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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舶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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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金舶
작품등록일 :
2015.07.09 08:42
최근연재일 :
2015.11.03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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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1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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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낙양성(洛陽城)에 들다

DUMMY

하남성의 경계를 넘자, 산의 모습도 달라져서 좀더 부드러워졌다. 그저 고만고만한 고개들이 이어져서 멀리서 보면, 마치 돼지새끼들이 줄을 이어 걸어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숭산(嵩山)과 같은 험산이 나타나니 그것이 더욱더 크게 부각되는 이유가 되었다. 하남성은 황하의 풍부한 수량 덕분으로 각종 농산(農産)들이 경작되어 수많은 물목들이 소출되는 대평야지역인 것이었다. 풍부한 소출이 있기에 하남성 지역을 근거로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며, 낙양 등을 도읍으로 할 수가 있었다. 이곳이 바로 중원(中原) 또는 중주(中州)라 불리우며, 중원이란 명나라가 대륙을 일통하는 제국을 세우기 전까지는 중앙대평원(中央大平原)을 뜻하는 말이었으며, 명나라에 들어서는 명제국이 지배하는 중원대륙 전체를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경성(京城= 북경이나 남경)에 가거든 벼슬 자랑 하지 말고, 낙양에 가거든 돈 자랑 하지 마소'라는 속담이 있듯이 낙양성은 고래로 부자들이 모여사는 곳이었다. 장안성(長安城)이 도읍이었던 주(周)나라 이후 여러 나라에서도 낙양성(洛陽城)은 온갖 물목들이 집결되는 곳이었으며, 장안은 정치의 중심으로, 낙양은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부자들은 낙양성에 들어서 사는 것을 꿈으로 여기게 되었다.


후당(後唐) 이후 개봉이 도읍이었던 북송에서도, 임안이 도읍이었던 남송에서도, 북경이 도읍이었던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에서도 낙양성은 부자들이 살기 좋은 그런 땅으로 남아있었으며, 그런 이유로 하여 당금 천자 만력제(萬曆帝)의 총애를 받던 삼황자(三皇子) 복왕(福王)은 낙양성을 택하여 하남부에 봉지(封地)를 받고, 낙양성 내에 복왕부(福王府)를 근사하게 지어서 들게 되었던 것이었다.


중국의 경제의 중심은 송나라 이후로는 사실상 장강의 유역으로 옮아왔다고 볼 수 있으며, 이후 원나라와 명나라에서는 경항대운하를 이용하여 남쪽의 물산을 북쪽으로 옮겨가는 데에 주력하게 된다. 이런 물목의 움직임으로 판단하자면 경제력 측면에서 장강 유역이 황하 유역의 2 배는 되었으리라 그리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항주(杭州)나 소주(蘇州)가 강남지역에서 신흥 부자들의 요람이 되었다고는 하나, 부자들은 여전히 낙양을 떠나지 않았으며 이천 년의 부향(富鄕)인 낙양은 여전히 부자들이 살기 좋다고 가장 선호하는 땅이었던 것이다.


부자들이 살기 좋다고 하는 말은 첫 번째로 부자들이 돈이 많다는 점 때문에 위험해질 수도 있는 그런 신변 위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두 번째는 돈을 쓰는 데에 있어서 외롭지 않아야 하며, 세 번째는 돈을 재미있게 쓸 수가 있어야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치안의 유지가 잘 되어야 하고, 어울릴 수 있는 부자들이 있어서 서로 어울려서 돈을 쓸 수 있어야 하며, 또 빈부격차가 심해져서 주위에 부자들의 말을 잘 듣는 가난한 사람이 풍부하게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낙양은 이러한 점에서 부향(富鄕)으로 으뜸이었다.


낙양은 낙수(洛水)가 흐르는 양지(陽地)라는 의미의 지명이었다. 보통 큰 강이 흐르면, 강의 북쪽에 있는 땅은 양지가 되기 마련이었다. 큰 산이 있으면 큰 산의 남쪽이 양지가 되고, 큰 물이 있으면 큰 물의 북쪽이 양지가 되는 이치에 따라 지명(地名)을 짓는 것이 고래(古來)의 전통이었다. 회음(淮陰)이라는 지명은 이제는 무슨 의미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회하(淮河)가 흐르는 음지(陰地)라는 의미로 회하(淮河)의 남쪽을 가리키는 지명인 것이다. (한국 서울의 옛이름 한양(漢陽)은 한강의 옛이름 한수(漢水)의 북쪽에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낙하는 낙양성의 남쪽을 둘러싸고서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으며, 이후 백 수십 여 리를 더 흐르다가 황하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또 낙하의 남쪽에는 다시 이수(伊水)가 북동으로 흐르고 있으며, 용문산과 향산 이 두 산 사이를 이수(伊水)가 흐르고, 당나라 때에는 그 마주보는 바위 벼랑 한 쪽에 굴을 파서 수많은 불상들과 석굴문화재를 만들어 놓은 것이 용문석굴(龍門石窟)이었다.

[그림 낙양성 인근 지도, 나중에 다시 잘 그리기로 합니다]


관도는 황하와 평행으로 나아가는듯이 이어지고 진원성은 다시 관도를 평행하여 이런 저런 산등성이들과 걸음을 다투며 서쪽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송나라의 서울이었다는 개봉(開封)을 지나고, 소림사(小林寺)가 있다는 정주(鄭州)를 지나고, 진원성은 무려 석 달 가까운 시일을 행로에 소모하고서야 낙양성에 이르게 되었다. 이 때의 진원성은 어떻게든 비룡방주를 만나서, 흑응회와의 은원에서 어떤 좋은 결말을 짓도록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어떤 구체적 방안은 없는 상태였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는 풍문은 들었지만, 이런 저런 깊은 지식은 없는 진원성은 로인(路引 = 호패 겸 여행증명서, 명대에는 이장(里長=이갑제의 이장)이 발행하는 로인이 없으면 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을 갖지 않아서, 성안으로 들어갈려면 수문병들이 좀 귀찮게 할 것이 짐작되어, 낙양 성에 도착하여 아직은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몇 일 째 성 밖에서 성 주위를 휘둘러 살펴보고만 있었다. 먼저 주위 산들을 돌아보니 낙양성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산들은 겨우 백 장 이하의 고만고만한 높이의 완만한 산들이었다. 이미 한창의 여름인 5 월 초인지라, 낙양의 여름은 제남의 여름에 못지 않게 불볕을 쏟아놓고 있었다.


진원성은 북으로 낙양성이 멀리에 보이고, 뒤 돌아서면 낙수의 선착장이 내려 보이는 작은 언덕베기에 올라가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았다. 이 곳을 까마귀언덕이라 부르는 것은 진원성이 나중에 알게 된다. 이제 신시가 넘어되던 참인지라, 이미 하루 일과를 끝낸 것인지, 세 명의 장정들이 앉아서 잡담을 주고 받으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진원성은 그들이 어떤 신분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들 중에 한 두 명 쯤은 진원성을 힐끗 쳐다보았으나, 차림세에서 돈냄새가 나지 않아서인지 바로 관심을 거두었다.


진원성 역시 그들에게서 눈을 거두어 멀고 가까운 지역을 살펴보았다. 때로는 눈을 가늘게 만들어가며, 저멀리 낙수의 상류부터 하류 쪽까지 훑어보고 있었다. 낙수 선착장에서 상류 쪽으로, 저 멀리로는 놀잇 배들이 몇 척이 떠 있고, 마치 선착장과 놀잇 배들의 구역을 갈라주는 듯이 부교 하나가 걸려 있었다. 부교의 근처에는 커다란 천막이 두 채가 서 있었으며, 간혹 천막에서 사람들이 드나들곤 하였다. 장정들 세 명이 시시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그 중에 한 명이 좀 더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나온다. 저기 봐라."


세 명 중에 나머지 두 명도 동시에 눈을 돌려 성 남문 쪽을 바라보자, 진원성도 따라서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들 것에 한 명을 싣고, 성문을 막나서는 사람 두 명이 있었다. 그걸 보더니 세 명은 일어서서 그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는 들것을 든 사람들과 만나서, 같이 한참을 걸어서 부교 근처에 있는 천막 한 군데로 들어갔다.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진원성은 한 자리에 앉아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 지나자 장정 세 명은 천막을 나와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날도 진원성은 다시 어제의 언덕베기 그 자리에서 살펴보다가, 어제 만났던 그 세 명이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제는 우연히 마주친 것이고 서로에게 무관심하여 모른 척하고 넘어갔지만, 오늘 또 보게 되자 모른척 하기에는 좀 저어한지라 진원성이 먼저 아는 체를 하였다. 그들 역시 다시 보는 얼굴이지만, 진원성의 얼굴이 시커먼 일자 눈썹에 얼굴은 시커먼 잔털이 많이 나있고 벌써 시커먼 구렛나루 자국이 나고하여, 좀 인상이 더러운 편이라 먼저 아는 체를 하지 않다가 진원성이 인사를 하자 마지못해 아는 체를 하는듯 하였다.


"안녕들 하십니까? 오늘 또 뵙네요."


"어라, 오늘도 여기에 왔군요. 우리들에게 무슨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요?"


"예, 낙양성이 처음인데다가, 노잣돈도 다 떨어지고, 로인(路引)마저 잃어버려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곤란해 하고 있지요."


"응, 아직 어린 아이인거 같은데 ...... "


"뭘, 열일곱은 된 걸로 보이는데."


"낙양성에 누구 아는 사람 사람이라도 있는게요?"


"낙양이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구 해서, 흔하다는 돈벌이도 찾을 겸해서 무작정 오게 되었는데, 당장에 뭐 푼돈이라도 벌 일거리 좀 소개해주시면 고맙겠소이다."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소?"


"천자문은 배웠고, 권술도 조금은 배웠지만, 문(文)도 무(武)도 할 줄 안다고 말하기에는 염치가 없소이다. 점소이 노릇도 몇 년 하였으나, 이제는 좀 돈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군요."


"고향은 어디고, 이름은 무엇이요? 나이는 몇이나 되오?"


"이름은 진원성이라 하고, 나이는 열 여섯이며, 고향은 산동성 임청 부근이요."


"까막눈이 아니라고? 그럼 내 알아볼 데가 있으니 내일 이맘 때에 여기서 다시 한번 봅시다. 나는 석씨(石氏) 성(姓)이요. 일이 잘되면 술 석 잔은 받아야 하외다."


"물론이지요. 술 석 잔 뿐이겠습니까?"


진원성은 고향을 속여 흑응회가 있는 제남을 감추었고, 나이를 속여서 키와 얼굴에 걸맞는 열여섯으로 말하였다. 당시에는 열다섯이 성년을 가름하는 기준이었기에 제대로 성년으로 대접을 받고 싶었음이다. 즉 미성년이라면 하루 품삯이 당장에 반토막이 나는 그런 일을 당하기 일수였던 것이다. 그들 일행 세 명은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성 문에서 두 명이 들 것에 한 명을 싣고, 성문을 막 나서자 그걸 보더니, 일어서서 그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고, 거의 어제와 같이 움직임을 보인 후에 성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늦은 오후 진원성은 석씨라는 장정을 따라서, 성 남문으로 들어와 오가장(吳家莊)이라는 집으로 따라들었다. 무척이나 오래 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 집은 낙양성의 거지들의 총 두목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석씨는 진원성을 빈청으로 데려다 준 이후로 사라지고, 한참이나 기다려서야 집주인인듯한 중년의 사내를 대면할 수가 있었다. 진원성이 먼저 인사를 하였다.


"처음 뵙습니다. 진원성이라고 합니다."


"응, 난 오부전(吳復全)이라고 하네. 날 부를 때는 오단두(吳團頭)라고 부르면 되네. 즉 나는 개방(介幇) 낙양단의 책임자라는 말일세. 개방이란 거지들이 모인 단체를 말하지. 그러나 이미 개방은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으니 더 따질 것은 없고, 그냥 단두(團頭)라 부르면 된다네."


"예, 오단두(團頭)님."


"돈벌이를 하려 한다던데, 좀 험한 일일 수도 있는데,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구먼."


"어떤 일인가요?"


"그건 나중에 일러줄 것이고, 은자 두 량을 월례(月禮)로 줄텐데, 그 정도면 되겠지?"


"은자 두 량이면 적지 않는 돈인데요?"


"일단은 석행도(石行徒)에게 물어서 저 쪽 방에 여장을 풀고서, 며칠 일을 해보다가 할만 하면 하고, 아니면 그만 두면 되겠네."


이렇게 해서 진원성은 석씨라는 사람에게서 안내를 받아서, 오가장의 사람들에게 얼굴을 익히고 통성명도 하였으며, 방 하나를 배정받고 오가장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바로 할 일이 떨어졌다. 진원성이 인시(寅時)에 일어나 한 시진을 호흡공부를 하고 나자 묘시가 되는데, 이때에 석씨가 진원성의 방문 앞에 와서 큰 기침을 해서 불러내어, 둘은 서둘러 성 밖으로 나섰다.


"진 아우, 오늘은 우리 둘이서, 성 밖 남쪽 시오리 쯤 되는 곳에 있는 장가촌(張家村)에 가서 한 사람을 데려오는 일을 해야 한다네."


"예, 그럼, 그렇게 하지요."


"오시(午時)까지는 돌아와야 하니 서둘러야 하겠지."


"예, 그럼, 그렇게 하지요."


"오늘 그 사람은 아문의 형조(刑曹)에 들어가서 장형(杖刑) 60 대를 맞기로 하였네. 우리가 그 사람을 데려오는 것은 그 사람을 매맞게 하기 위해서라네. 이렇게 데리러 가지 않고, 제발로 걸어오라고 하면 매맞기 싫어서 안나오는 수가 왕왕 있다네. 그래서 우리가 꼭 꼭 수고를 해야만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은 무얼 잘못해서 장(杖)을 맞게 되었나요? 아니 우리가 왜 형조에서 매맞을 사람을 데려와야 하지요?"

001낙양성주변도.jpg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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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2 金舶
    작성일
    15.07.21 14:06
    No. 1

    이 그림은 적목단이 끝날 때까지 여러번 봐야할 것인데 영 허접하네요. 제가 나중에 컴퓨터 그림그리는 툴 사용법 배워서 다시 그려야 할텐데, 어떻게 해야할지요. 아시는 분 가르쳐주십시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하무린
    작성일
    15.07.28 10:12
    No. 2

    와 상세한 지명까지 그리고요. 대단합니다. 저도 무협을 쓰고 있습니다만
    낙양이 주 배경입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자주 들릴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62 金舶
    작성일
    15.07.29 00:39
    No. 3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전 아마추어로 여러가지 부족합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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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다섯 가지를 통하게 하라 15.10.03 816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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