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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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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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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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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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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636

작성
21.05.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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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백안의 사내들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병원에 가야 하나?’


은우는 시계를 보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의 모니터에는 아직 마무리를 다 하지 못한 작년 하반기 구매분석 데이타가 떠 있었다.


간부들은 회의실에 들어가서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장은 오늘도 오후 느즈막히 회의를 소집했다. 과장급들은 오늘도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글렀구나 하는 똥 씹은 얼굴로, 유령처럼 하나하나 회의실로 빨려 들어갔다.


단톡방에서 황금박쥐가 한 말이 자꾸 떠올랐다. 앞에선 괜찮다고 말했지만, 환청이면 뇌에 이상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그의 말이 계속 거슬렸다.


삼십 대의 나이에 정신질환이라니 말도 안돼. 그는 애써 부정하며 모니터에 집중하려 했지만, 숫자들 속에서 자꾸 환청, 뇌, 정신질환 이런 단어들이 앵앵거렸다.


어젯밤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을 빼고는 아무 이상이 없다. 너무 멀쩡해서 병원에 가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어제 한 번뿐 이잖아. 고시원에서 들은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을거야. 그 분이 잠꼬대를 한 거겠지.’


그는 애써 떠오르는 잡념들을 꾹꾹 집어 넣고 모니터에 마지막 데이타를 입력했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렸다. 여러 명의 인기척 소리.


낯선 인기척에 모두들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셋이 들어왔다. 은우의 시선도 그들에게 향했다.

간헐적으로 수군대던 사무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세 명의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170대 중반의 키, 마른 몸, 까무잡잡한 피부, 머리는 일부러 박박 밀어버린 듯한 쉐이브 헤어. 다른 무엇보다 그들의 형형한 눈빛에 모두들 압도되었다.


사.백.안


은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눈동자가 주변 사방에 흰자위가 보이는 눈이다. 마치 고양이의 눈 같다.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도 눈에서 섬뜩함이 느껴졌다.

눈동자가 마치 중천에 뜬 달과 같다. 흰자위가 상하좌우로 두드러져 눈동자의 초점을 읽을 수가 없다.


세쌍둥이 같은 모습의 사백안의 남자들,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인철의 자리가 어디인가?”


검은 양복들 중 한 명이 현민아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마치 복화술을 하듯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말을 했다.


사무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현민아는 그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녀의 떨림이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의 은우에게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잠시 아무 말 못 하고 있다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박부장의 자리를 가리켰다.

그들은 박부장의 자리로 천천히 움직였다.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은우는 자신의 자리로 가까워지는 세 남자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세 남자의 얼굴이 뱀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의 흰자위가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번들거렸다.


그들은 아무 감정도 없어 보이는 눈으로 박부장님의 책상 위를 살펴보고 서랍을 뒤적였다.

몇 번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곤, 찾는 것이 없었는지 뒤돌아 나갔다.


그들은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아무 소리 없이 스스슥-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사무실은 마법에서 풀린 듯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수련이 현민아의 자리로 쪼르르 달려갔다. 곧 강혁, 최대리도 합류했다.

현민아의 안색이 아직도 창백했다. 이수련이 말했다.


“괜찮아?”


현민아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처럼 울먹였다.


“아···아··· 무···무서워···”


이수련이 현민아의 등을 토닥거렸다.


“민아씨, 진정해요. 다 갔어. 괜찮아 이제.”


최대리가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그분들 눈빛 보셨어요?”


강혁이 몸서리쳤다.


“그거, 사백안이라고 부르는 거 맞죠? 사방으로 흰자위가 다 보이는 거. 저 살면서 사백안인 사람 처음 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세 명이 다 사백안일 수가 있어요?”


이수련이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는 듯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사채업자들이겠죠?”


강혁이 말했다.


“그런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남의 회사에 와서 저렇게 뒤지고 갈 사람이 어딨겠어?


장난기가 넘치던 최대리도 신중해졌다.


“박부장님 언제 그렇게 사채를 쓰셨을까? 사모님도 암으로 돌아가시고, 아버님도 요양원에 모셨다더니 그래서 쓰셨겠죠?”


강혁이 마치 자신의 추측이 사실인 양 떠들어댔다.


은우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모니터 자료의 프린트 버튼을 눌렀다. 프린터에서 용지가 인쇄되는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일동의 시선이 인쇄물 소리에 프린터로 향했다가 은우에게 닿았다.


최대리가 말했다.


“에이! 기분도 꿀꿀한 데 우리 감자탕이나 먹으러 갈까? 요 옆 옹골찬 감자탕에서 소주 한 잔 어때? 내가 쏜다!”


은우는 최대리의 말을 뒤로하고 인쇄된 자료를 양전무의 자리에 올려 두었다.

뒤에서 최대리가 어디 가냐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


우형은 동욱을 홀로 남겨 놓은 채 장례식장을 뛰쳐나갔다. 복도, 병원 입구까지 샅샅이 뒤졌지만 이미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병원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그는 그만 맥이 빠지고 말았다.

다시 빈소로 돌아오니 인철의 딸 커플이 언제 싸웠냐는 듯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체 왜 갑자기 미친놈처럼 뛰쳐 나가는 거야? 사람 놀래게.”


동욱이 지루한 듯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해댔다.


“진선생, 진선생이었어.”


우형은 중얼거렸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하냐? 저기 가서 눈 좀 부치지 그래? 내일 발인이니까 조금만 더 참자! 무리하면 쓰러져 임마.”


동욱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더니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


서연의 몸은 불덩어리같이 뜨거웠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여전히 꼼짝할 수 없는 몸 속에서 그녀의 의식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식이 들어왔을 때에도, 그녀는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녀가 하는 행위들, 주변 환경의 변화 그런 것들을 제거하고 나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분명 눈을 뜨면, 익숙한 그녀의 방이 보일 것이라는 걸 잘 아는데, 눈이 떠지지 않는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그녀의 의식이 갇혀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이러다 영원히 눈이 안 떠지는 게 아닐까?’

‘지금 이 상태는 혹시 식물인간의 상태일까?’


띠리리리-

밖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라인가?’


그녀는 목청껏 서라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


6시 30분.


은우는 냉장고에서 도시락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가 돌아가는 동안 핸드폰 불빛이 깜박거렸다. 최대리의 전화였다. 그는 전화기를 꺼버렸다. 아마도 지금이라도 감자탕집에 오라는 전화겠지.


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망자의 뒤에서 신나게 떠벌리고 있을 무리들이 마뜩치 않았다.


땡-


전자레인지 안 도시락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은우는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간소한 오늘의 저녁을 차렸다.

그리고 서라의 데스크탑을 잠에서 깨워냈다. 모니터 왼쪽 모서리에 걸터앉아 은우를 바라보는 삐에로를 보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일이 발인이라고 했지!’


*


서라는 가게 문을 닫고 주인아저씨 방에 들어가서야 한숨 돌렸다.


오후에 갑자기 손님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송아라가 인기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그녀가 카페 <함사> 이미지에 누른 [좋아요] 버튼, 이 하나로 인해 일이 일파만파 커져 나갔다.


‘이곳 분위기 너무 마음에 드네요. 저도 촬영 스케쥴이 없을 때, 한번 가 봐야겠어요.’


송아라의 댓글은 위대한 예언가의 메세지와도 같았다. 백 만의 [좋아요] 군단이 카페 <함사>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카페 이미지는 여기저기 순식간에 퍼져나가더니, 오후에는 갑자기 손님들이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손님들 때문에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녀는 카페에서 가지고 온 시리얼 바 하나를 까서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노트북을 열었다.


모니터를 보자, 그제야 생각이 났다. 삐에로의 대화창이 아직 열려 있었다. 서라는 그가 붙여준 대화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편집자] 제가 운영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 어느 날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한 남자가 회사 업무차 일본으로 출장을 가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그날 밤, 퇴근하고 오는 길에 길에서 이상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다짜고짜 그를 붙잡고, 이렇게 말했죠.

이런 말 아무한테나 하지 않는데, 비행기 타지 말라고. 그걸 타면 당신은 죽는다고 말이죠.


[세헤라자데] 소름끼치네요. 밤길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서워서 잠 못 들 것 같은데.


[황금박쥐] 게다가 낯선 사람이 그가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알고 말했을까요. 저런 이야기를 듣고 출장을 갔다면, 용자네요.


[세헤라자데] 당연히 못 타죠. 그래서 그 사람은 비행기를 탔나요, 타지 않았나요?


[편집자]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이후에 더이상 커뮤니티 에 글을 올리지 않았으니까요.


[삐에로] 그는 비행기를 탔고, 죽었을까요?


[세헤라자데] 아우... 삐에로님! 너무 무서워요.


[편집자]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시점에서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죠.

'비행기를 탄다'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먼저 비행기를 탔다고 했을 경우, 또 두 가지 경우로 나눠집니다. ‘사고가 났다’와 ‘사고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지 않았을 경우까지 포함하면 총 세 가지의 경우가 만들어지죠. 두 가지의 선택과 세 가지의 결과값이 존재합니다.


[황금박쥐] 아니아니, 잠깐만요.

지금 말씀하시는 내용대로라면, ‘무.한.대.의.경.우’의 인생의 수가 존재하는데요. 그리고 어떤 것이든 일단 선택하면, 결과값은 ‘완결된 상태’로 있다는 말씀이신거죠?


[편집자] 네.


[황금박쥐] 하아- 너무 어렵네요.


서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지만 편집자가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


동욱이 병원측과 장례비용을 정산하고 있었다. 인철의 딸은 곁에서 아저씨들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거라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었다. 파란 눈의 캐나다인은 오늘이 장례의 마지막 일정이라는 것에 신이 난 것 같았다.


우형은 직원을 따라 시신 안치실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한기가 있었다.


‘기분탓이겠지.’


안치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그는 진선생의 존재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요양원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했었는데, 실존하는 사람이었다니, 모든 것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연속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한 걸음 앞에 있던 병원 직원의 큰 소리에 그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박인철이라는 이름이 표시된 시신 안치실 문이 열려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시신 안치실.


직원은 당황한 나머지 황급히 비어 있는 다른 안치실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데에도 인철의 시신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는 우형과 안치실을 번갈아 보며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25년을 근무했지만, 이런 일은 처...처음이라.”

그는 말을 더듬었다.


‘시체에 발이 달린 게 아니라면 대체 어디로 간 거란 말인가’


우형은 눈 앞에서의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고 망연자실 서 있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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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1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1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7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0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0 1 12쪽
»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1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7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7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6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7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8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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