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XXX - 62화 봄바람 총각 (1) -
- 62화 봄바람 총각
시간의 신이 있다면 그는 아마 민준에게 욕을 먹었을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할 때에는 그토록 천천히 흐르다가, 어째 놀고 먹으려니 쏜살같이 흐르는 건지. 지난 여름과 가을의 노동에서 벗어나 소일거리나 하며 빈둥빈둥 놀며 시간을 보내던 민준도 밖에서 불어오는 향기에 어느샌가 봄이 왔음을 깨달았다.
덜컹.
문을 들어 올리며 밖으로 나온 민준은 크게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했다.
“으하아아암. 날씨는 무진 좋네.”
부욱 부욱.
민준은 옷속으로 손을 넣어 긁으며 주변을 둘러 보았다.
하얀 구름과 마치 손에 잡힐듯 가까이 떠 있는 태양, 그리고 아직 채 녹지 않은 눈들과 그 사이 사이로 조금씩 머리를 들이 밀며 솟아 오르는 작고 푸른 새싹들. 완연한 봄 날씨였다.
“그래도 따뜻하니까 좋네, 으음.”
고작해야 하루 차이일 뿐인데도 어제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따사로운 태양은 겨우내 눅눅해져 있던 민준을 기운차게 하기에 충분했다.
“좋아, 그럼 모처럼 봄도 되었고 하니 목욕이나 하면서 겨울동안 묵은 때나 씻어내 볼까!”
도대체 몇 개월 만인지 모를 목욕을 한 민준은 겨울 잠바를 벗고 밖으로 나와 나무토막에 걸터 앉아 나이프로 대충대충 머리카락을 잘라 이리저리 털어냈다.
“패션의 선두주자! 이게 바로 샤기컷이라 이말씀이야.”
답답하게 덥수룩하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자 기분도 가벼워졌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누가 보아도 샤기컷 보다는 설까치의 머리와 더 가까웠다.
“그럼 어디 눈도 제법 녹았고 하니 한바퀴 둘러 보고 와 볼까?”
민준은 창을 들고 집을 나섰다.
“돼랑아, 너네들은 좀더 날좀 풀리거든 내보내 줄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는지 민준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뀍뀍 거리는 돼지들을 타이른 민준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야생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겨울이 되기 전인 가을이나 겨울이 끝나고 날이 풀리는 봄엔 말이다.
가을이 겨울을 대비해 지방과 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서로 먹고 먹히는 계절이라 하다면, 봄은 겨울동안 굶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해 짐승들이 굴에서 기어 나오는 계절이었다.
그런데 왜 민준은 이 시기에 안전한 집에 있지 않고 스스로 밖으로 나온 것일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하지만 창을 지팡이처럼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여기저기를 훑어보는 민준의 시선은 그 전과는 뭔가 달랐다.
예전엔 혹시 뭔가가 내 뒤를 노리고 있지는 않나 하며 조심하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의 눈빛은 마치 어디에 뭐가 있나 하며 어슬렁 거리는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고작 1년 사이 두어번 정도 짐승과 싸워서 이겼을 뿐이지만 어느덧 민준 역시 한명의 사냥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째째째째째.
푸드드득!
민준이 걸음을 옮기는 곳에서 검은 새들이 일제히 날아 올랐다.
“휘유, 멋진데?”
몇 마리인지 셀수 없는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가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런데 이런 멋진 모습을 보고난 민준의 감상은 그 짧은 한마디가 전부였을 뿐이다. 게다가 풀숲을 뒤져 새알을 꺼내는 모습이라니….
“옳지! 작년엔 내가 이걸 못먹었지만 올해는 그냥 넘어갈수 없지. 이건 오늘 후라이를 해서 먹고, 이건 내일 먹어야겠다.”
민준은 새알 네 개를 꺼내 후드티의 후드에 넣었다.
“그런데 후라이 하니까 치킨 먹고 싶네…. 어디 닭 같은거 없나? 그거면 평소에도 계란을 먹을수 있을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준은 지난 1년간 닭 처럼 생긴 새는 보질 못했다.
“뭣하면 언제 새라도 한마라 잡아서 튀겨 먹으면 되겠지. 그건 그렇고, 이놈의 새들은 언제부터 봄이라고 벌써 알을 싸질러 놨담.”
일찌감치 싸질러 놓은 알을 또 일찌감치 챙긴 민준은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세상은 겨울동안 그다지 변한것이 없어 보였다. 민준의 집에도 눈이 많이 쌓였지만 지붕에 올라가 눈을 쓸어낸 덕분에 무너지지 않았고, 뒷산도 저 멀리 보이는 병풍같은 산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눈이 녹으며 냇물이 불어나고 강물이 넘쳤지만 물가에서 떨어진 민준의 집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다만 눈이 녹으면서 땅이 질퍽거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민준은 시원한 공기를 만끽하며 걷고 또 걸었다.
나무 위에서 민준을 경계하듯 삑삑 거리는 새들도 있었고, 민준은 보지도 못했는데 지레 겁을 먹고 나무 위로 다다닷 기어 올라가는 작은 동물들도 있었다.
멀리선 새순을 뜯어 먹던 동물이 민준의 발 소리에 놀라 귀를 쫑긋하며 도망치기도 했다.
“응?”
그때 민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먹이를 노리고 있는 짐승. 이 시대에 동물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있다면 분명 고양이과로 분류했을 법한 뾰족한 귀와 줄무늬 털가죽을 두른 그것은 자세를 한껏 낮춘채 네 발을 모아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민준도 덩달아 쭈그려 앉으며 짐승이 노리고 있는 방향을 살피니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씩 솟아 오른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하얗고 토끼처럼 생긴 동물이 눈에 들어왔다.
“오, 사냥인가?”
쫑긋.
민준은 나름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어떻게 그 소리를 들었는지 풀을 뜯던 그 동물은 고개를 치켜 들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그러자 사냥감을 노리며 숨어 있던 그 짐승은 김이 빠졌는지 허리를 둥글게 말며 기지개를 피고는 모처럼의 사냥을 망친 불청객을 쏘아 보았다.
“이크, 쏘리.”
미안한것은 아는지 민준이 사과를 해봤지만 알아들을리 만무, 둥글고 노란 눈으로 빤히 쳐다보던 그 짐승은 입을 한껏 벌리며 하품을 해보이고는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민준도 그들이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다.
또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민준의 시야에 고개를 숙이고 풀을 뜯는 무엇인가가 눈에 들어왔다.
사슴? 아니면 노루? 아니 둘다 아닐수도 있었다. 과연 원시시대에 사슴처럼 생긴 동물이 있었는지 민준은 알지 못했지만, 보아하니 사슴의 조상쯤 되는 동물은 있었던게 틀림 없었다.
가을에 식량을 비축해둔 덕분에 배고프지 않고 겨울을 나긴 했지만 역시 말린 생선과 죠리퐁, 그리고 알수 없는 여러 가지 채소와 뿌리들로는 민준의 다양한 미각을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게다가 하나같이 몇 개월씩 묵은 것들이다 보니 민준으로선 신선한 고기가 먹고 싶어질때가 있었다. 다만 한겨울에는 워낙 추워 쉽게 돌아다닐수 없었기에 그러지 못했었던것 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민준 자신 말고는 앞에 있는 동물을 노리는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먼저 점찍은 짐승이 없다면 이것은 민준의 몫. 민준은 조심스럽게 자세를 낮추었다.
가만히 바람을 느껴보니 다행히 사슴처럼 생긴 그 동물이 있는 방향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덕분에 민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듯 싶었다.
민준은 오른손에 창의 중간 부분을 쥐고 왼손으로 땅을 짚으며 질퍽 거리는 땅 위를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걸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한발 한발 다가감에도 아직 민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동물은 잠시후 자신의 미래도 모른채 모처럼의 신선한 풀을 뜯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소리를 완벽하게 줄이는 것은 무리였는듯 결국 손이 닿을듯 말듯한 거리에서 들키고 말았다.
쫑긋!
차다다닥!
초식동물 특유의 생존본능인지 아니면 그저 겁이 많은것 뿐인지 소리의 근원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단 뛰기 시작했다.
“에이씨!”
민준도 모처럼의 신선한 고기를 놓칠까 땅을 짚어 가던 왼손으로 마치 땅을 끌어 당기듯 몸을 세우며 달리는 자세 그대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창을 던졌다.
“끼이이!”
정확하게 옆구리에 창이 박힌 그 사슴과의 동물은 그래도 살겠다는 의지로 진흙을 튀기며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이미 창이 옆구리에 박히는 순간부터 처음의 순발력은 사라져 버린뒤라 생각과는 다르게 달리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반면 질퍽한 진흙 위에서 기우뚱한 자세로 창을 던지느라 완전히 몸의 중심을 잃었던 민준이 허우적 거리며 중심을 잡고 달려 나가며 그대로 몸을 던져 비틀거리는 동물을 덮쳐 눌렀다.
“꾸우….”
민준의 무게에 완전히 눌려 진흙탕 위에 널부러진 동물은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알기라도 하듯 바둑알같이 까맣고 둥근 눈을 글썽이며 낮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일일이 봐주기에는 1년넘게 이곳에서 살아남은 민준에겐 무리였다.
“좋았어! 자자, 미안하지만 일단 피부터 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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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갈랑입니다.
일단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먼저 민준이 이곳에 이동된 목적이나 이유를 물으셨는데 지금까지 한 3번인가 4번쯤 언급했다시피 판타지현대퓨전회귀생존물로서 생존 자체가 목적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소설처럼 지구를 구해야겠다 라던가 그런 거창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집을 나섰을 뿐인데 원시 시대에 홀로 떨어졌고 주인공은 거기서 살아 나아가는 이야기가 주제 되겠습니다.
두번째로 자전거와 수레를 왜 만드느냐 쓸 여건도 안되는데! 라는 말씀이 많네요.
사실 제 생각과 독자분들의 생각이 다르니 이런 충돌이 생길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매번 부딪히는것도 별로 좋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보통사람인지라 그냥 무시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일단 후에 나오겠지만 자전거는 나무 바퀴이고 페달이나 체인같은것은 없습니다. 체인은 고사하고 바퀴에 페달하나 가져다 붙이려면 대충뚝딱뚝딱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예전에 앞바퀴에 페달이 붙어있던 자전거를 보신분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간단한게 아닙니다. 보통 많은 부품이 들어가는게 아니죠. 때문에 초기의 자전거처럼 나무 바퀴, 나무안장, 그리고 발로 차며 앞으로 굴러가는 자전거 되겠습니다.
그리고 수레는 왜 못사용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레는 절대로 길로만 다니지 않습니다. 논과 밭 안으로 얼마든지 들랄날락 합니다. 거기에 길이 있나요?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갈아놓은 밭은 울퉁불퉁한데다가 수레가 지나가면 푹푹 빠지면서 뭐라도 좀 무겁세 실려있으면 좀처럼 빠져 나가기가 어렵죠.
그래도 수레가 들어갑니다.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옮기는것보다 훨씬 쉬우니까요. 이건 제가 해본 일이니 뭐 다른 말이 필요없겠습니다. 물론 손수레에 쓰는 바퀴가 자전거바퀴같은게 아니라 훨씬 단단해서 무슨 통짜고무같다는건 만져보신분은 아실겁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뭐 경험상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전에도 몇번 언급되었는데 나이프를 불에 달구면 못쓰게 된다...옳습니다.
시중에 판매되는 나이프들은 두가지 종류입니다. 단조로 만들어지거나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강재를 도구를 이용해 나이프 모양으로 다듬는 겁니다. 어쨌든 둘다 만들어지면서 열처리를 받기 때문에 다시 거기에 열을 가하면 안됩니다.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뭐 이제와서 말하려니 좀 그렇지만 여기에 나오는 나이프 모델은 모두 제가 가지고 있는 모델들중 하나입니다. 한때 나름 빠져서 몇몇 사이트에서 활동도 하고 했었습니다.
후에 나이프와 톱날의 수명 그리고 소설 안에서 열이 가해진 나이프에 대해 언급이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습니다만, 계속 의문을 가지실분이 계실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이상으로 쓰고보니 열폭한것 같다고 느끼고 있지만 길게 쓴게 아까워 지우지는 않는 글쓴이였습니다~_~//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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