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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님의 서재입니다.

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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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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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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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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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3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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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로라시아 연대기 - 27.생일(5)

DUMMY

프레이르의 생일 연회는 ‘굉장하다’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휘황찬란하게 벌여졌다. 샤를은 루크의 약혼식을 의식하여 포르테빌 대공에게 프레이르의 생일 연회에 5천 명의 사람들을 초대하도록 지시했다. 3천 명을 초대했던 레스터 공작에게 여봐란 듯이 세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떠들썩하게 노는데 일가견이 있는 포르테빌은 사흘에 걸친 연회를 기획하여 수많은 귀족들이 즐길 수 있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포르테빌은 카시네예프 모든 주점에서 술통을 개방하여 시민들에게 술을 나눠주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르는 모든 비용은 왕실이 부담하기로 했기 때문에 60만에 이르는 카시네예프 시민들은 모두 만세를 부르며 기쁨에 겨워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만날 때마다 프레이르의 만수무강을 기원했고 프레이르의 행복을 기도했다. 그들은 주점마다 자리를 가득 채운 채 떠들썩하게 건배를 외치며 국왕 샤를이 이룩한 번영을 온 몸으로 누리는 한편 그 뒤를 이을 프레이르가 성인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이에 따르는 막대한 비용은 하인트 공작이 마일러 교수의 몸값으로 보내온 금화와 알타미라 후작을 비롯한 왕당파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의 헌납금으로 충당되었다. 특히 알타미라 후작은 레인가드 제일의 부호이자 프레이르의 예비 장인답게 총비용의 삼분의 일을 부담하였다.그는 프레이르의 생일을 기념하여 프레이르의 옆얼굴이 새겨진 기념주화를 발행하여 왕실에 헌납했다. 그 기념주화에 쓰여진 글귀는 '평화와 번영'이었다. 알타미라 후작이 발행한 이 기념주화의 액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인 것만은 확실했다.

이처럼 프레이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생일을 맞았다. 고대 레인가드 제국의 황태자라 한들 이보다 더 많은 축하와 경의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라 믿어질 정도로 프레이르는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프레이르의 생일을 기뻐한 것은 아니었다.


리처드 대공은 아까부터 팔짱을 낀 채 지방 귀족들에게 알현을 받고 있는 프레이르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경멸의 빛이 올라 있었다. 지방 귀족들이 프레이르에게 선물을 바치며 아부를 하는 모습이 아니꼬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리처드 대공의 옆으로 레스터 공작이 다가왔다. 그는 포도주가 담긴 와인잔을 오른 손에 든 채 프레이르 쪽을 바라보았다.

“금송아지라도 바치는 겁니까?”

레스터 공작은 아까부터 열심히 프레이르에게 아부를 하고 있는 한 남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리처드 대공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금송아지는 아니겠죠. 하지만 만약 프레이르가 저 자를 궁내부 장관으로 만들어 준다면 송아지가 아니라 자식을 금덩어리로라도 만들어 바칠 겁니다.”

리처드의 신랄한 빈정거림에 레스터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러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샤를이 다음 후계자로 아르첼이 아니라 프레이르를 점찍었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직접 목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권력의 냄새를 맡은 지방 귀족들이 우르르 프레이르에게 몰려와 선물을 바치며 아부를 떠는 모습에 레스터 공작은 뱃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덜떨어지고 자격 미달인 자들이 중앙에 진출하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것도 공작의 심가를 거슬렀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이나 아르첼 왕자가 아니라 프레이르와 샤를에게 몰려간다는 것에 그는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은 중앙에 끈이 없는 귀족들만이 프레이르에게 아부를 떨고 있지만 언제 자신의 가신들도 프레이르에게 넘어갈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레스터 공작은 불쾌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리처드 대공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레스터 공작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었으나 리처드 대공은 그 마음을 이미 읽고 있었다.

“이 생일 연회가 끝나고 2주일 뒤에 프레이르 전하께서 지방 순시를 떠난다는 군요.”

리처드 대공이 지나가는 말처럼 넌지시 레스터 공작에게 말했다.

“그것 참 미묘한 시기에 지방 순시를 떠나지 않습니까?”

리처드 대공이 여운을 남기며 말을 끊었다. 하지만 레스터 공작은 리처드 대공이 하고 싶은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현재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얼마 전 있었던 라시드 대주교의 암살에 샤를과 프레이르가 개입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 때문에 레인가드 사교계는 겉으로는 평온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속으로는 꽤나 술렁이고 있었다. 이런 미묘한 시기에 프레이르가 지방으로 순시를 가서 사람들의 이목을 피한다는 것은 상당히 작위적인 냄새가 났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리처드 대공이 이어서 말했다.

“약 20년 전쯤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지요.”

리처드는 이렇게 말하며 레스터 공작을 바라보았다. 리처드 대공의 그 잘생긴 얼굴에 희미하면서도 빈정거리는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20년 전이라면...”

“브조니 주교의 사건 말입니다.”

레인가드에서 가장 유명한 성직자가 실종되었던 그 사건을 레스터 공작이 모를 리 없었다. 예언서를 해석하여 번역해내는데 있어서 일인자라 할 수 있었던 브조니 주교가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실종된 그 사건은 그 뒤 몇 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레인가드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다. 더구나 이 사건이 발생할 즈음, 레아첼 에인절 왕비가 프레이르의 출산 직후 사망했고, 왕자 프레이르 또한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샤를은 프레이르가 사망했다는 소문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고, 장례식도 치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브조니 주교가 프레이르 왕자에 대해 무언가 불길한 예언을 했으며, 이를 입막음하기 위해 샤를이 브조니 주교를 제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었다.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레인가드 전역은 온갖 소문과 불확실한 추측, 의혹으로 술렁거렸다. 사람들은 브조니 주교의 실종과 레아첼 왕비의 죽음, 프레이르 왕자의 죽음(?) 사이에 무언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왕실을 주시했다. 레스터 공작 역시 자신이 가진 정보력을 총동원해 이 일련의 사건에 관해 뒷조사를 수행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시에는 애송이로만 판단했던 신임 비밀치안대장 홀트 백작의 방해 때문에 레스터 공작의 뒷조사는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결국 그 역시 소문의 진상을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기억합니다만.”

레스터 공작이 당연하다는 듯 리처드 대공에게 말했다.

“그 사건과 지방 순시가 무슨 관계라도?”

레스터 공작이 묻자 리처드 대공은 레스터 공작에게서 눈을 돌려 프레이르 쪽을 향했다. 그리고 그는 특유의 느릿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17년 전에는 브조니 주교가 갑자기 실종되었고, 왕자 프레이르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어딘가에 숨겨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라시드 대주교가 의문사를 당했고, 왕자 프레이르는 갑자기 지방 순시를 떠나 사람들의 의혹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죠. 왠지 모르게 비슷한 흐름이지 않습니까?”

레스터 공작은 깜짝 놀라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리처드가 한 말은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막 나가는 리처드라지만 프레이르의 생일에 5천 명의 인파가 운집한 곳에서 프레이르와 왕실을 비난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리처드 대공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샤를은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번 지방 순시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기회에 프레이르의 지지 기반을 지방으로 확대하고 각하와 저, 그리고 세르티프 백작의 기반을 흔들어보겠다는 속셈이 분명합니다.”

리처드 대공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에만 집중하고 있던 레스터 공작은 순간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홱 돌려 리처드 쪽을 바라보았다. 리처드 대공은 침착하면서도 약간 찌푸린 얼굴로 프레이르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레스터 공작은 그토록 주의를 했건만 또다시 샤를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레스터 공작이 황급히 리처드 대공과 이 문제에 관해 의논하려는 순간, 리처드 대공이 레스터 공작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의 앞으로 알타미라 후작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무슨 이야기들을 그렇게 정답게 나누고 계십니까?”

알타미라 후작이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며 온화하게 웃어보였다. 과연 대귀족다운 여유와 넉넉함을 보여주는 미소였지만 리처드 대공과 레스터 공작은 그 미소 뒤에 능구렁이가 백 마리 정도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샤를에 필적하는 위선자이자 야심으로 똘똘 뭉친 알타미라 후작은 두 사람이 매우 경계하는 인물이었다.

“별 것 아닙니다. 출세를 하기 위해서 저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지 레스터 공작님께 조언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리처드 대공이 알타미라 후작에게 말했다.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것은 프레이르와 베아트리체의 관계에 대해 빈정거리는 말이었다. 리처드 대공은 알타미라 후작이 프레이르의 장인이 되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것을 비난한 것이었다.

알타미라 후작은 이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대공 각하께서는 이미 이 나라에서 큰 인물이지 않습니까? 그곳에서 더 위를 지향한다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요?”

알타미라 후작의 말에 리처드 대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웃는 낯으로 참 잘도 받아치는군.’

알타미라 후작은 리처드 대공에게 당신이야말로 이 정도로 만족하고 분수를 알라는 요지로 이런 말을 한 것이 분명했다. 저 온화한 분위기 때문에 자칫 느긋하게 흘려들을 뻔했지만 살롱에서 수십 년을 보낸 리처드 대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꼬리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이미 베아트리체 알타미라 양과 알타미라 백작처럼 훌륭한 자제를 두 분이나 데리고 있는 후작님께서는 이 나라에서 소위 제일 잘 나간다는 사위를 찾고 계신 것으로 알고 계십니다만... 세간에서는 알타미라 후작님이야말로 국왕 페하 이상으로 만족을 모르는 분이라고들 하더군요.”

리처드 대공이 말했다. 이 가시 돋친 말에 알타미라 후작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리처드 대공 역시 웃으며 말했다.

“다만 그 욕심에 눈이 멀어 개새끼를 사위로 삼으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리처드 대공의 이 말에 레스터 공작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유리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리처드를 바라보았다. 리처드 대공이 막 나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방금 한 말은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늘 가식적인 가면으로 표정을 감추어왔던 알타미라 후작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핏기가 싹 가실 정도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개새끼가 아니라 개선장군을 말하려던 것이었습니다.”

리처드 대공이 악마처럼 웃으며 말했다.

“개선장군 정도의 명성을 지닌 인물이 아니면 딸을 줄 수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니 후작님이야말로 욕심이 지나치신 것이 아니신지요?”

리처드 대공의 명백한 도발에 알타미라 후작의 입가가 순간적으로 조금 비틀렸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자제심을 되찾고 대공에게 대답했다.

“허허. 그런 소문이 돌고 있습니까? 사람들 눈에는 저라는 사람이 꽤나 명성을 뒤쫓는 탐욕스런 인물로 비춰지나 보군요.”

알타미라 후작의 이 침착한 말에 리처드 대공은 ‘칫’하고 혀를 찼다. 저 얼굴에서 가면을 벗겨내는데 또다시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알타미라 후작은 속내를 드러내기 직전에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평정심을 발휘했다. 마치 가면을 얼굴에 붙인 것처럼 그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어내는데 나름 자신이 있는 리처드 대공조차도 이 자와 도박을 한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으리라 짐작될 정도로 알타미라 후작의 포커페이스는 완벽했다.

“그럼 두 분께서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저는 이만 프레이르 전하를 뵈러 가보겠습니다.”

알타미라 후작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떠나갔다. 그런 알타미라 후작을 향해 리처드 대공이 말했다.

“알타미라 후작님.”

리처드 대공의 부름에 알타미라 후작이 돌아보았다. 작별 때마다 한 마디 비꼬는 말을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리처드 대공이 후작에게 말했다.

“부디 제가 했던 말실수를 마음에 두지 말아주십시오. 물론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의하신다면 알타미라 후작님께는 좋은 일이겠지만......”

알타미라 후작은 리처드 대공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리처드 대공 각하도 주의하셨으면 합니다.”

알타미라 후작이 말했다.

“말실수가 잦으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니.”

알타미라 후작은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보통 불행한 사건은 그런 사소한 오해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지 않습니까?”

알타미라 후작은 리처드 대공의 경고를 그대로 받아친 뒤 레스터 공작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프레이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프레이르를 등에 업었다고 우쭐대기는.”

알타미라 후작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리처드 대공이 중얼거렸다.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그는 샤를과 더불어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에게 거리낌 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레스터 공작은 그런 리처드 대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윽고 알타미라 후작의 모습이 인파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리처드 대공은 다시 레스터 공작을 돌아보며 말했다.

“중간에 이야기가 중단되었습니다만......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할까요?”

리처드 대공은 이렇게 말한 뒤 레스터 공작이 동의의 뜻을 표하기도 전에 이야기를 재개했다.

“이번 지방 순시를 통해 지방 세력을 왕당파로 결집시키는 것이 저들의 목적입니다. 더불어 우리의 기반을 좀먹으려 들겠죠. 저들이 본격적으로 공세에 나섰으니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리처드 대공의 말에 레스터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처드 대공의 말은 매우 타당한 의견이었기 때문이었다. 레스터 공작도 샤를과 프레이르의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준비하고 싶었다.

“리처드 대공 각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정확한 조언을 해주셨죠.”

레스터 공작이 말했다.

“이번에도 각하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레스터 공작이 리처드 대공에게 조언을 구했다. 레스터 공작은 리처드 대공의 극단적인 행동은 꺼리고 있었지만 그 권모술수는 높이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레스터 공작은 이번에로 리처드 대공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

예상대로 리처드 대공은 왕당파의 이 공격적인 움직임에 대해 나름의 대책을 생각해 둔 모양이었다. 그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레스터 공작에게 대답했다.

“왕당파가 지방 세력을 끌어모으는 동안 우리는 중앙에서 우리 세력의 확대를 꾀해야 할 것입니다.”

리처드 대공이 말했다.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에서 최근 졸업생들이 나온 것들을 알고 계시겠지요?”

레스터 공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들인 루크가 올해 그곳을 졸업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리처드 대공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간결하고 명료하게 말했다.

“그 졸업생들을 설득하여 레스터 공작님의 사람으로 만드십시오.”

리처드 대공의 의도가 무엇인지 레스터 공작은 단숨에 이해했다. 리처드 대공의 조언에 레스터 공작은 이번에도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카시네예프 왕립 학교에는 수많은 지방 영주의 자제들이 있었다. 이들은 샤를의 주도면밀한 계획 하에 프레이르 왕자를 지지하는 왕당파로 교육되어왔다. 물론 지금은 애송이들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그들은 그 아버지의 영지를 물려받을 인재들이었다. 리처드 대공은 이 왕당파 후보군이 왕당파로 확실히 몸을 담기 전에 그들을 가로채도록 조언한 것이었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두 개의 거대한 조직, 즉 관료 조직과 군대의 핵심이 될 인재들을 포섭하여 중앙에 아르첼 왕자의 기반을 만드는 동시에 후에 지방 영주가 될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이 졸업생들은 분명 지금은 애송이들이지만 10년 후, 20년 후에는 각하가 이끄는 군단의 군단장이나, 고등 재판소의 법무 대신, 혹은 아르첼 전하를 모시는 비서관이 될 것입니다. 이들을 포섭한다면 분명 아르첼 왕자 전하와 각하께 도움이 되겠지요.”

레스터 공작은 리처드 대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리처드 대공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졸업생들이 이제 막 관료 조직과 군대에 진출하기 시작하는 지금이야말로 리처드 대공의 제안을 실행할 적기였다. 졸업생들에게 적당한 자리를 내주면서 레스터 공작 자신이 끌어준다면 그들은 자신의 사람이 될 것이 분명했다.

“더불어서...”

리처드 대공의 말이 이어졌다.

“자신의 자식이 중앙에서 레스터 공작님께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지방의 말 안 듣는 귀족들도 조금은 각하께 존경심을 품지 않겠습니까?”

리처드 대공의 말에 레스터 공작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리처드 대공은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레스터 공작은 리처드 대공의 제안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프레이르와 샤를의 이 지방순시라는 공격을 맞받아칠 수 있었다. 또한 아르첼 왕자를 지지해줄 세력을 양성할 수도 있었다. 그것도 샤를이 만든 조직인 왕립 학교를 통해서.

“알겠습니다. 대공 각하의 조언대로 따르기로 하지요.”

레스터 공작의 말에 리처드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명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레스터 공작은 리처드 대공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자신의 심복인 셰리프 남작을 불렀다.

“올해 왕립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 대해 조사하고 그들의 명단을 가져다 주게.”

레스터 공작의 명령에 셰리프 남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올해 졸업한 90명 전부 말씀이십니까?”

“전부.”

레스터 공작이 단호하게 말했다. 셰리프 남작은 90명이라는 대인원을 조사하라는 이 무리한 명령에 질려버렸지만 모든 아랫사람이 그러하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하네.”

레스터 공작은 옆에 놓은 의자에 앉으며 셰리프 남작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셰리프 남작이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올해 졸업생 중 쓸 만한 인재가 누가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다.


작가의말

정적은 반드시 때려잡아야만 하는 건 아니죠. 정적과는 협력도 하면서 원만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고 생각합니다.

정적과 관계가 험악해지면 국론이 분열되고 정국이 얼어붙기 때문이죠. 당파싸움이 격화되고 내분이 표면화되면 국가는 병드니까요.

현재 샤를은 정적인 레스터 공작의 귀족파와 원만하게 대화를 하면서 협력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금야금 레스터 공작의 세력을 좀먹어들어가는 수법으로 조금씩 권력을 공고히 다지고 있죠.

샤를이 하는 방식이 답답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국가 운영 면에서 볼때는 정적을 때려잡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세련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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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3) +2 11.05.31 694 15 8쪽
90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2) +5 11.05.30 764 18 11쪽
89 로라시아 연대기 - 24.생 마르통 대학살(1) +3 11.05.27 829 1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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