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Stellar 님의 서재입니다.

로라시아연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조회수 :
272,701
추천수 :
2,587
글자수 :
788,474

작성
11.06.01 04:56
조회
734
추천
15
글자
9쪽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4)

DUMMY

“당신의 입장이 곤란하다는 건 잘 알아. 로버트가 위험한 녀석이라는 것도 잘 알고. 뷔그노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런 학살극을 실행했다는 것도 알아.”

카린은 이미 이 학살의 배후 인물이 누구인지 간파하고 있었다. 프레이르는 카린의 안목에 감탄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한 번만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없어? 샤를 당신의 친구로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거야.”

“... 친구라... 말 잘 했네.”

샤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카린에게 걸어와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다. 샤를은 두 사람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카린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카린은 샤를의 이 갑작스런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숨을 삼켰다. 그러나 그녀는 뒤로 몸을 빼지 않았다.

그런 카린에게 샤를이 조용하지만 화를 억누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친구인 날 속였어. 그 덕분에 나와 내 아들은 완전히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결국 이런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지. 처음부터 자네가 솔직히 말해줬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샤를의 말에 카린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무언가 항변하고 싶은 듯 했지만 샤를을 반박할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보였다.

카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샤를은 카린에게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는 의자에 앉아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카린에게 말했다.

“자네가 원한다면 마일러 교수가 추방되기 전 면회를 하는 것 정도는 허용해 줄 수 있네. 하지만 난 그를 구해주거나 보호하지 않겠네. 분명 내게는 그를 화형대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난 하지 않을 걸세.”

샤를은 카린에게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딱 잘라 말했다.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하지 않겠다’라는 말은 그만큼 샤를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레이르는 자신의 아버지의 이 냉정한 태도에 놀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린을 편들어줄 생각도 없었다. 프레이르도 샤를과 마찬가지로 마일러 교수의 추방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샤를의 단호한 대답에 카린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으로 샤를을 바라보았다. 마치 종교 재판소에서 자기 자신의 화형 선고라도 받은 것 같은 태도였다.

카린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외면하며 샤를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듯 다시 아까처럼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여유로우면서도 느긋한 그 태도는 샤를이 더 이상 카린의 탄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프레이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절망적인 얼굴로 샤를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카린에게 다가갔다. 그녀를 잘 달래 이곳에서 내보내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저토록 딱 잘라 말한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이곳에 카린이 더 머물러 봐야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다. 프레이르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그때 카린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샤를은 그녀의 이 모습을 힐끗 쳐다본 뒤 이를 외면했다.

프레이르는 카린이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다고 해서 물러설 샤를이 아니었다.

샤를의 생각을 짐작한 프레이르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는 카린의 갸냘픈 두 팔 사이에 자신의 손을 끼워넣으려 했다.

그 때 갑자기 카린이 그녀의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상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녀가 작은 손을 조물거려 가슴 부분을 만질 때마다 하나하나 단추가 풀어지면서 그녀의 상의가 풀어헤쳐졌다.

프레이르는 깜짝 놀라 그녀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그녀는 이미 상체의 단추를 모두 풀며 상의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카린의 잘록한 허리와 함께 아직 채 성숙하지 않은 그녀의 새하얀 상체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이르는 그녀의 이 갑작스런 탈의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를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던 샤를 또한 당황한 듯 들고 있던 찻잔을 급히 내려놓았다. 카린의 이런 돌발적인 행동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란 상태였다. 그러나 카린의 행동에 당황한 프레이르는 카린의 나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두 사람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카린은 얼굴이 빨개진 채 가슴께를 가렸다. 그리고 그녀는 샤를에게 외쳤다.

“샤를. 20년 전의 푸아티에 전투를 잊지 않았겠지?”

카린의 말에 샤를이 흠칫했다. 그리고 그는 곤란하다는 듯 입가에 손을 올렸다.

반면 프레이르는 카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푸아티에라면 프레이르의 할아버지이자 샤를의 아버지인 길드스턴 국왕이 반란군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한 곳이었다. 이때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프레이르는 어째서 카린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카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 때 당신은 내게 목숨을 빚졌다고 말하면서 내가 위험에 처하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어떤 대가를 치르든 단 한 번은 반드시 구해주겠다고 말했어. 그렇지?”

카린의 말에 샤를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파란 눈엔 처음으로 당혹감이 떠올라 있었다.

프레이르는 샤를의 당황한 얼굴에서 다시 카린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카린의 어깨와 배에 있는 화상 자국을 발견했다. 그제서야 프레이르는 어째서 카린이 상의를 벗으며 샤를에게 자신의 상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카린의 어깨와 배에는 어린 아이의 손바닥만한 화상자국이 남아 있었다. 카린의 아름다운 여체를 해치고 있는 그 화상자국들은 척 보기에도 상당히 심한 부상인 것 같았다. 아마도 저 상처가 생겼을 시기에 카린은 사경을 헤매었을 것이라 짐작될 정도였다.

“그 약속을 지금 로버트에게 지켜줬으면 좋겠어.”

카린이 진지하게 말했다. 카린의 이 말에 이번에는 샤를이 입을 다물 차례였다. 샤를은 매우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카린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프레이르는 샤를이 카린에게 푸아티에 전투에서 무슨 빚을 졌기에 샤를이 이토록 난처해하는지 궁금해졌다.

샤를은 카린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한참 동안 그녀의 상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가녀린 몸 곳곳에 나있는 화상자국들을 바라보며 그는 당혹감과 난처함에 자꾸 입가를 쓰다듬고 있었다.

샤를이 망설이자 카린이 외쳤다.

“난 그 전투에서 샤를 당신을 지키다가 세 발이나 총알을 대신 맞았어! 그 때 부서진 어깨뼈 때문에 난 이제 오른팔을 어깨 위로 들 수조차 없어.”

카린이 자신의 오른팔을 조금 들어 올리며 말했다. 확실히 그녀의 오른팔은 왼팔보다 더 갸냘퍼 보였는데 어깨뼈에 입은 부상이 그 원인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것을 후회하지 않아. 지금도 샤를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 짓을 또할 수 있어. 아니 몇 번이라도..."

카린의 말이 이어졌다.

“그 때 나는 당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를 치료할 새도 없이 불로 상처를 지진 채 하루 종일 마법을 쓰며 적을 막아내야 했지. 전투가 끝나고 죽어가던 내게 눈물을 흘리며 당신은 맹세를 했지 않았던가? 설마 벌써 그걸 잊진 않았겠지?”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는 어째서 샤를이 그토록 카린을 신임하고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 전투 중에 자신을 구하기 위해 대신 총에 맞고, 그 상황에서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하루 종일 전투를 계속한 그녀였다. 아무리 냉정한 군주라지만 샤를 역시 인간인 이상 그녀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카린이 보여준 상처 자국은 샤를이 카린에게 진 빚의 증거였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샤를을 구해주었고, 그 때문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녀가 이 상처들을 보여주면서 샤를에게 과거를 일깨워주자 샤를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카린의 추궁에 샤를은 무거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심의 가책과 지난날의 약속 때문에 샤를은 카린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등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는 바깥은 어둠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샤를은 그곳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한참 동안 그렇게 창 밖을 응시하던 샤를이 입을 열었다.

“... 왜지?”

그는 여전히 카린에게 등을 돌린 채로 물었다.

“도대체 왜 그토록 마일러 교수를 구하려 애쓰는 거지?”

샤를의 질문에 카린이 입을 열려 했다. 그러자 샤를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더 이상 오랜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려하지 말게. 진실을 들려줘.”

샤를의 이 말에 카린은 하려던 말을 삼켰다. 잠시 동안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갈등의 빛이 어렸으나 곧 그녀는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샤를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샤를의 추궁에 그녀는 체념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내 동생이야, 샤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로라시아연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로라시아 연대기 - 30.아키텐의 공작(1) +1 11.10.23 750 14 7쪽
117 로라시아 연대기 - 레인가드 지역 소개 +2 11.10.22 787 13 3쪽
116 로라시아 연대기 - 출발식(2부 에필로그) +4 11.10.17 776 14 9쪽
115 로라시아 연대기 - 29.의회의 권표(3) +4 11.10.14 761 19 6쪽
114 로라시아 연대기 - 29.의회의 권표(2) +3 11.10.08 706 15 5쪽
113 로라시아 연대기 - 29.의회의 권표(1) +3 11.10.02 694 15 6쪽
112 로라시아 연대기 - 28.19인의 명단(4) +2 11.09.24 673 13 5쪽
111 로라시아 연대기 - 28.19인의 명단(3) +3 11.09.16 803 14 11쪽
110 로라시아 연대기 - 28.19인의 명단(2) +1 11.08.15 800 13 19쪽
109 로라시아 연대기 - 28.19인의 명단(1) +3 11.08.10 841 15 12쪽
108 재미삼아 해보는 성격 테스트 +7 11.07.31 893 8 11쪽
107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5) +1 11.07.31 743 17 19쪽
106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4) +2 11.07.22 941 13 11쪽
105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3) +7 11.07.11 825 14 20쪽
104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2) +2 11.07.06 812 12 13쪽
103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1) +5 11.06.28 887 12 18쪽
102 로라시아 연대기 - 26.샤를의 계획(3) +1 11.06.26 825 12 13쪽
101 로라시아 연대기 - 26.샤를의 계획(2) +2 11.06.24 723 15 11쪽
100 로라시아 연대기 - 26.샤를의 계획(1) +2 11.06.21 888 14 9쪽
99 로라시아 연대기 - 25.루크의 약혼식(4) +5 11.06.16 730 12 11쪽
98 로라시아 연대기 - 25.루크의 약혼식(3) +5 11.06.12 714 14 11쪽
97 로라시아 연대기 - 25.루크의 약혼식(2) +2 11.06.11 715 14 7쪽
96 로라시아 연대기 - 25.루크의 약혼식(1) +5 11.06.09 768 18 22쪽
95 로라시아 연대기 - 로버트 마일러 추방 +5 11.06.05 763 14 13쪽
94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6) +7 11.06.02 752 16 11쪽
93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5) +2 11.06.02 692 14 16쪽
»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4) +5 11.06.01 735 15 9쪽
91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3) +2 11.05.31 693 15 8쪽
90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2) +5 11.05.30 764 18 11쪽
89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1) +3 11.05.27 829 1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