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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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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93,319
추천수 :
2,370
글자수 :
400,683

작성
17.09.28 08:17
조회
602
추천
17
글자
8쪽

1----

DUMMY

진영은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테러로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그는 낭패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늘하고 어두운 공간이 그를 당장이라도 먹어치울 듯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은 지저 세계와도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었지만 드워프들과의 지저 공간과는 차원이 달랐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놀랍게도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앞이 깜깜해진 그는 옷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걷는다.


"지성체로서 죽었으면 좋겠는데."


진영은 자신의 패배를 아주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살을 생각했다. 그게 그나마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그를 이끌었다. 죽음마저 능가하는 지독한 호기심이다.


파란 혈관들이 핏줄처럼 곳곳에 퍼져있는 가운데, 검은 기둥들이 높은 천장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림자와 금속 기둥들. 돌로 만든 기하학적인 모양들과 합쳐 묘한 느낌을 주는 구조물들이 연속적으로 진영의 앞에 펼쳐졌다.


가파른 나선형 층계는 그를 밑으로, 다시 밑으로 초대했다. 진영은 출입구를 찾으려는 희망을 품지 않은 채 터덜터덜 걸었다. 그는 이곳의 수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진영의 앞에 뭔가가 나타났다. 근육질의 거인이었다. 고대의 타이탄을 연상시키듯이 청동 근육들을 드러내고 있는 거인의 몸체와 얼굴이 어울리지 않았다.


진영은 고개를 들어 거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거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는 남자의 얼굴이었는데, 감은 두 눈에서 흘러나온 핏줄기가 목 아래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말라붙을 생각이 없는지 계속 흘러내리는 핏줄기는 거인의 가슴에 세로 선을 그었다.


거인은 진영을 해칠 생각이 없는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진영도 무방비 상태로 거인의 목 위에 박혀 있는 얼굴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남자의 눈 밑의 점을 보던 진영은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녀석···."


하지만 그는 상대를 굳이 애도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의 그는 남을 애도할 처지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만든 공간은 꿈틀대며 살아 움직였다. 분명히 이 넓은 공간 안에 진영 외의 생물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텐데도, 주인의 명령 때문인지 진영 주위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진영은 바람 부는 절벽 위를 비틀거리며 걸었다. 그리하여 검고 파란색의 암석들이 성채를 이루고 있는 곳에 도달한 것이다.


짙은 그림자를 옆으로 드리우고 있는 기둥들 사이를 지나가니 마치 제단처럼 보이는 곳이 드러났다. 정 중앙에는 보석과 금으로 만든 왕좌가 있었고 누군가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남자로 보이는 물체는 하얀색의 금속을 반죽하여 형태를 만들어 낸 것처럼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수 막힐 듯한 위압감을 풍겨냈다.


하지만 진영은 그보다도 그의 옆에 서 있는 말에 시선이 끌렸다. 말은 반투명했다. 그리고 붉은 눈을 가지고 너무나도 조용히 주인 옆에 서 있었다.


"내 이름은 단테야 진영."


왕좌에 앉은 남자는 손바닥으로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그의 목소리는 듣는 입장에서 소감을 말하자면, 지독하게도 기분이 나빴다.


진영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냐고 묻는 대신 말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입술을 열었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이 공간의 주인이 원했으니 진영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진영의 호기심은 이제 충족되었다. 호기심의 끝은 경이와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 끝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얀 얼굴의 남자는 길게 감은 눈꼬리를 열지 않은 채 물음을 던졌다.


"날개 하나가 있는 천사를 찾고 있어. 본적이 있나?"


진영은 왜 이놈이 다 알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걸까? 라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상대의 취향을 알 수가 없었다.


"네 동족이잖아. 나보다 네가 더 잘 알겠지. 안 그래?"


그러자 왕좌에 앉은 천사가 웃었다. 비스듬히 선을 그리는 웃음이었다. 상대를 비웃는 듯한 웃음 말이다.


"천사라고 해서 독심술 같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아냐. 그래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야 해. 물론 어차피 난 그 녀석을 찾아낼 거야. 하지만 서두르고 싶달까. 뭐 그런 거지. 진영. 날개 한 장이 남은 천사를 본 적이 있나?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


남자의 근육질의 몸은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뱀이 인간으로 형상화하여, 금속 물체처럼 동상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그에게 어떤 속도와 힘이 갈무리되어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지구는 멸망하겠군."


"지구 위에 태풍이 분다고 해서 지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잖아. 너희들이 없어지는 건 너희들에게만 멸망일 뿐이지. 지구는 물체라서 아무 생각이 없어. 돌덩어리. 흙덩어리가 무슨 생각을 하겠어."


진영은 천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은 보면 볼수록 두려웠다.


"여기에 너무 가치를 부여하진 마. 여긴 쓰레기통이야.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어.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꽃도 꽃이라고 생각하고 불러주니까 네게 다가와서 꽃이 되는 거야.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 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지 않아 진영?"


천사는 왕좌에서 내려와 진영의 근처로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뼛속까지 깊이 시리게 하는 서늘함 말이다. 진영의 뒤로 돌아간 그는 커다란 손을 뻗어 진영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주물렀다.


마치 긴장을 풀라는 듯이 말이다.


"너는 네가 생각하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지? 자유스럽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 너나 다른 것들 모두 그냥 가위로 오린 종이야. 종이로 형태를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사실 너희들도 그 정도는 알잖아. 인간처럼 흉내 내려 해보면 결국 벽에 부딪히지 않나?"


천사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아니. 종이니까 이렇게 종이라고 말해봐야 알아들을 수가 없나? 종이가 종이가 뭔지 어떻게 알겠어?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희들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지. 인간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고문하면서 수치를 줄 거야. 그렇게 내가 너희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니까 비로소 너희들은 의미를 지닌 종잇장이 되는 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이런 나의 은혜를 모르겠지."


눈을 감고 있는 천사는 그러면서 안타깝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모래에게 이렇게 말을 해봐야 모래가 뭘 알겠는가? 모래는 그냥 모래다. 모래로 형태를 만들고 감정을 투사하는 놀이 안에서는 오로지 천사만이 실존할 뿐이었다.


아무리 정교한 장난감을 만들어도 결국 장난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천사는 조금 슬펐다. 자신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이상하게 만들어진 장난감인지 모를 이 무생물체들이, 너무 조야하고 역겨웠다.


진심으로 이런 것들을 만든 년은 지옥에나 갔으면 좋겠다. 어찌나 저능한지 자신들이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살아 있다는 흉내를 내잖아.


역겨운 인형을 보면 그냥 역겹다. 그리고 역겨운 것을 만든 제작자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너희들의 작동은 우리의 본능을 본뜬 거야. 가치 없는 물건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빠져들지. 지금 내가 하려는 작업이 그래."


그때 진영이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는 천사에게 속삭였다.


"지옥에나 가 이 악마야."


그 대답을 들은 천사가 뒤로 천천히 물러섰다.



그리고 말이 움직였다.


진영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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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3---- +2 17.10.03 618 19 11쪽
67 2----- +2 17.10.03 549 15 10쪽
66 1----- +4 17.10.02 628 15 11쪽
65 예정된 +2 17.10.02 614 12 10쪽
64 금빛 시계의 주인. +5 17.09.28 669 19 14쪽
63 3---- +2 17.09.28 643 15 9쪽
62 2---- +3 17.09.28 656 14 13쪽
» 1---- +3 17.09.28 603 17 8쪽
60 금빛 시계 +4 17.09.27 684 19 13쪽
59 뉴비의 라이브 +2 17.09.27 637 21 10쪽
58 8---- +5 17.09.27 674 19 10쪽
57 7---- +4 17.09.27 644 20 17쪽
56 6---- +2 17.09.22 819 21 17쪽
55 5---- +2 17.09.22 679 18 12쪽
54 4------ +5 17.09.21 679 25 8쪽
53 3------ +1 17.09.20 694 21 9쪽
52 2------ +2 17.09.20 675 20 10쪽
51 1----- +2 17.09.20 702 23 15쪽
50 라이브 +1 17.09.20 730 20 12쪽
49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나는 날. 그 꽃을 찾겠다. +3 17.09.20 713 21 9쪽
48 8----- +4 17.09.20 700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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