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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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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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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11.06.1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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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25.루크의 약혼식(3)

DUMMY

이번에는 프레이르가 놀랄 차례였다. 프레이르는 예상치 못한 카린의 대답에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웃으며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아까의 말에 덧붙여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샤를은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슴 속에 가장 뜨거운 불길을 지닌 사람이야.”

뜨거운 불길을 지닌 사람... 카린의 이 말은 프레이르가 지금까지 샤를에 관해 들어왔던 평가 중 가장 특이한 것이었다. 샤를에 대해 시민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위대한 국왕’으로, 귀족들은 ‘전제 정치를 꿈꾸는 폭군’으로, 그리고 포르테빌은 ‘유능하지만 냉혹한 군주’로 평가했다. ‘뜨거운 불길을 지닌 사람’이란 지금까지의 평가들과 전혀 연결되는 부분이 없는 인상이었다.

프레이르가 어리둥절해하자 카린은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프레이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은근한 눈빛으로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프레이르 당신...... 아직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지?”

프레이르는 카린의 엉뚱한 말에 순간적으로 대답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카린은 다시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녀는 프레이르의 대답도 듣기도 전에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래서 당신은 아직 어린애라는 거야.”

카린은 프레이르의 곁으로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그 작은 손을 내밀어 프레이르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프레이르는 자신의 가슴에 그녀의 손이 닿자 움찔하며 카린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린은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띠우며 프레이르의 가슴에 얹은 손에 마법으로 열기를 끌어 모았다.

프레이르는 순간 헉하고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그의 공기가 답답해지는 듯한 감각에 그는 숨을 헐떡였다.

그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카린이 끌어 모은 열기 때문에 프레이르의 심장 근처는 순간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때문에 프레이르는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꽉 쥐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혔다.

프레이르는 카린에게 그만 두라고 말하려 했지만 숨을 쉬기조차 곤란했기 때문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심장에 이렇게 불이 붙게 된다는 것과 같아. 당신은 아직 모르겠지만.”

카린이 프레이르의 가슴에 그대로 손을 얹은 채 말했다. 프레이르의 가슴이 더욱 뜨거워졌다.

“이 불길을 가슴에 담았을 때야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이 진정 비정한 인물인지 그렇지 않은 지를 평가할 수 있어.”

카린은 프레이르의 가슴으로부터 손을 뗐다. 그러자 묶여 있던 숨이 탁 풀어지면서 프레이르는 겨우 숨을 정상적으로 쉴 수 있게 되었다.

“...헉헉...”

프레이르는 한숨을 내쉬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카린이 손을 뗀 뒤에도 여전히 그의 심장은 불이 타는 것처럼 뜨거웠다.

“그 불길을 꺼뜨리지 않고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샤를은 절대 비정한 사람이 될 수 없어.”

카린이 말했다. 그러나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프레이르는 카린의 이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새도 없이 화가 났다. 갑자기 사람의 심장에 열을 끌어 모으다니, 그런 짓은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시킨 뒤에 해야 하지 않은가?

카린에게 짜증을 내기 위해 헐떡이는 숨을 들이쉰 다음, 고개를 들어 카린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프레이르는 마음속에 품었던 불평을 내놓을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카린의 얼굴에 고통스런 표정이 떠오른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확신했다. 눈을 깜박인 다음 다시 살펴보니 카린의 얼굴에는 장난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방금 전 프레이르가 목격한 카린의 표정은 심장의 두근거림 때문에 잘못 본 것이 분명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왕자님?”

카린이 평소처럼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어린아이 같은 말투에 결국 프레이르는 카린에게 불평하는 것을 포기했다. 꼬마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는 정말이지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런 아이 같은 얼굴에 화를 내는 자신이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카린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인간은 이 레인가드에서 리처드를 비롯해 열 명도 채 안 될 것 같았다.

“이해했냐니까?”

카린이 다시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프레이르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프레이르는 카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카린은 이걸로 설명이 다 되었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프레이르는 그녀의 이 비유가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린이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질러 숨이 턱턱 막혔기 때문에 카린의 말을 깊게 생각할 여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들은 얼굴이네.”

카린이 프레이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저으며 ‘손수 떠먹여 줘야겠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당신 같으면 곁에 없는 한 여자를 수십 년 동안 사랑할 수 있겠어? 그리고 그 여인의 자식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적으로 삼을 수 있겠어?”

“아...”

프레이르는 이제야 카린의 비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당신은 어린애라니까.”

카린이 프레이르 앞에서 거만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당신은 설마 샤를이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레아첼과 결혼했고, 당신을 이렇게 보호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당신한테 실망할거야. 솔직히 말해서 당신과 레아첼은 샤를에게 정치적 이익보다는 부담에 더 가까워. 시민들의 지지라는 것은 개미떼를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귀족들의 땅과 군사는 실제적인 힘이거든.”

카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샤를은 레아첼과 결혼했고, 당신을 보호하면서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 수많은 귀족들과 성직자들을 적으로 삼으면서까지 말이야. 이 모든 것은 샤를이 가슴 깊이 레아첼과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당신은 모르겠지만 수십 년 동안 한 여인과 그 아들을 사랑하는 것은 보통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카린은 프레이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프레이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 속에 있는 그 불길은 지금도 샤를을 격렬하게 불태우고 있어. 샤를은 자신이 달성한 모든 것은 물론 자기 자신조차도 그 불길에 타버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불을 꺼뜨릴 생각조차 하지 않아. 아마도 그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가슴 속에 그 뜨거운 불길을 간직하겠지. 그런데도 당신은 샤를이 비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어?”

카린이 물었다.

카린이 말한 것은 프레이르도 모두 알고 있었다. 샤를에게 있어서 프레이르 자신은 가장 큰 부담이었다. 프레이르 자신만 없었다면 샤를은 레스터 공작과 이렇게까지 대립할 필요도 없었고, 이렇게 위험한 게임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를이 끝까지 프레이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가 프레이르 자신을 그 목숨보다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레이르가 샤를을 비정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프레이르가 샤를이 비정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샤를이 프레이르를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사람을 희생시킬 수도 있다고 말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비정한 거예요.”

결국 프레이르는 불쑥 자신의 본심을 말하고 말았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실언을 후회했으나 카린은 프레이르를 책망하지 않았다.

“아. 그래. 샤를이라면 분명 그렇게 할 테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샤를이라면 내 목숨이나 포르테빌의 목숨을 내팽개치더라도 당신을 지켜주려 할 거야.”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는 흠칫하며 카린을 바라보았다. 프레이르의 이 놀란 표정에 카린은 혀를 찼다.

“내가 얼마나 샤를을 알고 지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정도는 알고 있다고.”

카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프레이르는 어떻게 그녀가 이렇게 가벼운 어조로 말할 수 있는 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당신은 제 아버지가 비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프레이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카린에게 말했다. 그러자 카린은 프레이르의 어깨에 다시 손을 올리며 물었다.

“그럼 당신은 어째서 이런 샤를이 비정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카린의 질문에 프레이르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침착하려 애썼으나 그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모조리 희생시킬 수도 있다니... 그런 건 올바른 사랑이 아니에요. 어떻게 한 사람을 위해 한 나라를 맞바꿀 수 있죠? 사랑하는 사람이 2천만 레인가드 국민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 광기에요. 그것도 아주 비정한.”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지만 마지막에 이르러서 프레이르의 어조는 격해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아까부터 평소와 다르게 감정적이 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는 샤를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늘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 왔던 프레이르가 이토록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카린은 그런 프레이르를 가만히 바라보다 빨갛게 상기된 프레이르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그럼 당신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야?”

카린의 물음에 프레이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르에게 있어서 이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한 인간과 2천만의 생명 중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프레이르는 후자를 선택할 것이 분명했다.

프레이르는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레인가드를 위해서라면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를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는 없었다.

카린은 프레이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프레이르의 얼굴에서 프레이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프레이르의 얼굴에 올렸던 손을 떼어낸 뒤 프레이르로부터 조금 떨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아직 제대로 사랑을 해 본 적이 없기에 비정하다는 의미를 잘못 알고 있어.”

카린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히려 비정한 것은 샤를이 아니라 당신 쪽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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