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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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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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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수 :
211,636

작성
21.05.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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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풀지 못한 숙제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은우의 몸은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서 있는 것인지, 누워 있는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어디지? 지금 대체 몇 시야?’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공간. 심지어 공기의 흐름도 느낄 수가 없었다. 눈을 아무리 깜박여보아도 검은 공간뿐 이었다.

그는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다.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물속에 있는 것 같았다. 짓눌린 듯한 묵직한 무게감. 손가락 하나 움직이려고 해도 돌덩이에 눌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발밑에서 몸을 건드리는 무언가의 촉감. 어둡고 습한 무언가가 그의 몸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느낌.


‘이 기분! 언젠가 한 번쯤 느꼈던 것 같아!’


은우는 이 기분 나쁜 촉감과 이 공간에 언젠가 들어와 본 적이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거기까지 생각해 내자 굳어 있던 그의 몸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손과 발이 움직였다. 그는 손과 발을 버둥거렸다.

생각처럼 그의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마치 다른 중력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팔을 한 번 들어 올렸다 내리는 데에 몇 분은 걸리는 것 같다.


마치 영상을 10배 느린 화면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


다리 쪽에서 무언가 잔뜩 그를 감싸고 있다. 심지어 그것은 점점 그의 몸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유영하듯 아래로 내려간 손으로 그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힘껏 끌어당겼다.

무언가를 움켜쥔 손이 슬로우 동작으로 조금씩 위로 올라온다.

그는 부릅뜨고 손에 쥔 그것을 확인하려 애썼다.


‘대체 뭐야, 이 기분 나쁜 건. 왜 내 몸을 타고 자꾸 올라오는 거야.’


어둠에 익숙해진 곳에서 조금씩 눈 앞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손에 움켜쥔 그것.


‘머리카락?’


자신의 몸을 타고 올라 오르는 것은 머리카락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 머리카락은 살아 있는 것처럼 그의 몸을 타고 올라오고 있다.


‘대체 왜, 머리카락이 내 몸을 휘감고 있는...’


은우는 소리를 지르려 애썼지만 목 구멍에 무언가 꽉 막힌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부릅 뜬 눈은 이번엔 감겨지지 않았다. 손에 쥔 머리카락이 굵어졌다. 머릿카락은 밧줄 굵기만큼 굵어졌다. 더이상 움켜쥐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간신히 몇 가닥만을 움켜쥐고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끄러운 감촉. 머리카락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머리카락 끝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멍울 같은 것이 맺혔다. 꽃 봉오리 같은 것이 머리카락 끝에서 피어 올랐다.


꽃 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변이 조금씩 밝아졌다.


봉우리는 점점 커졌다. 하얗고 맨질맨질하고 반짝였다. 봉우리가 그의 코 앞에서 멈췄다. 너무 눈이 부셔서 감고 싶은데 눈이 감겨지지 않았다.

빛이 조금씩 사라지자, 그 봉우리가 웃었다.


“얼굴? 삐에로의 얼굴?”


봉우리는 어느새 삐에로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달걀처럼 매끈한 얼굴이 그의 코 앞에서 뱅글뱅글 돌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얼굴은 뱀의 얼굴로 바뀌었다. 굵은 뱀이 혓바닥을 내밀며 쉑-쉑- 소리를 냈다.


뱀의 눈이 은우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부드럽게 그의 몸을 한 바퀴 감쌌다. 그의 손은 어느새 뱀을 놓아주었다. 더 이상 붙잡고 있을 힘이 없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그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는 꼼짝할 수 없었다.

뱀은 그의 조금의 여유도 없이 온통 칭칭 감쌌다. 얼굴 이외에는 이제 그의 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뱀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혀.를.줄.게.”


뱀의 얼굴이 은우의 얼굴만큼 커졌다. 입을 벌리자 입 안에서 굵은 줄처럼 두꺼워진 뱀의 혀가 그의 입 안으로 들어왔다. 혀가 너무 굵어서 목구멍이 꽉 차 올랐다. 웁-웁-웁- 구역질이 올라왔다.


식도와 거의 같은 정도의 굵기의 뱀의 혀가 그의 목구멍을 옥죄이고 있었다. 눈에서 눈물이 차 올랐다.

뱀의 혀는 끊임없이 그의 몸으로 밀려 들어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뱀의 그의 눈을 쳐다 보고 있었다. 세로로 줄을 그어 놓은 것 같은 검은 눈동자가 점차 희미해져갔다. 눈동자는 어느새 거울이 되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의 정신이 아득히 멀어져갔다.


*


부탁을 한다면 누가 좋을까 생각해 보았네.

내 빈약한 인맥에서 떠 오르는 사람이 두 명이 있더군.

그 중 하나가 자네였네.

동욱과 나, 자네 우리 어린 시절 제법 잘 어울려 다녔지.

자네는 머리가 좋아서 어려운 문제 푸는 것을 늘 좋아하지 않았나


자네라면 내가 풀지 못한 숙제들을 풀어 줄 거라 믿네.


시간이 없어 길게 쓸 수가 없어. 그들이 쫓아 오고 있어.

내 힘으로는 그들을 당해낼 수 없어. 아마 나는 곧 죽게 될 거야.

조심하게 그들은 모든 곳에 있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우리는 그들의 세계를 인식할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한 눈에 내려보고 있다네.

마치 고차원의 인간이 개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듯이 말이야.

아무도 믿지 말게.


49제가 다가오고 있어. 그들이 그걸 먼저 발견해서는 안되네.

아버지의 두개골로 만든 차차는...



그의 손편지 글씨가 점점 휘갈겨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 급히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글씨가 점점 읽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작은 원형의 돌로 구워서 감추어 두었네.

내가 아들처럼 생각하던 친구에게 맡겨두었...



마지막 두 문장은 너무 급히 휘갈겨 써서 읽기가 어려웠다. 우형은 몇 번이고 마지막 두 문장을 들여다 보아야 했다.


여기까지가 끝이었다.


‘49제!’


우형은 핸드폰을 열고 달력을 열었다.


“아버님 장례식 날짜가...”


달력에 1월 21일 빈소 방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1월 20일 사망, 죽은 날로부터 49일이 되는 날은,”


그는 달력으로 7일씩 7번을 넘겨, 49일에 해당하는 날이 언제인지 확인했다.


3월 10일.

3월 10일이면 오늘이다.


‘인철을 쫓는 사람들, 차차’


‘인철을 쫓는 사람들이라면 오후에 카페에 왔던 사백안의 남자들?’


머릿속에 복잡하게 많은 단어들이 입력되어 돌악갔다. 그는 관자놀이를 어루만졌다. 그의 뇌가 흥분하고 있었다. 그들은 카페에서 차차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차차는 그에게 없었다.


그가 사백안의 남자들이 카페에 있던 장면을 복기해냈다.

세 번째 남자가 그랬다.


[이 곳에서 차차의 기운이 느껴진다。 분명히]


‘차차는 화장 후, 뼈가루로 만든 조형물이라고 했지.’


우형은 서라가 인터넷에서 찾은 내용을 떠올렸다.


인철의 편지 마지막에 아버님의 두개골로 만든 차차를 아들처럼 생각하는 이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은우가 찾아왔다.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렇다면, 차차는,


‘은우에게 있다!’



*



서연은 은우가 보내준 채팅 내용을 읽고 있었다. 채팅창에서 파티마라는 이름이 서라인 것 같았다.

개인 메일, 집주소,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대화 내용들을 보면, 틀림없이 서라가 맞는 것 같기는 했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서연은 ‘하우스 메이트’였다.


‘하우스 메이트,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그녀의 말이 서운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연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의 방이 닫힌 뒤, 몇 년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 서연은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그녀가 답답하기도 했다. 엄마가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서라에게만 오냐오냐 하는 것도 보기 싫었다.


‘집안 가득 우울한 구름이 퍼져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 때 자신을 합리화해야만 살 것 같았다.

숨막히는 집 분위기가 싫어, 도망치듯 영국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다시 돌아왔을 때, 여전히 닫힌 방문을 보고는 담담해졌다. 남의 일인 듯 그녀는 그녀대로, 서연은 서연대로의 삶을 묵묵히 살아왔다.


서라는 서연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카메라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서연이 집에 들어오고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연은 서라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서연의 볼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하우스 메이트라는 표현이 자꾸 마음을 찔렀다. 아직 그녀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라는 언제 돌아올까? 서라가 돌아오면 이번엔 꼭 그녀와 대화를 해야겠다.’


그녀의 눈꺼풀이 스르르 잠겼다.



*



집은 바뀐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서라는 많이 바뀌었다.

카페에서 지낸 열 흘간, 여러 일들이 있었다. 서라에게 지난 몇 년간 세상은 온라인 속에만 존재했다.


사람들도 모두 온라인 세계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카페 함사에서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는 바깥 세상이 너무 재미있었다. 우형과 은우의 이야기는 그녀의 가슴을 뛰게 했다. 쿵쿵쿵쿵- 심장이 뛰고, 혈관의 피가 빠르게 돌았다.


그녀는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우형은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잠들었나?’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늦은 시간이니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



다음날.


서라는 반짝 눈을 떴다. 시계는 오전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거실 모니터링 카메라에는 빈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잠깐 뒤돌아 방문을 바라보았다.


스마트 도어락.


그녀는 도어락 잠금 장치를 해제했다.

조깅으로 한 바퀴 돌고, 빨리 카페 함사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



우형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는, 아침이 되자 카페에 나와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짙은 원두 향이 카페에 흘러퍼졌다.

어제 차차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은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서라가 자신의 모니터를 보여주며 차차에 대해 설명해 주었을 때에도 그는 그저 묵묵히 읽기만 했다.


‘그렇다면 그는 아직 차차가 무엇인지 모른다!’.


인철이 그에게 주었지만, 그가 인식하지 못하는 그 무엇.

그것이 무엇일까. 우형의 목이 건조해졌다. 커피가 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는 인철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었다.


조심하게 그들은 모든 곳에 있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우리는 그들의 세계를 인식할 수 없지만, 그들은 우리를 한 눈에 내려보고 있다네.

마치 고차원의 인간이 개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듯이 말이야.


사백안의 남자들이 찾고 있었던 것을 은우가 가지고 있다면, 그가 위험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마음이 초조해졌다.


오전 8시.


지금쯤이면 전화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핸드폰에 남겨진 그의 전화번호. 그는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신호음이 울렸지만 그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사는 곳이라도 알아두었어야 했는데,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인철의 회사 주소?’


그는 동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어쩐일이셔?”


동욱이 별 일도 다 있다는 듯 말했다.


“너 인철이 회사 연락처 알고 있지?”


인철의 보험은 다 그가 처리했으니, 틀림없이 그에게는 회사 연락처가 있을 것이다.


“있긴 있지. 뭔데?”


“급해. 빨리 연락처 좀 줘. 주소도 있으면 같이.”


“나 원, 다짜고짜 보따리 내 놓으라고 성화네. 기다려봐. 문자로 보내줄게.”


머릿속이 타 들어가는 것 같다. 은우는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우형은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문자 알림이 도착하자마자 주소를 확인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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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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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세상 만사가 귀찮은데, 하필 왜 나야? 21.06.12 16 0 8쪽
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7 1 8쪽
41 새로운 세계에 필요한 그것 21.06.10 20 1 9쪽
40 다른 세계에서 걸려온 전화 21.06.09 22 1 9쪽
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9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3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1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2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3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9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5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1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1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4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9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8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8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7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8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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