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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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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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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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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7
글자수 :
788,474

작성
11.05.30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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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2)

DUMMY

세 사람은 다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곧바로 리처드의 첩자가 말해주었던 여관으로 향했다.

질척거리는 거리를 걸으며 리처드는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아까부터 계속 큭큭거리고 웃고 있었다. 짙은 경멸을 머금은 그 웃음은 듣기에 굉장히 거북했지만 셰리프 남작과 대공의 호위기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히 리처드 대공의 성질을 건드려봐야 신랄한 비난만이 되돌아 올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리처드는 옆에서 자신을 뒤따라오던 일행에게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는 셰리프 남작에게 말했다.

“큭큭, 자네라면 이 사건의 내막을 눈치 챘겠지?”

리처드 대공의 뜬금없는 말에 셰리프 남작은 담담하게 말했다.

“대공님의 생각대로지 않습니까?”

남작의 대답에 리처드 대공은 다시 비웃듯 말했다.

“맞아. 정말 샤를은 항상 날 놀래키는군. 설마설마 했지만 이 나라에서 가장 존경 받는 성직자를 때려 죽일 줄이야...”

리처드 대공의 말에 호위기사가 흠칫 놀라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리처드의 말을 듣지 못한 척하며 무덤덤하게 그 쪽을 외면했다. 호위 기사로서 맹세를 한 그는 호위 대상의 이야기는 듣고도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이었다. 설사 그것이 이 나라의 국왕이 라시드 대주교를 암살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리처드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다 이 깔끔하고 예술적인 일처리를 보게. 호레이쇼 교수를 범인으로 몰아 체포하는 과정이라던가,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로버트 마일러 교수를 미리 보호하여 놓는 솜씨, 폭도를 조종해 뷔그노들만 깨끗하게 학살하는 과정, 폭도 중 과격분자들만 귀신 같이 골라내어 처벌한 것... 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어. 아마도 홀트 백작의 작품이겠지. 정말이지 이 완벽한 일처리는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아.”

리처드가 감탄하는 건지 빈정거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셰리프 남작 또한 리처드와 같은 생각이었다. 대공의 첩자를 통해 그들은 일련의 사건에 무언가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 것을 감지했다. 호레이쇼 교수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라던가, 위병대의 개입 타이밍, 로버트 마일러 교수의 우연이라 말하기 힘든 생존 등 하나하나의 사건에는 조금씩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을 하나로 이어붙인 이야기는 굉장히 자연스러웠으며 그 누구라도 믿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럴 듯했다.

‘라시드 대주교의 일방적인 토론회 연기 선언에 뷔그노들은 분개했다. 이들은 교회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리며 농성을 벌였다. 그 중 과격한 몇몇이 대주교를 습격하여 살해했다. 이에 격분한 교회와 시민들이 뷔그노들을 공격하여 학살했다. 국왕인 샤를은 이 폭동을 신속히 진압한 뒤, 과격분자를 처벌하는 한편, 뷔그노 추방령을 실시하여 정통 교회와 아벨 신의 뜻을 수호했다.’

만약 역사에 이렇게 기록된다면 그 누구도 이 사실의 진위에 의심을 품지 않을 듯했다. 확실히 이것은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은 항상 허점이 있게 마련이지.”

마치 셰리프 남작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리처드 대공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그 허점을 풀어 헤칠 열쇠는 그 부랑자 재단사라는 작자야. 우리는 반드시 그 놈을 잡아야 하네.”

“잡아서 어쩌실...”

“손톱을 뽑아내든 코를 잘라내든 단서를 잡아내야지.”

리처드가 딱 잘라 말했다.

“샤를이 라시드 대주교를 죽이는 데 관여했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네. 단 하나... 결정적인 증거 단 하나만 잡아낸다면 샤를과 프레이르 그 놈은 끝장이야.”

리처드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여관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아까보다 더욱 발걸음을 재촉하며 여관을 향해 걸어갔다.

셰리프 남작 역시 리처드와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더욱 서둘렀다. 그가 보기에 샤를이 라시드 대주교를 암살하였고 이 폭동을 조장한 것은 자명해보였다. 만약 이 사실을 밝혀낸다면 샤를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뻔했다. 샤를과 프레이르, 그리고 왕당파 세력을 고립시키는 것이야말로 리처드와 레스터 공작파가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일이었다.

하지만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이것은 헛된 음모론에 불과했다. 의혹만으로는 샤를에게 타격을 입힐 수 없었다. 물증 없이 달려들었다간 오히려 왕당파에 꼬리를 밟힐 우려가 있었다. 그 때문에 리처드와 셰리프 남작은 신중하게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윽고 일행은 한 허름한 여관에 도착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셰리프 남작이 리처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리처드는 자신의 겉옷을 들어보였다. 깊숙이 감추어진 허리춤에는 권총과 함께 레이피어가 단단히 걸려 있었다. 리처드는 권총을 꺼낸 다음 탄약을 재워 넣었다. ‘끼릭’하는 소리와 함께 탄환이 장전되자 리처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말을 안 들으면 억지로 끌어낼 수밖에.”

그는 이렇게 말한 뒤 셰리프 남작에게 지시했다.

“일단 자네가 그놈이 어느 방에 있는지 여관 주인을 떠보게. 위치를 알아낸 즉시 함께 덮치기로 하지.”

리처드의 지시에 셰리프 남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신의 검이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리처드 대공과 그 호위기사에 앞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2층 가장 안쪽 방입니다. 아직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일주일치 숙박비를 미리 냈다는 군요.”

여관주인에게서 정보를 캐낸 셰리프 남작이 리처드 대공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그 말에 리처드 대공은 흡족하게 웃었다.

“홀트 백작이 미리 다른 곳으로 빼돌렸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직 늦지 않은 모양이군.”

“우리가 그 증인을 찾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셰리프 남작 역시 안심하며 말했다. 그도 비록 입 밖에 꺼내진 않았지만 홀트 백작이 그 증인을 이미 입막음 시키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던 바였다.

“그럼 가보도록 하지. 지금 방 안에 있을 수도 있으니.”

리처드 대공이 앞장섰다. 그 뒤를 따라 셰리프 남작이 뒤따랐다. 호위기사는 검집에 손을 얹은 채 계단 쪽을 지키고 섰다. 누군가 방해꾼이 오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역할이자 망을 보는 역할이었다.

리처드와 셰리프 남작은 뱀머리의 장식이 걸려 있는 문 앞에 섰다. 이 허름한 여관에서는 그나마 가장 좋은 방에 속한 모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때가 탄 문은 척 보기에도 지저분했다.

셰리프 남작은 나무 문에 귀를 가까이 댔다. 그리고 그는 리처드에게 속삭였다.

“조용합니다. 자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남작의 말에 리처드는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문을 밀었다. 뜻밖에도 문은 손쉽게 열렸다. 그 재단사는 문을 잠가 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본 뒤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각각 총구를 반대편으로 향한 채 두 사람은 방 안을 수색하였다.

화로가 꺼져 있는 방은 어두컴컴했다. 암흑 사이로 오직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만이 들려왔다. 오래 동안 사람의 온기가 없었는지 방 안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어질러진 탁자와 의자, 흐트러진 침대, 비워진 술병이 굴러다니는 광경을 둘러보며 리처드가 말했다.

“아무도 없군.”

그는 장전했던 권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적잖이 실망한 채 다시 한 번 방 안을 훑어보았다. 고요한 방은 이미 꽤 오랜 시간 전부터 비어 있었던 것 같았다.

“아까 말했던 술집에 나간 걸까요?”

셰리프 남작도 장전했던 권총을 풀며 말했다. 하지만 리처드 대공은 어질러진 자리를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부랑자라지만 자기가 자는 침대 위에 깨진 술병을 두고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도망친 것 같군... 아니면 홀트 백작이 빼돌렸다거나...”

대공은 이렇게 말하며 이를 부득 갈았다.

“한 발 늦었군.”

리처드 대공이 분해하며 말했다.

그는 치밀어오는 분노를 억누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홀트 백작의 주도면밀함과 이 빈틈없는 일처리에 그는 짜증이 일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셰리프 남작이 리처드를 불렀다.

“대공 각하!”

셰리프 남작은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편지 봉투를 가리켰다. 방금 전 어두울 때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이제보니 그 편지 봉투는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올려놓은 듯 와인잔 위에 놓여 있었다.

리처드는 성큼성큼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그 편지 봉투를 열고 안에 담겨 있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 카드를 읽는 순간 리처드 대공의 얼굴이 마귀처럼 일그러졌다.

‘엿이나 먹으세요, 삼촌!’

깔끔한 글씨체와 함께 모욕적인 낙서가 그려져 있는 그 카드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주인을 닮아 장난기 가득한 그 글씨체를 알아 본 순간 리처드는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이... 이... 빌어먹을 자식이...”

리처드가 치를 떨며 웅얼거렸다. 그는 이 편지를 보낸 소년이 빙글빙글 웃는 광경을 상상하자 위가 녹아내릴 것처럼 쓰려왔다.

프레이르가 여기에 이 카드를 올려둔 이유는 명백했다. 그는 단지 리처드를 조롱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리처드가 라시드 대주교의 암살에 관해 조사할 것과, 이곳에 찾아올 것을 꿰뚫어 본 그 왕자는 홀트 백작과 함께 그 부랑자 증인을 빼돌린 뒤 이런 장난을 쳐둔 것이 분명했다.

리처드를 더욱 열 받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직접 이곳을 찾아올 것을 프레이르에게 완전히 간파 당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은 프레이르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이미 그 녀석은 자신보다 한 수 앞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처드는 프레이르의 카드를 마구 구기며 오른손에 꽉 쥐었다. 만약 그의 눈 앞에 프레이르가 있었다면 이 종이조각이 아니라 그 목을 비틀어 쥐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 왕자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 치욕은 잊지 않아주마.”

리처드는 입술에 피가 나도록 깨물며 굴욕감을 씹었다. 그리고 그는 이 굴욕을 가슴 깊이 각인시키려는 듯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중얼거렸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몸을 부르르 떨던 그는 씩씩거리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그는 화가 난 표정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옆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리처드를 바라보고 있던 셰리프 남작은 리처드가 방에서 나가자 허겁지겁 그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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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1) +5 11.06.28 888 12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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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5) +2 11.06.02 693 14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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