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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화26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이렇게 천마가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공모전참가작

장연화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5.08 11:58
최근연재일 :
2024.06.27 22: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58,364
추천수 :
1,966
글자수 :
262,810

작성
24.05.25 19:10
조회
1,105
추천
36
글자
12쪽

신(神), 혹은 신(信)

DUMMY

신천후의 죽음.


그의 마지막 모습은 더없이 처참했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이들에게 짓밟히고, 얻어맞고, 썰리고, 또 베였다. 그 폭력의 세례는 목숨이 끊어지고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간신히 흥분이 가라앉고 사람들이 물러나자··· 드러난 광경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꼴이었다.


도저히 주검이라 부를 수도 없는, 한낱 천 쪼가리와 고깃덩이.


시뻘건 핏물을 굳혀 뭉쳐놓은 것 같았다. 그 끔찍한 ‘것’을 앞에 두고서··· 사람들은 그저 침묵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뒤늦게 곱씹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완벽히 변해버린 듯한 느낌.


아니, 그보다는··· 무언가를 ‘이뤄냈다’라는 느낌.


그 희열 섞인 성취감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고개를 들었다.


바람결에 실린 인기척. 그 막연한 감각을 따라 시선이 움직인다.


이윽고 그것이 다다른 곳은, 이룡각의 최상층.


창가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어둠이 깔린 밤하늘 아래에서도 그 모습은 잘 보였다.


장포 자락이, 얼굴을 가린 멱리가, 겨울 공기에 휘날리고 있었다. 일렁이는 그 모습은 마치 신기루 같았다.


분명 그곳에 있음에도, 도저히 닿을 수 없을 듯한 기이함을 자아냈다.


그자는 한 손에 겸(鎌)을 들고 있었다.


그자는 다만, 우리를 굽어살피고 있었다.


- 바로 저자다.


사람들 사이에서 깨달음이 퍼져간다.


이 땅에 변혁을 불러오는 자.


절대 풀리지 않으리라 여겼던, 우리의 원한을 풀어준 자.


우리가 섬겨 마땅할 귀인이자···.


죽음을 부름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을 내릴 자.


‘살신(殺神).’


그 순간.


누군가 머리를 숙인다.


가장 먼저 엎드린 자는 이번에도 창연이었다. 선두(先頭). 그 누구보다도 앞서 나가며 사람들을 이끌었던 그녀가, 그리 해야 마땅하다는 양 머리를 내렸다.


그를 기점으로 시작된다.


하나, 둘. 이어서 셋, 넷···.


다섯이 열이 된다. 열이 스물이 되고, 서른이 곧 쉰이 된다. 이윽고, 그 너머까지.


하나 된 뜻이 같은 움직임을 부른다. 물결이 일관되게 퍼져가는 것처럼, 이 거리를 장악한 수백의 머리가 차례차례 아래로 향한다.


그들이 숭배할 자를 향해서.


이 세계에 강림한 신을 향하여.


온 거리의 살아있는 자들이, 단 한 명을 향해 경배를 올린다.


“······.”


그 경치를, 강우는 말없이 내려다볼 뿐이었다.


달이 떴다. 날은 저문 지 오래였고, 월광만으로는 이 캄캄한 세상을 밝게 비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서는.


짙게 피어나는 의념을 읽어내는, 감각의 세계에서는···.


- 눈부시다.


이 도시 전체에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이 합비라는 땅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한낱 연기만을 피워올리던 불씨들이··· 밤의 어둠을 몰아낼 듯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저 드높은 창공에 닿을 것처럼.


눌러뒀던 원한을 풀어내고, 해묵은 증오를 불사르며··· 진정으로 재앙이 되고자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세계에, 종언을 고하기 위하여.


그 사실이.


저 수많은 이들이 자신 앞에 고개 숙이며, 자신과 같은 뜻을 따른다는 사실이···.


- 미치도록 짜릿했다.


한평생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희열이 온몸을 관통한다.


‘그러니··· 무어라 화답을 보내야 하지 않겠나.’


그 생각이 머리를 닿은 직후.


촤악!


“······?”


살갗을 갈라내는 소리가 선명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의아함이 퍼져갔다. 사람들은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그래서 볼 수 있었다.


뚝··· 뚝···.


강우의 왼손에서 핏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니 알 수 있었다.


낫의 칼날로 손바닥을 그어냈다.


그것은 무슨 뜻을 담고 있는가. 의문을 담은 시선에 답하고자, 강우는 그 손을 움직였다.


그 붉은 손바닥이 날의 배면을 따라 움직였다.


도신이 검붉은 핏물로 질척하게 물들여졌다. 그리고.


그 피로 물든 칼날을, 하늘을 향해 치켜든다.


절묘하게 달을 가린 모습.


호천(顥天)을 걸어 끌어내릴 듯한 그 모습에··· 이젠 사람들 사이로 희열이 번져간다.


알 수 없는 짜릿함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을 꿰뚫는다.


깨달았으니까.


의식 이전에 본능이, 직감이 그 뜻을 깨달았으니까.


드디어 새로운 날이 열릴 것임을.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어제까지의 세상을 파멸시켰음을.


***


광란의 의식이 이 땅에서 벌어지던 그 순간.


“헉··· 헉, 커헉···!”


이 상황에서, 더불어 이런 때에, 온 힘을 다해 거리를 질주하는 자가 있었다.


남궁세가의 직속 수행 부대, 청룡대의 대주. 남궁진성.


그는 헐떡이는 숨을 억누르며, 사력을 다해 남궁세가의 장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본디 그는 적사회가 흉수의 무리와 충돌하기 전에, 창연을 본가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따르고자 움직였다.


- 얼굴이 상했으면 이제 정신을 좀 차렸겠지.


그러한 판단하에 가주께서 개인적으로 지시한 일이었다.


성씨를 갈며 가문과 연을 끊은 것, 가주께선 그녀의 행동을 단순한 일탈로 치부하고 계셨다.


‘연도근이 명을 달리 한 이상, 그 어리석은 신천후라면 분명 성급하게 움직일 게 뻔하다. 일이 어찌 흘러가도 신경 쓸 바는 아니나··· 다만 양쪽이 충돌하기 전에 내 아이만은 데려와라.’


그것이 가주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가주께선 그저 별것 아닌 소란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나.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뒤였다.


그래, 멀리서 본다면 가주께서 내린 판단처럼 별것 아닌 자들이었다.


흐트러진 자세. 엉망진창인 기세. 떼거리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듯 보이는 자도, 잘 쳐줘야 이류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찌 저들이··· 저렇게? 이 짧은 시간 동안, 무엇을 빌어서···.’


가까이서 본다면.


그 실체를 찬찬히 뜯어보면.


흉수의 무리는 세가의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재앙이었다.


남궁진성은 똑똑히 보았다. 흉수에게 맥문이 잡힌 자들, 그들이 무슨 일을 일으켰는지.


전신에 탁기가 들어차 단전조차 빚을 수 없는 이들이.


으레 기연이라 부르는 것을 빌어, 아득한 실력을 갖춘 스승을 만나더라도 삼류만도 못한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내공을 사용했다.


일개 유민에 불과했던 이들이, 강호의 무인들을 유린했다.


그들 앞에 앞장서던 것이 창연이었다. 절맥증을 앓아 그 어떠한 무공도 받아들일 수 없던 그녀조차, 정면에서 독아단 단원을 살해했다.


‘그것도 모자라···.’


단신으로 이룡각을 함락한 소문의 그 흉수까지.


연도근을 죽였음은 알고 있었으나, 적어도 대등한 사투가 벌어졌으리라 짐작했다. 그 또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고 예측했다.


허나 누각 꼭대기에서 내보인 그의 모습은 얕은 생채기 하나 없었으니.


상식을 파괴하는 강자.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절대적인 믿음.


‘알려야 한다.’


닥쳐올 재앙을.


꺼트려야만 하는 증오의 불길을.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그것이 전령으로서의 책무이기에.


그 간절함을 품고서, 남궁진성은 달려 나갔다.


***


다음 날


해가 밝았다. 그에 맞춰 창연은 그간 놀리던 붓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몸은 피곤했으나, 정신은 무섭도록 맑았다.


그녀는 제 손에 들린 책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자신이 엮어낸 대업의 도화선이었다.


감상에 취하는 것도 찰나에 불과했다. 이제부터, 이 깨달음을 널리 알려야만 하니까.


그녀는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청월루 일 층.


어느 한 명 분주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룡각에서 약탈한 장서들, 무엇이 적혀있는지 아무도 그 내용을 보지 않는다.


다만 씻겨질 따름이었다.


먹이 물에 풀어지고, 종이는 본래의 하얀 모습을 되찾는다.


자신이 명한 일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꼭 필요하고, 또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정이기에.


“완성된 겁니까?”


누군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그래.”


그 답변에, 사람들의 낯빛이 밝아진다.


밤새도록 진행된 작업. 피곤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알게 되자, 모두들 잠시나마 쌓인 피로를 잊는다.


무공.


귀인께서 베푼 힘. 살신이 내려주는 그 세례를, 누구나 터득할 수 있도록 제련한 것.


의원으로서의 지식과 경험을 살려 겨우 정리할 수 있었다. 심장을 중심으로 온몸의 혈도를 따라 순환하는 진기. 그 흐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간신히 구조를 깨달았다.


생각해보자. 지금껏 알던 ‘무공’이라는 것은, 심히 불공평하지 않나.


열 살을 기점으로 근골이 닫히기 시작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암만 노력해도 성취에 한계가 있음이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때에 맞게 배움을 시작해도, 제대로 된 심법을 익히지 못하면 경지의 상승은 그저 헛된 꿈으로 전락한다.


입문에만 오 년.


적공에는 십 년.


내공이란 것은 절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는 것이다. 정파의 길, 소위 백도(白道)라 불리는 그것은 끝없는 인내를 요한다.


매일매일 뼈를 깎는 수행을 거듭하길 몇 년, 그래야 빛을 볼 수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자, 아침에 일을 나서지 못하면 저녁을 굶는 자에게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


흑도라고 다를까. 사파의 길은 자질에 좌우된다. 제대로 된 수행 없이 생사를 오가는 실전으로 내던져지니, 태생부터 강골이어야 살아남아 힘을 쌓을 수 있다.


그러니 두 길 모두, 더없이 비참한 약자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로가 되지 못한다.


구파일방은 엄선을 거듭해 고른 적전과 속가제자들로.


오대세가는 이름난 객인(客人)을 혈연으로 묶어서.


단지 그들끼리 수혜를 보았다. 선택받은 이들만이 그 비급을 거머쥘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허나, 살신께서 베푼 이 은혜는 어떠한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그 무엇도 한계 짓지 않는, 무애(無碍)한 힘.


‘이 깨달음을 널리 퍼트려야만 한다.’


일일이 맥문을 직접 잡히지 않아도, 처음 보는 사람도 기감만 있다면 곧장 익힐 수 있게끔.


그때.


“이름은 무어라 붙이실 겁니까?”


누군가 묻는다.


“이름이라···.”


창연은 곱씹는다. 본래라면 귀인께서 직접 짓는 편이 옳겠지. 그러나 그분께선 이런 사사로운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앞서 그를 추종한 선각자로서, 이런 일은 알아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녀는 잠시간 골몰한다.


“신공(神功)이라는 이름은 어떻습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제안한다. 신께서 내려주신 힘이라, 마땅히 그리 불러야 한다는 논지였다. 하지만.


“아니.”


창연은 고개를 저었다.


우선 떠오른 것은, 피휘(避諱)의 예. 신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에 담아선 아니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떠오른 것은··· 본심.


단순히 신께서 사용하고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신을 믿음으로써 세례받는 힘.


그를 빌어, 이 기존 세계가 종말을 맞이하리라는 믿음으로 빚어진 힘.


“신공(信功)이다.”


선언한다.


훗날, ‘마공(魔功)’이라 불리는··· 강호 전체에 퍼진 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아직이야.”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아직 부족하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저 멀리 떨어진 거리의 끝자락.


너덜너덜해진 외투에 다 망가진 삿갓.


그리고 그 삿갓으로도 가릴 수 없는 너저분한 백발.


그에 더해··· 이전엔 보지 못하던, 허리춤에 찬 낡은 장검 한 자루까지.


“하지만···.”


그 모든 광경을 시야에 담으며···.


“얼마 남지 않았군.”


노인은, 기대에 찬 귀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작가의말

神: 귀신 신

信: 믿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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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순례(巡禮) ※23/06/20(목) 수정※ +3 24.06.15 647 2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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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교(交), 교(敎), 그리고 교(矯) +2 24.06.12 746 33 13쪽
37 맹(盟), 맹(盲), 그리고 맹(儚) 24.06.11 724 29 13쪽
36 "그대는 그저,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길을 나아가주게." +3 24.06.10 732 33 11쪽
35 “···이리하여 나의 고난이 시작되었고.” 24.06.09 758 31 13쪽
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1 24.06.08 751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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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대물림 24.06.05 819 30 12쪽
30 하늘에서 내려온(天) 악마처럼(魔). +1 24.06.04 864 38 11쪽
29 비로소, 파(破) +2 24.06.03 861 34 12쪽
28 몰(歿)할 때까지 몰(沒) 24.06.02 867 30 13쪽
27 악(惡)이 벼려낸 악(鍔) +1 24.06.01 863 30 12쪽
26 회(徊)를 딛고서 회(䝇) +3 24.05.31 889 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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