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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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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29
추천수 :
2,370
글자수 :
400,683

작성
17.09.27 18:21
조회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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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
10쪽

8----

DUMMY

낮이 되자 다시 달아오르는 대지 위에 빌딩이 서 있었다. 마천루처럼 버티고 선 신식 빌딩은 유리 표면을 햇살에 반짝이는데, 마치 신기루처럼 보였다.


세진은 빌딩의 가장 꼭대기 층에 살았다. 방은 당연히 엄청나게 넓었고 화장실도 6개가 넘어간다. 바닥에는 융단을 깔았고 가죽 소파 같은 것들이 안정적으로 고급 가구들 사이사이에 자리 잡아 쉬어가게 했다.


그는 거대한 텔레비전을 벽에 설치했다. 그리고 킹사이즈 침대들을 여러 개 붙여 그 위에서 잤다. 푹신한 베개들을 뒤로 모아놓고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 시청을 하는 게 요즘의 주된 취미였다.


격투 게임을 혼자서 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도 그는 더퀸오브 파이터즈를 세시간 이상씩 2년 넘게 해오고 있었다.


"이제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세진은 샤워부스로 들어가 몸을 씻었다. 아침을 맞이하고 하는 첫 샤워였다. 토마토들이 그려진 사각팬티만을 걸친 채 부스 밖으로 나온 그는 소파 위에 앉았다. 그리고 손톱깎이로 손톱과 발톱을 깎는 것이었다. 사실 발톱깎이는 따로 갖춰져 있었지만 귀찮아서 쓰지 않는다.


드라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젖은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이마 밑으로 늘어뜨린 그는 오늘 뭐 하고 보낼까를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것도 좋겠지.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레인이 외출한 것을 깜박 잊었으므로, 레인이 열어줄 줄 알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은 현관의 카메라와 링크되어 있었는데, 레인 옆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쌍민이 왔네."


레인과 쌍민은 십여 분이 지나서야 빌딩을 통과했다. 쌍민은 황무지 한가운데에 이런 으리으리한 빌딩이 세워져 있다는 게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빌딩 내부는 다행히 시원했다. 어디선가에서 에어컨이 펑펑 시원한 공기를 퍼붓고 있던 탓이다.


쌍민은 빌딩에 들어서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빌딩 내부는 인테리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썰렁해 보였다. 다만 육각형의 대리석 기둥이나 바닥에 깔린 석재들을 보니 여간 튼튼하게 지어진 게 아니다.


"그럼 볼일 보라고."


쌍민의 어깨를 두드려준 레인은 지하로 통하는 길로 사라져 버렸다. 쌍민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소파가 두세 개 놓인 커다란 방이나 다름없었다. 12명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노래방 놀이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텔레비전까지 큼지막한 게 벽에 붙어 있었다.


쌍민은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지나치는 방들을 구경했다. 별별 방이 다 있었다. 수련장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고 썰렁하기 그지없는 공간도 보였다. 수십층을 올라가자 엘리베이터는 점점 빨라졌다.


휙휙 스쳐 내려가는 층들이 갑자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물이 가득 차 있는 공간에 다다랐을 때이다.


"수족관인가?"


수십층을 채운 물속을 통과하면서 이제 쌍민은, 세진이 어떤 의도로 이 건물에 있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한 게 이 빌딩 때문인 건 알겠어. 엄청나게 크니까 말이야. 하지만 대체 이 건물을 왜 세운 거지?"


그가 중얼거리는 가운데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서늘한 엘리베이터 내부의 공기를 씻어주려는 듯 따듯한 온도가 그를 반겼다. 동시에 화분들에서 나는 식물 향이 쌍민의 코를 간질인다.


"왔군. 쌍민.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라색 비단 가운을 걸친 세진은 중얼거리며 쌍민을 맞이했다. 그는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쌍민은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 두 팔 벌려 그를 껴안으려고 했다.


그런 그의 팔을 손바닥으로 쳐내는 세진은 중얼거렸다.


"이런 극대화된 감수성은 좋지 않아."


잘 지냈냐?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인사도 없이 세진은 쌍민을 어딘가로 끌고 들어갔다. 삭막하고 건조했던 빌딩 내부와는 다르게, 최상층은 호화스러워서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다.


벽에 붙어 있는 명화에 눈길을 빼앗긴 쌍민은 어버버 하다가 자신이 이윽고 거대한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덤벼라. 쌍민. 그동안의 너를 평가해 보겠다."


"잠깐. 이것 봐."

"닥치고 덤벼.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


"........"


그렇게 둘은 조이스틱을 붙잡고 퀸오브 파이터즈를 했다. 그리고 세진은 30판을 내리 졌다. 마지막에 퍼펙트 k.o를 당한 세진이 조용히 조이스틱을 집어 던지고 나서야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하도 궁금해서 찾아와봤다."


여기로 좌천된 거냐는 질문을 참으며 쌍민이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세진은 표범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 위에서 패배의 아픔을 되씹느라 대꾸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그는 시타델이나 청영의 상태가 궁금하지도 않은지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고기나 먹자. 오랜만에 보는데."


손님을 맞이한 것은 세진이었지만 음식 준비는 쌍민이 했다. 자신이 호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방문자인 쌍민도 알아차렸지만 사실 그도 배가 고팠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싱크대를 뒤져 프라이팬을 꺼내고 냉장고에서 고기를 찾았다.


삼겹살. 쇠고기가 치 이익 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어간다. 세진은 옆에서 맥주를 꺼내다가 쌍민의 질문을 받았다.


"이 건물은 뭐야?"

"트라이얼이라고 불러. 애칭은 트라이던트야."


"......."


상추와 깻잎. 마늘을 꺼내 놓으며 쌍민은 질문을 정정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 건물을···. 왜 만들었냐고. 물론 내가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문득 궁금해져서 그래."


"1차 목표는 아는 친구의 심장을 꺼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야. 나는 그 친구의 심장을 노리고 있거든. 이 건물은 그 친구의 심장을 제단에 올려놓기 전의 삼지창 같은 거라고 해두면 될 것 같아."


안 본 사이에 많이 그로테스크해진 세진의 모습에 쌍민은 할 말을 잠시 잊었다. 그러다가 대답했다.


"야. 난 심장이 약해."


"네 심장은 쓸모없어. 아니 필요 없어. 그리고 너 같은 놈은 친구도 아냐. 30판이나 져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너 같은 쓰레기의 심장은 필요 없어. 검은 개도 안 먹을 거야."


쌍민은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체 무슨 명령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에서 혼자 사는 세진이 좀 불쌍해졌다. 아무리 여기가 호화스러워도 혼자 오래 보내야 한다면 감옥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레인은 좋은 말벗이 아니었다.


"네가 안 보이는 사이에 시타델과 청영은 많이 발전했어."

"안 그래도 곧 가볼 생각이야."

"금족령이 풀린 거야?"


금족령 따위는 없었는데.. 하지만 세진은 쌍민에게 일일이 뭔가를 설명한다는 게 귀찮았다. 그는 손사래를 치고 고기를 먹었다. 삼겹살은 마성의 맛이었고, 적당히 익힌 쇠고기는 달콤하기까지 했다. 기름장에 찍어 먹는 소고기에 혀가 절로 춤을 추었다.


쌍민은 허리띠를 풀어놓고 맥주를 마셨다. 빌딩 바깥은 폭염이었다. 그런데 시원한 내부에 들어와 역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노라니 만사가 귀찮아지고 동시에 행복해졌다. 여기에서 귀찮아졌다는 소리는 맥주 때문에 일어나고 화장실에 가야 한다는 것이 곤욕이었다는 소리다.


"야. 여기에서 대체 뭘하고 지냈냐? 안 심심해?"

"그러는 너는?"


"생각해보니 시타델도 심심하긴 해. 무기 테스트하는 것도 지루해졌어. 사격 놀이도 재미없고 말이야. 라이벌이 없으니까. 난 최고의 사수거든."


그러면서 쌍민은 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신식 무기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었다. 어느새 맥주는 소주로 바뀌어 있었다.


둘은 사흘 동안 술을 퍼마셨다. 그리고 음주 상태로 더 퀸오브 파이터즈를 했다.


세진은 100판을 지고 나서야 쌍민이 격투 게임을 잘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틀 동안 쉰 그들은 다시 술을 마시며 알피지 게임을 같이 했다. 서양에서 만든 게임이었는데 난이도가 높아서 둘이 해도 죽기 일쑤였다.


거기에서도 드워프나 엘프. 드래곤이 나온다.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안주에 대해서였다.


"내 생각에 소주 안주로 회는 최악인 것 같아."

"왜지?"


"찌개는 얼큰하면서도 속을 달래주잖아. 다음날 해장에도 좋고 말이야. 하지만 회는 뭐랄까. 너무 차가워. 그냥 독립된 요리로서 나은 것 같아. 오래 먹기에는 벅차거든. 다음날 먹기도 그래. 신선한 것 빼면 별로야. 그 신선함도 사실 오래 못가지."


세진은 쌍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서 활 좀 제대로 쏘라고 충고한다. 그는 마법사였는데 배리어를 나무에다 거는 등의 짓거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충고를 할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세진아. 배리어좀 똑바로 걸어줄래? 너 때문에 내가 고블린들의 독침에 녹고 있어."


"네가 죽는 탓을 내게 돌리지마. 최고의 술안주는 부대찌개가 아닐까?"


"곱창은 고소하긴 한데 하루가 지나면 별로이긴 해."


"시타델에서 여자 한 명도 못 사귄 거야?"


"레인은 지하에서 뭘 해?"


술과 함께 하는 멀티플레이는 대화가 엇갈리게 만들었다. 뭐 그래도 둘은 재미있게 게임을 즐겼다. 엔딩을 보고 난 후에는 숙취에 시달렸지만 말이다.


어느덧 쌍민은 엎어져서 곯아떨어져 있었고 세진은 소파 위에 앉아 일출을 바라보고 있었다. 숙취 해소 음료를 들이켜고 있는데 쌍민이 잠꼬대를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키가 커지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맘 편하게 키 작은 게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해버려."


그렇게 중얼거리는 세진은 반쯤 감긴 눈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감상했다. 그 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청영에 가기 위해 샤워부스로 들어섰다.


차가운 물이 그의 몸 위로 쏟아졌다. 그의 벌거벗은 등에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그 상처를 어루만져주려는 듯이 물방울들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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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 +2 17.09.22 680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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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 +2 17.09.20 675 2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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