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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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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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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수 :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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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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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빈소를 찾아 온 남자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서라는 삐에로가 올려준 내용을 재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세헤라자데 편집자님은 출판사에서 일하세요?

[편집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삐에로] 뉘앙스가 특이한데요? 그렇다도 아니고 아니다도 아니고,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가요?


[황금박쥐] 오호~ 삐에로님! 날카로우심.


[편집자] 제가 하는 일을 여기 계신 분들에게 이해시켜 드리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세헤라자데] 오~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을 하시나보다. 기대기대 됩니다~


[편집자] 아니요. 딱히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고객의 요청하는 부분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황금박쥐]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운다는 게 무슨 말이죠? 이해가 안 되는데요? 영화 맨인블랙도 아니고.


[편집자] 물리적으로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지요. 망각의 동물이니까요.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예술 활동, 작품 활동 자체가 목적이지 그것으로 돈을 번다든가, 유명해지든가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요.


[세헤라자데] 에엣?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요? 다들 작품 활동을 하는 이유는 유명해지고 돈도 벌기 위해서 아닌가?


[편집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황금박쥐] 아 뭐 있다고 치고, 그런 분들이 원하는 건 뭐죠?


[편집자] 사후에 그분들이 남긴 작품을 다 소각한다든가, 이미 출판된 작품이라면 계약 종료 시점 이후로는 절판을 한다든지, 작품이라면 다시 되 사와서 파기한다든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자료들은 모두 삭제시키는 작업들을 하는 것이죠.

사생활에 관련된 기사 등을 포함해서 모든 것들을 정리합니다.


[세헤라자데] 와우~


[삐에로] 그런 일을 원하는 창작자가 있다는 것도, 그런 일을 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황금박쥐] 저도 처음 들었어요.


[세헤라자데] 이를테면 <디지탈 장의사>랑 비슷한 거 같은데요?

여기저기 회원 가입이 되어 있다든가 커뮤니티 같은 거 가입되어 있는 사람들 기존에 올렸던 게시물들이나 아이디 같은 거 지워주는 일 하시는 거랑 좀 비슷해 보여요.


[편집자] 아하하. 개념은 그쪽이랑 제일 비슷하겠네요. 저는 좀 더 공인들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요.


[황금박쥐] 일종의 공인이 된 창작자들의 사전, 사후 작품들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방향으로 편집해 준다, 뭐 그런 건가요?


[편집자] 그렇습니다. 대개는 삭제가 많지만요.


서라는 그들의 대화를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역시 편집자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삐에로가 말을 걸어왔다.


[삐에로] 재밌죠?


[파티마] 그러게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삐에로] 저도, 다른 분들도 저 때 대화 나누면서 굉장히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창작자가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거나, 죽은 뒤에 사후 작품들을 폐기한다거나 하는 것도요.


[파티마] 그래서 그랬을까요?


[삐에로] 뭐가요?


[파티마] 제 기억으로 편집자라는 분이 그랬던 거 같은데, 이 채팅방에서 꼭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고, 꾸며서 거짓말로 이야기해도 상관없다··· 뭐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었나요?


[삐에로] 아! 그랬죠.


[파티마] 보통은 다들 친해지게 되면 그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하지, 거짓으로 이야기해도 된다고 하지 않잖아요.


[삐에로] 듣고 보니 그렇군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파티마] 그리고 지금 저 채팅방은 서로 개인 채팅을 자유롭게 보낼 수 없잖아요. 다 막혀 있던데요.


[삐에로] 네. 철저한 익명방이죠.


[파티마] 지난번에 제가 제 이메일 알려드린 것처럼 특정한 사람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싶어도 불가능하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메일이나 개인 연락처를 주어야만 연락이 가능하구요.


[삐에로] 그렇죠.


[파티마] 아마 제 메일 정보는 모두가 다 가지고 있겠죠.


[삐에로] 채팅 내용을 지우지 않았다면, 아마···도요?


[파티마] 그리고 유일하게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편집자뿐이네요? 가입할 때 받은 정보들이 있으니까.


[삐에로] 그런셈이죠.


[파티마] 요약하면,

편집자는, (1) 이 방 모든 사람들의 정보를 다 가지고 있다.

(2) 하지만 이 방의 사람들은 편집자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

(3) 누군가 사적으로 이 방의 사람들과 대화나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선,

그 사람의 개인 정보를 모두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렇게 되나요?


[삐에로] 아! 듣고보니 그렇네요. 저는 이런 식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대단하시네요.


[파티마] 실은, 저 편집자라는 분, 본인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 좀 신경이 쓰였었거든요. 물론 저도 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지만.


[삐에로] 참! 그러고 보니, 파티마님 가입하기 전에 편집자님이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다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것도 제가 찾아볼게요. 잠시만요.


삐에로가 편집자와의 대화를 찾고 있는 사이, 서라는 아까 검색하던 <죽음의 단면>에 대해 더 검색을 해 보았다. 아까 삭제된 글 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검색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서라는 검색어에 <탁형일>이라는 이름을 넣었다.

역시 많은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간혹 검색 엔진에 뜨는 본문 글들- 물론 모두 삭제된 글들이었다 -로 유추해 볼 때, 그는 소설은 대부분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삐에로와의 채팅창이 반짝거렸다.


[삐에로] 여깄네요.


[파티마] 직장인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너무 시간을 뺏고 있는 것 같아요.


[삐에로] 아니예요. 괜찮습니다. 저한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야, 이 정도쯤이야. ㅋㅋㅋㅋ


그가 과장된 말투와 이모티콘을 덧붙였다.


[파티마] 그냥 저의 호기심일 수 있는데, 번거롭게해서 죄송.


[삐에로] 얼마든지요. 일단 복사해서 붙여 둘테니, 한 번 보세요. 그렇지 않아도 위에서 부르셔서 여기까지 하고 잠깐 나가야 할 듯요.


[파티마] 네, 네. 감사.


삐에로가 장문의 글을 복사해 주고 사라졌다.



*



은우는 파티마도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도 파티마의 아파트에서 지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그녀의 방에서는 파티마라는 사람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어떤 흔적도 찾기가 어려웠다. 옷장 안에는 극도로 적은 수의 옷이 있었다.


그것도 대부분 검정색 트레이닝복 몇 벌과 시커먼 어지간한 여성이 입기에는 엄청나게 사이즈가 큰 검정 롱 패팅,


책상 위에는 랩탑 모니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파우더룸 화장대에는 브랜드를 알 수 없는 로션과 선크림, 그게 다였다.


단지 은우가 파악한 건 옷장을 통해 파티마가 여자라는 정도. 그녀의 성별 외에 나이, 직업, 이름까지 뭐 하나 아는 것이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은우는 편집자보다 파티마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다.



*



내일이면 발인. 삼일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입구 방명록 쓰는 자리에 앉아 있던 동욱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인철의 딸 커플은 영어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파란눈의 동거남은 장례식장에서 심심한지 핸드폰으로 영상을 틀어 놓고 보고 있었고, 죽음처럼 조용한 장례식장은 그의 영상 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둘의 대화가 점점 언상이 높아졌다.


“매튜, 지금 여기서 그런거 틀면 안돼,”


“왜 안 되는데?”


“여긴 장례식장이잖아.”


“어차피 아무도 없잖아.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는데 뭐 어때서?”


“그럼 소리를 줄여. 소리 없애고 영상만 보면 되잖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야지 알아듣지.”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히스테릭해졌다. 매튜, 아버지, 죽음, 장례식, 예절 그런 단어들이 오가며 소리가 높아졌다.


인철의 딸은 드디어 폭발을 했는지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 조문객은 없지만 우형과 동욱 때문에 부끄러워졌는지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버렸다.


당황한 파란 눈의 사내는 엄마를 잃어버릴까 두려운 어린 아이처럼 당황한 기색으로 그녀를 따라 나갔다.


적막이 감도는 장례식장 안.

우형의 머릿속에서 지금까지의 일들을 폭죽처럼 터져올랐다.


- 한길의 노트, 철학적인 글들, 독특한 그림들, 진선생, 십일면관음보살상, 웃는 모습으로 목을 맨 한길


‘그렇다면...’


우형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인철은 아버지의 죽음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그리고 그는 왜 투신을 했을까? 그의 집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자신이 발견한 내용에 대한 이야기가 집안 어디에도 없었다.


‘왜?’


너무 많은 조각들이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었다. 이 조각들을 꿰어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어린시절에는 제법 머리가 좋다고 들었던 우형이었지만, 이 퍼즐만큼은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 조각이 부족하다.


꾸벅꾸벅 졸던 동욱이 눈을 떴다. 고개로 딸 커플이 어디로 갔냐고 눈짓을 했다. 우형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입구쪽에서 인기척 소리가 났다.

인철의 딸 커플이 들어오는가 우형은 고개를 들었다.

한 남자가 입구에서 잠시 오도카니 서 있었다.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던 동욱이 옷매무새를 다듬고, 눈을 끔벅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가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빈소로 들어왔다.


그는 돌아오지 않는 인철의 딸 커플을 대신해 손님을 맞았다.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절을 한 그는, 영정 사진 속 인철의 얼굴을 한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가 이야기했다. 목소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 우형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얇은 검정 터틀넥 니트, 챠콜 그레이 콤비, 윗면은 얇은 뿔테, 아랫면은 무테로 만들어진 안경, 그에게서 지적인 풍모가 느껴진다.


“저는 인철의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그렇군요. 고인의 자제분은...”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마 곧 돌아올 겁니다. 실례지만 인철과는 어떻게 되시는지요?”


그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그 분의 아버지와 인연이 있습니다.”


우형은 아! 아버지하는 감탄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정말 좋은 분이셨지요.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인철이까지 이렇게 될 줄은...”


“혹시 아드님께서 남기신 말은 없는지요?”


그가 말했다. 그러다 우형의 갸웃거리는 표정을 보더니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우문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그가 뒤돌아 빈소를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보던 우형은, 순간 머릿속을 번개처럼 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동욱 앞에 놓인 방명록을 들여다보았다.


진.선.생.


그는 몸은 전율로 떨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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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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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세상 만사가 귀찮은데, 하필 왜 나야? 21.06.12 16 0 8쪽
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7 1 8쪽
41 새로운 세계에 필요한 그것 21.06.10 19 1 9쪽
40 다른 세계에서 걸려온 전화 21.06.09 22 1 9쪽
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8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2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0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1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0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0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7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7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7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7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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