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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님의 서재입니다.

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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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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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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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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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3)

DUMMY

알베로는 아라스의 시내를 걷고 있었다. 오늘로 조사는 사흘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알베로는 단 하루 만의 조사 끝에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냈다. 그 조사 결과가 어찌나 만족스러웠던지 그는 아벨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세 번씩이나 올릴 정도였다.

알타미라 후작의 계획은 알베로 자신의 조사에 의해서 모두 간파 당했다. 알타미라 후작은 레미엔 상인조합이 하시에르의 사치품을 독점적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을 꾸민 것이 틀림없었다. 하시에르가 전쟁 준비를 치르느라 그 사치품이 대량으로 재고에 쌓여 있었던 것이다. 알베로는 프레이르가 맡겨 둔 금화를 뿌려 하시에르의 뱃사람들을 매수하여 이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베로는 미소를 지으며 하시에르의 갤리선들이 접안 된 해안가를 거닐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진 노예들의 음울한 표정도 그의 유쾌한 기분을 허물지는 못했다. 그는 이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기면서 프레이르에게 전해줄 보고서의 개요를 짜기 시작했다.

약 한 시간 동안 아라스 부두를 돌아다니던 그는 날이 다시 더워지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여관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보고서를 작성하고 오늘 중에 곧바로 카시네예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프레이르와는 원래 이틀 뒤까지 보고서를 전달해주기로 약속했지만 빨리 전해주면 빨리 전해줄수록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알베로는 서두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산책을 마치고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여관으로 향했다. ‘검둥개의 집’이라는 기묘한 이름을 지닌 여관이었다. 바닷가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폭풍이 불거나, 해일이 몰려오면 침수되기 일쑤인 이 여관은 보통은 가난한 뱃사람들이 주로 머무르는 곳이었다. 그러나 알베로는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고자 하는 마음에 이곳에서 숙박하였다. 그만큼 그의 자금 사정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덕지덕지 때가 낀 새까만 식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젯밤 그곳은 거친 레인가드의 뱃사람과 해군 수병이 거나하게 취한 채 카드게임을 벌이던 곳으로서 온갖 소란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이런 다 쓰러져가는 여관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알베로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 알베로 경. 이제 오셨군요.”

알베로를 발견한 세자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알베로와 가볍게 포옹을 하였다.

“이곳에 머무른단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이 한 마디로 알베로는 알타미라 후작이 자신과 프레이르의 조사를 눈치 챘으며, 세자르는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왔다는 사실을 단숨에 눈치 챘다. 어제 카시네예프로 돌아간 세자르가 논문 작성이라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또다시 자신과 대화하기 위해 몸소 아라스까지 되돌아왔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분명히 그는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기 위해 이곳에 왔을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제 이미 카시네예프로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요.”

알베로가 조금 사무적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자 세자르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멈추었다. 알베로가 냉담하게 반응하자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알베로는 역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세자르는 결심한 듯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어차피 알베로 경은 제가 여기까지 온 목적을 이미 알고 계실 테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알타미라 가문과 레미엔 상인조합을 도와주십시오.”

세자르의 말에 알베로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협조해 드리겠습니다.”

알베로의 시원스런 말에 세자르는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는 우정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알베로 경.”

세자르의 악수를 받자 알베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세자르는 이것을 우정의 표시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알베로가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해진 세자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레미엔 상인조합이 무엇을 구입하려 하는지 파악하셨습니까?”

알베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향신료와 차, 그리고 비단과 도자기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모두 에르카디아의 ‘창’국에서 수입해 온 사치품들이고요. 현재 하시에르의 상인조합 사이에서 재고가 쌓여 있지만 하시에르에서는 그 가격이 폭락한지라 레인가드에서 처분하고자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베로의 정확한 조사에 세자르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감탄하며 대답했다.

“정확히 조사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군요. 말씀대로입니다. 레미엔 상인조합은 하시에르의 사치품 재고를 매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세자르는 주위를 둘러보며 알베로에게 어깨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는 귓속말을 했다.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세자르의 질문에 알베로 역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전하께서는 레미엔 상인조합이 사치품을 구입하려 한다는 것까지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구입하려 하는지는 모르고 계십니다. 제가 그 부분을 조사해서 모레까지 보고 드리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알베로의 말에 세자르는 깊이 안도하였다. 혹시라도 이미 프레이르가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면 더 이상 막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아직 프레이르는 구체적인 정보는 입수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기회는 남아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알베로 경.”

세자르가 입을 열었다. 알베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능한 것이라면.”

“감사합니다.”

세자르는 다시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알베로에게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전했다.

“프레이르 전하께 드릴 보고를 조금 수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알베로가 되묻자 세자르는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말에 스스로 가책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음... 알베로 경을 신뢰하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 레미엔 상인조합의 하시에르 사치품 구매를 방해하지 않도록 유도할 만한 보고서를 올렸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서... 하시에르 사치품의 재고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아서 이익이 남지 않는다거나... 아니면 하시에르가 아니라 에우로텐의 사치품을 구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보고서를 말이죠.”

“그 말은... 저에게 거짓보고를 올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알베로가 모욕을 당했다는 듯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세자르는 크게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거짓보고가 아니라 저희 알타미라 가문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추가해 달라는 뜻입니다.”

세자르의 말에 알베로는 굳은 얼굴을 풀며 웃음을 지었다.

“농담입니다. 세자르 경 같이 고귀한 분이 그런 일을 부탁할리 없겠죠.”

알베로의 분위기는 훨씬 누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세자르의 질문에 확답하지는 않으며 교묘하게 질문을 회피해갔다. 이 애매한 대답에 초조해진 세자르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제 말대로 해주시겠습니까?”

알베로는 가만히 세자르를 바라보았다. 그의 연갈색의 눈동자는 세자르의 얼굴에 똑바로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잠시 후 알베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자못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사실 저는 웬만한 일이라면 세자르 경의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지난 몇 년 동안 깊은 우정을 나누어 왔고, 알타미라 가문은 카스티야 가문의 은인이니까요. 알타미라 가문의 살롱에 속한 제가 알타미라 가문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등을 돌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알베로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보고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프레이르 전하의 비서관이고, 전하께 이 내용에 관해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전해드리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알베로의 말에 세자르는 적잖이 실망하였다. 알베로는 그 반응을 모른 체하며 말했다.

“알타미라 백작님을 돕고 싶지만 보고 내용을 고치는 것은 아무래도 곤란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보고를 올려봤자 프레이르 전하는 그 내용을 믿지 않으실 겁니다. 분명히 제가 알타미라 가문에 매수되었다고 여기시겠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자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알베로는 짐짓 걱정스런 얼굴을 지어보였다.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이 사건에 관련하여 알타미라 후작님이 중추원 회의에서 자신을 속였다고 생각하십니다. 그 때문에 전하께서는 알타미라 후작님께 화가 나신데다가 후작님을 믿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런 상태에서 제가 석연찮은 보고서를 올린다면 전하께서는 저를 의심하실 것입니다.”

“전하께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는 알타미라 후작님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면서 후작님이 자신을 속인다면 자신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알베로를 신뢰하는 세자르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더듬거리며 알베로에게 물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 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자르의 말에 알베로는 천천히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알타미라 가문이 사치품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 때문에 전하께서는 전체적인 사치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적으로 인상할 것을 국왕 폐하께 부탁드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알타미라 후작님께서 왕자님 자신을 속이고 이익을 취하려 한 것에 대한 괘씸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럴수가...”

세자르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알베로는 세자르를 더욱 밀어붙였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세자르는 눈을 들어 알베로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보다 더 안 좋은 소식이 있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이 문제로 인해 알타미라 가문과의 협력에 회의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알타미라 후작님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알타미라 후작님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린 이상 그 분은 알타미라 가문과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십하고 계십니다. 조금 더 속된 말로 말하자면 전하께서는 알타미라 후작님께서 자신의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알베로의 말은 세자르에게 있어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 왕자가 알타미라 가문에 대한 신뢰를 잃어 동맹 관계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Indignatio princeps mors est.’, ‘군주의 분노는 죽음을 뜻한다.’라고 했습니다. 프레이르 전하께서 알타미라 가문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된 이상 제가 도와드리기는 힘들 것입니다.”

알베로의 말에 세자르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알베로의 말대로라면 상황은 대단히 심각했기 때문에 그는 한없이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자신들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 것뿐만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알타미라 가문과 왕실 사이의 관계가 험악해질 것이 뻔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세자르는 알베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알베로와의 우정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타미라 살롱에 속했으며, 알타미라 가문의 원조를 받았고, 자신과 5년에 가까운 세월을 형제처럼 함께 해 온 알베로를 그는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세자르의 이러한 신뢰를 이용하여 알베로는 더욱 세자르를 안달하게 만들었다.

“저도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제 사정을 이해해 주십시오, 세자르 경.”

알베로는 이렇게 둘러대며 세자르를 지나가 2층의 방으로 올라가려 했다. 다급해진 세자르는 알베로의 옷깃을 붙잡았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베로 경.”

알베로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며 세자르를 바라보았다. 세자르는 그 태도에 조금 움찔했지만 곧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우리 알타미라 가문을 오해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결코 프레이르 전하를 속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렇겠지요. 알타미라 후작님은 훌륭한 인품을 가지신 분이 아니십니까? 저는 후작님께서 전하를 속이고 사적인 이익을 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베로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한 번 돌아서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도 삐뚤어지게 보이는 법 아니겠습니까? 프레이르 전하의 상황이 바로 그런 상황입니다. 사치품의 관세를 높이겠다는 전하의 의지는 아마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레미엔 상인조합은 이익은 물론 왕실과 알타미라 가문의 협력도 흔들리게 되겠지요.”

알베로의 말에 세자르는 다급하게 말했다.

“알베로 경이 힘을 써 주시면 안 됩니까? 알베로 경도 알타미라 가문과 프레이르 전하 사이의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만약 관세를 높여서 레미엔 상인조합에 타격을 준다면 이것은 제 아버지의 얼굴을 먹칠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입니다. 프레이르 전하와 제 아버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겠지요?”

“저야 물론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프레이르 전하께서는 후작님께 배신감을 느끼고 계십니다. 저 같은 비서관 따위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 분의 뜻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알베로 경은 프레이르 전하께서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지 않습니까? 무언가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글쎄요...”

알베로는 이렇게 말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이 머리에 손가락을 대었다. 세자르는 알베로를 바라보며 초조하게 그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동안 뜸을 들이던 알베로가 입을 열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렇다면 방법이 아주 없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알베로의 말에 세자르의 귀가 번쩍 뜨였다.

“무슨 방법입니까?”

세자르의 물음에 알베로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미 프레이르 전하 모르게 일을 처리하려던 알타미라 가문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프레이르 전하는 거의 모든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알타미라 가문에서 먼저 전하께 제대로 된 정보를 올리지 못했음을 시인하는 겁니다.”

“그런다고 전하께서 인정해주시겠습니까, 알베로 경?”

세자르가 조금 실망한 눈치로 말했다. 그러자 알베로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저 말로만 한다면 전하께서 믿지 않으시겠지만, 적절한 사례를 한다면 전하께서도 알타미라 가문과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너그럽게 이해하시지 않겠습니까?”

알베로가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세자르는 마음이 흔들렸다.

“사례라면...”

“하시에르의 사치품의 재고를 레미엔 상인조합과 에스칼 상인조합이 서로 반반씩 나누는 것입니다. 레미엔 상인조합에게만 아라스 금화 유통의 독점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에스칼 상인조합에도 그 권리를 나누어줘서 왕실도 어느 정도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알타미라 가문에서 배려해 주시는 겁니다. 이 정도의 사례라면 제가 프레이르 전하로 하여금 알타미라 가문의 충성심을 이해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만...”

“이익의 절반입니까...”

세자르는 나지막하게 신음소리를 내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는 알베로가 말한 제안의 손익에 관해 저울질하였다.

알베로의 말대로라면 이익의 절반과 함께 동맹관계를 지켜내는 것이 분명 이득이었다. 하지만 세자르는 아버지인 알타미라 후작이 이익의 독점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자르가 명령 받은 것 또한 레미엔 상인조합의 독점적인 이익을 지켜내라는 것이었다. 세자르는 절반의 이익을 나누었다가 아버지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무언가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세자르가 결단을 망설이며 망설이며 다시 물었다. 알베로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로서는 이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프레이르 전하께서 사치품의 관세를 인상하면 레미엔 상인조합에 떨어지는 이익은 한 푼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전하께서는 이미 알타미라 가문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것까지 각오하고 계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드려야겠군요.”

알베로가 조금 협박조의 말투로 세자르를 압박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세자르에게 신뢰감을 주는 동시에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아까 세자르 경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왕실과 알타미라 가문의 협력 관계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요. 저로서는 이익도 얻지 못하고, 왕자님을 적대 세력으로 돌릴 바에야 절반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보입니다만...”

알베로의 말에 세자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내면은 심각한 갈등으로 혼란스러웠다. 알타미라 후작의 명령을 따르면서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알베로의 말을 믿고 안정적인 노선을 취하면서 아버지의 분노를 각오할 것인가...

그 때, 세자르의 눈에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알베로와 프레이르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모든 것을 간파해냈다는 베아트리체... 자신에 비해 재능이 넘치고, 일처리가 확실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베아트리체... 그녀를 떠올리자 세자르의 마음에는 오기가 솟구쳤다. 그는 베아트리체가 프레이르 왕자의 의도를 간파해냄으로서 아버지의 신임을 얻었다면 자신도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심이 선 세자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좋습니다. 전하에게 에스칼 상인조합에 아라스 금화의 유통권리 절반을 넘겨드리겠다고 말씀드려 주십시오.”

세자르의 말에 알베로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자르는 덧붙여서 말했다.

“또한 알타미라 가문은 프레이르 전하께 충성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전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프레이르 전하를 설득하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분명 알타미라 가문의 진심을 헤아려 주실 것입니다.”

알베로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세자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세자르는 그 손을 잡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알베로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아버지에게 이 거래에 관해 보고하기 위해 카시네예프로 향했다.

알베로는 문 앞까지 나가 세자르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는 세자르와 헤어진 뒤, 자신의 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조금 지친 기색으로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걸어 잠갔다.

문이 단단히 잠긴 것을 확인한 그는 문에 자신의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승리감과 통쾌함에 도취된 그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성공했다. 프레이르가 알타미라 가문에 분개하고 있다는 거짓말 하나만으로 그는 보기 좋게 세자르를 속여 넘긴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알타미라 가문으로부터 이익의 절반을 빼앗는 것까지 성공했다. 그는 미숙한 세자르를 조종하여 알타미라 가문 스스로 이익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악마처럼 웃어댔다. 자신이 증오하는 알타미라 가문에 통렬한 일격을 먹인 것에 알베로는 더없이 즐거워 하고 있었다. 알타미라 후작은 자신의 아들인 세자르가 알베로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자르에게 전권을 위임한 알타미라 후작은 세자르가 독단적으로 맺은 약속을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승리였다.

한참 동안 그는 어리석은 세자르를 비웃기도 하고, 알타미라 후작의 온화한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상상하기도 하면서 웃어댔다. 항상 차가운 인상을 잃지 않는 그가 이토록 이성을 잃고 웃어댄 것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윽고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즐거운 손놀림으로 프레이르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야비하면서도 환희에 가득찬 미소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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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4 leonroth
    작성일
    10.08.27 21:14
    No. 1
  • 작성자
    Lv.22 asdfg111
    작성일
    10.08.27 21:39
    No. 2

    역시 정계는 절대 만만하지 않는 곳이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유정
    작성일
    10.08.27 21:48
    No. 3

    흠 후작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겠구뇽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 아우레아
    작성일
    10.08.27 21:54
    No. 4

    여...역시 불쌍한 세자로 ㅜ.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염폭(廉瀑)
    작성일
    10.08.27 22:29
    No. 5

    ....이것도 약이라는....크게 될녀석이야.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1 血天狂魔
    작성일
    10.08.27 23:44
    No. 6

    저라다가 알베로 저넘 목이 달아날듯,
    저렇게 깝치다가 목이 달아난 비서관들이 실제역사에도 좀 많았던걸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1 Chastirg
    작성일
    10.08.28 02:01
    No. 7

    우왕 굳.
    그런데 세자르로써도 어쩔수 없었던게,, 잘못한 게 워낙 확실해서, 흔들릴 수 밖에 없었을듯. 불쌍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Enya
    작성일
    10.08.28 02:15
    No. 8

    알베로 경 좀 짱인듯...ㅋㅋ 세자르는 안 됬지만ㅠㅠ
    애초에 세자르가 알베로를 상대해 내는 건 무리 ㅠㅠ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어둠의종자
    작성일
    10.08.28 15:42
    No. 9

    가끔 드는 생각이 알베로는 미친놈 같다는. --; 동생 울렸다고 저렇게 증오심을 품다니! 무서운 놈일세!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 Stellar
    작성일
    10.08.28 15:48
    No. 10

    알베로는 왕당파이고, 알타미라 가문이 자신의 출세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다훈
    작성일
    10.09.08 16:22
    No. 11

    세자르에게 설득의 임무를 준 것이지 협상 전권을 준 것이 아니라 생각했는데......

    협상이라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은하계
    작성일
    10.09.27 20:04
    No. 12

    저러다 진짜로 돌아서면 어쩌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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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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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5) +2 11.05.26 763 15 18쪽
87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4) +1 11.05.25 784 14 15쪽
86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3) +1 11.05.20 801 16 8쪽
85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2) +2 11.05.15 854 18 7쪽
84 로라시아 연대기 - 23.이단자 신학도의 역위치(1) +2 11.05.11 776 18 8쪽
83 로라시아 연대기 - 베아트리체의 장난 +2 11.05.10 786 13 21쪽
82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4) +1 11.05.08 779 19 13쪽
81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3) +2 11.05.07 766 15 7쪽
80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2) +1 11.05.06 818 13 8쪽
79 로라시아 연대기 - 22.믿음의 수호자(1) +3 11.05.04 850 15 11쪽
78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4) +6 10.10.20 1,080 20 27쪽
77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3) +8 10.10.08 1,137 20 8쪽
76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2) +6 10.09.16 1,214 23 16쪽
75 로라시아 연대기 - 21.카시네예프 대학(1) +7 10.09.13 1,352 23 18쪽
74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4) +7 10.09.12 1,351 24 22쪽
73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3) +6 10.09.08 1,298 25 9쪽
72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2) +8 10.09.05 1,286 27 13쪽
71 로라시아 연대기 - 20.마법사와 신학도(1) +8 10.08.31 1,381 24 20쪽
70 로라시아 연대기 - 세자르의 보고 +14 10.08.28 1,353 26 4쪽
»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3) +12 10.08.27 1,375 33 21쪽
68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2) +6 10.08.26 1,338 33 14쪽
67 로라시아 연대기 - 19.알타미라 후작가(1) +8 10.08.24 1,362 41 20쪽
66 로라시아 연대기 - 아라스에서 맞는 아침 +7 10.08.23 1,404 28 11쪽
65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3) +8 10.08.22 1,401 23 12쪽
64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2) +12 10.08.21 1,384 27 8쪽
63 로라시아 연대기 - 18.재회(1) +7 10.08.18 1,418 26 15쪽
62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4) +15 10.08.17 1,483 24 19쪽
61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3) +7 10.08.16 1,453 19 16쪽
60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2) +10 10.08.15 1,493 23 21쪽
59 로라시아 연대기 - 17.이중목적(1) +6 10.08.14 1,487 2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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