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작은 희망(1)
< 19화. 작은 희망(1) >
파르마덴 성
사병관의 지하에 위치한 일반 감옥.
초췌한 얼굴의 노인이 겁먹은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10분 안에 나오슈!”
“아··· 알겠습니다.”
철문 앞, 문지기가 문을 열어준다.
안쪽 감옥엔 징병관에게 잡혀 온 사람들이 넘치고 있었다.
중앙의 복도, 간수는 테이블에 발을 올린 채 손을 까딱거렸다.
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돈을 건넸다.
“···여기, 여기 있습니다.”
2실버를 건넨 노인은 불안한 얼굴.
간수가 비릿한 웃음으로 묻는다.
“이름이?”
“뉴몬 마을의 마르티스입니다. 나이는 서른둘이에요. 왼쪽 눈 밑에 큰 점이 있습니다.”
간수가 안쪽을 보며 소리쳤다.
“야! 가서 찾아와!”
“예!”
다른 간수가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 속에서 마르티스를 찾았다.
“마르티스! 이 안에 마르티스라고 있나?”
“네. 여기!”
“당장 튀어나와!”
“···예.”
지금은 9월.
한창 수확기인 계절이었다.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은 이렇게 징병관이나 간수에게 돈을 주고 가족을 빼 오는 것에 힘을 쓸 수 있었다.
어차피 나이가 많아 원정군으로 끌려갈 일은 없었지만, 먹고 자는 것이 불편한 이런 추운 바닥에서 3일만 굴렀다간 큰 탈이 날 터였다.
특히, 집안의 가장이라면 당연한 처사.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병적 심사가 있기 전 이렇게 웃돈을 주고서라도 빼내야 했다.
“아버지!”
“오! 어서 나오너라!”
가난한 소작농의 경우, 끌려온 이들은 심사를 마칠 때까지 붙잡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잡혀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은 웬만하면 다 원정군으로 배속되었다.
이후 병적에 이름이 오르면 저 서쪽 전장에 끌려가 죽는다고 봐야 맞았다.
“어이. 운 좋은 줄 아슈! 야! 여기 둘 나간다!”
“······.”
눈으로 욕을 하던 마르티스가 노부의 손을 붙잡고 감옥을 나섰다.
간수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
“크흠. 2실버는 너무 싼 거 아니냐?”
“금액이 너무 많아도 안 돼. 놈들이 포기하거든. 적으면 또 우리가 손해고, 딱 그 정도가 적당한 거야.”
“어? 저기 한 놈 또 온다.”
다른 노인이 들어와 돈을 건네고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시트르 마을의 필립이란다. 꺼내줘.”
필립이란 청년이 끌려 나온 모습을 보며 문 앞을 지키던 간수는 눈을 삐뚜름하게 떴다.
“어? 이 새낀 안 되겠는데? 너무 젊잖아!”
“어쩔까요?”
“다시 처넣어. 돈은 돌려줘라. 아니, 이리 가져와.”
2실버를 주머니에 챙긴 간수는 청년의 아비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걸며 조용하게 말했다.
“이보슈. 애가 너무 젊잖아. 나도 빼주고 싶긴 한데, 이러면 곤란해. 다들 눈치가 있지!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그···, 그러면 어떻게···.”
“보슈, 지금 분위기라면 병신이 아닌 이상 징병을 피하기는 힘들다는 거요. 나도 수를 써볼 테니까, 위에 놈들 기름칠 좀 하게 10실버만 만들어 봐요. 알겠소?”
노인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예? ···예예. ···돈은 어떻게든 마련할 테니, 우리 아들놈! 꼭 좀 빼주십시오.”
“그래. 알았으니까. 얼른 준비해서 데려가쇼. 미적거리다 심사 끝나고 병적에 이름이라도 오르면 그땐 내 빼주고 싶어도 빼줄 수가 없다니까? 그때 뺐다간 바로 탈영인 거요! 알죠?!”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부탁합니다.”
노인은 비틀거리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에겐 없는 살림에 장남을 구하려면 딸이라도 팔아야겠다는 생각만 스쳤다.
“으히휴~!”
울음 섞인 긴 한숨, 그래도 딸이 있어 다행이라는 체념.
노인이 빠져나가는 걸 바라보던 간수는 바닥에 침을 뱉곤 돌아서려다가 금속성의 발소리를 들었다.
문으로 성큼 들어오는 기사를 보며 크게 소리쳤다.
“오셨습니까! 기사님!”
그 목소리에 다른 간수와 사병들이 후다닥 자리를 정리했다.
테이블 위에서 급하게 챙기던 은화가 탱탱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음영을 걷어낸 인물은 기사 카일락.
그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하.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이!”
“······!!”
“삥은 눈치껏 해라! 다 보고 있으니까.”
“넵!”
“그리고 뒈지게 생긴 놈 있으면 미리미리 빼고. 여기서 죽는 놈 있으면 네놈도 뒈질 줄 알아. 알았어? 영주님도 다 보고 계시다.”
“넵!”
“몇 명 남았지?”
“삼백 조~금 넘습니다.”
“딱 백오십만 남겨. 그리고 지금 자진해서 원정군 신청하는 놈은 창이랑 방패 정도는 내준다고 하고! 물론 굶어 죽진 않게 적당히 밥도 먹이고 말이야! 알겠지?”
“넵!”
지금 이 엿 같은 상황은 여기 있는 간수도, 징병관에게 잡혀 온 이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단지 자신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원정군이 완비될 때까지, 징병관을 피해 숨어지내면 되었다.
이 사달도 다 지나가는 일. 뻔히 잡힌 사람만 병신이 되는 세상이다.
그걸 피하지 못해 잡힌 것에 분통만 터질 뿐.
“돈은 얼마나 모았냐.”
“이백칠십 실버 조금 넘습니다.”
“하아! 고작 그뿐이야?”
“그래도 아직은 여유가 있습니다. 며칠만 지나면 조금씩 달라질 거고요. 금액도 슬슬 올려보겠습니다.”
“적당히 해, 적당히. 독하게 몰았다간 뒤통수에 짱돌 날아올 테니.”
“하하. 알겠습니다.”
그는 자루에서 한 주먹의 은화를 집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고생했으니, 한 잔씩들하고. 술 취해서 사고 치진 말고.”
“크흐흐. 감사합니다!”
카일락은 이렇게 수거한 돈 자루를 들곤 감옥을 나왔다.
광장을 지나 집무관으로 향하는 길.
“어?”
익숙한 모습의 난쟁이와 소년이 보였다.
“어이! 난쟁이!”
“어이쿠! 기사님!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마녀는 잘 만났나? 그 양피지는?”
“아. 예. 어찌어찌 다시 구하긴 했습니다.”
“그래? 그거 잘 됐군. 흉갑을 받으러 왔나?”
“예. 맞습니다. 이제 고쳐 봐야지요.”
그는 따라오라는 제스처와 함께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광장에 들어섰을 때.
-휘이잉!
“어이쿠! 씨발!”
그는 깜짝 놀란 얼굴, 작게 소용돌이치는 모래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못 볼 걸 봤다는 듯 긴 한숨에 떨기까지.
‘풍아. 그만!’
카일락은 풍이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하아. 씨발. 간 떨어질 뻔했네.”
“어찌 그리 놀라십니까?”
“어, 그···. 이봐, 난쟁이! 혹시 정령의 저주에 대해서 좀 아나?”
“예? 정령의 저주···라 하시면···, 저는 금시초문인데요?”
“그, 그···렇군. 알겠네. 일단 따라오게.”
다시 걷기 시작한 카일락.
나와 스승님은 서로 눈을 맞췄다.
그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았다.
내 미소를 보며 스승님은 손가락을 입에 대며 함구령을 내렸다.
***
슈나드에게 받은 성주의 흉갑은 예전 상태 그대로였지만, 그가 구해 주기로 약속한 마력석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그 상태가 무색의 마력석이거나, 안쪽에 약하게 노란빛만을 띤 하품 중에서도 최하품이었다.
“아니, 이런 싸구려 마력석으로 어떻게 마력 화로에 불을 붙이라는 말인가?”
“나야 모르죠. 구해달라고 해서 구해 준 거 아니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는데 이렇게 불평이면, 나보고 어쩌라는 겁니까? 미리 품질에 대해서도 이야길 하셨어야지!”
“허어. 어찌···.”
“그리고, 정령석은 어쩔 거요.”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마녀를 다시 만났잖아요. 정말 마녀가 그 정령석을 구해는 준답니까?”
“난 모르는 일이네.”
“크흠. 그럼, 마녀는 언제 온답니까?”
“갑주의 수리가 끝나면! 그때 마녀가 준 깃털을 태우라 하더군. 그러면 다음 날 방문한다고 했으니, 그때나 오겠지. 그리고 뭔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이 갑주를 물고 죽으면 그쪽도 저 광장에 함께 매달린다는 걸 잊지 마시게. 이딴 쓰레기로 장난질을 칠 거라면 내 자네 삼촌 대가리부터 반으로 깨고 성주와 독대를 하겠네!”
“거, 진짜로 한번 해보겠단-”
“왜 이리 시끄럽느냐?”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스메온이 나타나 사정을 듣곤 슈나드의 따귀부터 쳐올렸다.
“이 미친 놈이 누굴 죽일 작정이더냐! 성주께서 이 사안을 얼마나 중히 보시는데!”
“죄···, 죄송합니다.”
“바르딘, ···미안하게 되었소. 마력석은 내 제대로 된 걸 내어주지.”
“뭐, 그러시오.”
그렇게 받아낸 마력석.
이번엔 꽤 등급이 높은 상품이었다.
그 상황에서 집무실로 병사 몇과 사용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울상이 된 슈나드가 그들을 보며 묻는다.
“뭐야? 무슨 일이야?”
“벨라드 경께서 노예들을 챙기랍니다. 파올란 대공 전하께서 보상으로 이쪽으로 노예들을 잔뜩 보냈답니다.”
“음? 노예라니?”
“야만인 머리 여섯을 대공께 보내지 않았습니까?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던데요? 곧 벨라드 경께서도 내려오신다고 하니, 준비하시죠.”
“아···, 알겠네.”
얼떨결에 우리까지 합류하게 되어버린 상황.
우린 집무관 앞 광장 마당으로 함께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침 들어온 마차 여섯 대를 코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그곳엔 여섯 살에서 열 살 내외의 아이들이 새까맣게 창문에 붙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벨라드 경이 스메온과 함께 계단으로 내려왔다.
그는 노예 아이들이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처치 곤란한 부랑아들을 받았다는 뉘앙스가 역력했다.
“쯧! 전부 몇 명인가?”
“장부상으로는 백···이십 명입니다. 오다가 넷이 죽었다는군요. 그러면 백 하고도 열여섯입니다.”
“하아. 많이도 보냈군. 보내도 적당히 보냈···, 크허흠. 이보게, 스메온.”
“네. 성주님.”
“똘똘한 놈 열 만 골라 본부 시동으로 부리고, 나머진 적당히 시민들에게 경매로 처분하게.”
“예. 그리 정리하겠습니다.”
스메온은 성주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진 종소리.
광장 앞으로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스메온은 직접 적당히 똘똘해 보이는 열을 골라낸 후, 곧바로 남은 아이들을 경매에 부쳤다.
“자! 한 줄! 한 줄로 서! 이것들아!”
내가 바르딘에게 팔렸듯, 아이들은 손가락, 발가락과 이빨만 성하면 1실버 내외로 바로바로 팔려나갔다.
‘하···. 이놈의 중세.’
우린 코카트리스의 등 위에 짐을 모두 올리고, 돌아갈 준비를 끝냈지만, 광장의 인파가 빠질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내 시선은 단상의 아이들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
아이들이 모두 팔리고, 이제 넷만이 남았다.
팔 하나가 없는 아이.
눈 하나가 없는 소녀.
아사 직전에 허기져서 곧 기절할 것처럼 서 있는 두 아이는 쌍둥이이자 꼽추였다.
둘은 서로를 의지해 꼭 붙들고 겨우 서 있었다.
“자. 마지막이다! 이 넷, 다 합쳐서 1실버! 없어? 그럼, 팔십 쿠퍼! 에이씨! 오십!!”
그 넷은 거저 가져가라고 소리쳐도 모두가 피하는 아이들이었다.
“아니! 저런 병신들을 누가 데려갑니까?”
“그냥 버려요! 적당히 거지로 구르다 어느 순간 사라지겠죠.”
“사라지다니! 벌레도 살겠다고 바둥거리는 게 세상이야. 저놈들을 여기 풀어놨다간 뭘 훔쳐먹고 다닐지, 무슨 병을 퍼트릴지 어떻게 알고!”
“그럼, 어쩌자고?”
“어쩌긴! 죽 한 그릇도 아까운데, 안 팔리면 매달아야지.”
“이야아! 언제부터 네놈이 성주님 살림을 그렇게 걱정했었냐?”
“그렇게 불쌍하면 네가 사주던가! 계집에 처박을 돈은 있고, 저 반푼이들 먹일 돈은 읍지?”
아이들 넷의 눈이 공포로 물들었다.
사병들은 처치 곤란인 넷을 두고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난 땅에 박힌 듯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승님은 날 보며 묻는다.
“왜? 발이 안 떨어지느냐?”
“······!!”
그의 깊은 눈이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용맹한 기사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는 거란다.”
“하지만, 스승님은 절 구하셨잖아요.”
“그래! 그땐 그랬지. 그래도 넌 이빨과 사지는 멀쩡했지 않았니.”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단 사형의 이야길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대신,
“나샤이데 님도 부탁했었잖아요.”
“음···? 그 작은 희망 말이냐?”
“네.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어요. 그리고,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는 저 아이들을 구하고 싶어요.”
잠깐 생각에 빠진 바르딘.
“그래···, 네 말이 맞는구나.”
우린 코카트리스를 내려 단상 위 사병들에게 다가갔다.
<대장간의 바르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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