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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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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글자수 :
211,636

작성
21.05.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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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백발의 인상이 인자한 노인이었다. 잘 다듬어진 구렛나루와 콧수염, 짙은 버건디 색 헌팅캡과 같은색의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노인은 세련되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아침부터 일찍 나오셨습니다.”


붙임성 좋은 동욱이 웃으며 말을 건냈다.


“이른 아침부터 여기 오는 사람들이 없는데...”


노인이 인자하게 웃었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보러 왔습니다.”


우형이 말했다.


“허허. 재미있군. 재미있어.”


노인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르신 뭐가 재밌으십니까?”


동욱이 물었다.


“여기 석굴암 오는 사람들은 다들 본존 부처상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거든. 이 공간에서 주인공은 단연코 본존상이지 않나? 원형 석실 한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말이야.


다들 대충 본존상을 보고 그 주변의 부조들은 있는가보다 하고, 또 원형석실이 로마의 판테온처럼 돔형으로 되어 있으니 좀 신기하다 하고 보고는 가 버리거든.


그런데 그 주인공을 두고 여기까지 와서 십일면관음보살상을 찾는다니 재밌지 않냐 이 말이야. ”


노인은 빙글빙글 웃으며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우형은 노인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마실 나온 동네 어른으로 보기에 그는 석굴암에 대해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의 말투에서 지적인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안에 석실에 들어가니까 유리벽을 세워둬서, 본존상 뒤에 있는 십일면...뭐시기상은 뵈지도 않아서 허탈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허허. 서울에서 여기까지 반나절을 달려왔는데.”


동욱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노인은 흥미롭다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들 시간있나? 시간이 되면 우리집에 가서 차나 한 잔 하지.”


우형과 동욱은 영문을 모른채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



노인의 집에는 각종 유물과 유적에 관한 전문 서적들로 가득했다. 한눈에 보아도 노인은 평범한 촌부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차는 뭘로 할텐가? 녹차가 아주 좋은게 있는데 말이야...”


“저희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우형이 말을 꺼냈다. 서적들은 힌두교, 불교, 밀교, 불상, 만다라, 심리학, 티벳의 장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있었다.


거기에 원형과 신화, 정신요법, 꿈, 문화상징 등 전문적인 논문들도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노인이 다기에 물을 부으며 말했다.


“은퇴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이제 좀 쉬라고들 하는데, 평생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고 살았는데, 책 읽는 걸 손에서 뗄 수가 있나.


이게 나한테는 놀고 쉬는 거라네. 머리도 식히고 글도 좀 쓰려고 작년에 내려왔어. 나같이 일 없는 늙은이한테 새벽 토함산 일출이나 석굴암 산보가 운동으로 아주 그만이야.”


그는 은퇴한 서울 한국대 교수 오태선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고 차를 별로 안 좋아하려나? 입에 안 맞아도 한 번 들어봐요.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져 있어도, 가끔은 이런 은은한 맛과 향취도 제법 괜찮거든.”


노인은 찻잔을 들어 눈을 지그시 감고 향을 감상했다.


“어렸을 때 수학여행은 다들 경주로 왔었는데 말이죠. 그 때 새벽에 일어나기 싫어 죽겠는데, 일출을 보러 가야한다고 선생님이 애들을 깨워서 토함산으로 가는데 어찌나 가기 싫던지요. 하하하.”


동욱은 삼십년도 넘은 일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듯 했다.


“경주 수학여행은 정말 우리 때나 갔지, 요즘 애들은 최소 제주도나 일본으로 가는 것 같더라. 너도 알지 창식이?


애들 아이비리그 보낼거라고 특목고 보낸거. 거기는 무슨 수학여행도 미국 명문대 탐방 이런거 하대? 그런거 보낸다고 돈 천만원씩 깨지고... 자식들한테 그렇게 투자해봤자 다 소용없는 건데... 쯧쯧... 안그러냐?”


우형은 동욱의 끝없이 이어질 레파토리가 시작되기 전에 말을 끊어야지 싶었다.


“교수님! 석굴암 안에 있는 십일면관음보살상에 대한 사진은 보았습니다.


어제 인터넷에서도 좀 찾아보긴 했습니다마는 수박 겉핥기식 자료들에 찍어 놓은 듯 천편일률적인 내용들이었습니다. 저같이 무지한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 하겠더군요.”


우형은 어느새 노인의 호칭을 교수님으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


“그럴거요. 깊이 들어가자면 불교 철학, 밀교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삼박 사일을 설명을 해도 모자랄 심오한 내용들인데, 인터넷 몇 자로 설명이 될 리가 없으니까.”


노인이 비어가는 두 사람의 녹차잔에 다시 가득 녹차를 따라주었다.


“석굴암만 해도 문 앞에 표지판에 몇 자 되지 않는 설명 뿐이지 않소. 석굴암이 언제, 누가 만들었고 석실의 구조와 부조들 몇 개 설명한 걸로 끝이지.


하지만 이 석굴암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버려져 있었는지, 일제 시대에 다시 복원한답시고 해 놓은게 얼마나 지식 없이 엉터리로 해 놓은 것이었는지. 그리고 엉망으로 복원해 놓아서 제습기와 유리벽 없이는 보존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도 몰라.”


석굴암을 생각하니 오교수는 답답한지 눈에 노기가 가득했다.


“원래 석굴암 밑에는 물이 흐르고 그 위에 축조를 한거거든. 그래서 바닥이 차가워. 유리벽 같은 게 없던 시절에도 이끼가 끼지 않았어.


그 옛날 신라시대 사람들이 유리벽 같은게 어디 있었겠나. 여기는 사찰이야.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어와서 부처님을 만나고 기도하고 가는 곳이지.


그걸 보수 한답시고 밑에 시멘트를 깔았지. 그렇게 되니 어떻겠나. 안이 습해지겠지. 습하니 이끼가 끼고, 이끼가 끼니까 제거를 해야 하고, 에어컨을 돌리고 제습을 해서 습도를 맞춰 줘야하고, 그렇게 하려다 보니 유리벽을 설치해서 습도를 억지로 맞춰야 되는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지.”


오교수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저었다. 동욱과 우형은 이런 내용들은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제 복원을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이 석굴암이 자네들 눈에는 신라시대의 석굴암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본래 사찰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석굴암과 유리벽 앞에 놓여진 죽은 유물들이 과연 같은 것이겠냐 이 말이야.”


오교수는 목이 타는지 녹차를 한모금 더 들이켰다.


“석굴암에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저희도 어렸을 때 본 게 다라 교수님 설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야기입니다.”


우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매일 석굴암을 보면서, 신라시대 사람들이 만났을 부처를 생각한다네. 그들에게는 일상이었고 자신을 구원의 대상, 각자가 짊어진 번뇌의 해탈이었을 그 천년의 공간을 마음속에서 복원하고 있는 셈이랄까?”


오교수는 거기까지 이르자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이야, 내가 자네들이 재밌다고 하지 않았나?”


“저희 만났을 때 재미있다고 하셨었죠.”


동욱이 재빠르게 끼어들었다.


“다들 본존불을 뵈러 오는데 자네들은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보러 왔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자네들 말고도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보러 온 사람이 또 있었거든.


최근에 두 번이나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보겠다고 오는 이들을 만났으니, 이 얼마나 흔치 않은 일이냔말이야.”


오교수의 말을 들은 우형은 십일면관음보살상을 찾은 남자가 틀림없이 인철일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말을 들고 흥분해 말했다.


“교수님!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 주십시오. 저희가 찾아온 이유가 그 친구 때문입니다.”


우형은 오교수에게는 모든 일을 설명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의 해박한 지식에 의지해야 무언가 실마리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요양원에서 죽은 한길과 노트에 대해 남김없이 이야기 했다. 그리고 마지막장의 그림 십일면관음보살상에 대해서까지도.


오교수는 우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손에 깍지를 끼고 계속 만지작 거렸다. 마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 그의 뇌를 활성화 시키기라도 하는 것인 양 그는 끊임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는 중간중간 아, 재미있군, 재미있어라는 말을 연발했다.

우형의 말이 끝나자 그가 한참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형과 동욱은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했다.


방안의 공기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동욱의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우형에게까지 들렸다.


“십일면관음보살은 아수라도에 있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살이지. 정면의 본신 얼굴을 제외하고도 11개가 있어서 십일면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는게야.

석굴암에 있는 그림은 이렇게 생겼지.”


오교수는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 펼쳐들었다. 석굴암에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얼굴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여기 보게. 왼쪽의 세 얼굴은 진상이라고 불러. 진노한 얼굴이라는 거지. 화가 난 얼굴이야. 악한 사람을 꾸짖으면서 말을 듣지 않는 중생들을 타일러서 구제한다는 거네.


이쪽 오른쪽의 세 얼굴은 백아상출상이라고 부른다네. 이를 드러내며 웃는 다는 뜻이지. 선한 중생들을 보면 웃음이 나지 않겠나? 웃으며 더 큰 희망과 용기를 가지라고 북돋아 주는 걸세.

여기 정면 정수리 위의 세 얼굴은 자상이라고 불러. 온화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모든 중생을 거둬들인다는 뜻일세.


이마 위에 있는 화불은 서 있는 모습이지. 대승근기, 가장 오묘한 불도를 설파하는 것을 나타내지”


“총 10개의 얼굴이고, 제일 꼭대기에 앉아 있는 건 뭔가요?”


동욱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건 불상이야. 부처상이라 관세음보살 11면에는 들어가지 않아.”


“그럼 작은 얼굴들 아래의 본 얼굴까지 포함해서 <십일면관음보살상>인가요?


동욱이 머리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니지. 본 얼굴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좀 이상한데요? 본 얼굴을 빼고 <십일면관음보살상>이라고 하셨는데, 제일 꼭대기에 있는 건 불상, 부처상이라 관음보살상이 아니라고 하시면... 나머지 한 개의 얼굴은 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우형도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기어이 끼어들고야 말았다.


오교수의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네들도 똑같은 질문을 하는군. 며칠 전 그 친구도 자네들과 똑같은 질문을 했어.”


우형과 동욱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인철도 같은 질문을 했다니.


“석굴암의 조각은 부조일세. 벽에 새겨 놓은 것이라 한쪽 면 밖에 볼 수가 없어. 정면만 보이지. 마지막 얼굴은... 뒷면에 있다네.”


“네에?”


”네?”


우형과 동욱은 어리둥절했다. 뒷면에 얼굴이 있다고?


“폭대소상이야. 큰 소리를 내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지. 선악간의 모든 중생을 보고 이들을 모두 두루두루 포섭하는 도량을 보인다는 거지. 물론 석굴암 부조에서는 뒷 면을 표현할 수 없으니까 보이지 않는 셈이지.“


오교수는 천천히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생각에는 말일세, 섣부른 추측일 수 있겠네만...”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노트에 십일면관음보살상 그림을 그리신 분. 그 분은 목을 매셨다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웃는 얼굴이라고 했었지.”


“네. 맞습니다.”


우형이 말했다.


“그 분은 당신의 몸으로 폭대소상을 표현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하네만...”


우형은 온몸이 전율하는 것을 느꼈다.


폭대소상.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중생을 바라본다. 한바탕 크게 웃는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숨겨진 마지막 하나의 얼굴을, 죽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통해 표현한다.


그의 머릿속은 착잡해졌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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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또 다른 죽음, 그들의 발자취 21.06.07 23 1 10쪽
37 그들이 나타났다 21.06.06 20 1 9쪽
36 욕망의 세계를 돈으로 관리한다 21.06.05 22 1 8쪽
35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가면의 세계 21.06.04 19 1 11쪽
34 대체 넌 누구냐? 21.06.03 21 1 9쪽
33 흔적을 찾아서 21.06.02 22 1 7쪽
32 죽임을 당하고 있다 21.06.01 22 1 10쪽
31 송아라 실종 미스테리 21.05.31 28 1 12쪽
30 풀지 못한 숙제 21.05.30 28 1 12쪽
29 네 사람이다 21.05.29 34 1 11쪽
28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비명이 울려퍼졌다 21.05.28 41 1 12쪽
27 어둠 속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 21.05.27 31 1 12쪽
26 사백안의 사내들 21.05.26 34 1 12쪽
25 빈소를 찾아 온 남자 21.05.25 32 1 12쪽
24 나를 왕따시킨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21.05.24 33 1 12쪽
23 죽고 싶지 않아! 21.05.23 38 1 12쪽
22 그 문을 열지 마라 21.05.22 37 1 12쪽
» 그가 죽음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것 21.05.21 38 1 12쪽
20 죽음의 흔적을 찾아서 21.05.20 35 1 11쪽
19 장례식도 지난 망자로부터 온 이메일 21.05.19 37 1 12쪽
18 회사에 목매지 마라, 너 없어도 잘 굴러간다 21.05.19 35 1 12쪽
17 제발 좀 만만하게 보지 말아줄래? 21.05.18 37 1 12쪽
16 깨달은 자의 미소 21.05.18 37 1 12쪽
15 우울한 요양원에서의 기묘한 죽음 21.05.17 39 1 12쪽
14 이상하고도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다 21.05.17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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