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Stellar 님의 서재입니다.

로라시아연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조회수 :
272,681
추천수 :
2,587
글자수 :
788,474

작성
10.08.15 00:16
조회
1,493
추천
23
글자
21쪽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2)

DUMMY

“숙녀 분들, 세계 3대 미항 아라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레이르가 익살스럽게 모자를 벗어 올려 보이며 말했다.

일행은 먼저 아라스의 시가지로 들어갔다. 아라스의 시내는 귀족과 교회의 간섭이 적은 자유도시답게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넘쳐났다. 카시네예프와는 걸어서 5시간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 분위기는 전혀 색달랐다. 특히 아라스는 외국에서 들여온 각종 특이한 교역품과 해산물이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어서 카시네예프의 귀족 젊은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와, 이것 봐요!”

일행 중에 가장 어린 로잔느가 소리쳤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한 생선 가게였다. 그 가게는 놀랍게도 아직 싱싱하게 살아 있는 거대한 바닷가재를 팔고 있었다.

“아직 살아 있어요.”

로잔느는 호기심이 왕성한 성격답게 재빨리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는 가재의 껍질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그녀는 꺄르르 웃으며 일행에게 말했다.

“정말 딱딱해요. 요리에 나온 것하고는 전혀 다른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갑자기 오늘 저녁으로 바닷가재 요리가 먹고 싶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들은 루크는 자신을 따라온 하인에게 로잔느가 고른 가재를 구입해두라고 말해두었다.

한편 아르넷은 도구점에서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빛바랜 총사대원의 제복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아르넷의 총사대에 대한 동경은 대단히 유명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모습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제복을 쳐다보고 있던 아르넷에게 주인이 다가와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아르넷은 재빨리 가격을 불어보았으나 주인이 부른 가격이 너무 높았는지 대단히 실망한 눈치로 거절했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뚫어지게 제복을 바라보았다.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은 여성의류점에서 이것저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총사대원의 낡은 제복 따위가 아니라 에우로텐에서 직수입된 고급 의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느새 베아트리체는 외출복을 벗어던지고 한층 더 화려한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에버딘은 베아트리체의 이 아름다운 모습에 탄성을 터뜨렸다.

“너무 아름다워요, 베아트리체 아가씨.”

에버딘의 칭찬에 베아트리체는 빙긋 웃었다. 에버딘의 말이 겉치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잘 어울리나요? 소매가 조금 좁아 보이는 것 같은데?”

“베아트리체 양의 가는 손목에 잘 어울립니다. 완벽하네요.”

프레이르도 베아트리체를 치켜세워졌다. 알베로 역시 잘 어울린다고 말하며 베아트리체의 기분을 돋우어 주었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인이 에버딘도 옷을 입어볼 것을 권했다. 그러나 에버딘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거절했다. 자신은 이런 화려한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베아트리체는 재빨리 에버딘을 부추기며 한쪽에 있는 노란색의 드레스를 입어볼 것을 권했다.

프레이르 또한 에버딘에게 잘 어울릴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드레스를 입어보라고 말했다. 프레이르는 평소 유행이 지난 수수한 의상만을 입는 에버딘이 베아트리체와 같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을 경우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고 말하며 에버딘을 설득했다. 그러자 에버딘은 당황한 표정으로 오빠인 알베로를 바라보았다. 알베로는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결국 에버딘은 베아트리체와 옷을 갈아입으러 한쪽 방으로 들어갔다. 생선 가게에서 돌아온 로잔느도 쪼르르 베아트리체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남겨진 것은 알베로와 세자르, 그리고 프레이르뿐이었다.

일행들이 시내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잔뜩 들뜬 것을 확인한 프레이르가 알베로에게 은밀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죠?”

프레이르의 말에 알베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알베로는 조심스럽게 의류점에서 빠져나가 밖으로 나갔다.

“알베로 경이 어딜 간 겁니까?”

영문을 모르는 세자르가 주위를 둘러보며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프레이르는 재빨리 둘러댔다.

“에버딘에게 옷을 사주고 싶다면서 환전상을 찾으러 갔어요. 금화를 은화로 바꿔야겠다고 말하면서요.”

프레이르가 자연스럽게 받아 넘기자 곧이곧대로 알아들은 세자르는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프레이르의 말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비록 알베로가 환전상을 찾으러 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에버딘을 위해 금화를 환전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환전상이야말로 프레이르와 알베로가 아라스 나들이를 기획한 진정한 목적이었다. 태평한 마음으로 아라스를 구경하는 일행과 달리 프레이르와 알베로는 아까부터 냉철한 마음으로 환전상을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프레이르와 알베로가 여기에 온 까닭은 에르니 은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알타미라 후작의 속셈을 파헤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분함에 지친 젊은이들의 평범한 소풍이라면 알타미라 후작도 의심하지 않겠지.’

프레이르는 이렇게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타미라 후작은 분명 프레이르가 논문에 싫증을 내고 친구들과 함께 아라스로 놀러 갔다고 여길 것이었다. 그가 후작의 뒷조사를 위해 이곳에 왔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프레이르는 짐작했다.

더구나 프레이르는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에게 언젠가 한 번 바다에 데려다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 때문에 프레이르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에 대한 약속도 지키고 자신의 진정한 의도도 숨기리라 마음먹은 것이었다.

‘알타미라 후작은 분명히 자신의 제안을 통해 무언가 이익을 챙기려 했을 것이다, 프레이르. 그 숨겨진 속셈을 알아내야 한다.’

프레이르는 샤를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며 자신의 임무를 명심했다. 샤를은 알타미라 후작의 제안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프레이르에게 그 뒷조사를 명령했다. 샤를 자신이 움직일 경우 너무나 움직임이 커지기 때문에 자칫 협력 관계인 알타미라 후작에게 반감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 샤를의 설명이었다.

프레이르는 팔짱을 끼며 등을 벽에 기댔다. 프레이르가 고민에 잠길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타미라 후작의 속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알타미라 후작은 아라스 금화의 금 함유량을 높이자고 제안했을까? 프레이르는 어렸을 적 코라로부터 속칭 ‘환치기’라 불리는 행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금화의 금 함유량이 변동하는 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내는 수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짓을 하다가 적발된다면 알타미라 후작은 큰 망신을 당할 것이 뻔했다. 에르니 은화의 위협으로부터 레인가드 경제를 보호하겠다고 장담했던 후작 자신이 환치기를 통해 경제에 혼란을 준다면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한 몸에 안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하나를 얻으려다 열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환치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알타미라 후작은 무슨 속셈이지?’

프레이르는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그러나 생각만 한다고 해서 여태 나오지 않던 해답이 갑자기 튀어나올 리 없었다. 프레이르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통감하며 괜시리 옆에 놓여진 모자를 툭툭 건드렸다. 바로 그 때 방 안쪽으로부터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에버딘 양. 어서 이쪽으로 나와요.”

“자, 잠시만요, 베아트리체 아가씨. 잡아당기지 마세요. 옷이 찢어지겠어요.”

“와! 에버딘 아가씨. 너무 예뻐요.”

먼저 바깥으로 나온 것은 베아트리체와 로잔느였다. 그녀들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에버딘의 양팔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에버딘이 끌려나왔다.

그것은 꿈에서라도 잊지 못할 그런 광경이었다. 프레이르는 이 순간만큼 자신의 두 눈이 보안다는 사실에 감사했던 적이 없었다. 프레이르의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천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과연 베아트리체의 눈은 정확했다. 노란 빛깔의 드레스는 약이 오를 정도로 에버딘과 너무 잘 어울렸다. 에버딘의 크고 다정다감한 연갈색의 눈동자는 노란색의 발랄함과 더해져 싱그러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릿결은 베아트리체와 로잔느에 의해 곱게 땋아져 있었는데 날씬한 옷의 소매와 좁은 어깨춤에 이어지며 완벽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늘씬한 맵시를 강조하면서도 단순한 문양으로 구성된 디자인은 에버딘의 청순한 인상과 잘 들어맞았다.

프레이르는 할 말을 잃고 에버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세자르 역시 입을 딱 벌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에버딘은 안절부절 못하며 변명하듯이 말했다.

“이런 옷은 처음 입어보는 거라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요. 역시 조금 더 수수한 편이...”

“아니야. 정말 완벽해.”

프레이르는 이렇게 딱 잘라 말하며 찬찬히 에버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솔직한 감상을 내놓았다.

“한 나라의 공주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어! 너무 근사해!”

프레이르의 말에도 에버딘은 여전히 프레이르의 칭찬이 빈말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에버딘의 반응에 프레이르는 재빨리 세자르에게 다가가 그 눈을 가렸다.

“앗!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세자르가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그러자 프레이르는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이런 광경을 남하고 나눌 수야 없죠. 저 혼자 볼 거예요.”

프레이르의 이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에버딘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그녀는 들고 있던 모자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한편 베아트리체와 로잔느는 프레이르의 말에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어, 그러고 보니 카스티야 백작님은 어디로 가셨죠?”

이제야 알베로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베아트리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프레이르는 세자르에게 대답했던 대로 말했다.

“에버딘에게 옷을 사주고 싶다고 금화를 은화로 환전하러 갔어요.”

프레이르의 준비된 대답에 베아트리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날카로운 감을 가진 이 아가씨는 프레이르의 대답에서 어딘가 수상한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대답을 덧붙였다.

“그 덕분에 이런 멋진 광경을 놓치게 되었네요.”

“그만 놀리세요, 전하.”

에버딘이 입을 비죽 내밀며 말했다. 프레이르는 싱긋 웃었다.

한편 옷가게 주인인 브로슈 부인은 ‘전하’라는 말에 에버딘 쪽에서 눈을 떼고 프레이르를 쳐다보았다. 그제야 그녀는 프레이르의 정체를 알아보고 입을 딱 벌렸다. 프레이르는 그러한 반응을 모른 체하며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에게 물었다.

“옷들이 마음에 드나요, 숙녀 분들?”

베아트리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최근 이렇게 만족한 것은 처음이에요. 아라스에 이렇게 훌륭한 의상점이 있는지 몰랐어요. 앞으로는 이 집 주인인 브로슈 부인을 불러다 드레스를 지어야겠네요.”

베아트리체는 대단히 만족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입고 있는 옷을 이리저리 들어보며 곡선이 처리 된 부분과 재봉이 된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때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했다. 그녀의 까다로운 취향을 아는 프레이르는 이 브로슈 부인이라는 주인은 분명 뛰어난 재단사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한편 에버딘은 불편한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항상 유행이 지난 옷이나 샤퓌르 부인 가문에 남아 있는 옷을 고쳐 입어 왔던 에버딘은 이런 비싼 드레스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예쁘긴 하지만 저는 부담스러워요. 저에 비해 너무 화려한 옷이에요.”

에버딘의 자조 섞인 말에 프레이르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그럼 베아트리체의 안목이 틀렸다는 거야?”

“어, 정말? 그런 뜻이 되네요?”

베아트리체가 프레이르의 말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서운한 표정으로 에버딘을 바라보았다. 역시 사람을 다루는데 능숙한 베아트리체였다.

“그, 그런 뜻이 아니에요.”

에버딘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그녀는 조금 무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지... 이런 옷은 처음이라... 저... 저는 화려한 옷은 입어 보지 않았거든요.”

에버딘의 이 말에 프레이르는 가슴이 아팠다.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에버딘의 가문은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런 비싼 드레스를 입을 수 없다는 것을 프레이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버딘은 차마 부끄러움 때문에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가문이 가난하여 이런 옷을 입을 형편이 못 된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오빠인 알베로가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일 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프레이르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그는 주인인 브로슈 부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인, 이 옷들이 모두 해서 얼마죠?”

프레이르의 물음에 너무나 고귀한 인물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했다는 사실에 얼이 빠져 있던 브로슈 부인은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는 두 숙녀가 입고 있는 옷을 살핀 다음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이쪽 드레스는 아라스 금화로 4냥이고, 노란색 드레스는 금화 3냥하고 에인절 은화 20닢입니다... 전하...”

주인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전하’를 붙였다. 브로슈 부인의 대답에 프레이르는 ‘끄응’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예상대로 드레스들은 기겁할 정도로 비쌌기 때문이었다.

눈이 튀어나올 만한 가격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프레이르는 생각했다. 에인절 은화 한 닢은 가난한 서민이라면 일주일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또한 일반적으로 아라스 금화 1냥은 에인절 은화 40닢에 해당되었다. 따라서 아라스 금화 4냥이란 에인절 은화 160닢, 즉 서민이 3년간 쓰는 비용에 맞먹었다. 금전 감각이 떨어지는 귀족들이야 잘 감이 안 잡힐지 모르지만 평민 가정에서 지낸 프레이르는 이 가격이 갖는 무게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이 드레스들을 사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드레버 경, 내 돈주머니를 가져와요.”

프레이르가 옷가게 밖에 서 있던 한 사내에게 말했다. 프레이르의 호위기사인 드레버 경은 재빨리 한 주머니를 가져왔다.

에버딘은 드레버 경이 프레이르에게 돈주머니를 건네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녀는 다급하게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전하, 그러실 필요 없어요. 이건 그냥 한 번 입어본 거니까요.”

“맞아요, 전하. 이건 그저 기분전환 삼아서 입어 본 거예요.”

베아트리체도 조금 당황하며 프레이르를 말렸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간단히 대답했다.

“이렇게 좋은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너무 염치없잖아요. 더구나 조금만 돈을 투자하면 앞으로 두고두고 눈이 즐거울 텐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하지만...”

에버딘과 베아트리체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들은 마치 자신들이 프레이르를 꾀어서 돈을 내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해하고 있었다. 에버딘과 베아트리체는 행여 프레이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남자를 꾀는 속물적인 여자로 볼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프레이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아가씨들. 멍청한 남자가 변덕을 부려 선물해 줄 때는 재빨리 받아 두는 편이 현명한 거예요. 언제 다시 마음이 변해 자신의 호의에 대해 후회할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세자르 경?”

프레이르가 세자르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전하.”

세자르가 곧바로 대답했다. 프레이르는 손뼉을 쳤다.

“이것 봐요. 세자르도 맞다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그저 받아둬요.”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번쩍이는 금화 8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이 말릴 새도 없이 얼른 브로슈 부인의 손에 금화를 쥐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부인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거스름돈은 됐어요. 그 대신 저 노란 드레스에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같이 주세요.”

프레이르의 말에 브로슈 부인은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을 돌아보며 말했다.

“숙녀분들, 이쪽으로 오세요. 치수를 재야죠.”

브로슈 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로잔느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하나 입어 볼 걸 그랬나 봐요. 그럼 전하께서 사주셨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로잔느가 약간 토라진 것처럼 말하자 프레이르는 기분 좋게 웃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로잔느 양도 한 번 입어보는 게 어때요?”

프레이르의 말에 로잔느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에요, 전하. 저는 옷 가지고 떼를 쓰는 어린애가 아니거든요. 거기다...”

로잔느가 두 사람이 사라진 방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두 사람 사이에서 드레스를 입으면 제가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서 안 되겠어요.”

로잔느의 말에 프레이르는 펄쩍 뛰는 흉내를 내보였다. 그리고 그는 당치도 안다는 듯이 말했다.

“세르티프 살롱의 진주라는 로잔느 양이 초라해 보이다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프레이르의 말에 로잔느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기분 좋게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진주 운운한 것은 방금 지어내신 거죠? 감사해요, 전하. 정말 능숙하시네요.”

“왜 사람들은 항상 제가 말을 지어낸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저는 항상 진실만을 말합니다.”

프레이르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으며 엄숙하게 말했다. 로잔느는 다시 한 번 깔깔거리며 어린 아이다운 웃음을 지었다.

프레이르는 한동안 로잔느와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시간을 보냈을 때, 환전상을 찾으러 갔다 왔던 알베로가 돌아왔다.

그는 로잔느와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 받던 프레이르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환전상들을 통해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알베로의 말에 프레이르는 방금까지만 해도 얼굴에 남아 있던 장난스런 분위기를 싹 지웠다. 그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서? 어떻던가요?”

“에르니 은화의 은 함유량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에르니 은화는 일반적인 에인절 은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은이 많이 함유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대다수의 환전상들은 그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고요. 하지만...”

알베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로잔느와 세자르가 다른 옷에 정신이 팔려 이쪽을 주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프레이르에게 보고했다.

“알타미라 후작의 말과는 달리 에르니 은화의 유통량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알베로의 말에 프레이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어떤 환전상도 에르니 은화의 충분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베로가 대답했다.

“에르니 은화는 제대로 된 화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물량이 부족합니다. 어떤 곳을 가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에르니 은화가 레인가드 남부 난쟁이족들로부터 출발했다지만 아라스와 같은 북부의 대도시에서조차 이처럼 물량이 부족하다면 통화로서의 의미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사실 저는 레인가드 남부의 상인들 사이에서 에르니 은화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그 말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역시 알베로는 대단히 유능한 비서관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알베로는 에르니 은화에 관해 후작이 늘어놓았던 이야기에 거짓이 섞여 있을 수도 있음을 발견했다. 물론 이것은 심증에 불과했지만 알베로의 추측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에르니 은화의 사용이 북부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가능성은? 남부에서 어떤 화폐가 통용되더라도 북부까지 전파되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프레이르의 반박에 알베로가 순순히 인정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아직 그 정도까지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음... 그럼 이따가 점심을 먹고 조사를 해보러 가죠. 이번에는 저도 가겠어요. 일단은 알타미라 후작이 했던 말의 진위여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니.”

“알겠습니다.”

알베로가 공손히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알베로와의 비밀스런 대화가 끝나갈 즈음, 방에서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이 나왔다. 베아트리체는 잔뜩 들뜬 표정으로 프레이르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반면 에버딘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프레이르에게 조그맣게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공짜로 생긴 것이라고 아무데나 내팽개쳐 두면 안 됩니다.”

프레이르가 베아트리체와 에버딘에게 웃으며 말했다.

“소중히 간직할게요.”

에버딘이 작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라스 시가지의 구경을 마친 일행은 바닷가에 놓인 백사장으로 향했다. 하인들이 그곳에 점심을 차려 놓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작열하는 태양은 여름하늘의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로라시아연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8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5) +2 11.05.26 763 15 18쪽
87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4) +1 11.05.25 784 14 15쪽
86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3) +1 11.05.20 801 16 8쪽
85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2) +2 11.05.15 854 18 7쪽
84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1) +2 11.05.11 776 18 8쪽
83 로라시아 연대기 - 베아트리체의 장난 +2 11.05.10 786 13 21쪽
82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4) +1 11.05.08 779 19 13쪽
81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3) +2 11.05.07 766 15 7쪽
80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2) +1 11.05.06 818 13 8쪽
79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1) +3 11.05.04 850 15 11쪽
78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4) +6 10.10.20 1,080 20 27쪽
77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3) +8 10.10.08 1,137 20 8쪽
76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2) +6 10.09.16 1,214 23 16쪽
75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1) +7 10.09.13 1,352 23 18쪽
74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4) +7 10.09.12 1,352 24 22쪽
73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3) +6 10.09.08 1,298 25 9쪽
72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2) +8 10.09.05 1,287 27 13쪽
71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1) +8 10.08.31 1,382 24 20쪽
70 로라시아 연대기 - 세자르의 보고 +14 10.08.28 1,353 26 4쪽
69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3) +12 10.08.27 1,375 33 21쪽
68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2) +6 10.08.26 1,339 33 14쪽
67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1) +8 10.08.24 1,362 41 20쪽
66 로라시아 연대기 - 아라스에서 맞는 아침 +7 10.08.23 1,404 28 11쪽
65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3) +8 10.08.22 1,402 23 12쪽
64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2) +12 10.08.21 1,385 27 8쪽
63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1) +7 10.08.18 1,419 26 15쪽
62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4) +15 10.08.17 1,483 24 19쪽
61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3) +7 10.08.16 1,453 19 16쪽
»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2) +10 10.08.15 1,494 23 21쪽
59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1) +6 10.08.14 1,488 2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