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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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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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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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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11.08.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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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로라시아 연대기 - 28.19인의 명단(2)

DUMMY

프레이르와 아르넷은 아침을 먹자마자 총사대의 연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만에 아침 시간이 비었기 때문에 함께 사격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종종 내기조건을 걸고 머스킷 사격을 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약 40m 정도의 거리 앞에 과녁을 세워둔 채 머스킷을 발사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세 정의 머스킷을 옆에 두고 세 발씩 번갈아가며 머스킷을 발사했다. 그들의 뒤에는 시종들이 대야에 물을 담아두고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것은 프레이르와 아르넷이 흑색 화약으로 더러워진 손을 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둔탁한 폭발음과 함께 아르넷의 머스킷에서 탄환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그 탄환은 과녁의 중앙을 빗나가 과녁의 하단을 맞추었다.

아르넷이 쏜 총알이 과녁의 아래쪽을 꿰뚫는 것을 보며 프레이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급소를 노린 거라면 확실히 완벽한 조준이긴 하지만......”

프레이르는 아르넷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같은 남자로서 조금 잔인하지 않아?”

“아, 젠장!”

프레이르의 놀림에 아르넷이 들고 있던 머스킷 총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는 머스킷 총의 상태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뭐, 이따위 총이 다 있어? 어떻게 겨냥할 때마다 반대쪽으로 날아갈 수가 있지?”

“쏘는 사람의 마음이 삐뚤어져서 그래. 마음이 올곧고 정직한 사람은 똑바로 나갈 거야. 예를 들면 나라던가.”

프레이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허풍과 거짓말, 위선이 대화의 절반을 차지하는 프레이르가 당당히 자신을 가리켜 ‘마음이 올곧고 정직한 사람’이라 말하자 아르넷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빗나가는 총알과 프레이르의 이 사기꾼도 울고 갈 뻔뻔한 태도에 맥이 다 풀린 모양이었다.

“스스로 그런 말을 하고도 양심에 찔리는 게 없냐?”

아르넷이 화약을 재워 넣고 탄환을 장전하기 시작한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프레이르는 아무 말 없이 머스킷을 장전한 뒤 양각대 위에 총을 올려놓고 과녁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는 호흡을 멈춘 뒤 방아쇠를 당겼다.

‘팡’하는 폭발음과 함께 프레이르가 쏜 총알이 과녁의 정중앙에 꽂혔다.

“응? 뭐라고 했어? 다시 한 번 말해줄래?”

프레이르가 얄미운 웃음을 지으며 아르넷에게 말했다. 그 빈정거리는 듯한 얼굴에 아르넷은 순간 울컥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자식 진짜 짜증나.’

아르넷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어.”

프레이르가 어느새 또다른 머스킷을 장전한 다음 그것을 조준하며 입을 열었다. 아르넷은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리고 또다시 ‘펑’하는 소리와 함께 프레이르의 총알이 과녁에 명중했다.

“난 왜 이렇게 신의 사랑을 받아서 온갖 재능이 차고 넘칠까 하는 생각.”

프레이르의 잘난 척에 아르넷은 아침으로 먹었던 생선이 배 속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열 받지?”

프레이르가 아르넷의 속을 뒤집어 놓으며 말을 이었다.

“왜냐면 사실이니까.”

프레이르가 세 번째 총알마저 과녁의 정중앙에 명중시키며 아르넷에게 씩 웃어보였다.

결국 프레이르는 서른 발 중 스물다섯 발을 과녁에 명중시키며 내기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아르넷은 스무 발을 명중시키는데 그쳤다. 아르넷 역시 머스킷 사수로서는 일급 사수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 프레이르는 이미 총사대원조차 당해낼 수 없는 수준이었기에 그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아... 정말 이 놈의 천재성은 이젠 나 자신도 두려울 정도구나.”

프레이르가 화약이 잔뜩 묻은 손을 씻은 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며 잘난 척을 해댔다. 프레이르의 말에 배알이 꼴린 아르넷이 툴툴거렸다.

“쳇! 남자라면 당당하게 검으로 승부를 봐야지. 총은 비겁하단 말이야.”

아르넷이 말에 프레이르는 코웃음을 쳤다.

“너 전쟁 나갈 때 어디 당당하게 검만 들고 나가는지 한 번 두고 보자.”

프레이르는 아르넷에게 수건을 던져주며 말했다. 아르넷은 프레이르와 마찬가지로 화약이 잔뜩 묻은 손을 씻은 뒤 그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아르넷이 손을 닦는 모습을 지켜보던 프레이르는 이윽고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아르넷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자, 그럼 내기에서 졌으니 약속을 지켜야겠지?”

프레이르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프레이르의 이 말에 아르넷이 ‘윽’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리고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해하며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잠깐만. 아까 그건 농담 아니었어?”

“어허, 내가 내기를 걸 때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가 뭐였지?”

프레이르가 엄숙한 어조로 아르넷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르넷의 얼굴이 종이조각처럼 구겨졌다.

아르넷이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내기를 건 사람은 애비를 팔아서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잘 기억하네.”

프레이르가 박수를 치며 아르넷에게 말했다. 아르넷은 프레이르의 이 말에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하기냐?”

프레이르가 남자를 운운하며 아르넷의 자존심을 긁었다. 그리고 이 말이야말로 아르넷의 불평과 불만을 일격에 잠재울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이었다.

아르넷은 이를 부득 갈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더구나 그는 프레이르에게 자비를 구걸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르넷으로서는 자존심을 꺾고 프레이르에게 고개를 숙이느니 차라리 혀를 깨무는 것이 나았다.

“너 나중에 두고 보자. 그 때는 울면서 빌어도 안 봐준다.”

아르넷의 경고에도 프레이르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테니 대신 걱정 안 해줘도 돼.”

프레이르가 혀를 날름 내밀며 아르넷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아르넷이 벌칙을 수행하는 것을 기다려주었다.


알베로는 프레이르를 찾아 총사대의 연병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누군가를 방문하는 것은 레인가드에서 큰 실례였다. 레인가드 귀족들에게 토요일이란 일주일 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휴식을 즐기며 일요일에 있을 종교 행사를 준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베로는 그런 자질구레한 결례에 얽매이지 않고 프레이르를 찾아 나섰다. 얼마 전 상당히 우려스러운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프레이르가 있는 장소에서 한 차례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베로는 시끌벅적한 것을 좋아하는 프레이르를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쉰 후 프레이르와 그 무리가 모여 있는 연병장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윽...”

사격을 마치고 의자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프레이르에게 다가가던 알베로는 순간적으로 숨을 들이 삼켰다.

“아, 알베로. 무슨 일이에요?”

식탁 위에 두 발을 올린 채(!) 느긋한 모습으로 홍차를 마시던 프레이르가 알베로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리처드 대공이나 레스터 공작과 같이 점잔을 떠는 귀족들이 보면 기겁을 할 만한 꼬락서니였다. 하지만 알베로의 눈은 프레이르가 아닌 조금 더 뒤쪽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도저히 이 세상에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충격적인 광경에 알베로의 두 다리가 얼어붙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호, 홍차를 더 따라드릴까요, 전하?”

프레이르의 뒤에 서 있던 시녀가 프레이르의 찻잔이 비자 꿈틀거리는 주먹을 억누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프레이르는 알베로의 경악한 얼굴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태평하게 찻잔을 내밀었다.

“아, 고마워.”

프레이르는 시녀가 따라주는 차를 홀짝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세상을 다가진 것 같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홍차 한 모금에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알베로는 왠지 모르게 저 행복한 미소의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베로도 한 잔 할래요?”

프레이르가 알베로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는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영광으로 알라고요. 이렇게 기분 좋은 차는 평생 두 번 정도 밖에 없으니까요.”

프레이르의 말에 프레이르에게 차를 따라줬던 시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더불어 시녀의 험상궂은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알베로는 시녀의 그 도깨비 같은 모습에 뒤로 주춤 물러서며 프레이르의 제안을 사양했다. 여기서 프레이르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리에 앉았다간 저 불끈불끈 근육이 솟아난 시녀에게 맞아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맨손으로 오크의 머리통조차 박살낸다는 아르넷 레드포드 경에게 차를 달라고 할 정도로 알베로는 무모하지 않았다.

그랬다. 프레이르의 등 뒤에 서서 차를 따라주고 있는 시녀는 바로 아르넷이었던 것이다! 혼자서 열을 상대한다는 총사대원들조차 감히 대적하기를 꺼린다는 아르넷이 시녀의 옷을 입고 다소곳한 태도로 프레이르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

“아쉽네요.”

프레이르가 찻잔을 흔들어 보이면서 마치 알베로를 유혹하는 듯이 말했다. 물론 이 모든 행동이 아르넷의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한 것임을 알베로는 잘 알고 있었다.

“이런 호사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건데 말이죠. 누가 뭐래도 아르넷 양이 끓여주는 홍차니까요.”

프레이르가 홍차를 홀짝이며 알베로에게 말했다. 프레이르가 말한 호사란 여장을 한 아르넷이 정성스러 끓여준 홍차를 마신다는 의미겠지만 알베로는 그 호사만큼은 절대로 사양하고 싶었다. 여장을 한 아르넷 경과 함께 티타임을 갖느니 차라리 지옥의 입구에서 악마와 함께 차를 마시는 것이 더 안전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알베로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프레이르는 홍차에 조금 우유를 탄 다음 다시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생각 없어요?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알베로가 얼른 대답했다. 프레이르의 뒤에서 아르넷이 '네 놈이 홍차를 마신다고 말했다간 내장을 밖으로 끄집어내 비틀어 버릴 테다.'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관절을 연신 꺾어댔기 때문이었다. 시녀복을 입은 채 우드득하는 소리를 내는 그 광경은 공포 그 자체였기에 알베로는 식은땀을 흘리며 프레이르의 제안을 거절했다.

“알베로는 풍류를 모르는 군요.”

프레이르가 비실비실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홍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순진무구한 얼굴이었으나 알베로는 프레이르의 그 미소가 악의로 가득차 있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에요?”

프레이르가 아르넷에게 찻잔을 흔들어 보이며 알베로에게 말했다. 얼른 빈 잔을 채우라는 이 제스처에 아르넷은 당장이라도 프레이르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다는 듯한 얼굴로 프레이르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그 살기등등한 표정에 알베로는 프레이르의 곁으로 다가가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이 사안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떠벌릴 만한 성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별 수 없이 두려움을 꾹 참고 프레이르에게 다가가 그 귀에 속삭였다.

“최근 레스터 공작과 리처드 대공이 왕립 학교 졸업생들을 포섭하며 세를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전하.”

알베로의 말에 여태까지 태평하게 아르넷을 놀리고 있던 프레이르의 눈썹이 꿈틀했다.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여 아르첼을 지지할 세력을 키워보겠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한 자리씩 마련해줘서 자기편으로 삼고 있다는 거예요?”

프레이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묻자 알베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리는 바로는 이미 대여섯 명을 포섭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알베로의 말에 프레이르는 ‘칫’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 사람들을 뺏어보시겠다?”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 졸업생들은 대다수가 프레이르의 지지자였다. 가문이나 정치적 입장 때문에 프레이르와 거리를 두고 있는 졸업생들조차도 프레이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프레이르는 3년간 특유의 너글너글한 태도와 호감 가는 행동, 그리고 묘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능력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했고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왔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은 왕립 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관료조직과 군대의 요직을 제안하며 그들을 포섭하기 시작했다. 프레이르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아르첼을 지지해 줄 기반을 닦기 위해서였다.

“이미 톨리 남작의 막내아들인 로돌프 경은 고등재판소의 법무관에, 셰리프 남작의 조카인 테오도어 경은 아렌체 대사관에, 그리고 브리그 가문의 제이미르 군은 국민 위병대의 대장 자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쳇. 능력도 좋군. 그런 감투를 휙휙 던져주다니.”

프레이르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우아한 몸짓으로 모자를 벗어 보이며 아르넷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봐야겠군요. 아가씨를 모셔다 드리지 못하는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죽여 버린다.”

아르넷이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아르넷의 이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알베로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알베로를 인적이 드문 복도에 데려온 프레이르는 딱딱한 벽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꼈다. 무언가 깊이 생각할 것이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취하는 자세였다.

“리처드 대공과 셰리프 남작이 직접 졸업생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자리를 제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친애하는 리처드 삼촌이 꾸민 짓이군요. 참 대단하죠. 나한테 물을 먹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잘도 찾아내니...”

알베로의 보고에 프레이르가 빈정거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프레이르는 리처드가 꾸미고 있는 흉계로 인한 손실을 계산하고 있었다.

‘레스터 공작이라면 넘겨 줄 감투가 많을 테니 대여섯 명으로 끝날 리는 없겠고... 뭔가 수를 쓰지 않으면 크게 한 방 먹을 수도 있겠는데......’

프레이르는 몸을 벽에 기댄 채 리처드 대공이 일으킨 문제에 관해 고민했다. 리처드 대공의 생각대로 순순히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무언가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그 때 프레이르의 고민을 읽은 알베로가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전하께서도 졸업생들에게 관직을 제안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프레이르는 알베로를 바라보았다.

“요직과 승진을 약속하며 끌어들인다면 전하의 대열에서 인재들이 이탈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알베로다운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현재로서는 가장 타당한 의견이기도 했다. 자고로 맞불작전은 가장 간단한 대응 방법이었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안 돼요.”

프레이르의 대답에 알베로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프레이르가 이렇게 자신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알베로는 프레이르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소 더러운 수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에요.”

알베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통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 챈 프레이르가 알베로에게 말했다.

프레이르는 벽에 기댔던 등을 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팔짱을 그대로 낀 채 알베로에게 말했다.

“왕자인 제가 왕립 학교 졸업생에게 감투를 주면서 매수를 하게 되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돼요.”

프레이르의 말에 알베로는 곧바로 프레이르의 생각을 간파했다. 프레이르는 올해의 졸업생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왕립학교를 통해 나올 미래의 인재들까지 고려하고 있던 것이었다.

프레이르가 우려하는 것은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의 방식대로라면 실력 있는 인재보다 줄을 잘 대는 사람이 요직을 점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상이 고착화되어 매년 반복된다면 레인가드의 관료들은 그 실력보다 배경과 연줄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로 가득 찰 가능성이 있었고 이것은 지방의 유능한 인재를 등용한다는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의 창립 의미를 스스로 없애는 꼴이었다. 이 때문에 프레이르는 알베로의 제안을 꺼리고 있었다.

“감투로 매수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요.”

프레이르가 이 부분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이것만큼은 그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왕립 학교에서 3년 간 학업을 수행하면서 그는 대여섯 명의 걸출한 인재들을 눈여겨 봐두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 요직을 내주더라도 충분히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짐작되었기에 프레이르는 그들은 자신이 직접 매수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학생들은 아직 그 능력을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프레이르는 그들이 말단직에서부터 실무를 수행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들의 능력은 차차 검증해나가도록 마음먹어왔다. 이것이 프레이르가 되도록 관직으로 졸업생들을 매수하지 않겠다고 말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요.”

프레이르가 알베로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알베로는 프레이르에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베로는 프레이르가 별도의 설명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그 뜻을 헤아릴 줄 아는 비서관이었다. 이 뛰어난 비서관에게 만족하며 프레이르는 알베로에게 한 가지 명령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프레이르는 알베로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레스터 공작과 리처드 대공이 마구잡이로 졸업생들을 포섭하고 있을 리 없어요. 분명 자기들끼리 누구를 고를까 상의하고 쓸만한 인재들은 리스트를 작성해두었을 거예요. 그 명단을 어떻게든 확보해줬으면 해요. 그 명단을 빼돌리는데 드는 비용은 제가 다 댈 테니까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요.”

프레이르의 명령에 알베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들의 표적이 누구인지를 알아낸다면 그것에 대한 대응책을 찾는 것은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따라서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 일파의 표적이 된 인물들의 명단은 가장 먼저 확보해야 했다.

레스터 공작과 리처드 대공 일파로부터 그런 중요한 명단을 쉽게 빼돌릴 수 있을 리 만무했지만 프레이르는 알베로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이런 어려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알베로는 프레이르의 이러한 믿음이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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