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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42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4 19:20
조회
1,088
추천
33
글자
11쪽

린(躪)

DUMMY

촤악!


잘려 나간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다.


체온이 서린 그 핏물에, 공기 중에 열감(熱感)이 퍼져갔다. 건조한 나무 바닥이 쏟아진 혈액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귀영객은.


“···흐으.”


한 차례 힘겨운 한숨을 내쉬었다.


강호에서 크게 이름을 떨친 낭인도 이만한 치명상에는 고통스러운 걸까. 그는 허리와 머리를 숙인 채, 단지 제자리에서 침묵했다.


그 앞에서, 강우는 다만 귀영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실망스럽다.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상대였나. 지금껏 죽여 온 이들처럼, 단지 원한을 태워 빚은 증오 앞에 스러질 자에 불과했나.


낙담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귀영객을 바라보는 강우의 시선은 더없이 냉담했다.


‘뭐.’


애당초 기대한 적도 없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죽이면 되는 것이다. 결론을 내린 강우가 낫을 들어 올리려는 그때.


“······!”


카앙!


칼날이 서로 맞부딪치며 거친 금속음을 토해낸다.


직전에, 강우는 보았다. 잠시 사그라드는 듯 보였던 귀영객의 투쟁심.


그의 가슴속에서 일렁이던 암녹색 화염이··· 다시금 맹렬하게 타오르던 것을.


“그, 으으.”


남은 오른손으로 대도를 틀어쥔다. 자세를 고치고, 귀영객은 내리쳐오던 강우의 겸을 배면으로 받아낸다.


회광반조(廻光返照).


그 가면 너머에서, 안광이 번뜩인다.


‘그래.’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그 모습에, 강우가 웃는다.


‘이래야 마땅하지.’


그간 상대를 조롱하기 위해 지었던 지독한 웃음이 아니라··· 만족감이 묻어나는 희열에 찬 웃음.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이라도 분명 이렇게 행동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귀영객의 그 집요함에, 강우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그는 감탄했다.


오직 무의 극만을 추구하는 그 마음은 혐오하지만, 싸움을 포기하는 대신 끝까지 달려드는 끈질긴 면모에···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그러니, 온 힘을 다해 짓밟아 뭉개줘야 하지 않겠나.


카드득!


대도와 겸, 두 날붙이의 마찰이 격렬한 소음을 일으킨다. 서로를 할퀴며 양쪽의 병장기가 떨어진다.


뒤이어 이어지는 것은, 몇 번에 걸친 충돌.


합을 나눈다. 그 양상은 방금까지 벌어진 치열한 사투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어디까지 받아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마치 그를 시험하는 것처럼, 공세를 점한 강우의 참격을 귀영객이 차례대로 받아치는 형세였다.


한 손만으로 다룬다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무거운 대도는 귀영객의 손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단 한 번의 머뭇거림도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는 검로.


막대한 중량을 역으로 이용한다. 완력을 써서 휘두른다기보단, 자연스레 생겨나는 원심력을 빌어 알아서 움직이도록 한다.


그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만 중심을 잡아주는 것뿐.


차곡차곡,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 노련함.


그것이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재주였다. 한낱 재능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질을 극한까지 벼려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서걱, 하고.


“흐···!”


살점이 베여나갔다. 더불어 신음처럼 짧게 숨을 내쉬었다.


이미 한쪽 팔을 잃었다. 간신히 방어만을 유지했을 뿐, 공세를 빼앗을 기회 따윈 잡을 수 없었다.


몇 번 합을 나누던 강우는, 너무나 손쉽게 왼쪽 허벅지를 베어냈다.


“으, 으윽···.”


진즉 기울어진 승부처럼, 한쪽 무릎을 꿇은 귀영객의 자세가 무너진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콰직!


역수로 쥔 대도를 바닥에 박았다. 사력을 다한 그 동작에, 나무 바닥이 맥없이 뚫린다.


그에 의지하여, 귀영객은 기어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그는 항복하지 않았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내보인다.


자신의 전부를 끌어내어, 부딪친다.


그래야··· 겨우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지.”


그 뜻을 읽고서, 강우는 입을 연다.


“그래야, 그대가 바라는 죽음을 받아 갈 수 있지.”


흐흐.


- 그렇고말고.


귀영객의 그 웃음은 꼭 그리 대꾸하는 것 같았다.


까, 가각!


두 귀신이 다시금 충돌한다. 금방이라도 그칠 듯 위태로우면서도, 어떻게든 기어이 이어 나간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쐐액.


그리고, 스각.


“욱···!”


오른 발목.


더불어 오른쪽 팔꿈치.


끝내 칼날은 사지를 그어냈다.


쿠웅!


그제야, 귀영객의 손에서 대도가 떨어졌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무기가 바닥에 널브러지자, 귀영객 또한 끝내 무릎을 꿇었다.


“흐으···.”


이젠 돌이킬 수 없다.


패배가 확정되었다. 가면 너머로 힘겨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발광하던 안광이 결국 잠잠해진다. 그 가라앉은 시선이 대도를 향한다.


한참이나 자신의 대도를 바라보던 귀영객은, 끝내 고개를 들어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서로를 마주했다. 그래서, 강우는 볼 수 있었다.


줄곧 귀영객을 태우던 투쟁심이, 마침내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것이 만족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체념일 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멋지군.”


한 마디.


그동안 내던 기합이나 숨소리 대신, 귀영객은 처음으로 강우에게 그 한마디를 전했다.


더불어 가면 속의 눈이 감겼다.


- 쳐라.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기에.


그는 그저, 내리치는 칼날을 조용히 받아낼 뿐이었다.


***


“아.”


적사회주 신천후.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던 강우와 귀영객의 싸움을 단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끝내 저 흉수의 칼날에, 참수당한 귀영객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신천후는 그저, 그 모든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쓰러진 귀영객을 보던 강우의 시선이 옮겨가자,


“아···!”


잊고 있던 현실감이 치밀어 들었다.


지금 사태가 어찌 돌아가는지를 깨닫는다.


이어서··· 묻어뒀던 두려움이 깨어난다.


“으, 아아···!”


잘게 끊어지는 비명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멍청하게 들렸다. 하지만 신천후에게 그런 사소한 문제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한 걸음.


흉수가 움직였다.


또 한 걸음.


이쪽으로 다가온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이쪽도 한 발짝씩. 일부러 그러던 것이 아니었다. 거진 반사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이었다.


“자, 잠깐만.”


그의 본능이, 말을 자아낸다.


“살려주게.”


입과 혀가 제멋대로 움직인다. 덜덜 떨면서도 더듬더듬, 가까스로 말문이 트인다.


“제발, 난···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 응?”


두려움에 사로잡혀 횡설수설한다.


품 안의 소도는 뽑아 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헛된 저항에 불과하단 걸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었기에.


그 대신 떠오르는 것은, 억울함.


“대체 왜? 난 자네가 누군지 알지도 못해! 도대체 뭔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자, 신천후의 머릿속엔 서서히 억울함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게 빚이라도 졌나? 나 때문에 가족이 죽기라도 했나?”


자그맣던 목소리를 높여간다.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날 이리 처박으려 드는 거야!”


목에 핏대를 세우고, 끓어오르는 한을 쏟아낸다.


“도대체 뭣 때문에!”


불합리하다.


인생 전체를 갈아 넣으며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결백하다곤 말할 수 없다. 이 강호에 몸담으며 원한을 살 짓은 많이도 저질렀다.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무엇이 목적이냐.


무엇을 바라는 거냐.


백무회를 파하고, 남궁의 방가를 멸문하고, 이젠 자신과 적사회까지 무너뜨리려 한다.


그렇게까지··· 남궁의 화를 사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앗아가고자 하기에.


“왜 날 죽이려 드는 거야, 이 미친 자야!”


뒷걸음질 치며 물러나길 거듭해, 신천후는 끝내 창가의 난간까지 내몰린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의 등 뒤에는 다만, 밤하늘의 허공이 있을 뿐이었다.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너무나도 두렵고, 너무나도 원통해서, 먹을 것을 빼앗긴 갓난쟁이처럼 울 것만 같았다.


사파의 수장이자, 안휘의 뒤편에서 군림하는 지배자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그저···.


“대체, 어째서···.”


힘없이 유린당하는 약자에 불과했다.


그동안 그가 착취해온 수많은 이들처럼.


“제발 살려다오···.”


그때.


눈물과 침으로 더러워진 얼굴로, 신천후가 애원하는 바로 그때에.


“난,”


강우는 다만 고개를 기울였고.


“당신을 죽이지 않아.”


더없이 평이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뭐?”


신천후는 반문한다.


흉수의 말은 너무나도 의외의 것이라, 도무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건 또 뭔 말인가. 나를 죽이기 위해 다가오던 것이 아니었나?


“그게 무슨-”


그러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신천후가 마저 입을 열길 무섭게, 강우는 냅다 그를 걷어차 버렸다.


“-윽!”


그 신음과 더불어 우지끈, 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난간이 부러진다.


시야가 뒤로 넘어가며 하늘이 보였다.


해가 저물어 반짝이는 별들이 보였다.


그 어두운 창공이, 아득히도 멀어진다.


이어서.


쿵!


“커헉!”


이룡각에서 추락한 신천후. 그는 갑작스레 밀려난 탓에, 낙법을 취하긴커녕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지도 못했다.


날 것 그대로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어디 하나 부러진 곳은 없었다.


‘이게, 뭔···.’


고통 속에 허우적대면서도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꼼짝없이 죽은 목숨인 줄 알았다. 헌데,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 아무렴 어때.


애써 의구심을 떨쳐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다.


흉수의 속셈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은 절호의 기회다.


그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신천후는 지금 남궁이 갖지 못한 정보를 쥐고 있었다.


괴이한 소문의 진상을 그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목격했다.


알려야만 한다. 결코 얕봐선 아니 된다. 이 사실을 전한다면 분명히 내게도 살아날 길이 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서둘러 도망치고자 몸을 일으키려던 그 순간.


“···아.”


고개를 든 신천후는,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만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유민 떼.


자신을 내려다보는 수백의 시선.


폭도로 변이한 그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난 당신을 죽이지 않아.’


흉수가 한 그 말의 실체를.


‘당신을 죽일 자들은 따로 있으니까.’


짐승 잡던 칼이 사람 베는 칼로 변해 있었다.


주린 탓에 들어간 눈이 살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아, 아아···!”


그것을 마주하고서··· 신천후는 겁에 질린 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다급하게 팔다리를 움직인다. 허둥지둥 대느라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한 채, 그는 처절하게 땅을 기며 도망치고자 했다.


허나, 그 간절한 발악조차 곧 그치고 만다.


몇 발짝도 가지 못하고 잡히고 만다. 발목과 옷깃, 머리칼과 팔, 그들은 가리지 않고 신천후의 온몸을 붙들었다.


최후의 순간.


적사회의 수장으로서, 일찍이 합비의 밤을 지배하던 자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오직 자신에게 닥쳐드는 수많은 손아귀뿐이었다.


작가의말

躪: 짓밟을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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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3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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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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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0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6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2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8 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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