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갑주(4)
< 13화. 갑주 (4) >
기사 카일락은 바르딘의 안장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못 보던 안장이로군.”
“아하하. 짐이 많아서요.”
스승님의 안장은 혹 기술이 유출될까 긴 천으로 덮어둔 상태였다. 모르고 보면 짐 위에 안장을 올린 모습이었다.
“다 모인 듯한데, 슬슬 출발하지?”
“예!! 출바알!!”
평기사라 하여도 카일락은 기사였으니, 자연스럽게 그가 무리의 대장이 되었다.
숲은 위험하다.
‘마령’이라는 이름도 그 위험을 암시했다.
마녀는 굳이 숲의 마물을 물리쳐 주지 않았다.
오히려 마물은 숲과 그 숲의 마녀를 지켜주는 가드였다.
그 가드가 손님과 도적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행은 평기사 하나. 감독관인 슈나드와 그가 고용한 길잡이, 가드 용병 셋, 거기에 나와 스승님이 합류해 총 여덟 명.
용병은 방패병이 하나에 쇠뇌과 활을 든 궁사가 둘이다.
“어이! 이봐! 난쟁이!”
“예. 기사님.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그가 나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묻는다.
“옆의 저 새끼는, 그놈 새끼인가?”
“예?”
“그 도박장에서 장난질 치다 죽은 그 빌어먹을 놈의 애새끼 아니냐고!”
“하하하하. 맞습니다.”
“그래? 그거참, 이상하군!”
“어찌 그러십니까?”
“그날, 자네도 그놈에게 잔뜩 잃지 않았나! 내 기억으로는 그런데···, 기억이 잘못됐을 리는 없고! 아니 그런가?”
그의 눈매가 날카롭다.
“···예. 저도 그 친구에게 그날 개털이 되었지요.”
바르딘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카일락은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그래서 말이야.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놈이 그날 딴 돈을 모두 물고 죽었거든. 이상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놈 새끼를 자네가 주워다 제자로 들였다라! 하! 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아. 저를 의심하십니까? 흐음.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날 제가 돈을 다 잃고 그 술집에서 나왔을 때···”
바르딘은 기사에게 내 죽은 아비와의 개평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개평으로 받은 2실버가 저 꼬마를 살리는 보답이 되었다는 이야기.
“개평의 개평이라. 흠. 자넨 그래도 낭만이 있군.”
“하하하. 드워프의 치기일 뿐입니다. 거저 얻은 돈은 그냥 먹으면 뒤가 구리거든요. 드워프 속담에 ‘곡괭이질 없이 주운 마석은 저주와 같다’는 말이 있지요.”
“꼭 나 들으라 하는 소리 같은데···. 맞나?”
“하하하 설마요. 기사님이 편해야 우리도 편한 게 아니겠습니까. 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요.”
“드워프 치곤 달변이로군. 아주 혀에 꿀을 발랐어.”
“하하하. 꿀보다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
뒤를 돌아보는 카일락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이. 꼬마야!”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넌 네 아비가 꽤 많은 돈을 숨겼다는 걸 아느냐?”
“······.”
“그 돈의 원래 주인은 나였다. 혹여라도 그 돈을 찾아낸다면 나에게 바쳐라. 내 너에게 그 돈의 절반을 주마. 어떠냐.”
어쩌라는 거지?
뭔 말도 안 되는 씻나락 까먹는 소릴 하고 있어?
내가 느낀 첫인상은 미련이 많은 놈이 심히 질척거린다는 느낌.
그의 시커먼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난 앞서가는 그의 뒤통수를 보며 생각했다.
‘꼴에 기사라고···.’
평민이 기사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말 검술 실력이 출중하고 뛰어나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경우.
당연히 오러를 다루는 일류 검사여야 한다.
검술을 배우기 위해 뛰어난 기사를 사부로 모시고 어린 종자부터 시작하는 이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적당한 돈과 운으로 공을 사는 행위.
출세와 처세에 그보다 전통적인 방법은 없었다.
용병으로 시작해 전장에서 기회를 잡거나 적장의 목을 사 포상으로 기사가 되는 경우였다.
‘···전직 용병.’
말하는 폼을 보면 그 출신을 알 수 있었다.
기사직을 샀다면 투자한 만큼 뽑아야 할 테니, 돈 냄새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쑤시고 다녔을 터였다.
바르딘은 혹여 내 마음에 작은 상처라도 입었을까 안절부절.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나도 스승님을 향해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저 언덕만 지나면 마을이다. 오늘은 거기에서 쉬고, 내일 마령의 숲으로 들어가겠다.”
우린 북쪽 마령의 숲에 다다르기 전, 그 초입에 있는 세렌 마을에 도착했다.
50여 가호가 있는 작은 산골 마을로 원형의 목책으로 둘러싸인 모양.
그 끝에는 숲으로 통하는 긴 도개교가 있다.
마을과 숲 사이엔 깊은 계곡이 흘렀다.
시원한 물소리
-콰과과과!
“꽤 깊군.”
“저 다리는 오전 일찍과 저녁 해가 떨어질 때, 하루 딱 두 번만 내려온다고 하는군요.”
깊은 계곡이 마을을 숲의 마물에게서 지켜준다고.
살펴본 도개교는 말 한 마리가 겨우 통과할 폭이었다.
슈나드는 마을을 쭉 둘러보더니, 한시름 놓았다며 입부터 털었다.
“계곡이 그래도 폭이 있으니, 마물이 내려오진 못하겠군요.”
“와 봤자지! 오면 뒈지기밖에 더하겠어?”
마을은 목책을 둘러 작지만 튼튼한 성.
망루 위엔 커다란 발리스타도 보였다.
중앙의 높은 망루엔 두 명의 보초가 항시 숲을 관찰했다.
혹여 있을 마물의 공격을 대비한 모습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마을의 여관에 들러 짐부터 풀었다.
***
“뭐요? 80쿠퍼?”
“어쩌겠소. 방이 없는걸.”
여관 주인의 말에 바르딘은 잔뜩 찡그린 얼굴.
슈나드, 이 개새끼는 기사 카일락과 자신, 길잡이와 용병 셋의 방만을 계약했다.
당연히 우리 몫도 그가 내야 맞았지만, 자신은 계약상 물품만 맡았다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아마도 우리를 위한 비용은 장부에만 적힌 채, 놈의 주머니로 들어가리라.
“···제대로 당했구나.”
마구간이라도 빌릴까 싶었더니, 주인장이 내놓은 대답이 1박에 80쿠퍼.
파르마덴 성의 괜찮은 여관도 하루 4~5쿠퍼인 상황에서 저 금액을 부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딱 봐도 슈나드와 여관 주인이 말을 맞추고 우리 돈을 뜯을 계획임이 분명했다.
“하. 이렇게 나오시겠다?”
“어서 다른 곳을 알아봐요.”
“그래. 그래야겠구나.”
우린 여관을 나와 마을을 한집, 한집 수소문했다.
난 내 전생, 스케치북 하나 들고 여행 다닐 때의 경험을 살렸다.
아이의 천진난만함을 무기로, 목소리의 톤을 높여 밝게 인사부터 던졌다.
“실례합니다. 안녕하세요?”
“?”
“혹, 하룻밤, 신세를 져도 되겠습니까?”
“뉘슈?”
이럴 땐 표정이 중요하다. 자신감도 무기. 밝은 목소리도 한몫한다.
귀엽게 생긴 아이가 늙은 난쟁이를 위해 방을 찾으니,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마녀를 찾아간다는 이유도 주요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마침 방이 하나 비는군요.”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뭘, 사례까지야···.”
마을의 약초꾼의 집.
꽤 그럴듯한 방을 얻었다.
우린 5쿠퍼에 풍족한 식사까지 대접받을 수 있었다.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쥐여주었다.
여관에 묵는 것보다 오히려 좋았다.
“감사합니다. 근심을 덜었습니다.”
“하하하. 무얼요. 나샤이데 님을 찾는 손님이신데,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숲의 신 실마란 님의 축복이 여러분을 이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편하게 지내세요.”
이곳에서 마녀의 평판이 어떤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우리를 상대하는 집주인은 약초꾼, 몇 번이고 나샤이데 님에게 목숨을 빚졌다며 그녀와의 일화를 늘어놓았다. 혼자 흥분해 식사 내내 떠들었다.
나는 어른들의 대화에 끼기보다는 벽난로 앞 그 집 여섯 살 딸아이와 놀아주었다.
“오빠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응!”
곱슬머리에 통통한 볼, 너무도 귀여운 소녀.
벽난로의 꼬챙이를 불에 달궈 작은 나무판에 그림을 그렸다.
소녀는 그 선물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는지, 나무판을 들고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선물을 자랑했다.
“엄마! 이거!”
“어머나! 여보, 이것 좀 보세요.”
소녀의 초상화를 본 약초꾼과 그의 아내는 너무나 멋진 선물을 받았다며, 나에게 작은 꿀단지를 선물했다.
아침이 되자 우린 부드러운 빵 위에 꿀을 바른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근래 먹어본 음식 중 가장 맛난 요리였다.
일행을 만나기 위해 여관으로 돌아가자, 슈나드는 잔뜩 벌레 물린 얼굴로 온몸을 긁으며 우리를 맞았다.
길잡이는 어디서 처맞았는지, 눈 한쪽이 시퍼런 채 말을 끌고 나왔다.
“서두릅시다. 곧 다리가 열릴 겁니다.”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기사 카일락은 못마땅한 얼굴로 무리를 이끌었다.
그 또한 온몸을 긁고 있었다.
“카악! 퉤! 씨부럴! 출발해.”
구구구구구.
깊은 계곡을 넘치게 흐르르 급류.
그 위에 걸린 도개교는 시간이 되자 북쪽 마령의 숲으로 다리를 내렸다.
20명 가까이 되는 약초꾼들이 먼저 한 명씩 다리를 건넜다.
우릴 재워주었던 약초꾼도 손을 흔들며 앞서 숲으로 들어간다.
“자. 우리도 가자.”
다각, 다각, 다각, 다각
선두는 길잡이와 기사 카일락, 그 뒤로 슈나드와 용병들.
우린 가장 후미에서 천천히 일행의 뒤를 따랐다.
풍이는 처음 보는 거대한 숲의 모습에 불안한 듯 연신 코카트리스의 머리 깃을 흔들며 주위를 경계했다.
***
-꾸까까까까
-뾰로롱, 뾰롱.
숲은 아름드리, 검은 오크나무의 산.
수백 년은 됨직한 굵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얇게 사선으로 떨어지는 햇볕은 묘한 방향감을 만들었다.
이 수직과 사선의 구조는 이상하게도 방향감각을 비틀고 흩어냈다.
“좀 으스스한데요?”
“이 방향이 맞긴 한 거야?”
“마··· 맞습니다.”
간간이 보이던 약초꾼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어둠침침한 숲길.
길을 표시한 비표도, 선행자의 발자국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숲이 점점 깊어지는데, 혹여라도 마물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길잡이는 장담하듯 말했다.
“이··· 이쪽 길은 마녀가 다니는 길이거든요. 괜찮을 겁니다.”
“겁니다?”
“괜찮습니다. 확실해요!”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자, 경계심 강한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길잡이는 자꾸만 양피지 지도를 꺼내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이! 진짜 이 길 맞아?”
“마··· 맞습니다. 조···, 조금만 더 가면··· 물개처럼 생긴 바위가···.”
“물개 바위? 그건 아까 지났잖나?”
“예? 분명 이 길이 맞는데요?”
맞기는 개뿔.
물개 바위라면 진즉 지났다.
“길잡이라는 새끼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는 꼴이 상황을 짐작게 했다.
“이 새끼! 똑바로 말 안 해?”
“저···, 이 길이 맞는데···, 그게”
“하아! 어이, 너! 마녀의 집은 가본 적 있고?”
“무···, 물론이죠. 삼촌 따라서 제가 두 번이나···. 히힉!”
“뭐 이런 병신 같은 걸 길잡이로 고용했어?”
기사의 입에선 쌍욕이 터져 나왔다.
상황을 보니, 원래 가야 할 길을 한참은 벗어난 듯 보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꺄끄꾹!”
“꺄뀩! 꾸꺄꺄꺅!”
시커먼 나뭇가지 위로,
기이한 탈을 쓴 원숭이들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으악! 산고블린들이다!”
“이런, 씨부랄.”
“히이익! 산고블린이라면, 도망쳐야 합니다!”
“어디로요? 어디로 갈까요?”
“이 미친놈아!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네가 길잡이잖아!!”
“그쪽은 기사님이시잖아요!”
“뭐? 에라이! 씨불놈아!”
“컥!”
화가 잔뜩 난 카일락은 길잡이부터 걷어찼다.
옆구리를 차인 그는 겨우 말에서 버티며 떨어지진 않았다.
위를 보며 궁수들이 말했다.
“쏘··· 쏠까요? 쏴요? 쏩니까?”
“기다려! 공격이 오면 그때 받아친다. 괜히 자극하지 마!”
위기를 느낀 말은 연신 투레질. 제자리를 돌았다.
나무 위에 보이는 놈들은 서른 마리 정도.
어디서 모이는지, 자꾸만 그 수가 불어난다.
“꾸꺄꺄꺄!!”
험악한 소리를 내며 모여 우리 쪽을 노려보았다.
손엔 사냥꾼이 쏘았던 화살이나 녹슨 창, 짧고 조악한 단도. 허접한 돌칼이다.
저런 무기라면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으로 골로 가는 건 시간문제.
“저···, 저놈들 자꾸 가까이 오는데요?”
“진정해. 자극하지 마!”
“아니, 그···, 그래도.”
“아! 씨발, 하지 말라니까! 치우라고!”
툭.
긴장된 상황에서 부딪힌 쇠뇌.
퉁!
“히익!”
궁수의 명백한 오발이었다.
갑자기 쇠뇌의 볼트가 날아갔다.
쏠 의도는 없었다. 갑자기 튀어 나간 볼트엔 용병이 더 놀랐다.
불행인 것은 그 볼트가 앞선 산고블린의 어깨를 뚫었다는 것.
-꺄꺄악!!
“개새끼야! 자극하지 말라니까!”
“아니, 왜 쇠뇌를 건드려서···.”
“치우라고 말했잖아! 치우라고!”
하지만, 늦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간다.
-꾸꽈깍깍까!!
-꽈아악!! 깍꽉!
“···허! 씨발!”
가면 쓴 원숭이들이 빠르게 산개했다.
상황이 익숙한 듯 우리를 포위할 모양.
사냥의 시작이었다.
“저저저저···.”
“좆됐다!”
“개씨부럴! 길이 어디야! 야! 길잡이! 이 개새끼야! 정신 안 차려?”
“도망쳐야 해요!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고요! 빨리 산을 내려가야···!”
“어으으아악! 포··· 포위된다!”
“도망치라고요! 에이! 씨발. 난 몰라!”
길잡이가 먼저 말을 돌렸다.
비명을 지르며 급하게 산을 달려 내려간다.
“으악!”
그 성급함이 화를 불렀다.
급한 마음에 당긴 고삐에 자세가 무너지며 말과 함께 땅을 굴렀다.
“아악!”
내리막길이 그래서 위험한 거다.
길잡이는 어딜 잘못 떨어졌는지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팔도 기이한 방향으로 꺾였다.
말도 다리가 부러졌는지 일어나질 못했다.
“하! 저 병신 새끼···.”
“어쩌죠?”
“야! 방패 이리 줘!”
“예? 그럼, 저는요?”
“나무 위에 놈들을 네가 어쩔 건데? 방패라도 던질 거야?”
카일락은 용병의 방패부터 빼앗았다.
빈손이 된 방패 병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
“···이, 무슨!”
방패를 빼앗긴 이상, 방패병 입장에선 죽은 목숨이었다.
다급한 상황에서 저 엿 같은 평기사와 대거리를 할 수도 없는 노릇.
궁여지책으로 생각난 것이 뒤에 매단 성주의 갑주.
그는 다급하게 귀한 갑주를 양손으로 꺼내 들었다.
스승님은 침착하게 등 뒤의 도끼를 들며 말했다.
“테르, 넌 내 뒤에 단단히 붙어 있거라.”
“네.”
사방이 산고블린이었다.
가지 위에서 우릴 향해 고함을 질렀다.
카일락은 그래도 기사랍시고 빼앗은 방패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저쪽! 여길 벗어난다! 출발하면서 접근하면 쏴!”
-꾸꺄꺅!
쏘라는 명령에 먼저 반응한 것은 산고블린이었다.
놈들의 무기가 마치 폭우처럼 우릴 향해 쏟아졌다.
어설픈 투척이었지만, 그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피해!”
“히이익!”
기사는 자신과 자신의 말만 방어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를 따라 슈나드가 튕기듯 달렸다.
두 궁수는 쏘라는 명령에 위쪽을 보고 있다가 기사가 앞서 달아나자 기겁하며 뒤를 쫓았다.
“우리도 가자!”
“네!”
우리가 탄 코카트리스는 눈치가 빨랐다.
고삐를 움직이지 않아도 스스로 도주로를 선택했다.
재빠르게 위기를 피하며 무리를 따라 달렸다.
사방으로 나뭇가지와 화살들, 날붙이들이 날아왔지만 쉽게 피하며 달린다.
그래도 몇몇은 머리 위로 떨어졌다.
‘풍아!’
-푸아!
후우우웅!
풍이가 날아올랐다.
스습! 휘이잉!
머리 위에서 큰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놈들이 날린 창과 화살은 바람의 힘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좋아!’
멀리, 찢어지게 들리는 뒤쪽의 비명.
“으아아악! 사람 살려!”
“히이이잉!!”
공격을 피하지 못한 길잡이와 말의 비명이었다.
일행은 그 비명에서 벗어나려는 듯 더욱 힘차게 박차를 가했다.
***
어디로 달리는 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숲을 달리길 한참.
기사 카일락이 선택한 방향은 결과적으론 최악수였다.
어쩌면 산고블린이 우릴 그쪽으로 가도록 의도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익! 저···, 정지!!”
“헉!”
숲인 줄 알았던 곳은 넝쿨이 가득 달린 돌벽.
전방이 길게 막혀 있었다.
우리는 높은 돌벽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뒤쪽에서 빠르게 우릴 따라오던 산고블린들은 재빠르게 자세를 잡으며 우릴 포위했다.
다시 나무를 타고 올랐다.
“하아. 씨바알!!”
“헉헉헉헉. 이···, 이젠 어찌합니까?”
“마···, 말에서 내려! 말을 방패로 버텨라! 몇 놈이든 다가오면 죽여! 기세를 잡으면 저놈들도 물러갈 거다!”
“뭐로 싸우라고요? 저놈들! 나무 위에 있잖아요.”
“아, 씨발!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돌이라도 던져!!”
“······!!.”
나뭇가지 위에도, 그 아래에도, 놈들이 빽빽하게 우리를 둘러쌌다.
그 거리를 천천히 조여오고 있었다.
-꾸꺄꺄꺄!
그리고 강하게 올라오는 피비린내.
저 뒤쪽엔 벌써 해체를 했는지 말의 머리가 둥실둥실 떠오듯 움직였다.
분명 저 말은 길잡이가 탔던 하얀색 말이었다.
“뭘 구경하고 있어! 쏴!”
“이익!”
-퉁!
-투웅!
두 궁수가 몇 발의 화살을 쏴 봤지만, 소용없었다.
놈들은 재빨리 몸을 숨기거나 땅을 굴러 화살을 피했다.
방금 잘린 말머리가 긴 혀를 내민 채 놈들의 앞까지 옮겨졌다.
“끼뀍!!”
그게 신호였을까! 순간 공격이 쏟아졌다.
동시에 내 앞에 있던 풍이도 날아올랐다.
-푸아아!
휘후우우웅!
놈들의 조잡한 무기들과 발밑의 낙엽이 함께 날아오르며 얽혔다.
날아왔던 무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양옆으로 흩어졌다.
파바바박!!
“까악!”
그때 들린 커다란 까마귀 소리.
귀를 찢듯, 천둥이 치듯 공간을 울렸다.
!!’
순간 무언가가 바뀌었다.
갑자기 찾아든 정적.
“?!”
“······.”
무언가가 나무 위로 날아왔다. 툭 떨어졌다.
“어?”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까마귀(?)가 우리와 산고블린 사이로 두 날개를 펼치며 자세를 잡았다. 둘 사이를 갈랐다.
‘사람?’
실상은 누군가가 커다란 망토를 양손으로 펼친 모습이었다.
“꾸엑꿐!!”
“꾸끽!”
산고블린들은 공포에 질려 그대로 달아난다.
마치 몰려왔던 검은 파도가 삽시간에 빠지듯 사라져 버렸다.
“···?!”
“무슨···.”
그 까마귀 형상이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그 인물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녀님?”
“나샤이데?!”
마령 숲의 주인
그녀의 불편한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 작가의말
표지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표지는 레오나르도 AI에 인터넷에 떠도는 무료 마법진 이미지를 합성했습니다.
주인공 '테르'의 모습이 잘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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