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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풋님의 서재입니다.

마갑을 만드는 천재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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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글

레드풋
작품등록일 :
2024.04.01 20:47
최근연재일 :
2024.05.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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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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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1화. 달빛 대장간

DUMMY

< 1화. 달빛 대장간 >




나는 평범한 그림쟁이.

세상 흔하디흔한 삽화 작가다.


대AI의 시대에 출판사의 PD들에겐 치워야 할 퇴물.

오늘도 전화통을 붙들고 일을 찾아본다.


“후우···. 피디님. 다른 일은 없겠습니까?”

[아시잖아요. 작가님. 죄송합니다만, 전공 서적 말고는 요즘은 일이 그다지 없어서···.]


일이 없단다.

아니, 인간에게 시킬 일이 없겠지.

명령만 치면 AI가 다 알아서 착착 그려주는 시대.

영상이며 콘텐츠며 음악까지, 모든 게 AI였다.


삽화가에겐, 예술가에겐 대멸종의 시대다.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곤 겨우 전문 지식 분야.

찾은 일이라곤 원리와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 지식 관련 삽화가 전부였다.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다.

AI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유일한’ 인간의, 뇌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렇게 한번 그려주면···,’


어느새 학습해선 빼앗아 버렸다.


두 번은 없었다.


예술가에겐 혹독한, 진정한 아포칼립스가 열렸다.


***




AI라는 무적의 상대.

놈은 곰팡이처럼 내 모든 영역을 먹어 치웠다.

이 전화통의 목소리도 혹, AI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작가님이니까 특별히 드리는 거예요. 아시죠?]

“아, 예···.”


업무는 더 전문적이고 더 복잡한 원리로 채워졌다.

출판사 PD들은 AI에 프롬프트를 입력하듯 나에게도 일을 시켰다.

마치 기계처럼, 그에 걸맞은 일정을 요구했다.


“하아. 이걸 전부 말입니까?”

[네. 내일까지 끝내주세요. 원하셔서 드린 거잖아요.]


그림 작업보다, 지문을 읽고 공부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작업은 시작도 할 수 없었다.

졸지에 난 가혹한 교수 밑의 대학원생이 되었다.


‘아우, 두통이야. 커피라도 한잔해야지, 이거 원···.’


고된 장시간의 두뇌 노동.


“크흡!”


일어서려다 책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머리가 핑 돌았다.

가슴에선 격통이 올라왔다.


‘코피?’


모니터에 그려진 그림은 심장의 관상동맥우회술의 삽화였다.

그간 읽었던 논문들, 협심증의 다양한 발병 원인이 눈앞을 스쳤다.


“끄으읍!”


명치에서 올라온 격통에 난 액정 타블렛의 펜을 움켜쥐었다.

브러쉬 선 하나가 그림의 심장 위 붉은색 실선을 그었다.

모니터 속 심장은 정확히 일도양단.


‘···하!’


그것이 내 현생의 마지막 획이었다.



***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


벼랑 끝으로 내몰렸으니, 과로가 일상이었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멸종은 당연했다.


세상이 너무도 빠르게 변했다. 그게 억울했다.

책상에 코를 박고 엎어져 있는 중년의 삽화가.


오른손의 펜은 마지막 획을.

왼손은 〖저장〗을 누르고 싶어 습관처럼 키보드에 올라와 있었다.

그 충동은 끝내 이루질 못했다.


반지하 작은 골방.


쏟아지는 햇볕이 방안으로 사선을 그린다.

먼지가 유영하며 마법처럼 빛을 뿌렸다.

아직 포장을 뜯지 못한 만화책이 아쉽고 서러웠다.


책상 옆에는 출판사에서 보내준 전문 서적과 논문들.

그걸 토대로 그렸던 수많은 아이디어 스케치와 습작들.

잠들 공간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마치 성벽처럼, 수천 장의 삽화로 빼곡히 채워있다.


그 옆, 낡은 책장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수십 권의 스케치북.

그곳엔 작은 판타지의 세상이 그려져 있었다.

책장 가득 보물처럼 날짜별로 꽂혀있었다.


‘저건 아쉽네···.’


시대를 잘 못 탔다.

완성도 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AI가 하루면 뽑아낼 이미지들···.


그래도,


그곳엔 내가 있었다.


내가 그린 연필과 펜, 획, 선, 터치, 명암, 시간, 고민, 바람···.


정령이 춤추는 꿈같은 세상.

마법의 땅이었다.


홀로 즐거워 꿈꾸던 환상의 세계였다.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그러나 이리 죽었으니···,


왠지 고독사 청소부가 혼자 보기 아쉬워 웹에나 올리지 않을까···.


그 진한 아쉬움이 날 어딘가로 이끌었다.


난 빛 속을 헤엄쳐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




“···컥!”


숨을 들이켰다.

소년이 눈을 떴다.


우악스러운 손길, 멱살이 잡혀 있었다.


‘이···, 뭔!’


눈을 뜨기가 무섭게 누군가의 손에 끌려갔다.

버둥거리는 다리가 나무 바닥을 쓸었다.


‘어어억!’


밖으로 나가자, 눈이 아리도록 환해졌다.


광장이었다.


‘환생?’


소년의 기억이 스친다.

아비였던 인물은 저 높은 장대 위, 목이 매달린 채 죽어있었다.

시체가 흔들렸다. 힘없이 바람을 따라 돌았다.


“······.”


사람들이 가득 모인 광장.

그들 사이로 시끄러운 한탄이 오갔다.

까마귀들이 수없이 날아다녔다.

커다란 종소리가 게임 오프닝처럼 울려 퍼졌다.


‘···허.’


딱 봐도 다크 판타지.

난이도가 헬인 중세의 환생이었다.




***




얼핏 보인 단상 위 인물들은 수도사와 중세의 사병들.


“야~! 야! 얌마!”


거친 손바닥이 내 볼을 잡아챘다.

더러운 인상의 인물이 눈앞에서 돼지처럼 소리를 질렀다.

역겨운 입냄새와 침이 얼굴을 때렸다.


“내 말귀 못 알아듣나? 입 크게 벌리라고!”


머리가 윙윙 울렸다.

무조건 반사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이 개새끼가?!”


쫙! 쫙!


“어억!”


눈이 크게 떠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볼은 타는 듯, 입안에선 피 맛이 돌았다.


“입 벌리라고! 개새끼야!”


바보처럼 놀라, 뺨을 두 대나 처맞은 후에야 입을 벌렸다.


“좋아! 이빨은 멀쩡하군. 벗어라!”

“?”


‘···으아앗!’


우악스러운 손길이 내 옷을 벗겨버렸다.

놈은 내 뒷덜미를 잡아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 보시오.”


알몸이 된 채로, 목을 붙잡혀선 숨도 못 쉰 채 버둥거렸다.

밀려오던 수치심과 공포에 사고가 정지했다.

여긴 그냥 리얼 판타지, 게임 같은 중세였다.


“열 살? 열 살로 칩시다! 보시다시피 아직 여물지 않은 사내놈이고!”


마을 사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난 사지 멀쩡함이 전시됐다.

꼴은 앙상한 뼈와 가죽뿐, 멍과 학대의 자국만 가득했다.


“자! 사지 멀쩡하고, 손가락, 발가락 잘린 거 없고, 이빨도 이상 없소!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이가 데려가시오.”


단상 아래, 시민들의 욕 같은 고성이 터졌다.


“에이, 씨! 뭔, 뼈만 앙상하구먼!”

“가뜩이나 식량도 부족한데, 저딴 도둑놈의 자식 새낄 누가 데려가겠소!”

“잡아다 우리 집 종년한테 줘야겠구먼. 여기! 5쿠퍼!”

“잉? 손가락이 멀쩡하다면야, 난 8쿠퍼!”

“10쿠퍼! 내가 데려가지! 여관에서 물지게나 나르게 시켜야겠어!”

“물지게? 쯧쯧쯧, 이쁘장하게 생겼으니, 아주 그냥 응? 이야~! 그림이 보인다! 보여!”

“뭐? 뭔 그림이 보인다는 거야? 이 빌어먹을 새끼야! 네 마누라나 간수 잘해라. 어제 그 누구더라? 저 가죽쟁이 놈팽이랑-”

“이 씨부럴 새끼가! 너! 죽을래?”


쿠당탕!


한쪽에선 싸움이 벌어졌다.


“그래! 때려! 찍어!”

“죽여! 밟아! 그렇지!”


왁자한 시민들의 목소리를 뚫고 분명하게 들리는 탁성.


“여기! 1실버!”


그 탁한 목소리에 군중들은 일순 정지했다.


“누구요! 1실버?”


목덜미를 잡은 사나이가 날 흔들며 묻자, 군중들 사이로 키 작은, 수염 가득한 인물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왔다.

난쟁이였다.


“오! 바르딘! 정말 1실버에 이 아이를 데려갈 거요?”

“그렇소! 마침 대장간에 일손이 부족해서 말이지.”


군중들 사이론 뭐 저딴 놈에게 1실버냐며 투덜거리는 소리.

더는 응찰도 없었다.

날 잡은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데려가쇼!”


바르딘이라 불린 난쟁이가 손가락을 튕겨 은화를 날리자, 사내는 탁 소리를 내며 동전을 받는다.


“으앗!”


난 단상 위에서, 그대로 던져졌다.

난쟁이는 투박하고 두꺼운 손으로 날 받아 세웠다.


“어이! 돈은 충분히 낸 것 같은데! 그 넝마 같은 옷도 이리 주시오!”


사내는 대꾸도 없이 벗겼던 옷을 발로 툭툭 차 단상 아래로 떨어뜨렸다.

바르딘이란 난쟁이가 날 보며 말했다.


“입어라.”


아이의 옷. 거지가 따로 없었다.

헐렁한 옷은 잘 맞지도 않았다.

허리끈부터 단단히 묶었다.


난 빠르게 옷을 주워 입고 저 단상 위, 중앙에 매달린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내 의지는 아니었다. 소년의 본능이었다.


“···!!”


소년의 기억이 다시 스친다.

돈을 땄을 땐 그래도 괜찮은 사람.


- 크크크. 봐라. 이 아비가 얼마를 땄는지!


기억 속 남성은 오랜만에 돈을 땄다며, 한껏 흥분한 얼굴.

불콰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제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내일 떠나자. 이 지긋지긋한 마을도 이젠 안녕이다.


주입된 기억이건만, 가슴이 아렸다.

소년의 선명한 기억과 복잡한 감정이 나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슬픔에 잠식된 소년의 감정은 저 깊은 곳까지 가라앉았다.


습관적으로 난, 저 매달린 아비의 얼굴을 헛손질로 그렸다.

마음속 심상의 스케치북에 스케치했다.


“······.”


이렇게 한번 그려놓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 마법 같은 재능.


포토그래픽 메모리 (Photographic memory)


그게 내 유일한 재능이자, 삽화가가 된 계기였다.


이런 재능이 있어 공부를 하면 좋았겠지만, 이런 재능이 있는 놈이 공부를 할 리가 없다. 전생의 재능은 나에겐 결과적으로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였다.


스케치북에 그려진 인물은 목 매달린 모습이 아닌,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만, 가자꾸나!”


이제 이곳에서의 주인은 눈앞에 서 있는 저 난쟁이.

두툼하고 투박한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다부진 등을 따라 말없이 광장을 걸었다.

내 앞은 얼핏 봐도 대장장이의 등이었다.


날 바라보는 사람들을 지나쳐 군중 속을 빠져나왔다.

두툼하고 짧은 다리로, 아이처럼 뒤뚱거리는 난쟁이를 따라 걸었다.


골목을 돌고, 낮은 성벽을 지나쳐,

들판을 넘어 시골 산길을 한참 걸어 도착한 곳.


“저기다.”

“!!”


절벽을 끼고 있는 작은 오두막.

옆으론 폭포와 깨끗한 계곡물이 흘렀다.


이곳이 바로 그의 거처이자 앞으로 내가 지내야 하는 곳.


〖달빛 대장간〗의 처음 모습이었다.




***




“저···.”

“바르딘이라 부르거라.”

“감사합니다. 바르딘!”


넙죽 인사부터 박았다.

그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네 아비는 꽤 괜찮은 노름꾼이었다. 어제도 내 돈을 죄 따갔지만, 그래도 개평으로 2실버나 돌려주었지.”

“······?!”

“네놈에게 들인 그 1실버는 네 아비 개평의 개평이란다. 그 친구 상황은 안타깝지만, 욕심은 적당히 부렸어야 했다.”

“저는···.”


그는 손을 휙휙 젓고는 대장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만 됐으니, 떠나라는 신호였다.


난 우두커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그냥 놔 준다고?’


스쳐 갔던 소년의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딱히 의지할 곳은 없었다.

있다면 이곳뿐.


‘그리고 여긴 지랄 맞은 중세란 말이지···.’


지금 만난 저 난쟁이 외에는 답이 없었다.


‘혼자···.’


여기 아니면 난 거지 아니면 소매치기.

손바닥을 살폈다. 아이의 손. 기껏해야 열 살쯤.

나 같은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겨울이 오기 전 아사 엔딩이었다.


‘···살려면 여기뿐이야.’


대장간 안쪽을 기웃거렸다.


바르딘이란 난쟁이는 화로가 꺼지지 않게 장작 몇 개를 던져 넣더니, 문 앞에 서 있는 날 보며 말했다.


“빌붙을 생각일랑 말아라. 난 그렇게 한가하지도, 부유하지도 않단다. 너도 보다시피 난 한낱 늙고 쇠약한 난쟁이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괜한 짓을 했나 후회하는 표정.


책임도 지지 못할 길고양이를 데려왔다는 눈빛이었다.


‘미적거리다간 버려진다.’


지금 상황이라면, 버려지는 건 한순간.

난 빠르게 대장간을 스캔했다.


‘···음?!’


화로와 모루, 목공용의 책상들.

기이한 문양의 도안들이 보인다.


‘뭐지?’


마법진처럼 생긴 도안들을 내가 바라보자, 바르딘은 그 도안들을 황급히 치워버렸다.


“······.”


눈에 들어온 익숙한 소품 하나.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뭐라도 해야 했다.


‘될까?’


생각난 것을 던져 본다.

두 눈을 반짝이며 그에게 물었다.


“제안이 있습니다.”

“제안?”


너무 생뚱맞아서였을까.

그는 날 궁금하단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림을 그려볼게요. 한 번만 봐주세요.”


최선의 무기를 꺼냈다.


방금 본 마법진 같은 걸 그려보고 싶었지만, 꾸욱 눌러 참았다.

치우는 모습은 숨기고 싶다는 의사였다.

저걸 한번 보고 외워 그린다? 좋은 인상을 남길 거 같진 않았다.


대안으로 생각한 것은 저 풀무.


“그림이 마음에 드신다면, 이곳의 도제가 되도록 허락해 주세요.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당장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그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나에겐 벌써 도제가 셋이나 있다.”


침묵은 길었지만, 시선엔 망설임이 남았다.

답은 없었으나 이 역시 긍정의 신호였다.


‘도전!’


빠르게 행동했다.


바닥의 널빤지와 화로에서 타다 만 작은 목탄이면 충분했다.

손을 재게 움직여 그림을 그렸다.


‘이거라면···.’


사각사각. 사사삭.


지금 그리는 것은 대장간 화로 옆 소품.

아코디언처럼 생긴 삼각형의 커다란 풀무였다.




***




적막한 대장간엔 목탄이 나무를 긁는 소리만 들렸다.

그 모습이 궁금했는지, 바르딘의 짧은 발이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허!”


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거꾸로 보고 있을 테지만, 입은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좋아.’


호감을 샀다면 되었다. 난 손을 더 재게 놀렸다.


사사사삭.


손에 잡힌 목탄이 신들린 듯 춤을 췄다.

지우개도 필요 없었다. 일필휘지다.

누가 삽화가 아니랄까 봐, 그림에선 마법처럼 풀무의 원리가 술술 풀렸다.


“허!”


그림을 보고 있던 그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그 웃음소리에, 나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무판 위엔 금세 사진처럼 정확한 풀무가 그려졌다.


성공!


‘여기에 아이디어를 덧붙인다!’


풀무 위쪽으로 벽을 따라 천장을 그렸다.

대들보엔 상상 속, 밧줄과 도르래가 묶여있는 모습이다.


“···흐음?!”


콧바람 소리. 그가 한 발 더 앞으로 다가왔다.


사사사삭!


밧줄은 풀무의 위쪽 손잡이에서, 천장의 도르래를 지나 다시 아래로.

그곳엔 그물과 돌멩이로 무게추를 달았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더하자, 기존의 손으로 움직여야 했던 힘겨운 풀무는 발로 밟는 디딜풀무가 되었다.


시골 비닐하우스 미닫이문에 다는 물 채운 페트병과 같은 원리.

중력이 자동으로 풀무를 들어주는 형태였다.


탁!


“끝난 거냐?”

“네! 다 됐습니다. 보세요. 아, 잠시만···.”


마지막 선 하나로 천장 들보에 손잡이를 그렸다.


“자자, 자···, 잠깐! 멈춰라.”


바르딘은 그림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상황을 살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머리가 복잡한지 손으로 이마를 탁탁 때렸다.

눈썹이 일자가 되며 내려앉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이렇게 만들어서 풀무를 발로 밟아라?!”

“네! 그게 편하잖아요.”

“저걸 보자마자 이게 생각난 거냐?”

“맞아요.”


꼬마로 보여도 내 전생에 그린 삽화만 수천 장.

그 삽화들 속, 풀무의 모습은 수십, 수백 가지로 응용이 가능했다.

이 중세를 스팀펑크로 바꿔도 자신 있었다.


“네놈. 아주 용한 재주를 가졌구나···. 정말 놀랐다.”

“그럼, 제안은 통과인가요?”

“커험!”


바르딘은 내 머리를 투박한 손으로 헝클었다. 어깨를 두드렸다.

입은 굳게 닫혀 있지만, 그의 눈은 보물을 만난 드워프처럼 웃고 있었다.


“이름이 뭐지?”

“태수요.”

“테르? 흠! 꼭 계집애 같은 이름이구나.”


‘태수’는 이곳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발음.

내 입에서도 태수가 아닌 테르가 튀어나왔다.


난 새 이름, ‘테르’를 얻었다.


“맞아요. 테르.”


앙다문 내 입엔 미소가 번졌다.

바르딘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은 생존.

살아남기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이곳에 빌붙어 살아남아야 했다.

속내는 말할 수는 없으니, 그가 원할 답을 고심했다.


바르딘이 숨겼던 마법진도 떠올랐다.

마법진이 새겨진 갑주를 만들어 입고 마법을 부리는 모습이 스치듯 지나갔다.


“마스터피스를 만드는···, 쇠를 다루는 장인이 되겠습니다.”

“···!!.”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얽힌다.

아니, 꼭 동공에 지진이 난 듯 떨렸다.


“끄흐흠. 좋다. 테르! 네 놈은 내 네 번째 도제다.”


나는 그렇게,

이곳, 〖달빛 대장간〗의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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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통수 +9 24.04.14 13,846 329 18쪽
15 15화. 갑주(6) +13 24.04.13 13,953 328 17쪽
14 14화. 갑주(5) +12 24.04.12 13,961 349 18쪽
13 13화. 갑주(4) +23 24.04.11 14,443 338 19쪽
12 12화. 갑주(3) +7 24.04.10 15,196 355 15쪽
11 11화. 갑주(2) +10 24.04.09 15,211 389 14쪽
10 10화. 갑주(1) +19 24.04.08 15,654 371 17쪽
9 9화. 화살(3) +10 24.04.07 16,011 381 16쪽
8 8화. 화살(2) +8 24.04.06 16,511 381 13쪽
7 7화. 화살(1) +21 24.04.05 17,128 401 20쪽
6 6화. 마녀(2) +16 24.04.04 17,506 427 13쪽
5 5화. 마녀(1) +15 24.04.03 18,266 434 17쪽
4 4화. 도제(3) +12 24.04.02 19,635 434 20쪽
3 3화. 도제(2) +12 24.04.01 19,721 436 13쪽
2 2화. 도제(1) +12 24.04.01 21,603 448 16쪽
» 1화. 달빛 대장간 +21 24.04.01 27,011 50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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