 빠져나가는게 좋겠다.


발 뒷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 나와 신발장에 제일 높은 칸에 넣어 둔 신발을 꺼내 신었다. 어제 들어와서 신발장을 열었을 때, 남자 신발이 몇 개 보였다. 저 사이에 넣어두면 잘 모르겠지하고 신발을 눈에 띄지 않게 끼워두었었다.


아파트 현관문 밖으로 한 발 딛는 순간 그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뭘 하느라고 전화를 이렇게 안 받냐?”


지각 직전 헐레벌떡 자리에 앉은 은우를 보자마자 최대리가 다가와 말했다.


“이거 봐라, 이거... 쯔쯔...”


손가락으로 은우의 입가에 묻은 크림과 빵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최대리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은우의 입 안에는 아직 크림빵이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최대리의 말에 급히 삼키다가 사래가 들렸는지 켁켁 하는 소리와 빵 부스러기가 입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아우~ 드럽게. 천천히 먹어 천천히. 누가 쫓아오냐! 젠장 내 옷에 다 튀었네.”


어깨를 탈탈 털며 최대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미안. 미안.”


은우는 그제서야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5통이 와 있었다. 모두 최대리의 것이었다.


“전화 했었어?”


“했었지. 아주 많이.”


“왜?”


“내가 네 여자친구도 아닌데... 어제 제 정신이 아닌거 같아서 걱정되서 했다. 임마.”


“어제 몸이 좀 안좋아서.”


“요새 바쁘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비실대?”


차마 고시원에서 사흘 밤을 설쳤다는 이야기도, 얼굴도 모르는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기 어려웠다. 설명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번잡스럽고 길다.


“운동부족인가봐.”


“이거이거... 내가 같이 피트니스 클럽 끊어서 다니자니까. 나 다니는데 PT 괜찮은데... 소개시켜줘? 내가 스페셜 고객이라 소개하면 싸게 해 줄텐데...”


“아니, 됐어. 그냥 아침에 조깅이나 하든지.”


“생각바뀌면 말해라.”


최대리는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이 은우의 어깨를 다시 잡았다.


“참! 너 이 삐에로 인형있지? 이거 대박날 거 같아.”


“무슨 소리야?”


“우리 지난 번에 갔던 와인바. 나 다른 팀이랑 거기 한 번 더 갔었거든. 그런데 와인바 형님이 다른 테이블 아는 팀이랑 자연스럽게 소개시켜줘서 이야기 하다보니까 영화 감독이랑 제작사 뭐 그런데더라고.”


은우는 책상 위에 있는 생수병을 열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 생수병이 언제 사 둔 거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며칠 된 것 같기는 한데... 미지근한 물이 목을 타고 넘어 갔다. 입안에 돌다다니는 빵들을 물이 청소해서 내려보내고 있다.


“야! 거기서 공포영화를 찍었는데 두 달 있다가 개봉한다는거야. 근데 완전 대박 예감.”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은우는 영화가 대박인게 당췌 뭐가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의 말을 어디서 끊어야할지 감이 안온다.


최대리는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이래서 네가 안 된다는 거야. 잘 들어. 여기가 엄청 중요하니까. 이 영화가 캐스팅부터 제작비까지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어.


너 그 누구냐! 송아라 알지? 요새 엄청 핫하잖아. 젊은 신예들중에서는 걔가 톱이지. 남자 배우는 누군줄 알아? 무려 한준혁이야. 한준혁.”


“한준혁이 나온다고?”


한준혁이라는 말에 은우도 귀가 솔깃했다. 최근 한류 드라마가 중국과 아시아권에 대히트를 치면서, 월드 스타의 반열에 올라간 한준혁. 국내에서 나오는 모든 시나리오는 한준혁의 손을 먼저 거쳐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슬슬 감이 오지 않냐? 한류 톱스타 배우 한준혁. 이미 기대감 대박에, 시나리오가 또 엄청 잘 뽑혔다는거야. 그래서 그거 주연 따려고 여자 배우들이 박이 터졌었다는 그 영화!”


최대리는 자기가 마치 감독이라도 된 것 마냥 들떠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제작사 쪽에서 이미 작업된 영화를 여기저기 돌려본 모양이야. 다들 이번 영화 흥행 대박이라고 난리가 나서, 돈 좀 뿌려도 되겠다 싶은 거지.”


“그래서, 그게 뭐?”


은우는 아직도 공포영화의 흥행이 그들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녀석 혼자 신이 나 떠드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영화에 삐에로가 나오거든.”


최대리가 회심의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검지 손가락으로 은우의 모니터 위에 있는 삐에로 인형을 가리켰다.


“자기들 영화 핵심 소재가 삐에로인데, 이거 대박 날 거 같으니까, 돈 좀 미리 뿌려도 되겠다 싶은가 봐. 삐에로로 기념품을 만들고 싶대. 영화관에 좀 깔아 놓고, 반응 좋으면 온라인이랑 일반 유통 쪽으로도 뿌리려는 거지.


그게 다겠냐? 이거 뜨면 중국, 동남아에서 판권 사가겠다고 여기저기서 난리가 날텐데, 이런 소품에 라이센스 걸어서 팔면 또 짭짤하니까.


요새 디즈니나 그런 컨텐츠 업체들이 돈을 컨텐츠에서 버냐?다 저런 라이센스 제품 팔아서 남기는 게 재미가 있는거지.”


그러면서 최대리는 은우의 모니터 위에 얹혀진 삐에로 인형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찰칵, 다양한 각도로 찍으며 최대리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자기들이 컨텐츠 쪽은 전문인데, 이런 제조, 잡화쪽은 또 잘 모르잖아. 그래서 몇 개 업체 컨택해서 삐에로 인형 이미지랑 샘플 받아보긴 했는데, 소재나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게 딱히 없었다는 거지.


거기까지 듣고 이 형님이 딱~ 감이 왔다 이거야. 이거! 이거 제법 귀엽잖아. 안에 철심으로 되어 있어서 자유자재로 몸도 구부릴 수 있고, 얼굴 소재는 도자기라 고급스럽고 독특한 느낌 있고...


이 느낌으로 가는거지. 뭐 옷하고 헤어스타일만 영화에 나오는 삐에로 이미지로 제작하면 되니까.”


그는 핸드폰을 접사 모드로 바꿔가면서 계속 찍어댔다.


“이거 터지면, 우리 한동안 이걸로 먹고 살 수도 있겠어. 감독 형님이 그러는데, 일단 초도물량으로 3만개 만들고, 영화 대박나면 인형도 라이센스 붙여서 비싸게 해외로 보낼거니까 수 십 만 개는 일도 아니라고 하더라고. 어때 이 정도면 죽이지?”


감독형님이라고 하는 거 보니, 벌써 한 번 만난 자리에서 호형호제 말 트기로 한 모양이다. 은우는 가끔 이 녀석의 남들에게 파고드는 이런 살가운 면모가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사진 보내고, 마음에 든다고 하면 일단 내가 이걸로 미팅을 할거야. 일단 보여주고 사이즈, 소재랑 만져보고 괜찮다고 하면 이거 니가 중국 업체에 보내서 샘플 뽑아달라고 요청하고 단가 주면 돼. 개봉이 두 달 뒤니까 빨리 컨펌 받고 진행해야 될거야. 시간이 많지는 않아.”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박부장님이 준 물건이라는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박부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들은 게 고작 어제인데. 은우는 공장에 보내진 샘플의 운명이란 어떤 것인지 잘 알았다.


아마 저 삐에로 인형을 보내면 조각조각 해체될 것이다. 그리고 모자, 머리카락, 얼굴, 옷, 철심 등이 모두 단가로 계산되어 숫자로 남을 것이다.


새로 오는 샘플은 고객이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 새 머리, 새 얼굴, 새 옷을 입고 등장하겠지. 한 번 공장에 보내져 해체된 샘플은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은우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최대리가 자리로 돌아가고 삐에로를 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 그의 눈 앞에 컴퓨터 채팅창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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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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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세상 만사가 귀찮은데, 하필 왜 나야? 21.06.12 15 0 8쪽
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7 1 8쪽
41 새로운 세계에 필요한 그것 21.06.10 19 1 9쪽
40 다른 세계에서 걸려온 전화 21.06.09 21 1 9쪽
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8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2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0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1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1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7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0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0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3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1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7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7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6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7 1 12쪽
»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8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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