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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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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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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0,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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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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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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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세진이 청영과 시타델 곳곳에 세운 공중전화에는 오로지 하나의 단추만이 존재했다. 처음에 이 단추가 뭘 뜻하는 것인지 다들 궁금해했다.


그 궁금증은 머지않아 풀렸다. 그는 컨슈머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있는 여성들을 사들였다. 그중에는 은퇴한 지 오래된 할머니도 있었다.


"여자가 너무 많군. 아버지나 형뻘도 필요한데."


잠시 고민을 한 그는 고블린 노인에게 자문했다. 세진의 이야기를 들은 노인은 인생 경험 많은 남자들이나 어린 학생들을 넣어 주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스토리가 많고 아픔을 아는 자들이었다. 기구한 사연들이 중첩된 인생들이다.


사각형의 거대한 석조건물로 운반되었을 때, 그들은 처음에는 어떤 이유로 자신들을 옮겨온 지 몰라 매우 불안해했었다.


겉으로 보기에 볼품없는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꽤 괜찮았다. 일단 칸막이가 없는 데스크들이 질서 없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붉은색의 전화기들이 위에 하나씩 놓여있다.


의자는 사장님 의자처럼 크고 튼튼했으며, 아주 푹신했다. 인체를 고려해 디자인한 의자도 창고에 쌓여 있었다.


푹신한 방석. 소시지와 같은 간식거리. 그리고 머그잔들과 음료수로 가득 찬 냉장고가 즐비한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매뉴얼을 받아 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8282가 활동을 시작했다. 단추 하나에는 8282가 쓰여 있었다. 8282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전화를 하는 것이다.


8282는 빠른 도움을 원하는 전화일 수도 있었다. 혹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전화일 수도 있었다. 전화를 걸 때 전화는 내용전달의 수단이 된다. 전화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구나 목적을 요구하는 일상적인 관계에서 탈피한 것이 바로 8282였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생명체는 언제나 존재할 수 있었다. 전화기를 든 상대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고 사고로 말미암아 휴대폰을 분실한 유저일수도 있다. 험지와 평탄한 지형을 가리지 않고 설치된 공중전화 박스는 거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던 시민들도 점점 전화기를 사용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8282부서에는 사전들이 가득 쌓였다. 그리고 유머를 적어 놓은 책자들과 추리소설. 카운셀링에 관한 서적들도 빼곡하게 서가를 차지했다. 책들은 자주 서가를 들락날락했다. 그러다가 그것조차 귀찮은 듯 바닥에 쌓이게 되고, 결국은 상담원들의 책상 위에 탑처럼 쌓이게 되었다.


"아니에요. 루이자. 그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해요. 아들 문제는 물론 당신이 알아서 하는 거지만 훈육이란 거 말이에요. 제가 아들 둘을 키워 보니까."


"지도를 지금 보고 있는데 근처에 혹시 커다란 산이 보여?"


"그래요. 사는 게 참 어렵죠. 인생이란 거 굴곡과 고비의 연속이에요. 제 이야기를 잠깐 해드리자면···."


"세상에 대한 흐름과 결이 보인다고? 수면이 부족한가 보구나..혹시 손에서 흑염룡이 꿈틀 거리진 않니?"


"나도 알아. 봉지에 질소를 넣어서 팔면서 과자를 덤으로 파는 회사들은 다 죽어야 해."


목숨이 달린 중요한 일부터 시시콜콜한 일까지 8282에 들어왔다. 때론 반나절 이상 한 사람과 통화하고 있는 접수원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8282의 목적은 앞서 밝혔듯이 전화 그 자체에 있었다. 여기에서 전화란 곧 대화였다.

누군가는 사춘기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일종의 고민 상담이었다. 길을 물었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었다. 추운 밤을 지새우는 수인이 별자리에 관해 물어 오기도 했다. 그러면 상담원들은 종을 떠나 친절하게 응답해 주었다.


산다는 건 누구나 외로웠다. 누구나 감정적으로 돌변할 때가 있었다. 아무리 침착하고 냉정하던 이도 때론 지독한 고립을 느꼈고 아파했다. 세상이 지옥 같아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서 지옥 같은 순간이 모든 것과 별개로 찾아올 때가 있었던 것이다.


짧은 외로움도 올 때가 있었다. 종족 간의 불화나 무지에 의해 화가 나서 전화를 해오는 자도 있었다. 동기야 어떻든, 일이 해결되든 안 되든, 상담원들과 전화를 건 존재들은 계속 대화를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응어리가 조금 풀어진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전화를 걸기 전보다는 말이다.


상담원들은 휴식 시간때, 특히 주말에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생각보다 욕설로 시작하는 전화나 이상한 전화는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 왜 우리를 여기로 불렀는지 의아해 했었는데..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두려운 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저도 상담원을 하면서 도움을 받는 느낌이에요."


"오늘 한 아이가 제게 전화를 걸었어요. 낮잠을 자고 났더니 엄마가 안 보여서 당황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아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줄 수 있어서. 제게 보람찼던 시간이었습니다."


8282는 널리 퍼졌다. 그리고 윤활유 역할을 했다. 세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식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과부들을 대거 도시로 받아들였다. 그녀들은 영의 거리보다는 다른 거주구에 머물렀다. 영의 거리 옆쪽으로 확장된 곳인데 비교적 한적했다.


"그녀들을 받아들인 이유가 뭐야?"


영이 묻자 세진이 대답했다.


"아줌마들은 도시의 좋은 관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인간들에게 말이야."


"관절이라.."


"억척스럽고 자기표현을 마음껏 하는 그녀들은 필요한 존재야. 누군가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대리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또 누군가는 그녀들에게서 어머니의 상을 보지. 화낼 땐 화내고 그러면서도 보듬어 안을 때엔 보듬어 안는 그런 분위기가 필요해. 모두가 전투만 하고 살 수는 없어. 누구에게나 생활이 필요하고 거기에 필요한 건 다양성이지. 그중에서도 관절이야. 노인도. 아줌마도. 어린아이들도 그런 역할을 하지."


그녀들도 새로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자식들을 잃은 고통을 어느 정도 삭히고 나면 다른 계기가 열리지 않을까.


"어차피 실패해도 잃는 건 없어."


그렇게 말한 세진은 시타델의 제약도 완화해 주었다. 그들은 청영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제대로 된 권리를 누리려면 시타델은 시타델대로, 청영의 시민은 청영에서 생활하는 게 최적이었다.


세진은 어두운 곳에 전등을 달았다. 어둠을 즐기는 종족들이 있는 곳에는 가끔 빛을 발하는 보석을 선물했다. 인간들은 특히 종교적인 건물이 늘어나길 바라는 경우가 많았다. 겁이 나서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8282의 상담 내용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믿고 싶은 게 있다면 직접 짓는 것도 좋을 텐데."


하지만 시민들 입장에서는 마음대로 건물을 짓는다는 게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세진은 절이나 교회를 늘렸다. 십자가를 높이 세운 뾰족한 지붕이 눈에 띄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성당과 교회를 구분해서 지었다.


절도 산을 끼고 으리으리하게 지었다. 현재로서는 외국인들도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시타델을 통해 유입된 것이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며 이슬람 사원을 짓기도 했다.


"정작 본인들이 보면 이상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거야 절도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 애매한 것은 무당집 같은 것이었다. 이건 스토어에서 기본형을 찾으려고 해도 기와집이 전부였다. 그냥 대충 알록달록함이 많이 들어간 모델이라고 생각한 그는 기와집 몇 개를 사놓고 색색의 천으로 치장해 버렸다. 개인이 모든 것에 통달할 수는 없는 법이다.


팔만대장경을 싸게 구입했다. 성모 마리아상이나 불상. 코란이나 성서. 불교 서적 같은 경우에는 구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무당집 같은 경우엔 대체 뭘 넣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테러로드들이 불태우지 않은 것들로 추려서 대충 넣어두긴 했는데 역시나 만족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불상이나 피에타 같은 예술품을 보고 나니 문득 그것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진은 시타델 곳곳에 그런 조형물들을 세웠다.


분수로 장식된 공원. 동물원. 식물원 등을 디자인하고 세운 그였지만 언제까지고 남 좋은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드디어 세진에게도 제대로 된 건물이 만들어질 차례가 다가왔다.


"완성되었어."


"훌륭하군."


종이로 프린트된 도면들과 입체적으로 떠 있는 설계 구조물을 살펴본 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부적인 수정 사항은 만들어 나가면서 적용하지."


"그래. 수고했다."


"어디에다가 지을 거지? 도시 내부에 적당한 자리가 있나? 이거 크기가 만만치 않잖아."


레인은 당연히 세진이 청영의 중심지에 건물을 세울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진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허벌판에 세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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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나는 날. 그 꽃을 찾겠다. +3 17.09.20 713 21 9쪽
48 8----- +4 17.09.20 701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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