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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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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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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04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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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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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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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세진과 영은 테라스 발코니 쪽으로 걸어가 맞바람을 맞았다. 영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려 등 뒤로 물러섰다.


"여기에서 살아도 산 게 아니에요. 외부가 현실이고 외부가 무너진다면 여기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현실 속의 영의 육체가 죽으면 당연히 여기도 소멸한다. 여기 있는 영은 만나자마자 푸념 같은 것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소설로 관찰해도 한계가 있었는데 세진의 안부 같은 것은 생략하고 말이다.


"막길수가 지은 던전의 신을 통해서 당신의 행적을 어슴푸레 나마 지켜보았어요."


세진은 발코니 아래 평화롭게 펼쳐져 있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많은 인간이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도로 위를 개미처럼 움직이는 차들이 보인다. 저 안에는 운전대를 잡고 삶을 꾸리느라 열심히 달리는, 그러나 정작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인간들로 가득할 것이다.


"언제 나를 잠에서 깨게 해줄 건가요?"


"마치 내게 의무가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군."


그때 영이 매혹적으로 웃었다.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세진은 이미 행동으로 그녀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 그리고 링크를 무시하지 않고 여기로 왔다. 답은 나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돌아서며 난간에 등을 기댔다. 그러자 바람에 머리카락이 앞쪽으로 나부끼기 시작한다.


"가족들을 배신했잖아요. 처음부터 침묵을 지켰으면 모를까. 모두를 배신하고 더러운 흙 위에 떨어졌잖아요. 누구 때문에?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요. 세진. 여기는 왜 사는지도 모르는 유령들로 가득 차 있어요. 때론 너무 답답해요. "


세진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잔잔한 수면과도 같은 눈길로 영을 바라보았다.


"설마 바깥의 잠꼬대 같은 나에게 만족하는 것은 아니겠죠? 바깥의 방어기제는 그저 나의 껍데기에 불과하잖아요. 당신은 알맹이를 원해요. 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잖아요. 이건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대놓고 입 밖에 내놓는 게 당신 자존심에 대한 실례인 건가요?"


세진은 대답 없이 아름다운 영을 보았다. 살기 위해서 발달한 것이라 해도 그녀는 영악했다. 그리고 하이에나처럼 세진의 약점을 물어뜯었다.


그녀가 보기에 세진은 내숭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당신의 전투를 멀리서 바라보고 저는 숨 막히는 것을 느꼈어요. 맙소사. 그렇게 강할 줄이야. 그리고 날개들을 빼앗긴 지금도 강하죠. 당신은. 알잖아요. 이미 알고 있잖아요. 언젠가 그들은 대리로 내세운 저를 포착할 거에요. 아무도 모르는 애를 심문하는 헛짓거리를 밤마다 하고 있지만, 천사들 전체가 저렇게 필사적으로 찾고 있거든요. 세진. 나를 위해서 모두 죽여 줘요. 그들이 있으면 나는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요."


"네가 바깥으로 나오려면 현실의 영이 죽어야 해."


"그것에게 영이라고 부르는건 어폐가 있어요. 당장 가져다 붙일 이름이 없겠지만.. 그것도 당신의 손으로 해치우면 되는 거잖아요. 보세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저도 제 사랑을 증명했어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보일 정도로 여기로 물러선 이유는 당신을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간략하게 종합해 보자면, 세진이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를 제쳐놓고, 영은 지금 현실에 있는 영의 인격을 살해하고. 세진의 가족과도 같은 천사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패륜적인 요구를 하는 셈이었다.


그리고 천사들은 그녀의 가족이기도 했다. 물론 미친 집단에다가 결코 좋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이 있었다. 뭐 하나가 무엇보다 뒤떨어지고 가치를 낮게 매긴다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이미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노래 가사나 여러 예술 작품에서 나오는 사랑들의 형태만 봐도. 난잡하고 말초적이고 먹다가 버리는 사랑조차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고,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히 거기에 동의한 듯이 보였으니까.


상대를 가진다는 표현에 익숙해지고 자존심을 칼날처럼 휘두르는 사랑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행처럼 번져 나가는 사랑의 스타일도 있었고 그 스타일이 목적을 집어삼키기도 했다. 여러 기준이 나열되었고 받아들이면 어떤 굴절도 허용되었다. 심지어 대상을 배제한 사랑도 인간은 가능했다. 배경이라는 풍경화만 보고 고르는 사랑도 말이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랑의 주제는 인간대 인간이라고 정의하기도 어려웠다. 인간은 물질을 사랑하고 자신의 본성을 지불할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고, 동물에게도 인간의 무게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했다.


필요한다면 인간은 자벌레와 길가에 굴러 다니는 쓰레기 봉투. 먹다 만 사과 껍질. 그리고 하루살이와도 불타는 진정한 사랑이 가능할 것이다.


여기 지금 영 앞에 서 있는 타락한 천사로 말할 것 같으면, 안타깝게도 마이너한 깊은 사랑에 빠졌다. 그 가치를 논하고 값을 매기기 전에 분명히 깊디깊은 사랑이었다.


세진은 모든 것의 답이 영인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냥 그녀에게 자신이 뭘 원하고 있는지 곤혹스럽기까지 한 깊이의 낭떠러지로 떨어진 느낌이었고 그것은 곧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 햇살과 공전과 자전과. 빛과 어둠과 물건들과 풍경들이 비로소 왜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 것 같은 느낌. 어떤 것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얻고 싶은 느낌.


'나방에게 인간의 뇌를 준다면 과연 그는 이성을 발휘하여 뜨거운 빛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멈출수 있을까?'


'마치 인간이 필멸자인것을 스스로 안다고 해서 모두가 죽음을 초월한 과정을 사는가?'


'현재 지성으로 막을 수 있는 작용이 일어나고 있나?'


그 답은 여기 있는 영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웃었다. 눈을 반달처럼 휘는 웃음이었다.


세진은 자신의 감정에 휘둘릴 것이다. 왜냐면 그 감정의 주인은 그 자신이 아니었고, 영은 그것을 흉기처럼 휘둘러 모든 것에 상처 입히길 주저하지 않는 존재였다.


"어차피 당신은 나를 저들과 나눌 수 없어요. 저들이 뭘 원하는지 알잖아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아버지를, 형제들을 죽고 죽이는 거예요. 그리고 나를 바깥으로 꺼내어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 은근한 불안감에서 날 해방해 달라고요. 쫓기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아시잖아요. 날 얼마나 여기에 내버려 둘 건가요? 서두르세요."


"나는.."


"답은 이미 나와 있어요. 길도 하나뿐이고요. 모두를 당신의 힘으로 죽이면 내가 그 위에 다시 우리만을 위한 세상을 창조하는 거예요. 이번에는 피조물들이 그리 많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이미 시행착오는 충분히 거쳤으니까."


사랑하는 대상을 다른 동성들과 나눌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세진의 옆에서 영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그녀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좀 더 디테일하게 가다듬는 것 같았다.


그녀의 계획에 따른 가장 큰 전제는 바로 세진의 힘이었다. 영은 세진이 모든 천사를 죽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해가 산 뒤로 뉘엿뉘엿 넘어갈 때 영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도 제가 도시에 부탁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요약해 보면 저는 당신을 믿고 여기에 와있고, 무려 당신을 살려주기까지 했잖아요. 설마 아직도 저를 못 미더워 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제가 한 일을 생각해 보세요."


세진은 무겁게 달라붙어 있는 입술을 떼었다.


"그때 나는 죽기를 원했어."


그러자 영은 밝게 웃으며 속삭였다.


"그렇다면 지금 죽어버리세요. 어때요?"


"........."


"두번이나 할 수 있겠어요? 이미 남의 힘을 빌려 하는 자살이 얼마나 힘든지 맛보았잖아요? 두번째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당신은 자꾸 말을 되풀이하게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팔자에도 없는 앵무새 노릇을 하고 있잖아요."


세진은 자고 가라는 영의 말을 무시하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영은 다시 재촉을 얹어 주었다.


"빨리 진행하세요. 확실한 건 사랑의 관계에도 강자와 약자가 있다는 것이에요. 저는 부끄럽게도 피조물들에서 그것을 배웠어요. 때론.. 인간들이 신에게, 배우자에게 하는, 힘의 논리가 전제된 사랑이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랑이에요."


신 앞에서 인간들은 자청하여 철저한 약자다.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관계에 대하여 낙심한 누군가가 사회에서 당한 상처에 당신은 뭘 하고 있었느냐고 울부짖으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이를 비웃곤 했다. 무언가를 원하는 불손한 생각을 하였고, 섬기는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사랑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그저 복종하는, 끊임없이 시험받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거룩하고 위대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강자인 자식들은. 매력적인 여자나 남자들은 뻔뻔하게 사랑을 갈취하고 물 쓰듯이 썼다. 평생 부모의 사랑을 받았으면서 끝까지 한 개의 사랑도 전해주지 않는 인간들이 거리에 넘친다.


그러다가 마음에 편해지기 위해 무덤가에서 때아니게 속 시원히 울고 나면 털어버리고 돌아서는 사랑.


영은 세진의 증명을 보았다. 세진의 전부는 영을 사랑하고 있었다. 천사들에게 맞서는 행동과 그녀를 탈옥시켜주는 엄청난 행동으로 입증된 사실 위에서 그녀는 강자가 되었다.


그녀는 원죄를 끌어안은 남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명령하는 것을 피조물들에서 충분히 배웠다. 뭐 부모도 자식들에게 배울 건 있는 법이다.


"네가 말한 것을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행하리라 믿어?"


"당신이 나를 더 강렬하게 사랑하니까 철저한 약자에요. 약자는 강자 앞에서 자신을 세울 필요가 없어요. 당신은 그저 복종하기만 하면 돼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요."


세진은 이제 몰려오는 어둠 속에서 하나둘씩 불빛을 밝히는 서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세계는?"


여기의 영이 외부로 발현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구 위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조잡하게 만들어졌고 수준 낮은 알고리즘으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진실한 것이라 믿는다.


살아있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이 기원의 입증과 가혹한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들은 분명 살아있었다.


영은 오늘따라 자주 웃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세진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꿈에서 깨면 신기루들은 사라져야죠. 꿈에 얽매이면 현실을 살아갈 수 없잖아요. 활자들처럼 허구들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


"잊지 마세요.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내 쓰임새로 움직이는 물건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내가 강자이고 당신은 철저한 약자에요."


세진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언젠가 현실의 영에게 세진이 했던 취급을 똑같이 받으면서 말이다.


그는 눈동자만 움직여 밤에 잠긴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허구의 도시는 푸르스름한 낮의 정전 아래에서 보석처럼 빛을 밝히고 있었다. 저 도시도 그렇고 지구 전체가 내일 아침이 다가오리라 믿고 있을 것이다.


영이 떠나가는 세진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세진.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요?"

"······."


그는 허구라는 결과와 상관없을 정도의, 과정을 지닌 생명체가 이곳에 몇이나 될까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런 것들을 떠나 이땅에 발을 딛고 사는 생명체들은.


하루하루를 살아온 그들의 리얼리티는 과연 이런 허무한 엔딩에 만족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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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4 행인09
    작성일
    17.10.04 10:22
    No. 1

    세진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지 정말 짐작이 안되는군요 그래서 더욱 다음이 기대가 되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5 국수먹을래
    작성일
    17.10.04 10:33
    No. 2

    기대 된다는 말씀때문에 살맛 나네요;;
    무..물론 그 기대를 충족 시킬수 있느냐를 논외로 치고서라도 ㅠㅠ(땀 뻘뻘;;)
    그렇다는 소립니다 ;;;
    추석 연휴 잘 보네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탈퇴계정]
    작성일
    17.10.04 13:30
    No. 3

    잘보고 갑니다. 연휴동안 좋은시간 보내시고 건필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6 아침돼지
    작성일
    17.10.04 16:50
    No. 4

    다시 태어난 세진은 이전의 세진과 똑같지 않을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5
    작성일
    17.10.21 10:21
    No. 5

    그래서 가끔 영을 죽이고 싶었던 걸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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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8---- +5 17.09.27 674 1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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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6---- +2 17.09.22 819 21 17쪽
55 5---- +2 17.09.22 680 18 12쪽
54 4------ +5 17.09.21 679 25 8쪽
53 3------ +1 17.09.20 694 21 9쪽
52 2------ +2 17.09.20 675 20 10쪽
51 1----- +2 17.09.20 702 23 15쪽
50 라이브 +1 17.09.20 731 20 12쪽
49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나는 날. 그 꽃을 찾겠다. +3 17.09.20 713 21 9쪽
48 8----- +4 17.09.20 701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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