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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7.09 08:42
최근연재일 :
2015.11.03 01:07
연재수 :
10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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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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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82,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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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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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6쪽

유학은 이기설(理氣說)로 종교가 되다

DUMMY

"낙양 근처에서 구리국의 천단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마는 ... 어쩌면 낙양이 아니라 서안을 뒤져야 할지도 모르니,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시간을 넉넉하게 마음 먹고 덤벼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시강으로 옵니다. 도교가 먼저 자리를 잡았으나, 불교는 도교와 협조적 경쟁을 하면서 포교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불교는 본래 포교에 더욱 열성적이어서 황제와 협조적 관계를 벗어나 경쟁적 관계에 다다릅니다. 그 이유는 도교에서는 볼 수 없는 성질이 불교에는 있었던 것입니다. 도교는 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별다른 차별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내생(來生)에서 극락에 태어나지 못하고 지옥에 태어난다는 정신적 차별을 두어 압박을 높입니다. 그러니 종단에 힘이 몰리고 결국 황권에 대립하는 상황으로 발전합니다."


"종단의 힘과 황제의 힘이 부딪히면 결과는 황제가 종단을 멸절시키는 것으로 되겠지요?"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중원 나라에서 4 번의 큰 폐불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삼무일종의 법난(三武一宗의 法難) 또는 삼무일종의 폐불(三武一宗의 廢佛)이라고 부릅니다. 폐불이란 불교 교단을 아주 몰수하는 것입니다. 삼무(三武)는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재위 423~452 년), 북주(北周)의 무제(武帝: 재위 560~578 년), 당(唐)의 무종(武宗: 재위 840~846 년)을 가리키고, 일종(一宗)은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재위 954~959 년)을 말합니다. 종단에 속한 법당의 수, 승려의 수, 세금을 내지 않는 소유 전답의 수가 너무 많으니, 황제가 몰수처분을 하는 것이지요. 한가지 다행인 점은 불교종단이 무장투쟁을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지요. 만일 무장투쟁을 하였다면 그 이후는 불교는 교단을 만들지 못하고 민간신앙으로 격하되었을 것이지요. 폐불 사건 이후로는 불교 종단에서 어떤 한계를 정하여 그 이상 힘을 모으지 않게 됩니다. 내부적으로 어떤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또 이 즈음에 유교의 힘이 서서히 확장되어 상대적으로 불교의 세력이 약화됩니다."


"유교는 종단을 만들었나요?"


"유교는 왕도를 지향하므로 왕권 자체가 하나의 종단인 셈이지요. 황궁이 총단(總團)이 되며 또 각 지방의 아문이 종단의 지단(枝團)인 셈입니다. 송나라 시절부터 과거시험제가 확립되며, 황제의 신하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로 정해집니다. 이렇게 하여 과거 시험이 유교의 성직자를 뽑는 시험이 된 것이지요. 유교는 나라의 전반에 파급력을 보여줍니다. 유교는 이때부터 황제의 통치행위와 대소 신료들의 관직 행위와 각 가정의 아버지와 남편의 행동 규범까지 서서히 압박의 범위를 넓힙니다. 지금 우리 명나라에 들어와서는 유교가 절대적 권위가 갖고서, 모든 일의 선악미추(善惡美醜)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만성들을 정신적으로 압박하는 데에서 도교 보다 불교가 한 수 위라고 했는데, 불교 보다 유교가 더욱 한 수 위가 되었군요."


"그렇습니다. 황제들은 각 종단들에게 적당한 선에서만 힘을 모으도록 조정을 합니다. 때로는 지원을 하며, 때로는 제재를 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종단을 얼마만큼 만들어놓으면, 그 종교는 안정적인 세력을 유지해가기 쉽지요. 황제가 종단의 경전(經傳)을 모아 책으로 펴내주기도 합니다. 도교의 경전을 집대성한 것은 송나라 때에 인종(사극 포청천으로 인해 유명해진 황제입니다) 황제의 지시로 장군방(張君房)이란 사람이 만든 책이 있습니다. 운급칠첨(雲급七籤 급자 한자 없음)이라는 제목의 122 권 분량의 방대한 책이라 합니다만, 저는 읽어보지 못했지요."


"혹시 거기에 혼천에 대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요?"


"저의 짐작으로는 혼천의 내용은 없으리라 짐작합니다만. 언제 학식이 높으신 도사님을 만날 기회가 오면 제가 물어보아 알아두겠습니다. 그 이후로 도교는 원나라 징기스칸 때에 다시 한번 기세를 올립니다. 송나라 말 시대에 왕중양(王重陽) 이라는 도인이 나서서 전진교(全眞敎)를 세우고 포교를 하게 됩니다. 섬서성 태생이었으나 무엇 때문인지 동쪽 끝으로 2500 리를 와서야, 산동성 등주부에서 전진교 포교에 성공하며, 일곱제자 역시 대부분 등주부 사람으로 뽑게 됩니다. 그의 일곱 제자 중에 장춘진인(長春眞人) 구처기(丘處機 長春子라고도 하며, 산동성 등주부 서하현 출신임)라는 도사는 징기스칸을 만나서 도교를 이해시키고 포교의 허가를 받아 교세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산동성 등주부라면 흑응회에서 수재민들을 식민한 곳인데, 거기에 그런 사연이 있었구만요. 또 무상도인이 사시던 석도 역시 등주부에 있고요. 전진교를 왕중양 도인이 세우셨다고요?"


"예, 왕중양은 섬서 사람이며, 장춘진인은 등주 서하현 사람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기록에 보면 중양자(重陽子) 왕중양은 죽기 10 년 전에 섬서의 종남산(終南山)에서 어떤 신선을 만나 비법을 얻었으며 도를 닦은 후, 죽기 3 년 전에 산동성 등주로 가서 제자 일곱을 거두어들이고 전진교를 가르친 후에 죽습니다. 중양자가 전진교를 포교한 것은 사실상 3 년간이라는 것이지요. 참 짧은 동안 제자들을 잘 키워냈지요."


"아무튼 전진교에는 혼천에 대한 내용이 없을테지요. 그러면 조선이라는 나라, 그 다음에 조선을 이어받았다는 부여국, 구리국에서 만든 도교 책은 없을까요? 그 책을 뒤져보면 어쩌면 혼천이나 천단에 대한 것을 알 수 있겠는데요?"


"저는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벌써 천 년 전 보다 훨씬 오래된 때이니, 책이 삭아 없어졌을 가능성이 많고요, 있더라도 워낙 귀한 책이라 깊이 감추고 내놓지 않을 것입니다. 또 북방계를 이어받은 조선이나 부여국, 구리국, 백제국, 대진국, 고려국 등 그 나라의 모든 책들은 명나라에서 홍무제에 의하여 모두 거두어져 불태워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려 다음으로 조선반도에 들어선 왕조가 이씨조선이라는 나라인데, 그 나라는 자진(自進)해서 명나라의 봉국이 되었어요. 조선 이름이 또 나오니 큰 조선(大朝鮮)과 조선이라 구분하는 것이 좋겠네요. 조선국은 고려 이전 천손국에 대하여 언급한 책이나 그때에 만들어져 전해지는 책들은 명나라에 대해서 예(禮)를 어기는 불온(不穩)한 책들이라 하여, 세 차례나 자진해서 거두어들여 불태웠다 합니다. 명나라에 충성의 표시였지요." [고대역사서는 이씨 조선에서 3 번 거두어져서 불태워졌으며, 일제시대를 맞아 다시 한번 수난을 당합니다. 일본의 기록에 의하면 1910 년 이후 1 년간 단군이 언급된 고사서 20 만 권이 일제총독부에 의하여 조선에서 수거되어 소각됩니다.]


"아이쿠, 어찌 그런 일이 있나요? 혼천에 대한 책을 구하기는 사실상 어렵구만요..."


"중원 대륙에 새로 나라가 들어설 때마다 북방계의 천손족 말이 나온 책들은 거두어져서 불태워버렸으니, 진나라,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 이렇게 여섯 차례에 색출되어 불타버렸습니다. 그런 책을 갖고 있으면 반역도가 되니 만성들은 감히 갖고있으려 하지 못할 것이지요."


"그러면 할 수 없구만... 이제 낙양 근처 산속이나 잘 뒤져봐야지 ..."


"중양자의 전진교는 원나라의 쿠빌라이 시대에 라마교에게 자리를 내주고 세력이 위축됩니다. 그러나 민간에는 불교와 함께 여전히 세력이 남아있었지요. 이제 유교의 이야기를 해보지요."


"유교는 공자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지요."


"유교는 공자가 만든 것이 아니라, 공자는 단지 제자들을 거두고 가르쳤으며, 몇 가지의 책을 저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제자들이 또 후손들이, 모으고 체계화시켜서 치세와 윤리의 학문으로 만든 것이지요. 유교가 힘을 얻은 것은 한(漢)나라 때에 유교가 치세의 방도로 채택이 되면서 부터 입니다. 그 전까지는 제자백가 중의 별다를 바 없는 하나였지요. 그 이후 당나라에서는 도교와 불교와 유학이 한데 어우러져서 각각 나름대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영향을 주거나 받았지요. 그리고 송나라에 와서야 유학은 종교로 발전합니다. 이 과정은 짧게 말하겠습니다."


"유교가 하나의 지식이었다가 송나라에 와서야 종교로 변하였단 말이지요?"


"예, 송나라 이전에는 왕도 즉 치세의 학문이었을 뿐입니다.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배워야하는 공부였는데, 송나라 때의 정씨 형제(程明道 1032 - 1085 년, 程伊川 1033 - 1107 년)에 의하여 종교로 변하게 됩니다. 진랑, 학문과 종교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다시 말하면 유학일 때와 유교일 때가 무엇이 다르냐는 것을 묻는 겁니다?"


"학문이면 해도 되고 안해도 되지만, 종교라면 꼭 해야하며 안하면 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예, 두 정씨는 바로 그 점에 착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학은 왕, 즉 황제에게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황제는 온 땅을 다스릴 권리를 갖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두 형제는 이 점에 하나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문제인가 하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으면 뭐가 문제가 됩니까? 왕도를 굳이 따를 필요가 있나요? 진랑 한번 대답해보세요. 왜 황제에게 복종해야 합니까?"


"황제는 천자이기 때문이지요."


"황제는 이미 천손이 아니고, 그래서 형식적으로 천제를 지내기는 하지만, 신선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백일승천을 하지 못하는 단지 사람일 뿐이죠. 그런데 왜 황제라 하여 복종해야 하나요?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씨가 따로 있지않다고 하였는데, 황제란 싸움을 좀 잘하여 나라를 세운 사람에 불과할 뿐인데 말입니다."


"그 말을 듣고보니 황제에게 충성할 이유가 없네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게다가 송나라에 들어와서는 환국, 대조선 등 북방의 오래된 역사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바람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신선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니 옛날의 역사에서 황제가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을 알고 있어봐야 오히려 상실감만 커질뿐 득이 될 리가 없었지요. 에잇 고대사를 지워버리자 하였던 것입니다. 환국과 대조선의 몇 천 년 역사를 지우면, 그나마 황제에게 복종해야할 이유가 깡그리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제 황제가 천자인 이유를 따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것이죠. 이런 배경에서 정씨 형제는 황제가 신선되는 일과 무관하게 여전히 절대권력을 갖는 존재일 근거를 찾아야 하였습니다."


"황제에게 복종해야할 근거라..."


"왕도 즉 유학이 존재하려면 왕이 절대권력을 갖어야 하였지요. 그러니 근거를 찾아야 했던 것입니다. 두 정씨 형제는 도교와 불교를 열심히 연구하여 마침내 찾아냈는데요, 그것은 신선 같은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이치가 나옵니다. 천하만물은 이 하나의 이치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을 이(理)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이치에 따라 기(氣)가 움직여서 천하만물이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옥황상제도 없고 신선도 없고, 태초부터 하나의 이치가 있다로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이치에 따라 만성들은 황제에게 복종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순리(順理) 즉 이치에 따른다 말하지요. 자직은 태자에게 이런 내용은 말하지 않고 정씨 형제의 이(理)와 기(氣) 사상이 주희에게 전달되는 내력만 간단히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자직은 환국과 대조선 등의 이야기를 태자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황제가 왜 천자인지 그 유래를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아무튼 그렇게 정씨 형제는 유학을 발전시킵니다."


"그게 왜 학문에서 종교로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좀 더 들어보세요. 이(理)란 천하의 이치인데, 이제부터는 도(道)란 이(理)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정씨 형제가 도경과 불경을 연구해서 만든 이론을 설명해봅니다. 도란 음과 양으로 이루어지며, 다시 음양오행으로 분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도교에서 성립이 되어 비판을 거치고 완전한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것을 유학에 받아들입니다. 또 불교에서는 심(心 마음)에 관한 여러가지 이론이 있는데 그것을 유학에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정리되어 성즉리(性卽理), 심즉기(心卽氣) 이론이 됩니다. 주희(朱熹 1130 - 1200 년)는 이것을 받아들여 체계적으로 집대성하며, 이기설(理氣說)로 정립합니다. 그리고 주희는 공자의 유학을 재해석하여 광대한 책을 펴냅니다. 이 책이름이 사서집주(四書集註)입니다. 자직이 시강을 할 때에 주희는 생존해 있었으며, 당시에 주희의 유학을 신유학(新儒學)이라 불렀지요. 지금부터 약 400 년 전 이야기입니다."


"성즉리, 심즉기 이론이 유학에 들어와서 종교가 되었다는 말인데 아직도 이해가 안되네요."


"모든 사람의 본성에는 이(理)가 들어있으며, 그래서 본성을 잘 수행하면, 누구나 성인(聖人)이 된다는 것이지요. 성즉리, 심즉기 이것으로 인간생활 모든 것이 이와 기로써 설명되며, 유학은 유교로 만성들의 일상생활까지 간섭할 수 있게 됩니다. 주희는 이 공로로 주자(朱子)라 불리웁니다. 성씨 뒤에 자(子)를 붙이는 것은 엄청난 존칭입니다. 공자, 맹자, 중양자 등 자가 붙는 것에는 같은 이유가 있지요. 주희는 자직보다 열 살이 많았고요, 자직의 소개로 황제와 만나 여러가지 학문에 대한 대화도 합니다. 자직은 이 시강 후에 황제의 우승상(右丞相)이 되어 황제를 보필하다가, 죄승상 한탁주의 모함에 떨어져 2 년만에 죽게 됩니다. 주자는 자직이 죽은 다음 4 년 후에 죽었고요."


"가르친 태자가 황제가 되었는데, 얼마 못가서 죽었다니 한탁주가 권력이 더 많았나 보네요."


"한탁주 이야기는 다음에 다른 시강에서 말하지요. 이렇게 종교가 된 유교는 원나라 150 년 동안 재야에서 더욱 연구되고 숙성되어, 우리 명국에 들어와서 국가의 종교가 되는 것이죠. 유교의 특징을 도교와 불교에 비교하여 차이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교는 사람의 언행을 가장 중시합니다. 사람이 눈으로, 귀로, 입으로, 몸으로 나타내는 그것을 우선으로 따지고 있습니다. 불교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중시 합니다. 사람의 오감과 몸으로 겪는 일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즉 마음을 단속하는 데에 아주 엄격하게 따집니다. 도교는 신선이나 귀신이 관여하는 사람의 영혼을 보다 더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신선이나 귀신의 일은 대부분 보이지 않으나 결국 사람에게 영향을 주며, 그것이 사람의 언행에 미치는 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유교의 내용을 간단하게 말하고 종교시강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진랑께선 유교하면 무슨 말이 먼저 생각나시나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가 생각납니다. 내가 낙양단에 있을 적 일인데, 그 때는 매일 쌈박질만 줄창 할 때였지요. 부하 중에 누가 두사부일체(頭師父一體)라고 해서 내가 아주 좋은 말이라고 칭찬해준 적이 있지요. 두목과 스승과 아버지는 일체란 말입니다. 아쉽게도 그 부하는 얼마 못가서 싸우다 죽었지만, 어쩌면 내가 칭찬하지 않았다면 쌈판에 나서지 않았을테고,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 그 땐 몰랐어요. 지금이라면 나는 그 부하들을 더 챙겨서 한 명이라도 죽지않게 노력을 좀 더 했을텐데..."


"두사부일체 그 말이 바로 군사부일체와 동일한 말입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이만 하고요, 내일 군사부일체부터 시작하지요. 진랑 공부하느라 힘들지요."


"나도 힘들지만, 이건 생사대결 보다는 쉽다 생각합니다. 오히려 석도사부님이 더 힘들지요. 수고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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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제단석(祭壇石)을 찾다 15.10.31 752 7 12쪽
103 변경의 늑대들 낙양에 오다 15.10.30 728 7 13쪽
102 오위(吳偉)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느끼다 15.10.29 835 5 15쪽
101 빙염(氷炎)을 흡수하다 15.10.27 752 7 13쪽
100 여덟 명의 공력이 엉키다 +1 15.10.26 569 7 15쪽
99 흑묘파(黑猫派)를 만나다 15.10.25 568 5 13쪽
98 내년부터 미곡 판매 사업을 시작하라 15.10.24 869 5 12쪽
97 조무웅을 적목단주로 임명하다 15.10.24 768 6 13쪽
96 조 사범의 과거(過去) 15.10.22 735 6 12쪽
95 뜻을 추구하는 성격 15.10.22 862 6 11쪽
94 첫번째 월례회의 15.10.21 830 9 13쪽
93 마음으로 하라 15.10.20 837 6 17쪽
92 오행상극(五行相剋)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15.10.19 1,018 6 18쪽
» 유학은 이기설(理氣說)로 종교가 되다 15.10.17 701 4 16쪽
90 단법(丹法)의 유래(由來) 15.10.16 882 6 16쪽
89 흑룡은 은하수와 흑룡강이 되었다 15.10.15 561 5 15쪽
88 보이지 않는 전쟁 15.10.15 570 6 14쪽
87 사람은 하늘이다 15.10.14 584 5 15쪽
86 으뜸이 되는 가르침 15.10.14 1,033 4 13쪽
85 광해왕(光海王)의 회상(回想) 15.10.09 831 6 18쪽
84 명(明) 사신(使臣) 조선(朝鮮)에 가다 15.10.08 831 6 15쪽
83 하남지부가 분쟁을 중재하다 15.10.07 647 8 13쪽
82 은(銀) 25만 량과 견(絹) 25만 필의 세폐(歲幣) 15.10.06 794 6 15쪽
81 황태자가 매를 맞은 문제 15.10.05 696 10 13쪽
80 다섯 가지를 통하게 하라 15.10.03 815 8 14쪽
79 오장육부(五臟六腑) 15.10.02 795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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