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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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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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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10.09.13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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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1)

DUMMY

“...신이 없다는 철학은 도덕의 존재에 대한 당위성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무신론자가 도덕적이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인 에피네쿠로스 같은 경우에는 대단히 도덕적인 인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무신론자의 도덕이란 일종의 방침일 뿐이지 결코 당위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도록 하죠.”

알베로가 말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아무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을 때,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왜 부당한 것일까요? 그것은 이유 없는 폭행이 도덕에 어긋난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타인을 살해하거나, 타인의 의지를 억누르고 그를 노예 상태에 예속시키는 행위 역시 우리는 부도덕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에게 의문이 발생하죠. 도덕적으로 부당한 행동은 어째서 해서는 안 될까요? 아니 애초에 도덕이나 선악의 기준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발생한 것입니까? 에피네쿠로스주의자 같은 무신론에 따르면 도덕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규약에 불과합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회를 구성하였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을 만들었다는 관점이죠.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사회적 규범’에 불과한 도덕에 의해서 나뉜 선악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오직 자신의 생존뿐이라고 가정하면, 도덕이 우리의 생존에 반하는 경우, 이를 지켜야 할 당위성은 없습니다. 사회적 규칙은 변화하기 마련이고, 오직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셈이니까요. 우리가 이 도덕을 받아들여야 할 고상한 이유는 없습니다. 무신론의 경우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행복과 안녕뿐입니다. 도덕에 아무런 강제력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저는 무신론에서의 도덕은 허상에 불과하며 지켜야할 의무가 없다고 봅니다. 특히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물질뿐이며 정신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극단적인 물질주의자들이 도덕과 선악을 논하는 것은 모순의 극치라고 할 수 있죠. 물질주의자들은, 우리가 돌덩이를 때린다고 해서 그것을 악이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다른 인간에게 폭행을 행사한다고 해서 이를 악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물질주의자들이 읊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던가 하는 것은 허튼 소리에 불과하죠. 영혼의 실재를 믿지 않으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는 것은 모순 중에 모순입니다. 흙더미에 불과한 인간에게 무슨 존엄성이 있다는 것입니까?”

알베로가 무신론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트레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이 이상으로 무신론의 도덕관념을 반박할 수는 없다고 보이는 군요.”

트레버는 알베로를 칭찬하며 자신의 의견을 들었다.

“선악과 도덕관념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자는 반드시 신의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선악의 존재는 절대적 기준의 존재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절대적 기준의 존재는 신의 부재 하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의 경우에 도덕은 오직 상대적인 기준만을 갖기 때문에 우리가 도덕을 지켜야 할 당위성은 없지요. 상대적인 기준과 절대적인 기준은 서로 동등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무신론의 도덕관념은 모순이지요. 도덕이 하나의 유용한 방침은 될 수 있어도 인간이 이를 지켜야 할 의무는 없게 됩니다. 무신론자는 도덕적이 될 수는 있어도, 반드시 도덕적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트레버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런 면에서 살펴보면 성서는 진정 인간과 도덕의 의미에 대해서 참으로 심오하고 정확하게 고찰했습니다. 성서에서는 도덕이라는 말 대신 자연법, 고대 레인가드어로 law of Natuur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여기서 Natuur는 인간보다 우선하고, 인간을 포함하는 세계에서 비롯된 정신적인 것을 의미하죠. 재미있는 것은 이 Natuur가 law와 결합되어 ‘법’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즉 정신적이고 세계적이면서 인간보다 먼저 존재한 법이라는 뜻이죠. law는 그 내부적으로 강제성 혹은 의무가 내포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성서에서는 자연법, 즉 도덕이 정신적이고, 세계적이며 의무적이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도덕은 방침이 아닌 인간의 정신적인 법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지요.”

트레버의 해박한 설명에 알베로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학도인 트레버는 대단히 박식하였으며 신학에 관해서 훌륭한 식견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베로는 비록 카시네예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트레버의 신학 수준이 대단히 깊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의 신학적 깊이는 가지고 있었다. 학구적인 것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그는 트레버와 함께 즐겁게 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한편 카린과 프레이르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며 카시네예프 대학 교정을 거닐었다. 알베로와 트레버는 토마스 아르케나스의 신의 존재에 대한 5가지 귀납적 논증이라던가, 얀세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에 대한 맹렬한 비판 등, 프레이르가 질색하는 현학적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트레버는 언제 자신이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었냐는 듯이 열정적으로 젊은 비서관과 신의 존재와 종교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카시네예프 대학으로 오는 것이 아니었어...”

카린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트레버를 지켜보며 말했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저 꼬맹이 대학생들이 트레버의 신학적 탐구열에 불을 지펴버렸군.”

카린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나무 아래 앉아 토론에 열을 올리고 있는 대학생들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기하학에 관해 토론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바닥에 이런저런 도형을 그리며 고대 철학자들의 기하학 정리들을 연구하고 있었다.

“있잖아요, 카린.”

프레이르가 진지한 어조로 카린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슬그머니 기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로 다가갔다.

“전 대학생들을 좋아해요. 대학에서 나온 알베로 경 같은 인재들은 내 두통거리를 순식간에 해결해주곤 하거든요. 하지만...”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한 다음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유의하며 슬그머니 오른발을 내밀었다.

“가끔씩 대학생들은 학문이라는 또다른 방식으로 내 골치를 썩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대학생들이 공들여 그려놓은 직사각형과 원의 그림을 발로 슥슥 지워버렸다. 그리고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휘파람을 불며 카린과 함께 유유히 자리를 떴다. 이 감쪽같은 발놀림에 학생들은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잠시 후 자신들이 공부하던 도형들이 이미 한 줌 모래더미로 변하게 된 것을 발견한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펄펄 뛰었다. 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다시 수십 개의 도형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프레이르는 카린에게 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 철없고 유치한 장난에 카린은 킬킬거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카린이 카시네예프를 방문하지 닷새가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카린과 트레버는 샤를의 융숭한 대접과 진심 어린 환영을 받으며 궁전에 출입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궁전의 분위기에 싫증을 냈고, 궁전에서 춤을 추는 것보다는 카시네예프를 돌아다니며 도시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질구레한 일들은 항상 프레이르에게 맡기기로 작정한 모양인지 샤를은 이 도시 나들이의 책임을 프레이르에게 떠넘겼고, 프레이르는 카린과 트레버를 데리고 카시네예프의 구경을 시켜주었다.

카린과 트레버가 가장 먼저 가고 싶어한 곳은 카시네예프 대학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트레버가 제안하였고 카린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카시네예프 최고의 지식인들이 운집한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트레버는 카시네예프의 젊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사실에 흥분한 듯 보였다. 그가 보기 드물게 열성적인 표정으로 프레이르에게 부탁했기 때문에 프레이르는 결국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카린을 외면하며 카시네예프 대학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중대한 실수였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화려하게 꽃피는 학문적 분위기와 지성인들의 현학적인 대화에 매료된 트레버는 황홀한 표정으로 대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알베로와 함께 이런저런 토론에 끼어들곤 하며 열정적으로 레인가드의 젊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각 칼브리지 대학과 카시네예프 대학의 인재들이었던 트레버와 알베로는 신학, 법학, 철학을 넘나들며 풍부한 지식을 뽐내었다.

반면 학구적이 다기보다는 실제적인 인간에 속하는 프레이르와 카린은 맥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프레이르는 카드게임이라던가, 속임수에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지만 성 토마스가 인식론으로 신을 연구했는지 존재론으로 신을 연구했는지에는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다. 신학에 관해서 그는 성인들의 간단한 견해 외에 아는 것이 없었고, 철학의 경우에도 메피스토펠레스까지가 그 한계였다.

한편 카린의 경우에도 별로 나을 바는 없었다. 카시네예프 대학에는 마법 박사 과정이 있긴 했지만 카린은 대학에서 체계적인 마법을 공부한 인물이 아니었다. 대륙을 두루 여행하면서 잡다하고 엉망진창인 마법을 배운 그녀는 학문적 토론에 끼어들만한 이론적 토양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프레이르는 심지어 그녀가 마법 이론의 초석에 해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4원소설에 관해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것은 프레이르에게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 프레이르가 이 사실을 지적하자 카린은 뻔뻔스럽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신은 아니잖아? 4원소설이 내일이라도 당장 뒤집힐 수도 있는데 귀찮게 그것을 공부 할 필요는 없지. 내게 중요한 건 불을 지피느냐 못 지피느냐지, 2000년 전의 영감탱이가 고민했던 것처럼 불과 공기 중에 어느 쪽이 가벼운지 의논하는 것이 아니거든. 어느 쪽이든 고기만 잘 익힐 정도로 불을 지피면 되는 거지, 뭐.”

이런 형편이니 프레이르와 카린이 카시네예프 대학에 끼지 못하고 마치 이방인마냥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프레이르는 항상 자신이 그다지 무식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레인가드 최고의 두뇌들이 모이는 카시네예프 대학에서만큼은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닫곤 했다. 카린은 프레이르만큼 자괴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지만 그 대신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따분함에 연신 하품을 해대며 몽롱한 눈빛으로 알베로의 형이상학적 토론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 한쪽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레이르와 카린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내가 연단 위에 서 있었다. 그 사내는 두 사람의 허리를 합쳐 놓은 것과 같이 우람한 남자였는데 험악한 인상만큼이나 걸걸한 목소리를 자랑했다. 카시네예프 대학의 박사를 의미하는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건장한 체격 때문에 용병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이 우락부락한 사내는 주먹을 불끈 쥐어 오른손을 하늘로 높이 치켜세우고 있었다.

“여러분! 나는 카시네예프 대학의 신학 교수이자 카시네에프 아카데미의 회원인 호레이쇼 멜카드입니다. 지금 저는 여러분께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자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병들게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악마에 관해서 걱정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는 이 하찮은 악마들에게 신경을 쓰는 나머지 레인가드에서 1천 킬로미터 떨어진 메디나에 웅크리고 있는 진정한 적(敵)아벨의 후예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생활 속속 들이 스며들어 잘못된 신앙과 거짓된 교리를 심어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교인들로부터 주님의 재산을 갈취하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약자들을 짓밟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스스로를 성 페테르의 후예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사도들의 이름을 가로챈 강도들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교황과 칼레타 교회라고 부릅니다.”

호레이쇼 멜카드라는 이름의 교수가 잠시 말을 멈추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카시네예프의 학생들은 칼레타 교회와 교황을 맹렬히 공격하는 호레이쇼 교수의 말에 찬동하고 있었다.

“저들은 아벨 신의 이름을 빌려 우리의 형제들을 미신과 우상 숭배, 그리고 무지에 묶어두려 합니다. 그들에게는 성인의 유골 한 상자가 아벨 신의 성경 한 구절보다 더 중요하며, 육신의 부귀영화가 하늘의 상급보다 소중합니다. 칼레타 교회의 부패는 이미 극에 달하였으며, 성직자들은 이미 그 어느 교인보다도 타락한 상태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정한 신앙과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호레이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는 이 레인가드에서 교황권을 소멸시키며 부패한 성직자들과 수도원을 청산해야만 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몇몇 학생들이 ‘클레멘스의 목을 매달아라!’라든지 ‘수도원을 철폐하라!’라고 외쳤다. 많은 학생들과 교수들이 호레이쇼 교수의 과격한 발언에 열광하며 교황과 교회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외치고 있었다. 개중에는 ‘뷔그노 만세!’라던가 ‘에우로텐은 로버트 마일러 교수의 추방령을 철회해라!’라고 대놓고 주장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카린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16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을 상상도 하지 못했지... 이런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교황의 권위를 깔아뭉개다니...”

“에우로텐에서 뷔그노 사상이 건너온 뒤로 레인가드도 많은 곤란을 겪고 있지요.”

정통 칼레타 교인인 프레이르가 호레이쇼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은 프레이르 자신도 이 과격한 대학생들에 동요하고 있었지만 그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레인가드에서 교회의 힘과 권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약화되었다는 것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에우로텐도 마찬가지야.”

카린이 대답했다.

“이미 뷔그노들의 물결이 에우로텐 전역을 휩쓸고 있지. 트레버의 말에 따르면 칼브리지 대학의 신학도 중 90% 이상은 열렬한 뷔그노라고 하더군.”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는 혀를 찼다. 이 과격한 이단자들에 장악 당한 에우로텐을 생각하니 탄식이 절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로버트 마일러 교수의 본교장인 칼브리지 대학은 예상대로 이단자들의 소굴로 전락한 모양이었다.

프레이르의 이런 반응을 알아차린 카린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뜻밖에도 뷔그노들을 옹호하고 있었다.

“사실 뷔그노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지금의 교회는 너무 타락하고, 세속화 되었어. 그에 반해 뷔그노들 중에는 참으로 신앙심 깊은 인물들이 많이 있지. 난 이단이니 교리이니 하는 것은 잘 모르지만 뷔그노들만큼 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칼레타 교인들 중에서는 찾기 힘들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카린이 뷔그노들에 대해 동정적으로 말하자 프레이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는 카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의혹이 담겨 있었다.

그녀도 프레이르가 자신을 의심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 챘다. 이 눈빛에 눌린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얼버무렸다.

“아, 물론... 칼레타 교회가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야. 나는 교회나 신학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알다시피 나는 세속적인 인간이거든.”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이 골치 아픈 문제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프레이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세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뷔그노들의 말대로 칼레타 교회에 개혁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에요. 성직자들의 부패는 도를 넘었죠.”

프레이르가 카린의 말에 동조하며 말했다. 그 말에 붉은 눈의 마법사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로라시아 대륙의 온갖 국가들을 돌아본 그녀는 교회의 타락상에 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프레이르의 앞에서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샤를과 프레이르가 뷔그노들에게 관용적이긴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칼레타 교회의 정통 교인들이었고 이단자들을 용서할 수 없는 입장에 서 있었기에 그녀는 함부로 이단자의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프레이르가 말했다. 카린은 움찔 놀라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뷔그노들의 교리는 결코 용납할 수 없어요. 전 감히 주님의 교회를 위협하는 이 이단자들을 좌시하지 않을 거에요.”

프레이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호레이쇼 교수를 노려보았다. 그는 호레이쇼 교수가 뷔그노의 명단에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보니 라시드 대주교가 뷔그노들의 명단을 얻어낸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레이쇼 교수 같은 경우에는 이미 공공연하게 자신이 뷔그노임을 공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는 새삼 라시드 대주교의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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