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을 찾아서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3개월 전.
“아저씨!”
전화 속 서라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은우의 회사에서 최대리와 이야기 중이던 우형은 서라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달려갔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급박한 상황을 느꼈다. 혹시 서라에게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의 심장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하고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 서라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손을 들어올렸다.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그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은우라는 이름이 보였다. 서라가 헐레벌떡 뛰어 온 우형을 자리에 앉히고 얼음물을 가져다 주었다.
차가운 얼음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짜릿하고 쨍한 느낌이 목을 타로 흘러 내려갔다.
“일단 이 상황을 이해하시려면 제 이야기부터 들으셔야 할 거예요.”
우형이 호흡을 차츰 가라앉았다.
서라가 침착하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 언뜻언뜻 망설이는 눈빛이 서렸다.
“제가 좀 남들과는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우형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어떤 비장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라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 내는 일은 고통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당한 학교 폭력, 송아라와의 관계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과의 단절된 과거를 천천히 이야기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방 안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보낸 시간에까지 이르렀을 때, 우형의 가슴 한켠에도 통증이 밀려왔다.
꿈 많고 밝아야 할 어린 시절을 이렇게 어둡고 쓸쓸하게 가둬 두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십대 소녀가 감당해 내기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서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는 침착했다. 그녀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송아라의 SNS를 보며 자신도 송아라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이 120킬로에 달하던 고도 비만에서 지금의 모습까지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카페 함사에서 지내면서 바깥 세상과의 소통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녀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우형은 나이는 어리지만 서라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아픔이 적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 저렇게 예쁘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에 보이지 않는 그늘이 많다는 것도.
“하지만 뭐, 다 지나간 일이니까.”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생각 보다 강한 아이다.’
우형은 생각했다.
*
“그리고 이건... 제가 지은우씨랑 채팅방에서 만나 이야기 한 거..”
서라는 노트북 모니터를 우형에게 보여주었다.
대화를 하면 지워버리는 성격이었지만, 이 비밀 채팅방 내용은 대부분 가지고 있다.
서라가 챗방에 들어오기 전 나누었던 대화들도 지은우가 보내 주었었다.
다행이라고 행각했다.
‘아! 그러고 보니, 비밀 채팅방에 들어가기 위해 퀴즈를 풀어야 한다고 했었지?’
우형은 그제사야 기억이 났다.
서라가 우형에게 처음 말을 건 것도 비밀 채팅방에 들어가기 위한 퀴즈의 답을 아냐며 물어보던 그 때였다.
그 비밀 채팅방에 지은우가 있다고 했다.
“삐에로라는 닉네임이 지은우예요.”
‘지은우가 서라네 집에 머물고 있었다니.’
“그리고 이건 언니 핸드폰이예요.”
서라가 테이블 위의 핸드폰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간의 일들은 놀라웠다. 보이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서 그들은 연결되어 있었다.
서연, 서라, 은우, 우형 이 넷은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묶이게 된 것일까.
우형은 문득 궁금해졌다.
서연의 핸드폰에 은우의 연락처가 있었다. 은우의 회사, 연락처, 그리고 그가 거쳐하는 고시원 이름도 그들의 대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우형은 서라와 은우의 고시원으로 출발 했다.
미세먼지를 머금은 하늘은 뿌옇게 흐렸다.
고시원에 들어가기 전,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서라도 긴장된 표정이었다. 시멘트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심장 박동이 더 크게 울려퍼졌다.
고시원은 퀴퀴한 냄새로 차 있었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다닥다닥 나누어 놓은 공간에 환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우형은 생각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주인 아주머니가 우형과 서라를 이상한 눈빛으로 훑어 보았다.
“누구 방 보시려고?”
나이차가 제법 나 보이는 남녀 둘이 고시원에 들어왔으니 이상하게 쳐다볼 법도 했다. 우형은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저희는 방을 보러 온 게 아니고...”
“지은우를 찾으러 왔어요.”
서라가 고시원 주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의 당찬 눈매에 고시원 주인의 눈빛이 한결 누그러졌다.
“은우 총각? 은우 총각은 왜?”
“우리 오빠예요! 엄마가 고시원에 있지 말고 집에서 출퇴근하라고 그렇게 말하는데, 말 안 듣고 고시원 생활 하니까. 저보고 찾아오라고 난리거든요. 어딨어요? 우리 오빠?”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잘도 했다.
우형은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신은 고시원 주인의 훑어보는 눈빛에 주눅이 들고 말았는데,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순발력이 좋았다.
“아! 그랬구만. 아유~ 우리 은우 총각, 우리 고시원 우수 고객인데 말야.”
그녀가 입맛을 쩍쩍 다셨다.
그녀를 따라 좁고 긴 통로를 지나갔다. 어둡고 퀴퀴한 고시원 복도 끝자락에 멈춰선 그녀는 24호 방문을 가리켰다.
“여기예요.”
그녀는 우형과 서라에게 말했다.
똑똑-
“근데 방에 있을라나? 출근했을 시간인데.”
문을 두드리면서도 그가 방에 있으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지 주인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서 고시원으로 오는 길입니다.”
“잉? 그랬어? 그럼 어디 아픈가?”
똑똑-
“은우 총각! 은우 총각 안에 있어?”
고시원 주인의 노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두 사람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갔다.
“이상하네. 방에 있으면 대꾸가 있을 법도 한데.”
“열쇠 없어요? 빨리 열쇠로 열어봐요.”
서라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아니! 남의 방이라도 그렇게 함부로 열고 들어가면 안 되지.”
“안에서 무슨 일이라도 난 거면, 신고할 거니까 그런 줄 아세요.”
고시원 주인은 신고라는 단어에 깜짝 놀란 듯 움찔했다.
괜히 신고해서 경찰이 들락거리고 하면 골치가 아파질 게 뻔했다.
“아니, 내가 뭐 안 열겠다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이렇게 보채서야 쓰나. 다 순서가 있는 법인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고시원 주인은 한결 부드러은 목소리로 황급히 사라졌다. 그녀가 열쇠를 찾으러 간 사이 우형과 서라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서라는 겁이 덜컥 났다.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래야지.”
우형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기 비켜봐요.”
고시원 주인이 마스터키로 문을 열었다.
두근 두근 -
문이 열렸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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