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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65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6.23 21:09
조회
292
추천
18
글자
11쪽

순율(恂慄)

DUMMY

청월루 최상층.


벽과 천장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냉파(冷波), 온기를 빼앗긴 습기가 결정을 이루며 파열하듯 팽창했다.


단 일격.


절정의 영역을 넘어선 고수가 검강의 힘을 빌릴지라도, 이만한 파괴를 벌이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외부의 열을 빼앗는 빙공의 성질을 고려하면, 순수한 물리력만을 발하는 강기와 제대로 된 비교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자신이 가진 힘과 그 특성에 대해 높은 이해도를 가졌음을 방증(傍證)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


그 강함 덕에, 지금껏 설하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다만···.


‘피했나? 애당초 맞긴 한 거야?’


자색장삼(紫色長衫)을 차려입은 청년.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단지 한쪽 다리를 세워 앉은 그 모습을 보며, 설하는 약간의 위화감을 느꼈다.


노회한 고수라 짐작했다. ‘천마’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았으니, 그 호칭에 걸맞게 세월로 제 스스로를 담금질한 무게감 짙은 자를 만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눈앞에 있는 이는 젊은 것을 넘어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이제 약관을 좀 넘겼을까. 양잿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피부가 하얗다. 아니, 그보단 창백하단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


기운 또한 이질적이었다. 저 몸 안에 진기가 돌고 있음은 분명했다. 으레 내공을 익힌 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불꽃 같은 열감이 뚜렷했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일반적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무림인이 자아내는, 거세게 타오르는 화마 같은 느낌하곤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환(丸)··· 그것보단 예리한 한 자루의 칼일까.


제 안의 열기를 그와 같은 형태로 압축하고 깎아내고, 또 벼려낸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의심하지 않았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너저분히 자란 머리칼 아래, 이쪽을 쳐다보는 심연 같은 눈동자.


마치 안구가 있던 자리를 파내고 어둠을 심은 듯한,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선.


그 시선이 전하는 음산한 감각 덕에 알 수 있었다.


자신보다 열 살은 아래로 보이는 이 시퍼렇게 어린 청년이, 정말 그 ‘천마’라는 것을.


- 아무렴 어때.


“인사치곤 약했지? 미안하다.”


생긴 대로 어리든, 소문대로 반로환동을 했든, 아예 인간이 아니든 간에 상관없었다.


적당히 맞붙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한다. 좀 재미있겠다 싶으면 이쪽에 붙는 것도 답이 되겠지. 별로라고 생각되면 아예 쓰러뜨릴 작정이었다.


‘이 정도쯤은 별것 아니지 않냐’, 그런 투로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제 자리에 앉은 그대로, 눈알만을 굴려 삐딱하게 이쪽을 쳐다보았다.


“사내자식이 되게 새침하네. 왜, 낯간지러워?”


피식하면서.


“아니면, 설마 이제 와서 여자한텐 손찌검 못하겠다, 뭐 그런 건 아니지? 소문 자자하던데, 사람 많이도 죽였다고.”


반응을 이끌어낼 심산으로 가볍게 도발해보았다. 젊은 애가 괜히 무게 잡으려 애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프구나.”


눈 한 번 깜빡 않고 뚫어져라 쳐다본 끝에, 나지막이 돌아오는 한 마디.


뜬금없는 내용, 거기에 자기보다 한참은 어리면서 말투는 어린애 타이르듯 하는 것이 우스웠다.


“뭐가?”


어깨에 힘이 좀 과하게 들어갔나 보다. 그리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반문했다.


“내가 못 해봐서 그런데,”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사람은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설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얼굴. 낯가죽 전체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뭐-”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거든. 죽이면 그걸로 끝이지, 굳이 번거롭게 시체 헤집으며 살가죽 뜯어먹을 마음은 든 적 없어서.”


반사적으로 새어 나온 황망한 물음에, 그는 성심성의껏 답했다.


“그래서 묻는 거야. 사람은 무슨 맛으로 먹는 거야? 애당초 맛으로 먹는 게 맞아?”


“-”


설하는 정적했다.


분명, 그와 자신은 오늘 처음 만났다.


그녀에겐 별호가 없었다. 자유롭게 방랑하는 데 있어 거창한 이름 따위 걸리적거리기만 할 거다. 애당초 이방인인 자신에게 그런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철저히 재야(在野)의 영역에 머물고자 했다. 그 제갈 쪽 꼬맹이처럼 이따금 자신을 알아보는 작자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 모두 강호 전체에 걸쳐 퍼진 정보통을 쥐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 알았지.


자신이 가장 감추고 싶었던 과거. 그것이 낱낱이, 여과 없이 헤집어진다. 지금 겨우 만난,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저 청년에게.


그러나, 그보다도.


설하에게 있어 끔찍했던 것은, 그가 말하는 태도였다.


어떠한 악의를 가지고 하는 비난이라면 모를까, 그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무구하게.


어린아이가 벌레를 잡아, 그 날개를 찢는 것처럼.


그저 ‘할 수 있으니까’ 할 뿐인, 그런 행동.


“말해보라고. 식인종으로 사는 건 무슨 기분이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기는 것 같았다. 직후,


콰직!


행동이 생각을 앞질렀다.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는 진각(震脚), 그에 순간 쩌적- 하는 파열음과 더불어 서리가 균열처럼 내리더니.


- 카드드득!!


가시가 자라난다.


빙백신공, 상리(霜履).


거꾸로 된 고드름이 바닥에서부터 빠르게 생장하는 것 같았다. 얼음으로 목책(木柵)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일까.


묵직한 냉파와 함께 치밀어 드는 얼음의 가시. 허나.


콰-앙, 하고.


즉시, 더불어 그제야 강우는 움직였다.


바닥에 놓여있던 웬 거무스름한 날붙이를 주워들었다. 동시에 작렬하는 횡 베기.


파공음이 터졌다.


대기를 밀쳐내는 압력. 검강의 물리력으로 빚어낸 그것에, 짓쳐들던 얼음 가시는 소리조차 묻힌 채 여지없이 부러지고 만다.


“······!”


밀려오던 한기를 허공째로 파쇄해냈다.


정신이 확 들었다. 제 분을 못 이겨 날뛰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위협적인 수준의 강기. 그리고 괴이한 형태의 무기.


그 쇳덩이의 모습은 대단히 괴상했다. 검게 변색된 칼 한 자루에 서로 다른 칼날 여섯 개를 억지로 접합시켜놓은 모양새였다.


‘쇳덩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도저히 검이라고 부를 수가 없는 꼴이었다.


“되게 새침하네. 왜, 낯 간지러워? 말 대신 손부터 나갈 정도로?”


경계 서린 설하의 시선. 그를 마주 보며 강우는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아, 지금은 발인가.”


- 아무렴 어때.


이번에는 의도가 확실했다. 노골적으로 성질을 긁었다.


자기가 하는 말에 상대가 불쾌할 것을 뻔히 아는 태도.


“···그건 또 뭐야, 겉멋만 잔뜩 들었네.”


저도 모르게 걸려든 장난질에 한껏 당한 기분이었다.


“그깟 장난감 들고 있으니까,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


유치하다고.


암만 무게 잡아 본들 그 생각도 행동도 얄팍하기 그지없다고.


적잖은 불쾌감에 설하가 그리 비아냥거리자,


“아, 그래?”


강우는 무심하게 대꾸하면서, 곧장 휙 하고 던졌다.


무기를 버렸다. 너무 순순히도 버려서 기껏 도발한 설하 자신도 잠시 당황할 지경이었다.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 그 생각을 낚아채는 것처럼,


“어-”


눈 깜짝할 사이.


그 찰나 간의 틈을 타, 훌쩍 거리를 좁힌 강우가 설하의 시야 가득 들어오더니.


확, 손아귀가 얼굴을 덮었다. 그대로 그녀의 얼굴을 악쥐었다. 무어라 반응할 새도 없었다. 곧장 가해지는 악력, 손가락에 걸리는 힘에 꼭 갈고리가 꿰들어 얼굴 가죽을 뜯어낼 듯하다가.




“우욱···!”


왼손.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만이 남은 그것이 복부에 장타를 꽂아 넣었다.


두 인체가 맞부딪치는 삭막한 소리. 내장에 가해지는 충격. 반사적으로 헛구역질이 나왔다. 안구가 빠질 것 같았다. 짧게 시야가 끊겼다.


뒤이어 그녀는 일 장(丈)가량을 미끄러지듯 튕겨 나갔다.


간신히 허우대만 남은 창틀에 걸려, 건물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면했다. 하지만 설하에게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다만 “우웩”, 또는 “켁”, 하는 기침을 게워내며 어떻게든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렇지, 잊고 있었어.”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강우는 중얼거렸다.


“저까짓 것이 없어도,”


멍하니, 꼭 자기 세계에 갇힌 것처럼.


“사람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데.”


그 말에.


설하는 온몸에 소름이 끼쳐 들었다.


곧장 이해되지 않는 감각. 무어라 말로 옮기기 어려운, 닿고 싶지 않은 혐오감.


마치··· 사람이 아닌 것이,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어떻게 인간을 흉내 내려 애쓰는 듯한 느낌.


-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는 제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약지와 소지, 잘려 나간 두 손가락이 있던 자리는 검은 천으로 감싸놓았다.


그를 쳐다보며 짧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치만 방금은 내가 좀 심했어. 그러니까.”


엄지를 접었다.


검지와 중지, 단 두 손가락만을 펴 보이면서.


“이 둘만으로 상대할게.”


이런 걸 보고 검결지(劍結指)라고 했던가.


무관에 다닌 것은 오래전의 일이었다. 옳은지 그른지 가물가물했다.


아무렴 어때.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이제부터 나만이 정할 텐데.


“그러니 가혹하게 대한다고 뭐라 하진 마.”


황망함.


당혹감.


그리고··· 두려움.


자신을 바라보는 설하의 시선에서, 강우는 다양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관심 없었다.


그야.


“어차피, 죽일 마음으로 왔잖아.”


- 피차.


강우의 그 말에 설하는 깨달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이 싸움이 어찌 끝난다고 한들 자신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했다.


저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과 마주한 그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에 괴로워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그를 마주했는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이리 걸음했는지도.


맹의 제안을 받고 그를 상대하고자, 더불어 작금의 강호에 있어 태풍의 눈이나 다름없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알아보고자 왔다는 것까지. 전부.


그래서.


“···좋아.”


그녀는 주먹을 악쥐었다.


고향을 떠난 이래, 지금껏 일관적으로 고수해온 초연한 태도. 그것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자신에게 그런 여유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이 순간 필요한 것은 어린 시절, 살아남고자 무엇이든 저질렀던 간절함.


“영광까진 아니더라도, 기억해둬. 내가 온 힘을 다해 상대하는 건.”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갖췄다. 감아쥔 두 주먹을 가슴께로 끌어올렸다.


까드드득, 하고.


그를 중심으로 서리가 내려앉았다.


“아버지 이래로, 네가 처음이니까.”


이어서.


하나의 유성처럼, 그녀가 그를 향해 진격하던 찰나.


휙 하고.


강우는 왼손의 수도(手刀)를 휘둘러 그녀에게 강기를 작렬시켰다.


작가의말

순율恂慄: 몹시 무섭거나 두려워 몸이 벌벌 떨림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언제나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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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율(恂慄) +1 24.06.23 293 18 11쪽
44 순연(恂然) +1 24.06.22 351 16 13쪽
43 순차(順差) +1 24.06.21 378 15 11쪽
42 순리(殉利) ※24/06/20(목) 수정※ +1 24.06.18 393 22 13쪽
41 순조(順潮) ※24/06/20(목) 수정※ +3 24.06.16 490 23 14쪽
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7 23 11쪽
39 순복(馴服) +4 24.06.14 735 27 13쪽
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6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1 28 11쪽
33 회한의 종막, 혹은 재탄 24.06.07 787 31 11쪽
32 퇴락한 꿈 +1 24.06.06 814 28 13쪽
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1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7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3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25 해(害), 이어서 해(邂) +1 24.05.30 901 31 11쪽
24 재(災), 이어서 재(齎) +3 24.05.29 953 31 11쪽
23 업(業), 더불어 업(嶫) +1 24.05.28 950 28 13쪽
22 절(切), 더불어 절(折) +2 24.05.27 996 30 14쪽
21 전(前), 혹은 전(戰) +1 24.05.26 1,037 29 12쪽
20 신(神), 혹은 신(信) +2 24.05.25 1,106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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