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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연재수 :
7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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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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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0
글자수 :
400,683

작성
17.09.22 19:54
조회
679
추천
18
글자
12쪽

5----

DUMMY

영은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전처럼 스포일러가 찾아온 꿈은 아니었다. 그녀는 난지도에서 살던 때로 돌아가 있음을 깨달았다. 차 안은 어두컴컴했고 주변을 밝히는 촛불조차 없었다.


앞 좌석에 앉아 있는 영은 전방을 보았다. 벌레 우는 소리만이 가득한 가운데 천지가 어두웠다. 그때 뒤쪽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몇 개 열어 통로를 지나친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에 점점 크게 들렸다.


"아빠."


영은 차의 뒤쪽 구석에서 땀범벅이 되어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는 매우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위험해 보였던 까닭은, 그가 엽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로로 세워진 총신 위에 아버지는 턱을 올려놓고 있었다. 영은 날카로운 소리로 소리쳤다.


"그만둬요! 아빠!"


그때 중년인이 벌벌 떨면서 영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니 잊고 있었나? 지금 이 꿈속은 뭐지? 기억? 아니면 상상?


극도로 불안해하는 남자는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울 듯한 얼굴로 말이다.


"넌 누구야? 난 딸이 없어."


"....."


그의 찡그린 듯한 얼굴. 땀 범벅이 돼서 우는지 웃는 것인지 모를듯한 얼굴이 영의 시선에 잡혔다. 그도 공포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지금의 영도 그랬다.


탕! 타앙!


차 밖. 멀리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여우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차 안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까만 눈으로 유심히 보던 동물은 그 자리를 뜬다.


"헉! 헉!"


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가위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듯 몸이 부자연스럽고 둔탁했다.


그녀는 식탁 위에 놓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차가운 물이 바싹 마른 입 안을 헹구자 그제야 살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그녀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이불을 걷어차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꿈속에서 봤던 밤과는 사뭇 다른 어둠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시소 끝에 앉아서 한 시간을 멍하니 보냈다. 예기치 못한 악몽에 시달린 후유증이었다. 새벽의 추위가 스멀스멀 얇은 옷 속으로 기어들어 오자, 그제야 부르르 떨며 일어나는 영이었다. 다시 잠자리에 들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


세진이 있는 곳에서는 시타델도 청영도 보이지 않았다. 차를 타고 가도 꽤 먼 거리였다.그곳에서 그는 레인과 함께 건물을 세웠다. 현재 진행 상황은 뼈대와 1층 정도, 그리고 지하를 만들었다.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 것이기 때문에 후딱 끝내고 식후 커피 한잔을 하는 전개가 아니었다. 둘은 설계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의하면서 피라미드를 축조했다. 안으로 들어가 잘만한 공간이 충분했지만, 일부러 밖으로 나와 잤다. 밤하늘에 뜬 별들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건설 작업은 느긋하게 이루어졌다. 피라미드 건물에 들어가는 최상급 재료는 청영과 시타델이 충족시켜 주었다. 스토어에서 충당할 수 있는 물건도 있었지만 아닌 것은 임무로 내버리면 그만이었다. 몬스터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세진을 위해 움직여서 물건을 구하는 셈이다.


"아시다시피 에테르 에디터로 만들어지는 건물이야. 일부분이 부서지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핵이 멀쩡하면 수복할 수 있어. 원거리에서 원격 조종으로 말이지. 이런 건물은 완성만 한다면 코어가 부서지지 않는 한 치명타 외의 모든 충격이 소용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레인은 모닥불 앞에서 소주 팩을 꺼냈다. 그리고 투구 아래쪽의 투입구를 통해 빨대로 술을 빨아 마시기 시작했다. 만약 막길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오만상을 찌푸렸을 것이다.


"문제는 이 막대한 코어 에너지를 어디에서 충당하느냐 하는 것이야. 에테르 에디터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은 점점 강해지면서 힘을 기하급수적으로 원하게 될 거야. 초반에야 울트라 토파즈나 네 임무로 모아오는 것들로 충당이 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녀석은 엄청난 에너지에 굶주리게 될 거라고. 옵션이 붙을수록 그 굶주림은 심해져."


나무 꼬챙이로 불을 들쑤시자 불티가 날려 레인의 금속 갑옷에 닿았다. 레인은 세진에게 술을 권했지만 세진은 마시지 않았다.


"그 해답은 아직은 지구에 없어."


"역시나 그렇군. 정말 엽기적인 생각이다.."


"드워프인 너로서는 더욱 그렇겠지. 네가 신앙이 건실한 드워프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보통의 제정신 박힌 드워프라면 나보고 타락했다며 사교도로 몰텐데 말이야. "


"그게 지금 면전에다 대고 할 소리야?"


그들은 천사들에 관련된 에너지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던전이 너무 굶주리면 테러나이트를 쓸 생각인데 괜찮을까?"


레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답을 내놓았다.


"테러나이트를 계속 주입했을 때의 결과는 예측 불가야. 그런 짓을 자주 하지 않는 게 좋아. 너도 불확실성이 싫잖아. 내가 맞춰볼까? 너는 한 장의 날개로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지? 그 날개를 잘 지켜. 그 날개 한장이 네 인격의 모든 것이니까."


그리고서 레인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치지직 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은 불길과 함께 흔들렸다.


"날개가 많아도 제정신이지 않은 천사들은 많은걸."


레인은 어느새 노래를 멈추고 세진이 내놓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외딴곳에 있는 둘은 의외로 장단이 잘 맞았다. 침묵을 유지할 때는 오래 유지하면서 전혀 불편하지 않게 지냈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는 거리낌 없이 주제를 쏟아내었다.


솔직히 드워프가 레인처럼 꽉 막힌 구석이 없었다면 사교적인 종족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별종들끼리 통하는 게 있어서인지 둘은 건물을 지으면서도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세진은 곧 인정했다.


"레인 너는 참 괜찮은 녀석이구나."


"......."


"물론 나에게만 있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건물이 높게 올려지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자 몬스터들이 여기의 존재를 깨닫고 습격해 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에 레인이 나서기도 했다.


세진은 레인이 여러 가지 갑옷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의 그는 회색 갑옷이었다. 쇠사슬 스커트를 두른 갑옷이었고 손에는 스커지를 들고 있었다. 보라색 안감의 망토까지 두른 레인은 하드코어 만화에서 나오는 기사처럼 보였다.


그는 달려오는 사이클롭스를 향해 거침없이 마주 달려갔다. 사이클롭스의 외눈에서 빛더미가 쏟아져 나오자 방패로 가볍게 막아낸다. 아찔한 빛이 터지면서 방패의 표면이 진동했다. 그리고 증발하는 에너지가 연기를 뿜어내며 주위를 안개로 채웠다.


그 안개를 가르는 것은 거침없이 휘둘러지는 스커지였다. 거기에 얻어맞는 사이클롭스는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반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레인은 부츠로 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초록색 피부의 괴물이 땅에 쓰러졌을 때 무자비한 폭군처럼 레인은 스커지를 난타했다.


한웅큼씩 근육과 피가 떨어져 나가고 사이클롭스는 만신창이가 되어 숨을 거둔다. 세진은 그런 사이클롭스를 질질 끌고 오는 레인을 보았다. 뭐 드워프가 약하다면 말도 안 되는 거지만 그중에서도 레인은 발군인 것 같았다. 하긴. 거대한 던전의 주인이었으니까.


"해체는 저리 가서 해라. 냄새나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세진은 김말이를 했다. 도마 위에 놓인 김밥은, 이제 이골이 난 세진의 손짓에 둘둘 잘도 말렸다. 기름을 먹인 김이 반짝이는 가운데 안에는 햄과 시금치. 단무지 등이 들었다.


그는 부엌칼을 들고 김밥을 썰었다. 레인은 생수로 갑옷을 씻고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자 미처 씻어내지 못한 혈향이 바람과 함께 안겨 온다.


레인은 소주와 함께 김밥을 먹었다. 그는 맥주보다 도수가 높은 술들을 밝혔다. 고량주도 좋아했는데, 가끔 우울한 어조로 들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고량주에는 탕수육이 딱 맞는데. 여기에서 그런 것을 시킨다 한들 올 수 있는 놈들이 없겠지."


"내 자책감에 불을 지르지 마. 너도 작품 하나 만들고 좋잖아."


요리책을 보면서 세진은 김치도 담갔다. 스토어에서 사는 것은 맛이 없었고 영에게 시키기에는 영의 능력이 의심되었다. 그러고 보니 영이 요리하는 걸 본 적이 있었나?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이제 레인은 술을 홀짝 거릴 때 투구 아래쪽 덮개를 벗은 모습을 자주 보여 주었다.


어느 정도 친화도에 이제 고작 이 정도 무장해제가 된 건가? 얼굴을 다 볼 수 있는 날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술을 마셔서 흥이 잔뜩 오른 날이면, 레인은 삼층 정도 완성된 건물 위에 올라가 환한 전등을 켰다. 눈부신 하얀빛이 자정을 넘긴 시각에 터져 나온다. 그러면 세진은 일어나 귀마개를 했다. 그리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등을 레인에게 향하고 말이다.


레인은 앰프를 켰다. 그리고 전자 기타를 메었다. 곧이어 현란한 연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엠알은 박진감이 넘쳤다. 그 진동이 땅을 울릴 정도였다. 그러면 멀리에서 좀비들이 확실하게 몰려왔다. 그들은 임시로 쳐놓은 주변의 펜스에 두 손을 올리고 기타 치는 레인을 구경했다.


창백한 좀비들의 얼굴이 하얀빛으로 물들고 요란한 기타 연주가 퍼부어졌다. 그렇게 모인 관객들은 아침 무렵이 되면 저절로 해산되곤 했다.


건물의 기동은 아스트랄 대리석으로 세워졌다. 매우 튼튼하고 마법이나 신성력에 강한 저항력을 가진 물질이다. 벽도 튼튼한 놈들로 골랐고, 여러 가지를 섞어 보강에 다시 보강을 했다.


일단 기둥들이 삼층까지 올라가자 다시 아래로 연결되며 터가 더 넓어졌다. 금속 벽돌들이 쌓이고 부적 효과를 가진 조형물들이 그 속에 파묻혔다. 일단 이렇게 가장 강한 심지 부분을 만들면 다시 주변으로 확장 공사를 해서 영역을 넓힐 생각이었다.


기획 의도에 따라서는 타로타로스보다 더욱 견고하고 강한 감옥. 미로를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진은 미로를 최대한 배제했다.


"뺑뺑이 돌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야."


"그래도 공간 활용에는 미로만큼 좋은 게 없어. 손님들을 줄 세워서 기다리게 할 거야? 그건 손님에 다한 예의가 아냐. 미로에서 고통받는 부분도 배려를 해줘야지."


악취미가 묻어나는 발언을 내뱉으며 레인은 점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무후무한 탑을 쌓자. 바벨탑은 명함을 가져다 대지도 못할 탑을 말이야."


"탑에는 원래 명함이 없어."


그들은 여가에 테니스를 치면서 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을 잘 활용하면서 보냈다. 레인은 술도 마시고. 연주도 하고. 별별 짓을 다 하면서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드워프 들은 던전 안에 처박혀 사니까 혼자 놀기에 특화된 것이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세진은 바베큐를 굽거나 김치찌개에 도전했다. 그러면서 하나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음식을 해서 먹으면 별로구나. 남이 해줘야 맛이 있어. 내 손에 음식이 묻으면 이미 신비감이 깨진달까? 안마 받을 때 그렇듯이 예기치 않은 지점을 짚어줘야 쾌감이 배가 되는데 말이야."


그는 그렇게 술주정하다 잠든 레인 곁에서 중얼거렸다. 남에게 음식을 해먹이며 얻는 소소한 기쁨은 아직 그에겐 먼 이야기였다.


임시로 쳐진 텐트 앞에는 요리하는 장소와 불을 피우는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비닐로 작은 텐트를 쳐놓은, 투명한 공간이 있었다. 컴퓨터와 여러 기기를 놓아둔 장소다. 여기가 세진이 쓰는 장소였고 레인은 지하에 자신의 물건들을 쌓아놓았다. 그러다가 잠잘 때에는 야외로 나와 잤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세진은 우비를 뒤집어쓰고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비를 실컷 맞는 텔레비전은 아무런 이상 없이 화면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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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6---- +2 17.09.22 819 21 17쪽
» 5---- +2 17.09.22 680 18 12쪽
54 4------ +5 17.09.21 679 25 8쪽
53 3------ +1 17.09.20 694 21 9쪽
52 2------ +2 17.09.20 675 20 10쪽
51 1----- +2 17.09.20 702 23 15쪽
50 라이브 +1 17.09.20 731 20 12쪽
49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나는 날. 그 꽃을 찾겠다. +3 17.09.20 713 21 9쪽
48 8----- +4 17.09.20 701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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