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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ㅇ

던전 안의 왕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국수먹을래
작품등록일 :
2017.08.08 18:16
최근연재일 :
2017.10.06 20:13
연재수 :
76 회
조회수 :
93,331
추천수 :
2,370
글자수 :
400,683

작성
17.09.27 16:33
조회
644
추천
20
글자
17쪽

7----

DUMMY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맹세합니다. 당신이 남겨준 유산에 저의 모든 것을 쏟아 붓겠습니다.







시타델에서의 남궁쌍민은 왕처럼 지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남들이 공감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그는 여자를 밝히지도 않았고 술을 즐기지도 않았다. 마약은 물론이고 방탕하다 싶은 짓을 안 하는 것이었다.


밑의 부하들이 샌님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고, 좋은 음식과 좋은 옷에 빠져 사는 그는 오늘로 패션 잡지를 뒤적이고 있다.


10여 분이 흘렀을까. 잡지를 내려놓은 그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짧은 키에 어울리는 옷은 하나도 없네."


깍지를 낀 그는 호화스러운 소파 위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쌍민의 발은 소파 반대쪽에도 닿지 않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현실에서 도피하려 쌍민은 다른 생각의 길로 빠졌다.


거기에는 시타델의 현안이 있었다. 쌍민이 생각하기에 시타델은 잘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슈퍼 어드바이저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도 종종 있었다. 군사 도시라는 게 명령을 내릴 때는 좋은데 밑의 놈들에게 진정어린 충고를 듣기가 참 어렵다. 그렇다고 마음의 편지를 쓰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깐.


"그렇다고 테러로드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이럴 때 세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녀석은 대체 뭘하고 있는거야. 안본지 꽤 됐는데 말이야."


쌍민은 뭔가 결심한 듯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차를 준비해 청영으로 들어갔다. 그는 세시간도 안 되어 태진이라는 사람과 만났다.


사실 세진을 만나고 싶다고 용기 내 청했는데, 나오라는 놈은 나오지 않고 태진이 나온 것이었다.


쌍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링거 거치대를 끌고 나오는 태진을 바라보았다. 응접실에 도착하고도 30분이나 기다리게 해서 조금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환자처럼 보이는 태진을 보니 화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궁쌍민이라고 들었습니디만."


"예."


왜 세진이 나오지 않고 당신이 나오냐고 따져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남궁이라는 성씨는 어떻게···."


"흔하지 않은 성이긴 하죠. 원래 이런 성이 아니었는데, 무협지 보고 지었어요."


"아하.."


쌍민이 보기에,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쌍민이 보기에 태진은 매우 감명 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뜨거운 차를 마시려다가 입을 데이는 태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런 확신이 강해졌다.


"그래도 성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쌍민은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아프리카에서 전투를 했는데, 거기에서 알게 된 동료랑 내기했거든요. 진 놈이 성을 갈기로···. 그래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태진은 찻잔을 든 손을 덜덜 떨었다. 혹시 왜 이런 미친놈이 날 찾아온 건지 심상에 타격을 받은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는 슬픈 영화 한 편이라도 보고 온 듯이 한바탕 운 상태였다. 성으로 트집 잡았으니 이번에는 쌍민이 그걸 걸고넘어졌다.


"슬픈 영화라도 보셨나 봐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송치림의 애비정전 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이름이 패륜스럽군요."


"중국영화인데 중국의 공안을 까는 영화였습니다. 정말 슬픈 내용이에요. 그래서 그만. 그걸 보고 우느라 이렇게 늦었습니다."


이 정도면 겉절이 이야기를 충분히 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차례였다. 쌍민은 세진에 대해서 물었다. 왜 안나왔는지 말이다.


"세진님은 여기 안 계십니다. 먼 곳에 계세요. 오래전부터 말입니다. 좌표를 불러드릴까요?"


쌍민은 태진이 불러주는 좌표를 받아 적었다. 그러면서 이해했다. 아. 외지에 나가 있느라, 그래서 연락이 두절된 것이었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무심한 쪽은 바로 자신이었다.


용건이 끝났으니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런 쌍민은 태진이 붙잡았다. 차를 한잔 더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매정하게 뿌리치고 가기도 뭐한 쌍민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시간을 좀 더 때웠다. 그러면서 그는 넌지시 물어보았다. 사실 궁금했다. 세진이 테러로드의 심복일까? 아니면 이 태진이라는 사람이 더 윗줄일까?


"테러로드님 말입니다."


"네."


"참 아름다우신 거 같아요."


"예?"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참···. 섹시하다고나 할까요?"


쌍민은 태진이 불경스럽다고 호통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태진은 기묘한 눈빛을 보내왔다. 쌍민이야 영이 테러로드인줄 알고 있지만 말이다. 태진은 세진과 친해 보이는 쌍민이니까 당연히 쌍민은 세진이 테러로드인줄 알고 있겠지..라는, 인식에서 오는 갭이 있었다.


"관능적이다고요?"


"예. 좀 지나친 표현이죠?"


"그..글쎄요...뭐.."


약간 황당한 얼굴을 하는 태진과 헤어지기 전에, 태진은 정색을 하고 쌍민에게 말했다.


"사실 이쪽에서도 오랫동안 소식이 단절돼서 말입니다. 세진님을 만나면 이 말을 꼭 좀 전해주시겠어요?"


"예. 그러죠."


"정말 감사하다고, 평생 충성을 바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봐 당신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바로 테러로드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어쨌든 쌍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쌍민은 그 자리를 떠났다. 태진은 그날 슬픈 영화를 연타로 때리는지 뭔지 종일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덥군."


쌍민은 그날 오후 호위병도 없이 홀로 세진을 찾아 나섰다. 문제는 차가 뜨거운 기온을 이기지 못하고 퍼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평야 한복판에서 말이다. 무전기는 먹통이었고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가기도 뭐했다.


그래서 쌍민은 그냥 계속 좌표를 향해 걸었다. 청영은 언제나 기온이 시원하거나 따뜻했는데 그것은 시타델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시타델의 외곽을 빠져나오면 그때부터 이상기온은 도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국이 지독한 아열대 기후가 된다고 예상했었지만, 그것이 앞당겨져 진 감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도시들이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날씨가 한국의 기후 균형을 붕괴시킨 감이 있다.


판초 의를 뒤집어쓴 쌍민은 투덜거리며 불볕더위 밑을 걸어갔다. 붉게 달아오른 땅에는 빛바랜 뼈 무더기들이 잔뜩이었다.


"점심을 먹고 왔어야 했어! 아 힘빠진다.."


보좌관들이나 몇 데리고 올걸. 대체 무슨 깡으로 홀로 온 걸까? 시타델과 청영이 그동안 열심히 근방을 청소해서 몬스터들이 증발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나 시원한 차 안에서 브리핑을 받던 쌍민은 주위 기후를 너무 낙관하고 있었다.


그는 걷다가 발을 교차로 들고 있는 도마뱀을 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땅 위에서 발을 들어 올리는 놈은 투명에 가까운 초록색이었다.


그리고 그 도마뱀에게서 50미터 정도 걸었을까?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는 도마뱀 킬러 거북이를 보았다. 등딱지에 표범 무늬가 가득한 거북이는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직진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도마뱀은 이 천적과 맞부딪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쌍민은 그들의 숙명에 굳이 관여하지 않았다.


오지랖을 떠는 대신 그는 도마뱀의 운명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미래에 대비하곤 있지만, 앞날을 예견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어떤 미래가, 어떤 천적이 아가리를 벌리고 자신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이 시대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그도 과거와 미래를 돌보지 않고 살고 있었다.


그나마 쌍민은 그들에 비해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연인도 가족도 없지만.


"으으 죽겠다! 죽겠어! 세진 그 자식은 뭣 하러 이 멀리까지 나와서 지랄을 하는 거야!"


경사를 오르느라 숨이 찬 쌍민은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그는 그늘을 경험했다. 그늘?


"레인?"


고개를 들어보니 주저앉은 그에게 그늘을 드리운 풀아머의 기사. 레인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기계음이 지지직거리는 노이즈를 내며 말을 한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혼자 여기까지 온 거야? 미쳤어?"


"몬스터도 없고 하니까 그냥 와버렸지. 마중 온 거야?"


레인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고 일어나는 쌍민은 무릎에 힘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둘은 말라붙은 땅 위를 나란히 걸어갔다. 힐끔 옆을 보니 레인은 여전했다. 잘 닦인 갑옷을 뒤집어쓴 그는 육중한 갑옷을 걸치고도 움직이는데 이상이 없었다.


"야. 덥지 않아? 갑옷을 걸치고?"


"내부는 시원해."


"드워프의 기술력은 세계제일이구나."


".........."


쌍민이 불러주는 좌표를 전해 들은 레인은 혀를 찼다.


"탑이 일으키는 에너지 폭풍 때문에 지역이 굴곡되었어. 금방 도착할 거리는 아니란 소리야. 넌 내가 생물 표본을 채집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햇볕에 불타 죽었을지도 몰라."


"생물 표본?"


"표범 무늬 거북이라고 말이야. 혹시 본 적 있어?"


"........"


되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쌍민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둘은 그날 밤 야영을 해야만 했다. 불을 피워놓고 서로를 바라보며 떨어져 앉은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간히 서로 어떻게 지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생수에서 커피로 옮긴 쌍민은 질문을 던졌다.


"드워프들은 언제부터 생겨난 거야?"


"생겨났다니?"


"우리 인간들은 단군 할아버지가 곰에게 마법을 걸어 배달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기원이 있거든. 배달하느라 이족 보행이 되고 배달겨레가 된 거지. 홍익인간이라는 중화 반점이 인류의 시초였어. 드워프들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겠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레인은 투구를 긁적거렸다.


"어디에서인가. 대이주해왔다는 이야기가 있어."


"미국처럼? 그렇다면 너희들도 정착과정에서 원주민들을 대학살 했겠구나. 아? 그게 아닌가? 어차피 땅속이니까 말이야. 거기에는 원주민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원주민 같은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해. 너희들도 그럴 것 아니야. 단군 할아버지 만나본 적 있어?"


"단군 미소녀라면 몰라도 할아버지는 굳이 만나고 싶지 않아. 그것도 타임머신까지 타 가면서 말이야. 타임머신이 있다 쳐도 왜 굳이 할아버지를···. 아 물론 인간을 만들어 준건 고맙지만.."


쌍민의 아스트랄한 대화 전개에 휩쓸리지 않는 레인은 말을 계속했다.


"드워프들이 천사들을 숭배하고, 광신도가 된 것에는.."


레인은 이제 동포들을 광신도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고 있었다.


"드워프의 기원과 관련이 있어. 우리가 수명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것도, 과거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도, 천사의 도움 때문이었거든. 천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하로 피신할 수 없었을 테고 드워프들은 건재하지 못했을 거야. 너희들은 단군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유물이 있어?"


"글쎄. 천부인 삼종 세트라고.. 수저 세트 비슷한 게 있긴 한데."


"우리에게는 천사가 재앙을 피해 지하로 이주시켜준 증표가 있어. 아주 아름다운 검이야. 그걸 보며 언제나 신앙심을 증폭시켰지. 은혜를 잊지 않게 해주는 신성한 검. 절대적인 무기."


'드워프들이 광신도들이 될 만도 하구나.'


쌍민은 그 검의 정통성을 믿지 않았다. 그 자신이 드워프가 아닌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와전되거나 날조되기 쉬워서 레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듣고 있노라니 드워프들의 현재 상태가 약간 이해가 되는 면도 있었다.


외부와 단절된 지하에서 신물이라고 믿는 물건과 함께, 오래오래.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면 천사라는 대상에 집착하고 미치게 되는 건 이상하지 않은 거겠지?


"드워프에게 실례되는 질문일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지상에 나와보니까...음.. 아직도 천사들을 숭배해?“


지상에 강림해 한바탕 휩쓸고 간 이 꼴을 보고도 천사에 대한 믿음이 건실하냐는 이야기다.


레인은 잠시 말없이 모닥불을 나뭇가지로 뒤적거렸다. 쌍민은 그동안 기다려 주었다.


"그랬다면 내가 세진에게 아직 붙어 있지는 않았겠지. 그냥···. 이제는 모호해. 애초에 내게 천사에 대한 회의가 없었다면 그와 합류하지도 않았을 거야. 또 내가 천사에 어쩔수 없이 근원적으로 얽매이지 않았다면 또 세진과 함께하지 않았을 거야. 난 드워프니까."


레인의 노란 렌즈가 쌍민에게 향했다. 그러면서 그는 쌍민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쌍민에 대해 전해 들은 레인은 이제 알고 있었다. 쌍민 그는 자신에 대해서 완벽히 몰랐다.


'던전 입구에서 나왔을 때 나는 쌍민이 기다려줬던 것을 보고 상당히 의외였어. 그가 당연히 떠나가리라 생각했었거든.'


'왜 그를 놓아주려고 했지? 의도적으로 쌍민에게 접근했었다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 싶어서.그는...인간 답게 사는 것처럼 보였어. 적어도 말이야. 나는 그런 인상을 받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굳이 그걸 방해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


'그런데 기다리는 그를 보고 생각이 바뀐 거구나.'


레인의 말에 세진은 대답했었다.


'그야말로 정말 인간다운 인간인 것 같아. 아니 이건 나의 편파적인 시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인간의 불합리한 면. 선한 면을.'


쌍민은 그날 작은 이익을 위해 땅속의 세진의 안녕을 생각하지 않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익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비합리적인 짓을 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는 시타델에서 풍족하게 살고 있었다. 세진도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해줄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세진에 대해서 모르고 있지.'


쌍민은 세진이 천사라는 것도 모르고 테러로드라는 것도 모른다. 뭐 굳이 알 필요는 없는 일이다. 다만 한편으론 천사에 얽매여 있으니까 세진을 따라나선 것이라는 레인의 말에 쌍민이 자의적인 해석을 붙이고 있을 것이었다.


"천사는..나는 완전히 천사라는 것에서 해방되지 않은 것만 같아. 동포들처럼 맹목적으로 그들을 따르겠다는 생각은 이제 와 아니지만 말이야."


쌍민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앞에서 레인은 변명처럼 말을 덧붙였다.


"너는 신성한 검을 보지 못해서 그래. 지하에서, 가끔 완전히 어두워지는 그 암흑 속에서, 빛나는 검을 보지 못해서 그래. 그 검이 얼마나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뿜어내는지 미처 보지 못해서 그래. 그 검은 저마다의 드워프들에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어. 마치.."



어느 날 거룩한 천사가 우리에게 증표를 주었다.


우리는 그 증표를 가지고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천사의 호언장담처럼 그 증표를 가지고 있으니 아무도 우리를 찾지 않았고,

쫓지 않았으며, 우리의 자유를 방해하지 못했다.

절망에서 독립한 우리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비로소 최후에 남겨진 그 천사를 생각하며 비탄에 잠겼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었다.

그는 필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철저히 버리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어찌 그를 잊을 수 있을까?

비록 얼굴 없는 천사라 하여도 그의 존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가 남겨준 검을 보며 눈물로서 그를 기린다.


우리는 눈물로서 그를 기린다.


우리는 그를 기린다.




"마치.. 그 검은 볼 때마다 속삭이는 것만 같았어. 우리에게 말이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잊지 말라고, 그의 희생을 잊지 말라고 말이야."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삶의 길이에 대한 제약을 풀어도 언젠가 끝은 온다. 최후에 다가올 회한이 두렵다면 어떻게 삶 자체를 충실히 채울 수 있을까?


"으음.."


쌍민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드워프들이 해방된 지 몇만 년, 그들의 믿음은 이상하게 굴절되었다. 쌍민은 드워프의 숙적 하면 생각나는 게 용뿐이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 옛날 천사가 용에게서 드워프들을 구원해줬는지는 몰라도, 그 고마움이 왜곡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예의상 그렇게 대단하다는 검의 이름을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아서 입을 연다.


"그래서. 그 검의 이름이 뭔데?"


과거를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드워프들이 천사들에 대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건, 지구는 멸망의 그늘에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정말로 지하에서 폭탄을 터트리건 말건, 천사들은 영을 찾고 있고 언젠가 지구에 도달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테러로드들은 내키는 대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낮 기온과는 대비적으로 밤 기온은 아주 쌀쌀했다. 차가운 밤하늘 속에 별들이 빛난다. 지상에 올라와 있는 드워프는 쌍민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그는 쌍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비단 쌍민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홀리 디스트로이어."


"........."



"그 검의 이름은 홀리 디스트로이어야."





우리는 당신의 얼굴은 잊었을 지라도, 이 검 앞에서 당신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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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4 17.09.27 645 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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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4------ +5 17.09.21 680 2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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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2------ +2 17.09.20 675 20 10쪽
51 1----- +2 17.09.20 702 23 15쪽
50 라이브 +1 17.09.20 731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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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8----- +4 17.09.20 701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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