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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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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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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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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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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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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취향이 제법인데?’


카페 문을 닫고, 숙소 방문을 열었을 때 서라는 감탄했다. 카페 주인이 방으로 쓰는 공간은 제법 깔끔했다. 집에 딸린 제대로 된 방은 아니었지만, 큰 창이 나 있어서 채광은 좋을 것 같았다.


숙소 공간은 복층으로 공간을 나누었다. 계단으로 위로 올라가면 전체 공간 절반쯤의 공간을 침실로 쓰게 되어 있었다. 그곳에는 더블베드가 있었다.


잠만 자는 공간에 복층으로 공간을 나눈 부분이라 층고가 낮아져 그런지 침대 프레임에는 다리가 없었다.


언뜻 보면 매트리스만 깔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침대 옆에는 낮은 협탁과 모던한 조명, 그리고 잡지나 책을 몇 권 꽃을 수 있는 거치대가 있었다.


아래층은 흰색과 검정색으로 매치한 깔끔하고 심플한 오피스 느낌으로 꾸며 놓았다. 3인용 검정 소파와 유리 협탁, 벽에는 붙박이형 TV와 스피커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한쪽 벽면은 흰색 문짝을 달아 미닫이형으로 붙박이장을 만들었다.


TV 좌우로 음반과 CD 같은 것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창쪽에는 검정색 가죽으로 만든 리클라이너가 있었고 리클라이너 맞은편 벽쪽에는 책이 가득 꽂혀 있었다. 리클라이너 옆에 스탠드 형으로 헤드폰 거치대가 세워져 있는 걸 보니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서라는 아침에 새 소리 잠이 깼다. 눈이 부셨다. 그러고보니 어제 블라인드를 치는 걸 깜박했다. 밤이라 블라인드가 오픈상태인 걸 인식하지도 못했다.


카페가 남향이라 햇살이 잘 들어오는데다, 창쪽 길은 가로수들이 제법 크게 자라 있어서 그런지 새 소리가 들렸다. 대로변도 아닌데다 2층이라, 번화한 홍대 거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그녀는 침대에서 기어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리클라이너에 누웠다. 손을 뻗어 헤드폰 거치대에 외롭게 걸려 있는 헤드폰을 꺼내 머리에 써 봤다. 리클라이너 옆 협탁에 리모콘이 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재즈가 흘러나왔다.


‘마일즈 데이비스’


따뜻한 햇살, 편안한 의자와 발 거치대, 귀에서 울려 퍼지는 감미로운 쿨 재즈 음악... 카페 주인은 이런 삶을 살아왔나? 자기만의 취향이 확실한 사람.


그러고 보니 카페도 그랬다. 모로코풍의 인테리어는 대중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특하고 이국적인 마이너한 취향이다. 물론 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까 손님들이 좀 들기는 하겠지만, 대중들은 모두가 좋아하는 걸 쫓아다니니까.


맛집에 사람들이 더 몰리고, 브랜드 카페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더 선호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대중들은 더 좋아한다.


하지만 서라는 그 반대였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 싫다. 그래서 그녀가 이 카페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사람 없는 한적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커피 머신에서 지잉-하고 울리며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커피향이 피어올랐다. 설탕을 넣지 않은 라떼는 뜨겁고 고소했다.


‘11시부터 문을 열면 된다고 했으니까...’


그녀는 한 바퀴 뛰고 오기에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  



다이어트를 하면서 조깅은 서라에게 규칙적인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옷이고 뭐고 갈아입을 걸 챙겨오지 않았지.’


흠뻑 젖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상태로 카페에 헉헉거리며 들어온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흔쾌히 대답하고 나서 인터넷만 하고 있었더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아저씨가 나간다고, 필요한 내용을 적어 두었으니 시간 날 때 보라고 했을 때도 건성건성 고개만 끄덕였는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제 어쩐다...’


서라는 아저씨의 방에서 샤워를 하고 나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축축하게 땀에 젖은 옷을 다시 입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디보자, 벽에 붙박이로 된 옷장을 열어보았다. 라운드, V넥, 폴로티셔츠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성격이 깔끔한 스타일인지 옷도 칼라별로 분류가 되어 있었다.


서라는 스판이 많이 들어가 신축성이 좋은 검정색 라운드 스포츠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검정색 슬림핏 치노바지를 꺼냈다.


주인 아저씨 키가 대충 175가 조금 안되는 것 같고, 적당히 마른 몸에 근육이 붙어 있는 스타일이다. 바지 길이가 좀 길기는 했지만 롤업으로 접으면 되니까.

그녀는 발목까지 길게 내려온 치노 팬츠를 돌돌 말아 올렸다. 검정색 슬림핏 치노와 스판 티셔츠는 제법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마치 처음부터 그녀의 옷이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제법 괜찮은 스타일이라고 서라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건드린다고 했지만, 이 정도는 양해해 주시겠지. 뭐 아저씨 오기 전에 입었던 옷들은 적당히 세탁소에 맡겼다가 걸어 놓으면 감쪽 같을 것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서라는 바에서 어제 남은 샐러드를 하나 꺼내 열고 먹기 시작했다.

늘 앉던 자리에 노트북을 켜고 일단 집 안을 모니터링 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


그녀는 삐에로가 어제 들어갔는지 들어가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가겠다고 말하기는 했었는데 그가 들어가는 건 보지 못했다. 그녀가 집안을 모니터링 했을 때에는 서연과 서연의 친구만 보였다.


서라의 방 안에는 카메라가 없다.


‘들어갔으면 갔다고 말이라도 해 주지.’


그녀는 채팅방을 열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파티마] 좋은 아침입니다. 모두들 굿모닝!


[황금박쥐] 저는 이제 굿 나잇하려구요. 어제 밤새 작업했거든요.


[파티마] 작업 많이 하셨어요?


[황금박쥐] 시간 내에 뭐라도 결과를 내야해서, 일단 만들어는 놨어요. 보내놨으니까 곡이 괜찮은지 아닌지는 제가 자고 일어나 보면 알게 되겠죠.


[아나스타샤] 저도 디자인하느라 어제 늦게까지 근무했는데, 이따가 회의라 죽을 맛이예요. 이 영양가 없는 회의는 정말 회의적이예요. 회의를 위한 회의의 회의. 누가 저 좀 구해주세요. 미치겠어요. 참! 어제 삐에로님 어떻게 되었나요? 저 좀 궁금했는데...


[황금박쥐] 여기 궁금한 사람 한 명 더 손이요!

[파티마]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제 소식을 따로 안 주셔서...


[아나스타샤] 못 가셨나? 사흘씩이나 잠 못 주무셨다고 해서 잘됐다 싶었었는데...


[황금박쥐] 아무래도, 흔쾌히 가기엔 부담도 좀 있겠지요.


[파티마] 다른 개인적인 사정이 생기셨을 수도 있구요. 더 나은 여건이 마련되서 그쪽으로 가셨을 수도 있으니까.



*



은우는 최대리가 사라진 뒤, 채팅창을 열어보았다. 대화 내용을 읽고 나서 그제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파티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제 목욕 후 너무 곤히 잠에 빠진데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허둥지둥 출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삐에로] 죄송합니다. 소식이 늦었습니다.


[황금박쥐] 와우~ 삐에로님! 살아계셨네요. 그렇지 않아도 자러 가기 전에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아나스타샤] 제일 먼저 궁금해 한 건 저라는 거 잊지마세요. 이래뵈도 우리 고시원 동기아닙니까? ㅋㅋㅋㅋ


[파티마] 저도 궁금했답니다. 어디 더 좋은데로 가신건가 해서요.


[삐에로] 아... 정말 정말 죄송해서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하하하


간단하게 세 줄 요약으로 말씀드리면,


1. 파티마님 댁에서 잤다 – 파티마님! 감쏴~ 감쏴~ 엎드려 절 세 번 할게욥~~


2. 샤워 후에 골아떨어져버려서 아침까지 한 번 도 깨지 않았다.


3. 눈 떠 보니 출근 시간이 지나 있어서 간신히 지각직전에 출근.


이상입니다. 파티마님 댁은 너무 좋았습니다. 간만에 정말 푹 잤어요. 언제 제가 이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아나스타샤] 정말 훌륭한 결말이네요. 이제 마음 놓고 미팅 준비하러 가도될 듯요


[황금박쥐] 저는 숙면 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파티마] 잘 주무셨으면 됐죠. 그 은혜는 제가 잘 접수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


10시 30분.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서라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아저씨가 메모해 준 내용을 보니, 10시 30분~11시 사이에 식자재 배송이 온다고 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침에 그가 준 메모에 맞춰 알람 설정을 해 두었었다.


잠깐 노트북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대 쪽으로 이동해서 아저씨 컴퓨터를 열었다. 바탕화면에 카페 점포 매출 현황 파일을 열었다.


사람이 이렇게 들지 않는 카페에도 지출은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이렇게 적자가 나는데 계속 유지하는 이유가 뭘까.


서라는 파일을 보며 생각했다. 하긴 그러고 보니 이 카페는 그녀 외에 손님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카페 문 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영차~ 안녕하십니까~ ”


커다란 박스를 안은 채, 엉덩이로 유리문을 밀며 남자가 카페로 들어섰다.


남자는 계산대 앞쪽에 박스를 내려 놓더니 커피, 음료수, 완제품 샐러드와 미니 케잌류 같은 것들이 꺼내기 시작했다. 순간 남자는 늘 맞이하던 사람이 아닌 서라가 서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침묵했다.


“여기 사장님...”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분간 안 계세요.”


“아... 그럼 여기 아르바이트하시는 거예요?”


“네”


그녀는 되도록 짧게 대답했다.


그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그녀를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머리끝부터 계산대에 노출이 된 허리 부분까지 천천히 시선이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기분 나쁜 시선이었다.


“이렇게 이쁜 아가씨를 어디서 구했대? 강사장님 재주가 좋네. 아하하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박스 물건을 꺼내 계산대에 얹으면서 시선으로 계속 그녀를 훑어 내려갔다.


“혹시 남자 친구 있어요?”


마지막 원두 커피 봉투를 꺼내 올려 놓고 나서 남자가 물었다.


“왜요? 없으면 아저씨가 제 남자 친구 해 주시게요?”


서라는 남자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 보았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그녀의 목소리, 하지만 흐트러짐 없이 또박또박한 말투. 남자는 서라의 당돌하고 직선적인 말에 당황한 듯 더듬거렸다.


“아니, 뭐 꼭... 그런건 아니고...”


서라가 말했다.


“아저씨!”


서라는 남자의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네...네?”


“제가 어렸을 때 학교 폭력에 엄청 시달린 적이 있거든요?”


남자는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뚱뚱하고 못생겼었죠. 저보고 돼지냄새 난다고 그랬어요. 매일같이 시달렸죠. 짐.승.처.럼.”


남자는 갑자기 더워지는지 목장갑을 벗어 바지 뒷 주머니에 끼워넣었다.


“그런데... 제가 걔들이 저 괴롭히는 동영상 싹 다 뿌렸어요. 쪽팔린 거 무릅쓰고.”


“예...예?”


식은 땀이 한 방울 그의 얼굴로 흘러 내렸다. 땀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남자는 서라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가 자살한다고 생쑈 했어요. 일부러.”


“......”


남자는 서라의 눈빛을 피하기 시작했다.


“저 그 때 아파트 값 벌었어요. 3억. 그래서 지금 놀아요. 그 때 많이 벌어놔서.”


남자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계속 주머니에 손을 닦으며 눈을 끔벅거렸다.


“그래서 제가 그 뒤에는 어디에 갈 때, 꼭 CCTV 있는 곳만 다녀요. 저기 보이시죠? CCTV?”


남자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CCTV가 남자와 서라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성희롱으로 고발 당하고 싶지 않으시면 앞으로 처신 똑바로 하세요.”


“아니, 저, 그게 아니고......”


남자는 손의 땀을 주머니에 닦더니,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한 뒤 총총히 사라졌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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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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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2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1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1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7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8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7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8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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