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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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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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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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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10.09.0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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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3)

DUMMY

프레이르는 카린과 트레버, 그리고 알베로를 데리고 샤를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에도 카린은 쉴 새 없이 왕궁에 관해 떠들어댔다. 예전에는 이 건물이 없었다는 둥, 이쪽 벽에 그려져 있던 프레스코화는 어디로 갔냐는 둥, 왜 이렇게 샤를의 집무실은 입구와 멀리 있냐는 둥하며 그녀는 수다를 떨었다. 말수가 적은 편인 알베로와 트레버는 시큰둥하게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이 많은 마법사가 전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카린의 횡설수설함에 끼어들어 함께 킬킬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집무실 앞에서 두 사내를 만나자 프레이르의 즐거운 기분은 싹 사라지고 말았다. 그곳에는 리처드와 아르첼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것은 프레이르뿐만 아니라 두 사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아르첼과 리처드는 프레이르와 그 일행을 발견하자마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두 사람 모두 두 눈에 적의가 떠올랐는데 그 매서운 눈빛은 프레이르를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특히 리처드의 경우에는 입가에 노골적인 조소까지 떠올라 있었다.

“좋은 날씨입니다, 전하. 오늘은 그다지 덥지 않군요.”

리처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프레이르 역시 고개를 숙이며 화답했다.

“네, 가을이 다 되어서 그런지 제법 시원해져서 좋네요.”

“가을이라... 이제 곧 전하의 생일을 성대하게 준비해야 되겠군요.”

리처드가 형식적이면서도 잔뜩 뒤틀린 어조로 말했다. 프레이르는 고개를 저으며 쌀쌀맞게 대답했다.

“성대하게 준비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리처드의 입가에 빈정거리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아마도 프레이르 전하보다 더욱 곤욕스러울지도 모르겠군요. 저는 전하의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전하의 어머니이신 레아첼 왕비님의 일이 생각나거든요.”

리처드의 말에 프레이르는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리처드가 레아첼을 언급한 것이 불쾌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리처드가 무슨 소리를 하건 프레이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레아첼을 들먹였을리는 없었다.

“전하께서는 전혀 모르시겠지만 레아첼 왕비님의 죽음은 여전히 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런 비극적인 사건을 잊고 어떻게 왁자지껄 웃으며 건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레아첼 님이 돌아가신 바로 그 날에.”

리처드가 짐짓 엄숙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입꼬리는 레아첼의 죽음으로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가증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프레이르는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당사자가 죽은 바로 그 날에 축하의 건배를 드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그 사람이 죽은 것을 기뻐하는 모양새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영 마음이 불편해서 전하의 생일에 축배를 들 때마다 곤욕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니 전하의 생일을 열렬히 축하하지 못하더라도 부디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잘도 지껄이는군. 내 어머니를 증오했던 주제에.’

프레이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리처드 대공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파티에 초대하지 않도록 하죠. 다른 사람의 양심에 거스르는 짓을 강요하고 싶진 않네요.”

프레이르의 말에 리처드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전하의 생일을 위해 축배를 들 것입니다. 명색이 전하의 삼촌인데 그 정도의 모양새는 꾸며드려야 예의죠. 무덤에 묻힌 레아첼 님께서도 그 편을 바랄 것이고요.”

프레이르는 아마도 무덤에 묻힌 레아첼은 리처드가 프레이르의 생일잔치에 참석하는 것보다 리처드가 레아첼 자신의 관에 대신 묻히는 편을 더 바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해봤자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 마디 받아치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리처드에게 쏘아붙였다.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리처드 대공?”

프레이르의 말에 리처드는 그렇게 하라는 듯 팔을 펴 보였다. 프레이르는 공격적인 어조로 말했다.

“에우로텐에서 오신 손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에우로텐에서는 간혹 국왕의 초대장을 받고도 연회에 참석하지 않는 자들의 목을 그림볼드 광장에 걸곤 했다는 군요. 물론 목의 아랫부분은 강바닥에 던졌고요.”

프레이르는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는 레인가드 왕족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가끔은 에우로텐왕실에게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프레이르의 위협적인 말에 트레버는 깜짝 놀라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프레이르의 말뜻을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카린에게 자신의 해석이 올바른지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카린의 설명을 들은 트레버의 입이 벌어졌다.

리처드는 프레이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프레이르의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트레버와 카린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발견한 리처드는 그제야 두 사람이 프레이르의 일행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는 카린과 트레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분들이 그 에우로텐에서 온 손님들입니까?”

“맞아요.”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카린과 트레버를 소개하려 했다. 그 순간, 카린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네, 리처드. 정말 많이 성장했는걸?”

카린의 말에 리처드는 자리에서 펄쩍 뛰며 대단히 불쾌하다는 얼굴로 카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카린을 빤히 쳐다보며 이 무례하고 경박한 여인이 누구였는지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었다.

그의 파란 눈동자와 카린의 독특한 붉은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리처드는 비로소 카린의 정체를 기억할 수 있었다. 동시에 리처드의 눈가에 더없이 짜증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홍염의 마법사...”

“이제야 기억해주는군.”

카린은 활짝 웃으며 리처드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 스스럼없는 행동에 리처드는 더없이 얼굴을 찡그리며 황급히 손을 뺐다. 그리고 그는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카린을 바라보았다.

“어라? 내가 반갑지 않은 거야?”

카린이 빈정거리며 물었다. 리처드는 손을 탁탁 털며 대답했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다만 이렇게 악수를 할 정도로 반가운 사이인지는 잠시 고민을 해봐야겠군요.”

리처드가 모욕적으로 말했다. 이 반응으로 프레이르는 리처드가 자신은 물론 카린 역시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리처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프레이르 자신을 볼 때와 판박이였기 때문이었다. 마치 어금니 사이에 쓰디쓴 쓸개로 문 것처럼 그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한편 리처드의 무례한 태도에도 카린은 얼굴 하나 붉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태연하게 리처드의 말을 받아 넘겼다.

“고민할 필요가 뭐가 있어. 서로 볼장 다 본 사이인데.”

카린의 넉살 좋은 말에 리처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그는 잔뜩 심사가 뒤틀린 얼굴로 프레이르와 카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마치 발 밑을 기어가는 징그러운 벌레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카린을 응시하던 리처드는 이윽고 프레이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후 아르첼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흥, 저 녀석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카린이 리처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복도에 침을 탁 뱉으며 마치 리처드가 들으라는 듯이 욕설을 내뱉었다.

“불쾌한 자식. 어떻게 샤를과 포르테빌 사이에 저런 녀석이 끼어들었는지? 신이라는 작자는 분명 끼워팔기 식으로 저 불량품을 같이 팔아치운 게 틀림없어.”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에요.”

“왜 샤를은 아직까지 저 녀석을 살려 두고 있는 거지? 반역죄든 사고사든, 뭐든 뒤집어 씌워서 날려버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카린이 투덜거렸다. 프레이르 역시 카린과 같은 생각이었지만 몇 가지 짚이는 이유가 있긴 했다.

“무언가 짚이는 이유라도 있어?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인데?”

카린이 프레이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프레이르는 재빨리 표정을 감추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샤를 폐하는 신앙심이 깊으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라고 했잖아요.”

프레이르의 대답에 카린은 코웃음을 쳤다.

“나라면 그러지 않겠어. 오른뺨을 때리면 때린 녀석의 다리를 부러뜨려 놓아야 뒤탈이 없거든.”

카린은 이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어보였다. 작고 연약해보이는 주먹이었지만 여기서 강력한 화염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프레이르는 결코 카린의 말이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카린 양과 샤를 폐하는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네요.”

프레이르는 재빨리 이렇게 씩 웃었다. 그리고 그는 카린에게 집무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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