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3.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네
마치 깨어나지 않을 꿈처럼 생생했고 생경한 꿈을
그 꿈 안에 내가 있었네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눈들의 소리.
그들이 내는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생생한데
길 잃은 발걸음에 다가와 부딪히는 바람의 냄새가
아무도 없는 도시의 적막감이 내게 가져다주는 시간이
아직도 내게 선명한데
나는...
걷고 걸었네.
아무도 없는 자유 속,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너머
조바심 없이 나를 기다리는 그곳을 걸었네
그늘은 내 얼굴과 몸을 스쳐 가며 속삭였네.
이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의 바다 아래에서 너는 혼자라고.
아찔함 아래 너는 오롯이 혼자라고
그 진실에 나는 너무나 만족해 눈물을 흘렸네.
아무도 없는 숲속을 나는 홀로 걸었네.
이제 없어진 빛들의 향내를 맡으며
나는 홀로 걷고
또 걸었네.
' 그만 좀 걷자.'
세영은 발로 바닥을 걷어찼다.
쾅!
그러자 나는 요란한 소리에 놀라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 뭐 원래 그녀의 잠꼬대가 심하긴 했는데 바닥을 터트려 버릴줄은 미처 몰랐다.
쾅!
"으악!"
그녀는 엉겁결에 고개를 들다가 이마를 천장에 부딪혔다. 그래서 인상을 쓰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좁은 공간에 누워있었고 남사스럽게도 알몸이었다.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소 민망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뭐야 이거 씨발···."
그녀는 좁은 공간을 빠져나온 후에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서 흠칫했다. 그녀의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나 욕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건만···. 모전여전이었다.
욕은 그녀의 입에 찰떡같이 붙어 여간해서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진짜 욕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현재 을씨년스러운 영안실에 홀로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 건데? 그것도 알몸으로 ."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병원에 불은 들어오는지 비상구 판이 초록색의 미약한 빛을 내고는 있다.
세영은 몸이 이상이 없나 자신의 젖가슴을 주물럭거리면서 여기에 왜 있나 생각해 보았다.
"낮잠 자다가 깨어난 것 같은데.."
그녀는 검고 긴 머리를 등 뒤로 넘겼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일단 이런 기분 나쁜 곳에 계속 있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복도에는 썩은 냄새를 풍기는 좀비들이 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공포에 질린듯했다.
좀비들보다도 사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가 참 마음에 들지 않는 세영이었다. 가뜩이나 어두컴컴한 종합 병원 내부를 저런 노래로 채우다니.
"절이 마음에 안 들면 손님이 나가야지."
뭔가 핀트가 어긋난 말을 내뱉으며 세영은 병원을 빠져나왔다. 거리는 엉망진창이었다. 부서진 가게와 타다남은 시체들이 가득했다.
기형적인 십자가들이 주검 위에 꽂혀 있었다. 그들은 사형당한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말이다.
맨발로 걷고 있던 그녀는 주변에 굴러다니는 천을 들어 몸에 휘감았다. 냄새나는 더러운 천이었지만 일단 가릴 건 가리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엉망이 된 거리를 홀로 걸었다. 위축된 모습은 없었다.
"오오! 우리의 신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찬양하라!"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섰다. 부서진 가게의 엎어진 진열장 사이로 전원이 들어온 텔레비전이 보였다.
브라운관 속에는 수많은 인간이 평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얀 사원처럼 보이는 건물들도 보이는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최방석 신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모든 것을 바쳐라! 그러면 천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최방석님의 종인 천사들이 내려와! 바다를 가르고! 언젠가!!"
와..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세영은 뭔가에 충격을 받은 듯, 질린 얼굴로 중얼 거렸다.
"세상에.. 신 이름이 방석이야? 엉덩이에 깔고 앉는 그거? 무슨 이름이 그렇게 저렴해? 엔티크도 아니고 이게 무슨..."
'그래도 입엔 착착 감기네.'
유심히 화면을 보는데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옆을 바라보니 바닥에 가슴을 붙이고 기어 다니는 인간이 있었다.
"안녕?"
"헉헉! 아...안녕..헉헉! 너 혹시 물 있니?"
"내게 물이 있어 보여?"
노인.. 막길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세영에게 충고했다.
"이봐. 그런 자극적인 차림으로 있는 것은 좋지 않아. 여기에 최방석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폭주족들이.."
그때 막길수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비명이라는 꼬리표도 달지 못한 즉사였다.
세영은 옆으로 물러나며 튀는 피를 피했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멀리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오는 폭주족들을 보았다.
"......"
그녀가 폭주족들을 해치우는 데,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세영은 최강의 존재였다. 우주의 천사들을 다 모아도 그녀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홀리디스트로이어의 주인이자 16장의 날개를 지니고 태어났다.
단지 입이 좀 험했다. 어머니를 닮아서 말이다.
"이런 씨발..."
머리가 박살 난 여자의 시체에서 옷을 벗겨내면서 세영은 투덜거렸다. 상의가 피로 범벅이 되었기 때문에 걸치면서도 아주 찜찜했다. 이럴 거면 그냥 깨끗하게 죽일걸. 실실 쪼개는 게 왠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만...
옷을 챙겨 입은 그녀는 죽어 있는 막길수를 향해 힐끔 시선을 던졌다. 미안하지만 묻어줄 생각은 없다. 그녀는 그곳을 떠나가 거리를 걸었다.
뭐 냄새나는 천보다는 나은 옷차림에 기분이 괜찮아지긴 했는데, 자꾸 궁금증이 일어났다.
왜 영안실에 처박혀 있던 걸까? 설마 없던 몽유병이 생겼나?
그때 문득 세영은 이상한 충동에 휩싸였다. 뭐라 딱 꼬집어서 형용할수 없는 끌림 같은 것 말이다. 그 충동은 세영을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하려는듯 싶었다.
내키는 대로 걷던 그녀는 어느새 고층 건물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긴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는 옥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쪽이 허물어진 난간을 붙잡고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는데, 시원한 바람이 폐부에 가득 찼다.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그녀의 앞에 펼쳐진 도시가 눈동자에 가득 담겼다. 도시의 상태는 언뜻 보기에도 좋지 않아 보였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오히려 그런 폐허 속에서 피어난 희망이었다. 누군가가 살아있고 움직이고 있다는 희망.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누군가를 향해서.
"네가 나를 불렀구나."
여기로.
세상은 암흑에 잠겼다. 최방석이 신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언젠가 밑바닥을 쳤다고 생각했고 더이상의 바닥은 없다고 여겼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밑바닥 밑에 더 아득한 심연이 존재했다.
최방석은 인간들을 짓밟고 착취했다. 내키는 대로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 그의 신도는 전 세계에 넘쳐났다.
저렴해 빠진 이름에 비해 세상을 제대로 말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갓 태어난 최강의 테러로드가 도시 위에 섰다.
장차 그녀 내키는 대로 모든것이 변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그럴 힘이 충분히 있었다.
세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제 자신의 것이 된 영토를 내려다보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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