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797
추천수 :
48
글자수 :
211,636

작성
21.05.19 08:00
조회
34
추천
1
글자
12쪽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십일면관음


십일면관음보살은 정면에 세 얼굴(三面), 왼쪽에 세 얼굴, 오른쪽에 세 얼굴, 뒷면에 한 얼굴, 정상에 한 얼굴 등 모두 11면을 가지고 있다.


정면은 자상(慈相)으로 착한 중생을 보고 자비심을 일으켜 기쁨을 주고자 함을 상징한다. 왼쪽 얼굴은 진상(瞋相)으로 악한 중생을 보고 비심(悲心)을 일으켜 고통을 없애고자 한다. 오른쪽 얼굴은 백아출상(白牙出相)으로 정업(淨業)을 행하는 자를 보고 불도(佛道)에 더욱 정진하도록 찬양, 권장함을 나타낸 것이다.


뒷면 얼굴은 폭대소상(暴大笑相)으로 선악간에 모든 중생을 보고 악한 자는 고쳐 불도를 닦도록 한다. 그리고 정상 얼굴은 대승근기(大乘根機)를 가진 이들에게 가장 오묘한 불도를 설하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 표정으로 여러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적절히 구제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진선생? 공책에 그렇게 씌여 있었다고?”


“어!”


운전대를 잡은 동욱의 볼이 불만으로 미어 터질것만 같았다.


“아니, 그 양반이 치매인데 진선생이라고 썼든 김선생, 이선생이라고 썼든 알게 뭐야. 상담오는 의사는 여자 의사 한 명 뿐이라던데, 그 분이 진짜겠지.”


“그렇게 믿기에는 노트에 씌여진게 너무 이상해서”


“대체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그냥 정신이 없는 노인네가 써 놓은 글이라기에는 너무 정돈되어 있어. 철학적이기도 하고.”


“정신이 맨날 나가있냐? 오락가락 한다잖아. 멀쩡한 날에는 자기 삶에 대해 돌아보고 싶기도 하고 그랬나보지.”


동욱이 답답한지 운전대를 쾅쾅 치기 시작했다.


“너는 평생 네가 살아온 생활 패턴과 환경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철학적으로 깊이 사색해 보고 싶다고 해서 수 십 년 공부한 학자처럼 말투가 변할 거 같냐?”


우형이 동욱에게 물었다.


“그게 말이 되냐?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데. 내가 되고 싶다고 돼 그게? ”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인철이 아버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평생 택시 운전하며 소박하게 사신 분인데, 노트에 적어 놓은 글들은 그 분의 삶에서 나온게 아니야. 어딘가에서 듣고 받아 적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글들이야.”


“그럼 그 뭐, 방문한 의사선생님이 좋은 말씀을 주셔서 적어놨나보지.”


“치매 환자를 보는 계약직 의사들이 환자 하나 앞에 앉혀 놓고 신화, 철학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있겠어? 못 들었어? 그 요양원 원장이 하는 이야기. 한 푼이 아쉬워보이던데.”


동욱은 입을 다물었다. 제길, 도무지 이 녀석 뭐에 한 번 꽂히면 다른 건 생각하지 않는 녀석이었다는 걸 고등학교 졸업 이후 수 십 년 만에 비로소 깨달았다.


“게다가, 그 묘사, 진선생이라는 사람에 대한 묘사도 너무 생생해. 옷차림, 안경 모양까지 써 두었어.”


“아 그건 환각을 볼 수 있다잖아. 중증 환자가 되면...”


그가 참다참다 못 참겠다는 듯 말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그림들...”


우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노트에는 각종 신화에 관한 이야기, 철학적인 질문들 같은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노트 사이사이에 그려 놓은 그림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그림들이었다. 그림은 몽환적이면서 기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붉은 공간에 뼈만 앙상한 말과 사람이 타고 있다든가, 의자 위에 화석화 되어 가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든가, 서로 부둥켜 앉고 있는 해골들이라든가...


어둡고 습하며 그로테스크한, 그러나 환상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왜 경주 석굴암에 가야 하는 건지 설명 좀 해 줄래?”


동욱이 네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에서 경주 석굴암까지 4시간이 나왔다. 중간에 휴게소에 잠깐 들리고 뭐하고 하면 넉넉하게 5시간은 잡고. 끼니는 또 제 때 제 때 챙겨야 하니까 내려가면 오늘 올라오기는 글렀다.


‘이 미친놈을 믿고 내가 왜 따라가는 건지.’


동욱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 경주에 맛집이 뭐 뭐 있었더라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경주....경주라... 그래 묵해장국이 있지.’


메밀묵을 뚜걱뚜걱 채 썰어서 진한 멸치육수에 묵을 말아 고명으로 김치 쫑쫑 썬 것과 모자반을 듬뿍 얹어서 양념 간장을 얹은 것,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묵해장국 생각을 하니 운전할 맛이 났다.


우형은 노트를 펼쳤다. 다른 그림들에는 제목이 없었다. 이 그림만 빼고.

아마 다른 그림들은 당신의 상상력으로 그린 그림들일 것이다. 유일하게 제목이 있는 그림은 노트 마지막 페이지의 그림이었다. 그 그림 아래에는 제목이 있었다.



<십일면관음보살상>



그리고 그 제목 밑에 다른 글씨체로 경주 석굴암 이라는 작은 글씨가 주석처럼 달려 있었다. 우형은 직감했다. 이것은 인철의 글씨일 것이라고. 그는 아버지의 죽음의 의미를 찾아 경주 석굴암에 다녀온 것이리라.


경주 석굴암...입으로 되뇌이면서 우형은 경주에 마지막에 다녀온 건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


사장이 양전무를 얼마나 불러댔는지 양전무는 사장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 와중에 삐에로건을 언제 들었는지 양전무가 은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최대리한테 이야기 들었어. 잘 해봐. 시간이 촉박하다니까 중국 공장에 이야기 해서 최대한 빨리 샘플 만들어서 보내라고 하고. 응? 이 건 잘 되면 알지? 내가 사장님한테 잘 이야기 해 놓을테니까.”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장실로 달려갔다.


‘뱀 같은 자식!’


은우는 그가 툭툭 치고 간 어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틀림없이 삐에로 건이 잘 되면 자신의 공으로 만들어서 가로채겠지. 그가 잘하는 방식이었다. 무언가 회사에 공이 될 만한 일들은 사장한테 달려가 자기 공이라고 칭찬받고, 고객사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든가 손실이 발생하면 교묘하게 아랫사람들의 실수로 몰아가곤 했다.


사내 채팅창이 깜박거렸다.


[현민아] 오늘의 늬우스! 오늘의 늬우스!


[이수련] 뭘까? 뭘까?


[현민아] 박부장님 부재로 회사 구조조정 들어간다는 썰.


[최대리] 아유~ 우리 민아씨 소식하나는 빠르다니까. 나보다 쵸큼~ 아주 쵸오큼 못 미치지만, 인정, 인정!


[현민아] 제가 커피마우스 키우는 거 아시죳. ㅋㅋㅋ


[강혁] 커피 마우스가 뭐예요?


[현민아] 낮 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고, 사장실 말은 커피마우스가 듣는다. 뭐 이런거 몰라요?


[이수련] 네가 커피쥐야? ㅋㅋㅋㅋ 말은 된다. 아까 사장실에서 뭐 큰소리나던데 대체 왜 그랬대?


[현민아] 아... 그거? 지난달 박부장님 상당한 뒤에, 회사에도 자주 결근하고 그랬었잖아요.


부친상 당해서 힘들겠거니 뒷정리하라고 회사에서 배려해 줬더니, 자살이 뭐냐고. 회사에 누를 끼쳐도 유분수지, 이러면서 노발대발...


양전무는 사장한테 살살거리면서 맞장구 치던데요?


[이수련] 역시~ 양전무는 사장이랑 손발이 척척 맞아. 아니 죽은 사람 앞에 놓고 그런 말들이 어떻게 나온대?


[강혁] 구조조정 들어가면 사람 더 뽑는다는 건가요?


[현민아] 그럴리가! 기존의 체제가 도매쪽 파트와 백화점 파트가 있었잖아요.


[이수련] 양전무가 백화점 총괄, 박부장님 도매 총괄이잖아.


[현민아] 그거 양전무를 부사장으로 올리고 통합으로 양전무가 지휘하려나봐요.


[강혁] 그럼 중간 총괄 책임자 없이?


[현민아] 그냥 기존에 각 부서 실무 책임이 고과장, 민과장이 있으니까 계속 그 사람들이 총괄 책임하는거지.


[최대리] 그게 뭐야! 그럼 그냥 양전무만 좋은 거잖아.

[현민아] 바로 그거죳!

[최대리] 에이~ 그거 너무 별로다.


은우는 대화창을 닫아버렸다. 대화창에 깜박깜박 계속 불이 들어왔다. 역시 양전무는 개자식이다. 은우는 생각했다.


박부장과 양전무는 입사 동기라고 했다. 회사 초창기에 사장과 의기투합하여 중소기업이지만 제법 괜찮은 중견 기업의 규모까지 키웠었다고 했다.


그 때 사장이 바람이 났다. 그리고 전처와 이혼하고 새살림을 차리는 과정에서 회사 재산을 개인적으로 많이 유용했다고 한다. 배임, 횡령 이런 이야기는 큰 회사에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작은 회사는 작은 규모대로 알곡은 족족 빼갔고, 현금은 뒤로 빼돌렸다. 갖은 꼼수가 불법 편법이 난무했다.


양전무는 사장의 입안의 혀처럼 굴었고, 박부장은 성실하고 요령이 없는 사람이었다. 알짜같은 아이템들은 양전무가 족족 채가도 허허 웃기만 했다.


중국 제품이 한국 제품과 경쟁력이 없어지고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중국 진출을 준비한 것도 박부장이라고 했다. 중국 뻔질나게 드나들고 세팅하고 고생할 때, 양전무는 백화점 고객들을 접대한답시고 룸싸롱에서 여자들을 끼고 놀았다.


그렇게 몇 년간 중국 공장에 투자하고 이제 좀 운신의 폭이 트이나 싶은 시점에 양전무가 모든 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렸다.


“날 좀 도와서 이거 좀 같이 해 보겠나?”


은우가 신입으로 입사했을 때, 박부장이 은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은우는 행정병 출신이라 기획안과 서류를 만드는데에는 도가 터 있었다.


박전무는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있어도 서류로 풀어내는 데에는 속도가 너무 느리고 한계가 있었다.


군대에서 마우스를 쓸 때마다 고참들에게 맞아가며, 마우스 없이 단축키로만 서류를 만들 줄 알아야 했다.


군대에 있는 동안 속으로 고참들 욕을 해 댔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고참들에게 절을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은우는 박부장이 손으로 정리한 내용들을 깔끔한 기획안이나 각종 계약서, 양식들로 바꿔 놓았고 박부장이 중국과 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 환상적인 호흡을 맞춰 주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더니...’


재주는 박부장과 은우가 부리고 돈은 사장과 양전무가 나눠 먹었다. 중국 공장이 세팅 되자 저렴한 물건들을 백화점, 도매쪽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양전무 어깨에 뽕이 잔뜩 들어갔다.


본인은 전무로 승진하고, 박부장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기존의 한국 거래처들에게서 안 좋은 소리는 모두 박부장이 들어야했다.


같이 먹고 살 생각은 안하고, 중국 공장으로 거래처 돌려서, 기존 업체만 죽으라고 하는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다. 뒤에서 접대는 양전무에게 했는데 박부장에게 욕을 했다.


은우는 그런 박부장을 보며 직장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구멍 가게처럼 작은 회사가 왜 더 이상 발전이 없는지도, 작은 회사에도 큰 회사 못지 않은 비리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도, 작은 회사일수록 체계도 없고 복지도 없다는 걸, 신뢰나 믿음 같은 건 더더군다나 기대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니터 위 삐에로가 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걸 중국 공장에 보내야 하나? 박부장님이 준 마지막 선물인데... 그의 망설임이 느껴지는지 삐에로의 도자기 얼굴이 잠시 반짝 빛났다고 느껴진 건 그의 착각이었을까?


메일 알람이 깜박였다.


깜박거리는 건 회사 메일함이 아니다. 개인 메일함이다. 은우는 개인 메일함을 열었다. 그는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박.인.철


‘이거! 신종 스팸인가?’


요즘은 인공지능으로 아는 사람의 이름으로 스팸메일이나 문자가 종종 온다. 하지만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스팸 메일이 날아올 줄은 몰랐다. 은우의 손은 차가워졌다. 체했을 때처럼 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


누군지 몰라도 이따위 장난질을 치는 놈들은 죽여버리고 싶다. 망자의 이름을 이용해 장난질 치는 놈들.


마우스로 제목을 클릭하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클릭-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세상 만사가 귀찮은데, 하필 왜 나야? 21.06.12 15 0 8쪽
42 세계가 분열하고 있다, 그래서 그게 뭐? 21.06.11 17 1 8쪽
41 새로운 세계에 필요한 그것 21.06.10 19 1 9쪽
40 다른 세계에서 걸려온 전화 21.06.09 21 1 9쪽
39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21.06.08 18 1 8쪽
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2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0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1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1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7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0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0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3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1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7 1 12쪽
21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7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6 1 12쪽
»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7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6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8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