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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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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조회수 :
272,649
추천수 :
2,587
글자수 :
788,474

작성
11.05.20 01:30
조회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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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글자
8쪽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3)

DUMMY

3시간... 단 3시간이었다. 한 걸출한 신학자가 정통 교회의 교리를 뒤엎어버리고, 교회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전세를 뒤집는데 필요한 시간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생마르통 성당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성당의 중심에 서 있는 사내를 지켜보았다. 그는 방금 전 요하네스 아이크만의 교리 해석을 마치 닭의 목을 비틀어버리듯이 손쉽게 논파하는 중이었다.

그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며 프레이르는 이를 부득 갈았다.

“로버트 마일러......”

칼브리지 대학 신학부의 부학장이었고, 30여 편의 논문을 저술했으며, 뷔그노들에게 성인 못지 않게 추앙 받는 인물(비록 뷔그노들은 성인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 로버트 마일러의 정체는 바로 트레버 레림이었다.

이 로버트 마일러는 지금까지 트레버 레림이라는 가명을 통해 잘도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있었다. 프레이르는 로버트 마일러가 아직 서른 살도 되지 않은 교수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젊은 신학도 트레버가 로버트 마일러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카린이 로버트 마일러와 아는 사이라는 것을 추측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로버트 마일러와 트레버 레림은 동일인물이었고 그는 이제 와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정체를 만인 앞에 드러내며 프레이르의 의도와 계획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강변하지만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아벨 신에 의해 이미 예정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히포의 이노켄티우스가 말했듯이 아벨 신은 지상의 시간 밖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아벨 신에 있어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며,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즉 현재 존재하는 모든 인간과 앞으로 등장할 모든 인간들의 구원 여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로버트 마일러가 요하네스 아이크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히포의 이노켄티우스를 인용했다. 이 인용에 아이크만 박사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그 이유는 히포의 이노켄티우스는 정통 교회가 성인으로 추앙하는 고대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칼을 상대방에게 빼앗겨 그 칼에 심장을 찔리는 기분이 아마도 지금 아이크만 박사가 느끼는 기분일 것이다.

“전하.”

알베로가 긴장된 목소리로 프레이르를 불렀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알베로의 말에 프레이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프레이르 자신도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3시간 전, 트레버 레림은 마침내 후드를 벗고 뷔그노 측 교수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였다. 트레버가 그토록 고대하던 로버트 마일러 교수를 확인한 뷔그노 측 교수들은 당장 로버트 마일러를 자신들의 대표로 추대하여 토론회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로버트 마일러 교수는 그들의 기대에 멋지게 부응해주었다.

한편 로버트 마일러의 등장은 프레이르와 정통 교회 측에 있어서는 재앙으로 작용했다. 로버트 마일러에 의해 이번에는 정통 교회 측 토론인들이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마일러 교수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정통 교회의 분열을 유도했고, 정통 교회 쪽은 지리멸렬을 면치 못했다. 아이크만 박사 홀로 마일러 교수에 저항하고 있었으나 그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명백했다.

뷔그노들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보아하니 다시 한 번 마일러 교수가 아이크만 교수의 말문을 막히게 만든 모양이었다.

“젠장... 무슨 수를 써야하는데...”

프레이르가 중얼거렸다. 그는 라시드 대주교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샤를이 참석하지 않았으므로 고위 성직자들이 이 상황을 장악하여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러나 대주교와 고위 성직자들 역시 예상치 못했던 이 사태에 당황하고 있었다. 로버트 마일러 교수의 등장도 갑작스러웠지만 이토록 교회 측이 급속히 무너지는 것에 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들 역시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해.’

이렇게 생각한 프레이르는 알베로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토론회를 여기에서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어제와 비교하면 3시간이나 이른 시간이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로버트 마일러의 입을 다물게 하고 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소 저항이 있더라도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알베로는 프레이르의 명령을 받아 총총히 대주교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대주교의 비서관에게 프레이르가 말한 사항을 전달했다. 대주교 측은 프레이르의 전달 사항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토론회가 조금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라시드 대주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몇 마디 통상적인 이야기를 꺼낸 뒤 토론회의 휴회를 선언했다.

“먼저 훌륭한 토론회를 마련해 주신 아벨 신께 감사드립니다. 저로서는 이 유익한 토론회가 지속되기를 바라나 때늦은 더위로 인하여 몇몇 연로한 성직자들이 졸도하는 등 불미스러운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은 일단 토론회를 종료하고 내일 아침 일찍, 토론회를 속행할 것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라시드 대주교의 말에 뷔그노 측 토론인들과 참석자 쪽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곧바로 대주교를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날리며 토론회의 속행을 요구했다. 그러자 노구의 대주교가 큰 소리로 외쳤다.

“토론회는 내일 오늘보다 2시간 이른 시각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토론회에 소요되는 시간은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므로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라시드 대주교의 타협안에 뷔그노 측은 조금 잠잠해졌으나 여전히 불만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그들이라고 해서 라시드 대주교가 왜 토론회를 연기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것이 비열한 조작이라며 투덜거렸고 그 중 몇몇은 대주교 쪽을 향해 신발을 집어 던지며 불만을 표시하다가 경비병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가기도 했다.

그 때 토론인석에 서 있던 로버트 마일러가 참석자석을 돌아보았다. 그는 두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주교의 말에 따릅시다, 여러분. 우리는 이곳에 토론을 하러 온 것이지 싸움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로버트 마일러의 낮고 침착한 목소리에 뷔그노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난동을 부리던 자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프레이르는 새삼 로버트 마일러가 뷔그노 사이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진정 시킨 뒤 로버트 마일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라시드 대주교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말했다.

“그것은 당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지만 앞으로 정당한 토론을 방해하는 비열한 수단을 사용하려 한다면 저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로버트 마일러는 이렇게 말한 뒤 자신의 단상에 내려놓았던 두터운 성서를 품 속에 들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동료 토론인들과 함께 천천히 교회 밖으로 퇴장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뷔그노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를 했다.

프레이르는 방청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는 로버트 마일러의 당당한 모습에 속이 쓰렸다.

“상황이 정리되면 라시드 대주교에게 잠깐 만나자고 말해줘요.”

프레이르는 검은 옷을 입고 교회 문 밖을 나서는 마일러 교수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알베로에게 말했다. 늘 여유를 잃지 않았던 프레이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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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7 나니아
    작성일
    11.05.21 00:03
    No. 1

    음 왠지 전 프레이르도 혼쭐을 내주고 대주교도 혼쭐을 내주고 트레버는 프레이르 두배로 혼쭐 내주고 싶네요... 왤케 얄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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