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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마갑을 만드는 천재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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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24.04.01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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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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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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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27화. 나샤이데

DUMMY

< 27화. 나샤이데 >




큰 눈이 내렸다.

나샤이데가 날 만나자고 약속한 그런 날씨였다.


“그래도 눈이 너무 많이 내리지 않았느냐!”


스승님은 걱정이 가득, 이 큰 눈에 북쪽 숲으로 날 혼자 보낼 생각은 없으셨다.


“톰. 자네가 테르와 함께 가주겠나?”

“예? 제가요?”


톰 아저씨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산고블린과의 전투가 기억났기 때문이다.


“저 혼자 될까요?”

“테르를 지켜줄 필요는 없을 거라네.”

“그럼, 왜···.”

“그래도 꼬마 아이 혼자 이 눈길을 보낼 수는 없지 않겠나? 난 마물보다는 사람이 더 걱정이라서 말이야. 외지인들도 많이 왔지 않은가? 자네 덩치라면 누가 시비를 걸겠나.”

“그건···, 그렇죠.”


그때 내가 숲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을 희망한 것은 용병단의 마법사 레빈이었다.

그는 스승님께 동행을 청했다.


“제가 속한 마탑은 대지의 신 데이아를 모시는 황색 마탑입니다. 숲의 신과 대지의 신은 친구이니, 나샤이데 님도 저와의 만남이 불편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원치 않으신다면 숲이 알아서 저에게 그 권능을 보여줄 거고요.”

“알겠네. 그럼, 톰. 여기 이 마법사님과 동행이니, 괜찮겠지?”

“···후우, 네! 알겠습니다.”


마법사 레빈도 따로 말이나 코카트리스를 부리진 않았으니, 우린 저번에 산 여섯 코카트리스 중 건강을 회복한 셋을 우리에서 꺼냈다.

그중 한 마리를 그에게 맡겼다.


“오, 딱 봐도 전장을 달리던 놈이구나. 훈련이 제대로인데?”


윗부리 절반이 철로 된 놈은 벌써 무리의 대장이 되어 있었다.

난 놈에게 ‘꼬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꼬꼬! 이리 와!”

“꾸꿰아~!”


덩치가 기존에 샀던 놈들보다 머리가 둘은 더 큰 느낌.

타고 보니 안 사실이지만, 이놈들 걷는 자세가 일반 코카트리스와는 다르다.

그걸 어찌 알았냐 레빈에게 물으니, 설명을 해줬다.


다른 코카트리스가 고개를 바짝 들고 타조처럼 달린다면, 이놈들은 고개를 앞으로 쭉 내밀고 티라노사우루스처럼 달렸다.


“군용이니, 당연하겠지. 기사의 검에 자기 목이 잘리면 안 되지 않겠니!”

“그렇겠네요.”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걸 태어날 때부터 가르친단다. 어릴 땐 머리를 들지 못하게 긴 장대를 머리와 허리에 묶어두지. 그 습관이 들어 크면 언제든 달릴 때 돌격 대형이 된단다. 달릴 때는 항상 그 자세지.”

“그러면 언제 머릴 들어요?”

“군용 코카트리스는 물 마실 때가 아니라면 목을 절대로 위로 들지 않는단다.”

“아···.”

“그 자세는 무게 중심이 앞에 있으니, 달릴 때도 훨씬 빠르다.”

“그렇겠네요.”


전투에 임하는 코카트리스의 경우, 갑주와 투구까지 쓰게 되면 정말 무섭다고.

투구에 뿔까지 달아 박치기를 하는 놈도 있단다.

성질 고약한 놈은 부리 질에 사병 얼굴쯤은 단번에 찍어버린다는 소리.

꼬꼬의 부리가 부러진 이유를 대번에 알겠다.


“꽈아아!”


‘이 녀석은···, 야만족과 맞짱 뜨던 놈이었나?’


우린 세 마리의 코카트리스를 타고 북쪽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눈길을 가르며 달리는 코카들은 정말 바람 같았다.

놈들도 오랜만의 질주여서인지 신이 났다.


“저 위가 세렌 마을이에요.”

“와!”


눈 덮인 세렌마을의 풍경은 뒤쪽 설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마을은 마령의 숲과 함께 순백의 물감을 아낌없이 뿌려놓은 듯, 숲의 나무는 눈꽃으로 하얗게 덮여있었다.


풍이가 신이 나 그사이를 뛰어다니자, 눈가루가 티끌이 되어 파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오우! 정말 멋진 곳이구나.”

“이쪽이에요.”


내가 찾은 곳은 여관이 아닌 약초꾼의 집.


“이게 누구야! 테르! 어서 오너라!”


그는 나와 톰, 마법사를 두 손을 올려 환영해 주었고, 볼 빨간 6살 딸은 나에게 달려와 또 그림을 그려달라며 내 다리에 매달려 보챈다.


이 모든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기시감.


‘뭐지?’


난 분명, 이 장면을 어딘가에서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 기억 속, 지금의 장면은 내 손에 의해 그림으로 그려졌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내가 지금, 완성되지도 않은 내 스케치북 속 이야기로 들어왔다는 말인데···.’


하지만, 다르다.

내가 상상하고 만들려 했던 삽화들은 막연한 판타지.

이야기 없는 상상 속 이미지만의 세상이었다.


그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야 하는 삶이라면, 어떻게 전개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스케치북 속의 그림엔 아름다운 것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었···.


‘후우···, 그 그림대로라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네.’


약초꾼의 가족은 우리 잠자리를 봐주고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톰 아저씨는 저번에도 이런 식사를 했었냐며 많이 억울한 얼굴.


“하하하. 외지인이 아니라면 이 마을에서 그 여관을 이용하는 이는 없지요.”


약초꾼의 아내는 그 여관이 마을에선 정말 유명하다며, 어서 망하길 바란다는 악담을 퍼부었다.


식사가 끝나자, 마법사 레빈은 어린 소녀를 위해 작은 불꽃 쇼를 보여주었다.


“와아아! 불 다람쥐!!”


그의 손에선 마나의 불꽃이 날다람쥐가 되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옆에선 풍이가 함께 뛰어놀았다.


소용돌이치는 불티는 진짜로 마법사의 요술처럼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포근한 밤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마을 위 도개교엔 사람이 없었다.


“우···리뿐인데요?”

“진짜 아무도 없구나.”

“이 정도 눈이라면 약초꾼은 힘들죠.”

“사냥꾼도 며칠은 움직이지 않을 거요. 우리만 갑시다.”


이런 눈 덮인 겨울 산을 오르는 약초꾼이나 사냥꾼은 없었다.

사냥꾼도 며칠은 쉬었다가 동물들이 지쳤을 때 발자국을 추적하겠지.

도개교는 우리 셋을 위해서만 천천히 내려왔다.


우린 눈 덮인 설산 무결한 눈 위로 첫 발자국을 찍었다.

무서울 법도 했지만, 꼬꼬와 코카트리스들은 용감한 군마처럼 묵묵히 산을 올랐다.


아름다운 설산의 전경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그 지독한 산고블린들은 하나도 안 보이는구나.”

“다들 어디 따듯한 곳에 모여 겨울잠을 자고 있지 않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그 덕에 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 줄 내 처음 알았다.”

“정말 그렇네요.”


레빈은 고지를 넘을 때마다 눈을 노랗게 빛내며 산을 살폈다.

주위로 마력을 뿌렸다. 그러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왜 이 산이 마령의 숲이라 불리는지 알겠다.”

“네?”

“숲 정령들이 정말 많이 보이는구나. 나무처럼 보이지만, 숲을 훼손하려 한다면 금세 깨어나 우릴 죽일 거란다.”


마녀가 준 도감록에서 본 기억을 되짚어 숲의 마물을 찾아봤다.


“그···, 엔트를 말하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엔트는 귀하단다! 지금 느껴지는 건 그저 그런 중급의 숲 정령이구나. 저기도 덩굴귀가 있구나.”


레빈이 숲의 한쪽 구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커다란 나무에 붙어있는 사람 모양의 나무 덩굴.


“저길 보렴. 저 덩굴귀도 하급이지만 사람들에겐 마수로 분류되는 놈이다. 아, 아니! 건드리면 안 된다.”


그가 가리킨 곳에선 꼭 눈 쌓인 길리슈트가 움직이는 것처럼 덩굴줄기로 된 정령이 잠깐씩 움직였다 멈추는 모습을 보였다.


“저런 마수가 천 년을 넘게 살아남으면 그때는 네가 말한 그 엔트가 되겠지.”


대지의 신을 모시는 마법사답게, 그는 숲의 정령들을 쉽게 찾아냈다.

스승님이 바위의 정령을 불러냈던 것처럼, 마력으로 불러 마물들이 움직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진짜 4서클의 마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있었다.


“거의 다 왔어요. 저 숲만 지나면 마녀의 집이에요.”


거대한 참나무숲을 빠져나오자 나온 마녀의 분지.

그곳은 내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


하얗게 눈이 쌓여있을 거로 기대했던 분지는 점점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여기저기, 전투의 흔적과 죽어 널브러져 있는 기이한 모습의 마수들이 보였다.


“이···, 이건!”


눈밭을 붉게 물들이며 죽어있는 얼굴은 늑대다.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한 놈들이었다.

머리가 터져 눈밭에 뇌수를 뿌리고 있거나, 땅에서 솟아난 긴 나무 꼬챙이에 배가 뚫려 매달려 있는 놈도 보였다.


“꽈아아!”


코카들이 잔뜩 긴장했다.

터진 창자에선 역한 냄새가 풍겼다.

톰 아저씨는 얼른 코카트리스에서 내려 놈들의 시체를 살폈다.


“이놈들, 아직 식지 않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된 거 같죠?”

“오전이요. 아침 일찍 있었던 전투 같네요.”

“가요! 어서!”


내가 꼬꼬와 빠르게 나아가자, 레빈이 걱정이 되는지 크게 소리쳤다.


“테르! 천천히! 아직 놈들이 남아있을지 몰라!”


그가 급하게 고삐를 당기며 날 쫓는다.

톰 아저씨는 얼른 코카 위로 올랐다.

세 코카가 간격을 두고 한 줄로 달렸다.


난 선두, 풍이를 믿었다.


‘풍아! 적이 있는지 살펴봐!’


-푸아아아아


파바밧!


풍이가 저 앞에서 지그재그로 날며 주변을 살폈다.

하얀, 아니 진분홍의 눈꽃 소용돌이가 내 앞을 맴돌며 길을 안내했다.

내가 손으로 가리킨 곳, 레빈도 풍이를 보곤 날 바짝 뒤쫓는다.


우린 빠르게 붉게 물든 눈밭을 뚫고 중앙 호수를 향해 나아갔다.




***




‘대체 이게 다 몇 마리야?’


죽어있는 늑대 족, 라이칸스로프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최소 수백은 되어보였다.

엄청난 수가 죽어있지만, 마녀의 집까지 시체의 수는 줄지 않았다.

진득한 피냄새.

피 냄새를 맡은 꼬꼬가 바짝 긴장했는지 깃털을 부풀렸다.

크게 울며 뒤를 쫓는 두 코카트리스를 자신의 옆으로 불렀다.


“꽈아아!!”


그러자 둘이 꼬꼬의 뒤로 바짝 따라와 붙는다.

서로 얼굴을 나란히 할 정도였다.

자세를 낮추면서도 몸을 붙이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팍팍팍팍팍팍!


“오!”

“이놈들! 전투 대형이다!”


고삐를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고 삼각 대형을 이루었다.

오랜 전투의 습관이었다.


발은 더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정말 안정적이다.

쐐기형으로, 셋이 뭉쳐 삼각으로.

익숙하게 훈련된 전투대형을 꼬꼬는 알아서 맞췄다.


“좋아, 그렇다면! 모두 주의를!”


레빈이 마법을 발동했다.

앞쪽으로 투명한 막이 우리를 감쌌다.


바람처럼 달리며 나는 흩날리는 눈 속에서 저 멀리 보이는 마녀의 집에 시선을 고정했다.


‘문이 깨져있어···.’


징검다리마다 죽어있는 늑대 족들.

호수도 얼어있지 않고 붉게 물들었다.

여기저기 시체가 둥둥 떠 있었다.


“나샤이데 님!!”


풍이가 먼저 오두막으로 날아들었다.

안쪽의 반응은 없었다.


적막 속, 기묘하게 푸덕거리는 소리.

난 코카트리스에서 내려 품에 있던 단검부터 꺼냈다.

톰 아저씨가 내 어깨를 붙잡곤 등에 메고 온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테르! 뒤로!”

“아! ···네!”


그의 손엔 대장간의 도끼가 들려있었다.

잔뜩 긴장한 어깨.

조심스럽게 라이칸스로프의 시체를 밀어내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그 모습에 레빈이 고개를 흔들며 스태프를 내밀었다.


그는 내 바로 뒤에서 오두막을 주시했다.

마력을 한껏 끌어올린 그의 눈은 황금색으로 반짝거렸다.


“천천히 접근하세요. 제가 뒤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다급한 마음을 다스리며, 우린 귀를 쫑긋 세운 채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렇게, 톰 아저씨가 문 앞까지 다가갔을 때,


푸다다닥!


무언가가 툭 하며 우리 앞으로 튀어나왔다.


“꽈아아!!”


“우왓!”

“뭐냐!”


피 묻은 깃털의 오색 코카트리스.


“자, 잠깐! 공격하지 마세요!”


난 레빈의 공격부터 막았다.

문 앞을 지키던 것은 작은 코카트리스.

나샤이데의 애조, 오색의 파갈루였다.




***




“꽈아아!”


“파갈루!”

“꽈아아아!”


지치고 피곤한 얼굴.

녀석은 날 보자마자 털썩, 두 다리를 앞으로 뻗은 채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렸다.


“괜찮아?”

“꽈아아!”

“알았어. 어서 살펴볼게.”


집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도 엉망이다.

집기는 모두 부서져 있고, 여기저기 바닥엔 라이칸스로프들이 죽어있다.

눈이 쪼이거나 머리가 박살 난 놈은 파갈루가 한 것으로 보였다.


“파갈루! 마녀님은?”

“꽈아아!!”


한쪽 다리를 뒤뚱뒤뚱 절며 날 안내하는 파갈루.

마녀의 집 2층 계단으로 날개를 푸덕거리며 올라간다.

그곳의 계단에도 세 마리의 라이칸이 머리가 사라진 채 죽어있었다.


그 안쪽.


“나샤이데 님!!”


넓은 홀, 원형의 러그 위엔 꼭 까마귀가 아파 누워있는 형상으로

하얀 머리를 바닥에 산발한 채, 나샤이데가 엎어져 누워있었다.


그녀의 옆엔 파갈루와 마찬가지로 피칠을 한 동물들이 독기를 가득 품고 그녀를 지키고 있다.


“쉬이익!”

“삐이잇!”


까마귀와 뱁새, 너구리와 작은 동물들. 다람쥐 몇 마리.


“쉬~! 쉬~! 괜찮아! 착하지?”


내가 접근하려 하자, 풍이가 먼저 통통 튀며 앞으로 나섰다.

몸을 부르르 떨며 돌자 포근한 바람이 홀을 가득 채웠다.


“삐이이···.”

“쉭! 쉬익!”

“너희들이 마녀님을 지켜줬구나? 잘했다. 고마워.”


내가 나샤이데 님의 옆으로 다가갔을 때, 러그 사이로 축축하게 물든 피가 보였다.


나는 재빨리 그녀를 살폈다.


“아!”


그녀의 등엔 역으로 휜 새까만 중도가 박혀있었다.

하얗던 긴 생머리도 그녀가 흘린 피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분이 나샤이데?”

“네!”


레빈이 다가오려 하자 너구리가 거칠게 털을 세우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의 접근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레빈! 아래층이요! 어딘가 포션이 있을 거예요. 찾아주세요.”

“알았다!”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웅크리고 있지만, 숨은 아직 쉬고 있었다.

칼을 뽑았다간 바로 출혈이 심해질 거로 보였다.


그녀의 망토가 까마귀의 깃털처럼 무기를 막아줬지만, 완벽하게 막은 것은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망토를 들어 올리자 내 손에도 그녀의 피가 묻어난다.

피 묻은 손에선 은은하게 빛의 아지랑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얗게 빛가루가 쏟아진다.


우당탕탕탕!


“테르! 여기!”


레빈과 톰 아저씨가 엉망이던 1층에서 포션을 찾아 올라왔다.


“나샤이데 님! 좀 아플 거예요.”


나는 그중 한 병을 따 우선 그녀의 등에 부었다.


츠츠츠츠츠-


“아앗!”


나도 발라봐서 알지만, 마녀의 포션은 알보칠이다.

상처를 강력하게 치유해 주지만, 고통이 일시불로 찾아온다.

고통에 찬 그녀의 경련이 고스란히 러그를 통해 나에게 전해졌다.


“등에 박힌 검을 뽑아 볼게요.”


상처를 스며드는 포션을 살피며 천천히 검을 뽑았다.

그녀는 고통에 떨면서도 정신은 쉬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레빈! 마석 가루도 찾아주세요.”

“어쩌려고?”

“마법진을 그려야겠어요.”

“마법진?”

“네. 치유의 마법진이요.”

“아···, 알겠다.”

“톰 아저씨! 이 러그도 치워주세요. 제가 마녀님을 들게요. 이 바닥에 마법진을 그려야겠어요.”

“···그래. 그러마.”


난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너무나도 작고 여린.

지금은 일곱 살, 소녀의 몸이다.

나 같은 꼬맹이도 가볍게 들 수 있는 깃털처럼 가벼운 모습이었다.


‘꼭 아기 사슴 같아···.’


톰 아저씨가 러그를 치우고 대충 자릴 정리하자 널찍한 공간이 나왔다.

난 피에 젖은 그녀의 로브를 벗기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눕혔다.


“어?”


상처 위에 바로 치유의 마법진을 그려볼까 했지만, 로브를 벗긴 그녀의 몸은 타투로 가득했다. 정말 놀랄 만큼 빼곡하게 마법진으로 채워진 몸, 손톱만큼의 빈틈도 없었다.


“와···.”


온몸이 마법진이라니···.


정말 놀라운 모습이었다.


그때, 레빈이 마석 가루를 찾아 다시 올라왔다.


“여기, 찾아왔다.”

“고마워요. 레빈.”


난 테이블 위 찻잔에 포션을 붓고 그곳에 마석 가루를 섞었다.

걸쭉하게 반죽해 찍어선 손가락으로 [치유의 마법진]을 바닥에 그렸다.


“테르! 이 마법진을 아느냐?”

“네. 외우고 있어요.”

“이 복잡한 마법진을 외운다고?”

“네. 전 보면 알아요.”

“허!!”


레빈은 동그란 눈으로 내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손가락으로 그리는 마법진.

기억 속 마력의 문장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마야의 달력 같은 문양이 마룻바닥 위에 블록이 되어 채워졌다.


〖흡기〗, 〖저장〗, 〖청결〗, 〖회복〗, 〖활기〗, 〖치유〗


그 블록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묶어 4조합 원형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후우.”


이렇게 한 겹.

그 위로 다시 6조합. 8조합, 12조합까지.


그렇게 네 겹의 【치유의 마법진】을 그려 넣자, 공간의 공기가 무겁게 바뀐다.

눈앞엔 반짝거리는 빛무리. 안쪽 공간이 마력으로 채워짐을 느꼈다.

이렇게 해놓으니, 제일 안쪽 마법진은 꼭 물속에 있는 것만 같았다.


“됐어요!”


우우우우웅.


이 마법진에 〖시동〗은 없었다.

자연의 치유력을 극상으로 키워주는 마법진이다.


풍이는 내가 그린 마법진을 따라 돌며 그 마력을 북돋아 주었다.

눈을 가늘게 뜬 레빈이 로브를 털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좋구나. 내 치유의 권능은 모르지만, 이 마법진이 있다면 내 마나 서클이 도움은 줄 수 있겠다. 뒤로 물러나거라.”

“?!”


그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으론 결인을.

그의 몸 주위로도 빛의 알갱이가 하얗게 요동친다.

잠깐 스파크가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흐읍!”


그의 손, 결인의 모습은 꼭 〖흡기〗와 같았다.


“시작하마! 톰! 누가 오는지, 문을 막아주세요.”

“알겠소.”


츠스스스스-


그의 몸에선 기사의 오러처럼 은은한 마력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났다.

그 마력은 곧 마법진 안으로 흘러들어 동화된다.

바닥의 그림이 은은하게 빛을 뿜었다. 그 빛이 서서히 강해졌다.

공기의 압력은 더욱 높아진 느낌.


다시금 그의 입에서 침음성이 터졌다.


“쿠훕-!”


레빈의 몸에선 노란색의 마력이, 머리에선 하얀 김이 피어났다.

그렇게 혼신의 힘으로 마법진에 빛을 더해주길 잠시.


“커헉!”


기절하듯 누워있던 나샤이데가 검은 피를 왈칵 토해내며 콜록거렸다.

난 마법진 안으로 달려가 그녀를 도왔다.


“콜록!콜록!콜록!”

“나샤이데! 괜찮아요?”


그녀가 힘들게 눈을 뜨며 날 바라보았다.


그녀는 빙긋,

힘 하나 없는, 가까스로 지은 미소로,


“···테르! ···정말 와줬군요.”


그러곤 툭!


그녀는 그대로, 다시 기절해 버렸다.




***




“후우. 정말 괜찮은 거죠?”

“그래. 내가 볼 때는···.”


레빈의 말로는 위기는 넘겼다고.


호흡이 안정된 걸 보니, 치유의 마력이 그녀의 몸을 회복시키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나는 다른 가구와 소품을 더 치우고 마법진 주위로 두 겹의 마법진을 더 그려 넣었다.


레빈은 내가 그린 마법진이라면 자신의 역할은 끝난 듯 보인다며 1층으로 내려갔다.


둘은 부서진 가구를 정리하고 죽은 라이칸스로프를 집 밖으로 끌어냈다.


내가 1층으로 내려왔을 땐 엉망이던 공간도 말끔하게 치워진 상태.

은은한 차향이 공간을 감쌌다.


“허락은 받지 않았다만, 고생했으니 차 한 잔쯤은 괜찮겠지? 너무 귀한 차가 있어서 말이야.”

“물론이죠.”


레빈은 톰 아저씨와 내 잔에도 차를 따라주며 지금껏 고심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래도 정말로 서쪽 방벽이 무너진 거 같구나.”

“네?”


수도원에서 전송진의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한 적 없었다.

했다간 큰일난다. 신의 서약에 천벌이 떨어졌다.


소문이야 무성했지만, 야만인과는 전쟁이 시작됐다는 수준이었다.

며칠 전 왔던 전령의 소식도 방벽이 무너졌다는 이야긴 없었다.

서쪽 방벽에서 급하게 병력을 요구했다고.


레빈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만족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이야길 시작했다.


“저 서쪽, 방벽이 세워져 있는 마수트 산맥은 이 북부 마령 산맥과 그 맥이 이어져 있단다.”

“!!”

“그리고 방벽 너머, 파타르 평야의 야만족들은 마수트 산맥에 사는 라이칸스로프들과는 오랜 동맹이지.”

“어? 그 말씀은···.”

“그러니 놈들이 이 전쟁을 제대로 준비했다는 말이겠지, 이렇게 주요 인물을 먼저 제거하려고 별동대를 보낸 걸 보면 말이다.”

“!!”

“그녀는 이 아스트라드 대륙의 7 현자 중 한 명이란다. 일반인들에게야 약초나 포션을 파는 흔한 마녀일 뿐이지만, 마법사의 세계에선 ‘거울 호수의 현자’ 혹은 ‘마령 숲의 큰사슴’이란 이름으로 유명하단다. 아, 나샤이데보다는 그녀의 거울 속 진짜 모습인 데이샤나 님을 말하는 것이란다.”


레빈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마도 내 생각엔 그녀가 이 세상에서 옛 천년 전쟁을 기억하는 유일한 마녀이기 때문이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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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52화. 상류의 전투(2) NEW +11 12시간 전 3,068 145 15쪽
51 51화. 상류의 전투(1) +13 24.05.19 6,152 236 18쪽
50 50화. 전조 +14 24.05.18 7,708 300 14쪽
49 49화. 거래 +13 24.05.17 8,593 311 16쪽
48 48화. 증명(2) +15 24.05.16 8,882 323 16쪽
47 47화. 증명(1) +11 24.05.15 9,278 325 19쪽
46 46화. 포로(2) +17 24.05.14 9,614 296 16쪽
45 45화. 포로(1) +10 24.05.13 10,142 317 16쪽
44 44화. 영접식 +21 24.05.12 10,310 325 17쪽
43 43화. 꽃의 저주 +10 24.05.11 10,350 303 15쪽
42 42화. 재스민 +7 24.05.10 10,732 328 19쪽
41 41화. 소공녀의 갑주 +13 24.05.09 11,011 324 15쪽
40 40화. 출정 +8 24.05.08 11,107 316 16쪽
39 39화. 제자 사냥 +17 24.05.07 11,223 316 15쪽
38 38화. 요청 +13 24.05.06 11,440 330 15쪽
37 37화. 초대 +11 24.05.05 11,718 318 16쪽
36 36화. 라이칸 +22 24.05.04 12,149 351 15쪽
35 35화. 기습 +10 24.05.03 12,440 356 18쪽
34 34화. 만월의 밤 +18 24.05.02 13,081 379 17쪽
33 33화. 피난민들 +7 24.05.01 13,441 399 18쪽
32 32화. 서클 +18 24.04.30 13,664 407 15쪽
31 31화. 숲의 주인(2) +17 24.04.29 13,774 407 19쪽
30 30화. 숲의 주인(1) +15 24.04.28 13,874 418 19쪽
29 29화. 기묘한 동거(2) +17 24.04.27 14,154 421 20쪽
28 28화. 기묘한 동거(1) +15 24.04.26 14,296 441 16쪽
» 27화. 나샤이데 +17 24.04.25 14,710 466 21쪽
26 26화. 용병들 +13 24.04.24 14,980 440 18쪽
25 25화. 최전선 +15 24.04.23 15,181 409 13쪽
24 24화. 전송진(2) +14 24.04.22 15,465 405 15쪽
23 23화. 전송진(1) +15 24.04.21 15,372 439 16쪽
22 22화. 마갑의 시동 +15 24.04.20 15,840 405 19쪽
21 21화. 전장의 소식 +20 24.04.19 15,851 411 16쪽
20 20화. 작은 희망(2) +23 24.04.18 15,928 386 16쪽
19 19화. 작은 희망(1) +17 24.04.17 16,071 395 13쪽
18 18화. 시동 +14 24.04.16 16,778 405 16쪽
17 17화. 정령석 +19 24.04.15 17,061 440 15쪽
16 16화. 통수 +9 24.04.14 17,216 408 18쪽
15 15화. 갑주(6) +16 24.04.13 17,359 408 17쪽
14 14화. 갑주(5) +14 24.04.12 17,385 432 18쪽
13 13화. 갑주(4) +23 24.04.11 17,983 416 19쪽
12 12화. 갑주(3) +10 24.04.10 18,847 443 15쪽
11 11화. 갑주(2) +10 24.04.09 18,825 480 14쪽
10 10화. 갑주(1) +21 24.04.08 19,371 462 17쪽
9 9화. 화살(3) +10 24.04.07 19,787 469 16쪽
8 8화. 화살(2) +8 24.04.06 20,390 464 13쪽
7 7화. 화살(1) +22 24.04.05 21,170 491 20쪽
6 6화. 마녀(2) +20 24.04.04 21,636 519 13쪽
5 5화. 마녀(1) +18 24.04.03 22,541 522 17쪽
4 4화. 도제(3) +12 24.04.02 24,263 520 20쪽
3 3화. 도제(2) +12 24.04.01 24,362 520 13쪽
2 2화. 도제(1) +12 24.04.01 26,648 543 16쪽
1 1화. 달빛 대장간 +28 24.04.01 33,379 607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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