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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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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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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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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11.05.1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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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1)

DUMMY

성당에 들어가 프레이르와 알베로는 자리에 착석했다. 프레이르는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를 깔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까는 농담이었지만 지금은 진심이에요. 지옥이 있다면 여기겠죠.”

프레이르는 한낮의 열기를 받아 찜통처럼 더워진 성당 안에서 부채질을 했다. 초가을의 날씨는 여전히 여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그 열기는 성당을 덥혀 놓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이 성당은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구조로 지어졌는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프레이르는 한낮의 더위를 체험해야 했다.

프레이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정문 쪽을 바라보았다. 정문이 닫히는 것을 신호로 토론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정문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 웅장한 첨단아치 사이로 성직자들이 두 손을 모은 채 느릿느릿 입장하고 있었다.

“흐음...”

프레이르는 느긋하게 걸어 들어오는 성직자 중 아는 얼굴을 발견하고 신음했다. 이 더운 날 굳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얼굴을 숨기고 있는 그 인물은 트레버가 틀림없었다.

프레이르는 엉덩이를 탁탁 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의아해하는 알베로를 내버려 둔 채 성큼성큼 트레버에게로 걸어갔다.

“여전히 종교적 신념을 바꾸지 않을 생각인가요?”

프레이르가 느닷없이 말을 걸자 트레버는 흠칫 놀라며 프레이르 쪽을 바라보았다. 프레이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줄 거라 예상치 못한 듯했다. 그러나 곧 트레버는 프레이르가 친근감과는 거리가 먼 싸늘한 조소를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전하.”

트레버가 붙임성 없게 대답했다. 그러자 프레이르가 빈정거렸다.

“이렇게 뷔그노 측이 박살나는 와중에도 그렇게 고집을 부리다니 놀랍군요. 전 지금까지 트레버 씨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프레이르의 말에 트레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을 지키며 프레이르의 말을 무시했다.

‘멍청한 작자 같으니.’

프레이르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트레버가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흘 간에 걸친 토론회 기간 동안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뷔그노 측은 일곱 개의 쟁점 사항 중에 이미 3가지 부문에서 패배했고, 교회 측이 압승을 거두었다. 이 이상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란 말인가? 이미 대다수의 뷔그노들이 패배감을 맛보고 있었고, 그 중 반수 이상이 뷔그노 측의 주장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트레버는 뷔그노로서의 신념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프레이르가 이렇게 트레버에게 심한 말을 계속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트레버에게 일말의 우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는 트레버의 신앙심과 학문적 깊이, 그리고 그 강직한 성품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이단자지만 훌륭한 인재였고, 카린의 친구였다. 프레이르는 지금이라도 트레버가 마음을 돌리길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레버는 이러한 프레이르의 마음을 깨끗이 배반했다.

“그럼 전 이만.”

트레버가 프레이르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 차분한 모습에 프레이르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프레이르는 자신도 모르게 트레버의 멱살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거칠게 트레버를 끌고 한쪽 구석으로 가 벽에 밀어 젖혔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불통인거죠?”

프레이르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뷔그노는 패배했어요. 7개의 쟁점 사항 중 이미 3부문에서 정통 교회 측에 논파 당했다고요. 보면 몰라요?”

프레이르의 말에 트레버는 침울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얼굴로 프레이르를 응시했다. 그 표정에 프레이르는 더욱 분통이 터졌다.

“그런 눈으로 보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예요. 제 인내심은 생각보다 얕으니까요. 당신이 카린의 친구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당신을 도우려하진 않았을 거예요.”

프레이르는 거친 손놀림으로 멱살을 놓으며 트레버를 밀쳤다. 그는 분통 터지는 목소리로 트레버를 압박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이 의미 없는 논쟁을 계속해야 패배를 인정할거죠? 로버트 마일러 그 작자를 직접 모셔 와 굴복시킬 때까지인가요? 아니면 뷔그노들을 모두 장작더미에 올려서 불태워버릴 때까지인가요?”

프레이르의 말에 트레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 양심이 옳다고 주장하는 곳까지 저는 움직일 겁니다.”

트레버의 말에 프레이르가 소리쳤다.

“고집불통 같으니! 논리적으로 뷔그노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져도 끝까지 신념을 바꾸지 않겠다는 건가요?”

프레이르의 말에 트레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은...”

트레버가 침착하게 말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논쟁에서 뷔그노가 승리한다면 전하께서는 종교적인 신념을 바꾸겠다는 뜻입니까?”

트레버가 처음으로 그 무뚝뚝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도전적인 눈빛을 던졌다. 프레이르는 이 젊은 신학도의 태도에 조금 움찔했다. 잔뜩 주눅이 든 것처럼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트레버가 처음으로 앞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평온하지만 어딘지 모를 자신감이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트레버의 그러한 모습에 프레이르는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납득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교회 측이 논파 당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봐서는 아이크만 박사 한 명만으로도 뷔그노 측이 박살나는 형편인데요?”

프레이르의 말에 트레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은 앞으로 있을 일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 결과를 아시죠.”

“무슨 말인지 알지만 그런 식으로 허세를 부려봤자 정해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프레이르가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그 말에 트레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해진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말씀에는 저 역시 동의합니다.”

트레버의 말에 프레이르는 그를 노려보았다. 트레버가 말한 정해진 결과가 어떤 의미인지 프레이르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럼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토론회를 잘 지켜보도록 하죠.”

프레이르 ‘잘’을 강조하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런 프레이르의 모습을 지켜보며 트레버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성당의 화려한 천장에는 마텔 베이커가 그린 웅장한 천장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트레버는 그 천장화에서 인간을 향해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는 아벨 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모든 것은 당신의 뜻에 달려 있군요. 일을 계획하는 것은 인간이로되 이루는 분은 당신이십니다. 기어코 저로 하여금 카린과의 약속을 어기게 만드실 생각이십니까?”

트레버는 묘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그림 속의 아벨 신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천장화를 바라보았다. 마치 천장화에 그려진 아벨 신에게 기도라도 드리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천장을 바라보던 그는 이윽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착석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아벨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자신이 뜻하는 바가 신의 뜻에 부합하기를 간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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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3) +2 11.05.07 766 15 7쪽
80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2) +1 11.05.06 819 13 8쪽
79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1) +3 11.05.04 850 15 11쪽
78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4) +6 10.10.20 1,080 20 27쪽
77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3) +8 10.10.08 1,137 20 8쪽
76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2) +6 10.09.16 1,215 23 16쪽
75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1) +7 10.09.13 1,353 23 18쪽
74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4) +7 10.09.12 1,352 24 22쪽
73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3) +6 10.09.08 1,298 25 9쪽
72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2) +8 10.09.05 1,287 27 13쪽
71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1) +8 10.08.31 1,382 24 20쪽
70 로라시아 연대기 - 세자르의 보고 +14 10.08.28 1,353 26 4쪽
69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3) +12 10.08.27 1,375 33 21쪽
68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2) +6 10.08.26 1,339 33 14쪽
67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1) +8 10.08.24 1,362 41 20쪽
66 로라시아 연대기 - 아라스에서 맞는 아침 +7 10.08.23 1,404 28 11쪽
65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3) +8 10.08.22 1,402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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