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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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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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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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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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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1)

DUMMY

레인가드에서는 통상적으로 18세가 되거나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를 졸업하면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해준다. 귀족들의 경우, 대체로 17세에서 19세 사이에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이때 각자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이 순간의 결정이 바로 성인으로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귀족의 진로란 기사가 되거나 성직자가 되는 것뿐이었다. 두 진로 중 주류는 기사로서 귀족 자제들은 기사가 되기 위해 고된 훈련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전쟁의 양상이 소수의 기사와 마법사가 아닌 다수의 용병에 의존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면서 기사 계급은 완전히 몰락해버리고 말았다. 샤를은 대대적인 군제 개혁을 통해 유명무실해진 기사단들을 해체해버렸고, 용병을 고용하여 상주 군단을 편성함으로서 상비군 제도를 정착시켰다.

귀족들은 기사가 될 이유가 없어지면서 다른 진로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여전히 성직자는 주된 진로였으나 귀족들은 교회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성직은 예전만큼 인기 있는 길이 아니었다. 아벨 신의 특별 계시를 받아 예언서를 해독하는 걸출한 능력을 지녔던 브조니 주교 이후로 레인가드에서 이렇다 할 성직자가 나오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성직자의 길을 걷지 않는 귀족 자제들은 주로 관료조직과 군대에 흡수되었다.

상급 귀족 자제들은 대체로 안전하고, 중앙에 머무를 수 있는 관료가 되었다. 1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1년에도 대여섯 번씩 카시네예프에서 의회가 열렸고, 의회와 국왕이 존재하는 수도는 자연히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각각의 영지에 할거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모든 권력은 중앙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히 권력의 집중은 관료조직를 더욱 크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관료조직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유능한 관료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관료조직은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를 졸업한 인재들을 흡수하게 되었다. 물론 권력을 좇는 불나방 같은 귀족들 기꺼이 행정관료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신들을 가르쳤던 교수들의 추천과 가문의 배경을 통해 그들은 관료조직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었다.

군대 역시 귀족들이 출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상비군 제도가 정착되면서 군대는 관료조직 다음으로 거대한 조직이 되었고, 2만 명에 이르는 상비군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수의 장교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출신과 배경이 미미한 하급 귀족들과 평민들은 왕립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임관하는 길을 선택했다. 세르티프 백작이나 레드포드 자작이 바로 이런 경우로서 군대에서 실력을 쌓아 중앙에 진출한 대표적인 예였다.

프레이르의 친구들 역시 이런 보편적인 진로를 따라갔다.

알베로는 프레이르의 비서관이 되어 그를 돕게 되었다. 카시네예프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곧이어 카시네예프 대학에서 법학 석사 자격까지 얻은 그는 비상한 두뇌를 인정받아 프레이르에게 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프레이르의 오른팔이 된 그는 벌써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관료였으며 장래가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작년에 졸업에 실패한 세자르는 다행히 올해는 졸업 논문이 통과되었다. 그는 앞으로 아버지인 알타미라 후작이 재무 감찰관으로 있는 재무부의 서기관이 될 계획이었다. 재무부에서는 말단직에 속하지만 아버지가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알타미라 후작이니만큼 출세 가도를 달릴 것이 확실했다.

반면 레스터 가문의 루크와, 세르티프 가문의 그라츠, 그리고 레드포드 가문의 아르넷은 모두 군인에 진출할 생각이었다. 아버지들이 모두 막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군대에서 실력을 길러 중앙에 진출하길 원했다.

무난히 졸업 논문을 통과한 루크는 동부방면군의 대위로 임관하게 되어 레스터 공작의 뒤를 이을 것이 분명했다. 정통 귀족인 그는 어렸을 적부터 검과 총을 다루는 법과, 마술을 익혔기 때문에 무난히 장교가 될 수 있었다. 대귀족의 자제인 그는 언젠가 분명 동부방면군 6천 명과 레스터 공작 가문을 장악하게 되어 레인가드에서 가장 막강한 육군을 한 손에 쥐게 될 터였다.

한편 ‘이 논문의 좋은 점은 짧다는 것 하나뿐.’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졸업 논문에 탈락한 아르넷은 졸업을 포기하고 총사대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인 레드포드 자작으로부터 고된 교육(이라 쓰고 폭력이라 읽지만...)을 받으며 군인의 꿈을 키워온 그는 언제나 총사대원이 되고 싶어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졸업에 실패했음에도 전혀 의기소침해지지 않은 채 기쁘게 총사대원의 옷을 입었다. 성급하고,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만 고치면 그는 후에 총사대의 총사령관이 되어 프레이르의 측근이 될 만한 인재였다.

또한 세르티프 백작의 아들인 그라츠는 해군 장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아버지인 세르티프 백작의 뒤를 잇기 위해 그는 굳이 고생길이 훤한 해군에 지원했고, 제1함대의 대위로 임관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라츠 역시 뛰어난 장점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세르티프 가문의 함대를 이끌 것이 분명했다. 루크를 매제로 두게 될 그는 바다에서 레스터 가문과 아르첼 왕자를 지원할 것이었다.

이처럼 다함께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 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로 18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 프레이르도 마찬가지였다.


“비싸 보이는 목걸이네.”

카린이 다이아몬드가 대여섯 개 박힌 목걸이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 옆에는 녹초가 되어 소파에 몸을 묻은 프레이르와 선물 목록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는 알베로가 있었다.

“전하의 선물을 함부로 건드리지 마십시오, 플레어 양.”

아까부터 프레이르의 생일 선물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카린에게 알베로가 말했다. 그는 들고 있던 깃펜으로 카린이 들고 있는 목걸이를 가리켰다.

“그 목걸이는 에우로텐의 왕실에서 전하의 성인식을 축하해 보낸 선물이니 원래 자리에 내려놓으십시오. 자칫 부수기라도 했다간 귀찮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알베로가 까칠하게 말했다. 카린은 알베로의 이 말에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그런다고 눈 하나 꿈쩍할 알베로가 아니었다.

“뭐, 까짓거 괜찮아요, 알베로.”

프레이르가 지친 목소리로 알베로에게 말했다.

“내 평생 저런 야시꾸리한 색깔의 목걸이를 찰 일도 없을 테니 말이죠.”

“호! 역시 멋진 남자!”

프레이르의 무성의한 말에 카린이 속물적으로 외쳤다. 그리고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알베로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알베로는 프레이르에게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께서 목에 거는 대신 약혼녀에게 저 목걸이를 선물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윽.”

프레이르가 허를 찔린 표정으로 알베로에게 눈을 돌렸다. 알베로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프레이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프레이르는 너무나도 타당한 알베로의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자리에 넣어둬요, 카린.”

프레이르의 명령에 카린은 불만족스러워했지만 군소리 없이 목걸이를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알베로를 노려보았다.

“알베로도 너무 사소한 것 가지고 목숨을 걸지 마요.”

프레이르가 알베로에게 충고했다. 작은 성 한 채 가격인 다이아몬드가 열두 개나 달려 있는 목걸이를 가리켜 ‘사소한 것’이라고 부르는 프레이르에게 알베로는 전혀 납득하지 못한 표정으로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장부의 정리를 계속했다.

프레이르는 알베로와 카린을 중재한 뒤 다시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오늘 하루 종일 생일 축하연에 시달린 그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눈을 비볐다.

“왕자는 생일 축하연도 참 고역이네.”

피곤에 찌들어 있는 프레이르를 바라보며 카린이 딱하다는 듯 말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알현을 받았지? 한 3백 명쯤 되었나?”

“리처드 대공의 인사를 축하로 친다면 321명이고, 저주로 친다면 320명이요.”

프레이르가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는 리처드 대공의 느릿느릿한 말투를 흉내 내며 말했다.

“지옥에 떨어질 날이 일 년 가까워졌다는 것에 축하드립니다.”

‘푸핫’하고 카린이 웃음을 터뜨렸다. 프레이르의 이 말에 그녀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정말 그녀석이 그렇게 말했어?”

카린이 묻자 프레이르가 피곤에 지쳤지만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생일 선물로 저런 것을 전해준 건 그런 의미가 아니겠어요?”

프레이르가 한쪽 구석에 놓인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리처드의 고풍스러운 취미를 반영한 그 상자는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는데 그 안은 텅텅 빈 상태였다. 프레이르에 대한 리처드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리처드도 참 쪼잔하네.”

카린이 텅 빈 상자를 바라보며 프레이르에게 말했다.

“그런다고 빈 상자를 선물로 주다니. 참 성격 하고는.”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리처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카린이 프레이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프레이르는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카드를 집어 들어 카린에게 휙 던져줬다.

카린은 프레이르가 집어던진 카드를 받아들었다. 그 카드에는 하시에르의 왕가를 의미하는 방패 위에 에인절 가문의 독수리 문장이 박혀져 있었다. 하시에르 왕가와 에인절 가문의 혈통인 리처드 대공의 문장이었다. 카린은 그 거창한 표식이 박힌 카드를 편 다음 그 안에 쓰여 있는 문구를 읽었다.

“......전하께서 지병인 편두통으로 고통을 겪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머리의 질병은 자칫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는 큰 위험인 바, 여기 난쟁이족에게서 얻은 특효약을 보내니 전하께서 쾌차하시고 무병장수하길 기원하겠습니다.”

프레이르에게 보낸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공손하고 애정이 담긴 카드였다. 카린은 혹시 리처드가 아르첼에게 보낼 카드를 헷갈린 것이 아닌지 카드 앞면을 확인했지만 분명히 이 카드의 수신인은 프레이르로 되어 있었다.

카린은 읽기를 마치고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수상하네. 혹시 특효약이 아니라 독약이라도 보낸 건가?”

카린의 질문에 프레이르는 웃으며 부인했다.

“그건 아닐 거예요.”

“그래?”

카린이 여전히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그녀는 프레이르의 대답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편지를 내려놓은 다음 팔짱을 끼며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특효약이란 건 어디 있지?”

프레이르는 킥킥거리며 다시 대답했다.

“그런 건 없어요. 처음부터 빈 상자였어요.”

프레이르의 대답에 카린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다시 리처드가 보낸 카드와 빈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통에 도움이 될 만한 특효약을 보냈다고 카드에 써놓고, 빈 상자를 보냈다라... 그녀는 리처드가 보낸 메시지에 담긴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영문을 알 수가 없네. 도대체 무슨 뜻이야?”

한참을 고민하던 카린이 결국 자기 스스로 답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프레이르에게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프레이르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베로, 저 대신 설명해줄래요?”

프레이르의 부탁에 알베로는 잠깐 동안 프레이르를 바라보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는 곧 마음을 고쳐먹고 들고 있던 명단과 깃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카린에게 리처드가 보낸 선물의 의미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레인가드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 선물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플레어 양. 리처드 대공은 역사상의 한 인물을 모방하고 있기 때문이죠.”

알베로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약 200년 전, 레인가드의 콘라드 3세는 본래 선왕의 막내아들로서 왕위 계승과 거리가 멀었지만 무력으로 형들을 몰아내고 국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를 국왕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이가 바로 드레이크 백작이었습니다. 드레이크 백작은 콘라드 3세의 심복이자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었죠. 유능하기도 했고, 나름의 정의감도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콘라드 3세를 도운 이유는 콘라드 3세가 의회를 통해 올바른 정치를 펼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콘라드 3세가 원한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라 권력이었습니다.”

알베로는 마검사 키르케를 제외하고, 레인가드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의 일을 떠올리며 말했다.

“드레이크 백작은 의회를 만들어 국왕이 귀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민주적인 방식을 원했지만 콘라드 3세는 절대적인 권력을 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레이크 백작은 콘라드 3세에게 의회를 열고 귀족들의 의견을 경청하라고 충언을 계속했지만 콘라드 3세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드레이크 백작의 충언은 점점 콘라드 3세의 심기를 거스르게 되었죠. 콘라드 3세는 날이 갈수록 드레이크 백작을 성가시게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그를 제거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알베로가 말했다.

“그러던 중 드레이크 백작은 심각한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와 백성을 걱정했던 드레이크 백작은 병상에서도 콘라드 3세에게 편지를 보내며 의회의 소집을 촉구했습니다. 그러자 콘라드 3세는 시종을 시켜 드레이크 백작에게 한 상자와 카드를 보내왔죠. 콘라드 3세가 보낸 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알베로는 콘라드 3세가 보낸 카드의 내용을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프레이르가 알베로의 말허리를 자르며 끼어들었다. 콘라드 3세와 관련된 일화 중 이 대목은 프레이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씩 웃으며 콘라드 3세가 남긴 편지 중 가장 유명한 대목을 암송했다.

“......짐이 믿고 또 의지하는 것은 오직 그대뿐이니 그대는 이 약을 마시고 쾌차하여 하루빨리 짐에게로 돌아와 충언을 아끼지 말도록 하라.”

프레이르가 말을 가로채자 알베로는 입을 다물고 프레이르가 말을 끝마치기를 기다렸다. 프레이르는 알베로에게 눈을 찡긋하며 양해를 구한 다음 자신이 이어 말했다.

“상자 안을 열어 본 드레이크 백작은 그 상자가 비어있는 것을 목격했죠. 그는 그제야 자신이 콘라드 3세에게 버림받게 되었다는 것과 콘라드 3세가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 약을 마시고 쾌차하라’면서 빈 상자를 줬다는 뜻은 결국 ‘아무 약도 먹지 말고 그대로 죽어라’라는 뜻이었던 것이죠. 콘라드 3세의 뜻을 알게 된 드레이크 백작은 그 날 독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죠.”

프레이르의 말에 카린은 그제야 ‘아’하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리처드는 콘라드 3세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거예요.”

프레이르가 씩 웃었다.

“콘라드 3세처럼 빈 상자를 보내면서 ‘무병장수하라’는 것은 저보고 ‘두통으로 확 뒈져버려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죠.”

프레이르가 씩 웃으며 리처드 대공이 보내온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 카드를 접어 배를 만들었다.

“물론 저는 그런 리처드 대공의 성의를 봐서라도 고손자의 증손자를 볼 때까지 살 생각이에요.”

프레이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희망을 피력하며 리처드의 카드로 만든 종이배를 화로에 집어 던졌다. 곧바로 그 종이배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속에서 불타버렸다.

프레이르는 그 불타는 종이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따위 두통에 져버려 리처드 대공을 기쁘게 할 맘은 눈곱만큼도 없거든요.”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카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레스터 공작이 보내 준 선물도 재밌어요. 저쪽에 걸려 있는 그림이 레스터 공작이 보내준 선물이에요.”

프레이르가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 오른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독사를 물어뜯어 그 머리를 둘로 쪼갠 황금빛 독수리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색감이나 종이의 재질로 볼 때 일급 화가에 의해 그려진 것이 분명한 명화였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고향인 아렌체에서 직접 주문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 이건 알아!”

카린이 손뼉을 쳤다.

“레인가드 건국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지? 독사의 머리를 쪼갠 독수리!”

카린이 기뻐하며 말했다.

“독사의 머리를 쪼개고 레인가드의 수도를 정해준 것이 황금빛 독수리잖아. 그 수도가 바로 카시네예프고. 레인가드 건국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맞지?”

카린의 말에 프레이르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유감이라는 듯 말했다.

“땡! 아까워요, 카린 양.”

프레이르가 씩 웃었다.

“그건 표면적인 뜻이고, 진짜 뜻은 따로 있어요.”

프레이르가 말했다. 그러자 카린은 또다시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는 것에 원통해했다.

그런 카린을 알베로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봤지만 프레이르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칫. 그럼 무슨 뜻이야?”

카린이 볼멘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프레이르는 카린에게 얄밉게 말했다.

“이건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스스로 찾아봐요.”

“뭐? 그게 뭐야?”

카린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자기가 먼저 말 꺼내 놓고 그러는 법이 어디 있어? 궁금하게!”

카린이 소리를 지르며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프레이르는 혀를 날름 내밀며 카린에게 말했다.

“그럼 비서관인 카린에게 내주는 첫 번째 임무라 치죠. 이 그림이 무슨 뜻인지 조사해 와요.”

“아, 정말!”

카린이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프레이르는 휘파람을 불며 카린을 외면했다.

* Stellar님에 의해서 문피아 - 정규 - 로라시아 연대기 (bn_299) 에서 문피아 - 정규 - 로라시아 연대기(bn_299)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7-3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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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17 나니아
    작성일
    11.06.29 00:46
    No. 1

    대공이 치사하다..! 평소 리처드의 행동을 봤을때 우아하면서도 기품있고 나는 고귀하다를 외치는 태도로 은근슬쩍 비꼬는 선물을 줄 것 같았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퀴에린
    작성일
    11.06.29 02:27
    No. 2

    잘 읽고 갑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6 요리사
    작성일
    11.06.29 17:37
    No. 3

    고급 대리석의 부조외각에 금장과 은장 사이에 세공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우아한 크리스탈의 영롱한 창문을 덮게 위에 아로 새긴 입관용 관을 선물로?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울티밋퓨전
    작성일
    11.06.30 14:13
    No. 4

    정말 예상외의 선물이군요.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99 마법저아
    작성일
    13.08.19 18:19
    No. 5

    독사=왕자 머리를 쪼아버리겠다?!ㅋㅋ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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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5) +2 11.06.02 692 14 16쪽
92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4) +5 11.06.01 735 15 9쪽
91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3) +2 11.05.31 694 15 8쪽
90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2) +5 11.05.30 764 18 11쪽
89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1) +3 11.05.27 829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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